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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고양이와 나비>
열번째 이야기...
# 1
"실은 뭐...?"
"알 필요 없다고."
"장난하냐, 지금?"
도진은 반쯤 몸을 일으켜 앉아 자신을 보며 미소 띠는 승준의 그러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이제 좀 살만하면 아침이나 먹지?"
"너... 부잣집 귀한 아들놈었냐?"
"좋을 대로 생각해."
"내 몇 안 되는 베프중 한 사람이 넌데, 뭔가 배신감 느낀다?"
"쿡쿡..."
승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다시 제자리에 놓아두었고 도진은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껴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선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누워 있던 탓이었는지 일어서려니 꾀 어지러움이 심했다. 약간 기우는 도진의 몸을 승준은 그의 어깨를 잡아 중심을 잡게끔 도와주었다.
두 사람은 넓은 방에서 나왔는데 특이한 점이라면 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방을 나오니 꾀 넓은 거실이 바로 나왔다. 거실의 한 쪽은 큰 창문이 나 있었고 벽 쪽으로 책을 꽂아둔 책장이 서로 키를 맞추어 자리하고 있었다. 거실의 가운데엔 짐승의 털로 보이는 꾀 큰 카펫이 깔려 있었고 그 위에 하얀색의 소파가 놓여져 있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깥 정원은 잘 손질되어 있는 나무들과 풀들로 꾸며져 있었고 정장 차림의 사내 두 명이 순찰을 보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이상의 유무를 확인하고 있었다. 햇빛이 바로 들어와 굳이 불을 키지 않아도 환하게 밝게 거실을 비추고 있었다. 거실을 지나 오른쪽으로 복도를 지나니 부엌이 나타났다.
방에서 부엌까지 오기까지 주변을 살피던 도진은 입을 좀처럼 다물 줄 몰랐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집 구조가 현실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친구가 이런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이 더욱 더 믿겨지지 않고 있었다. 원채 잘난 귀풍이 느껴지던 승준이였지만 단칸방서 항상 입어오던 후질근한 추리닝의 차림은 온데 간데 없고 지금 자신 앞에 진짜일 지 모르는 본연의 모습으로 인해 오늘로 하여금 다시보이기 시작했다.
"앉아."
"하하하하..."
"...?..."
갑자기 실없는 웃음을 통해내는 도진을 승준은 밥 한 숟가락 뜨다 말고 쳐다보았다.
"왜그래?"
"문득 동화 하나가 생각나서."
"뜬금없이? 뭔데."
"신데렐라"
# 2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친구한테 물어 봤거든? 거기도 안 왔대."
"그 녀석들이 한꺼번에 어디로 증발했냐는 거지."
북적이는 점심시간,
3층에는 승준의 부재로 인해 평소보다 확연히 여학생의 수가 줄었다. 학생들의 오가는 대화 속에는 승준과 도진의 이름이 오르내렸고 어제 싸움이 있었다는 확증에 그와 관련된 녀석들까지 학교에 나타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승준이 다시 돌아왔다는 화제에 이어 두 번째 이슈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옆에 앉아도 되니?"
승준이 빠진 석의 옆 자리에 학교에서도 밀어주고 있는 연기자로 활동 중인 란이 다가와 물었다. 다희는 숟가락으로 국을 떠 입으로 가져가려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올려다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 시선이 곱진 않았다.
"앉으세요."
"고마워."
석은 의자를 뒤로 빼주었고 란은 자리에 앉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찬희를 보며 싱긋 웃어보였다.
"거...'유리공주'에 나오는 가 아닙니꺼?"
"맞아."
찬희가 긴가민가 하다가 질문을 던졌고 대답은 란에게서가 아니라 다희가 대신 대답했다. 그런 다희를 보는 란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석은 그런 태도의 다희가 같은 여자로써 질투심을 느끼는 것이라 판단되어 아무말없이 싱긋 웃을 뿐이었다.
"기억해 주니, 고마워. 장란이야."
장란. 톱스타는 아니지만 아역배우로 드문드문 드라마에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신인배우다. 이번에 출연하는 드라마도 시청률이 점점 오르고 있어 점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방송을 통해 비춰지는 도도와 청순보다는 실제로는 내숭으로 똘똘 뭉쳐있는 터라 다희는 그녀가 아니꼽지 않을 수 없었다. 다희는 물론 전여학생들이라면 그녀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 편이었지만 남학생들에게는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그녀로서는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는 모습에서 진심으로 대하는 지 그 속내는 알 수 없으나 그녀에게 마음을 여는 여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그녀를 둘러싼 몇 가지 소문이 있었는데 그 중에 다희가 제일 꺼리는 점이라면 지금의 남자친구 도진을 자신의 유명세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본래 연예인을 시작하기 전에는 승준이 자신의 남자친구라는 소문을 친구를 이용해 퍼뜨려 다녔고 그의 갑작스런 부제와 자신의 출세를 위해 지금의 도진을 선택한 것이다. 학교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연인사이이긴 했지만 다희는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
"말씀 하세요."
"승준이 역시... 학교에 안 온 거니?"
"네."
"진짜... 볼 줄 아니?"
"무엇이 궁금하신 건데요?"
"승준이 지금 어디 있니? 들어보니 어제 싸움했던 녀석들이 죄다 학교에 안 나왔다던데... 그런 것도 알고 있니?"
"선배가 걱정할 일은 아니에요."
"알려줘."
"타인에게 쉽게 알려 줄 수 없어요."
"타인이라니? 이래뵈도 도진이 여자친구인데."
"근데, 왜 도진오빠 안부는 안 궁금해요?"
- 그 손 놓지 못해?
가만히 있던 다희가 식사를 마치고 팔짱을 낀 채 석의 왼팔뚝을 두 손으로 감싸 잡으며 바짝 붙어있는 란을 경계하며 물었다.
"그거야... 연락이 왔으니깐."
"뭐래요?"
"다행히 그렇게 심하게 다치진 않은 모양이야."
"승준형에 대해선 물어봤어요?"
"도진이도 모르는 눈치인 것 같아서... 너에게 직접 물어보려고."
"그렇군요."
석은 이번 점심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저를 내려놓으며 란을 쳐다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승준이 안부 좀 봐주면 안 될까?"
"뭘 봐준다 하는 기가?"
"넌, 가만히 있어."
찬희는 두 사람의 오고가는 대화가 이해되질 않아 오른 손을 귓가에 대어 귓속말로 다희에게 물었고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아 내리곤 검지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대며 쉿- 조용히 시켰다. 찬희는 그녀의 말에 따라 왼 팔로 턱을 괴어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들어나 보자 했다.
"선배."
"부탁이야."
"제가 잘못 본 걸까요...?"
"응?"
"두 사람...지금 같이 있는데."
"그래? 그거 다행이네. 아침에 통화했었거든. 두 사람 만났나보구나."
"저...시험하시는 겁니까?"
"뭐?"
다희는 한 눈에 알아차렸다. 지금 그녀가 감히 석의 앞에서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석은 누구보다 진실을 꾀고 있는 사람으로써 의도든 의도치 않든 시험하려는 자에 대해선 심히 불쾌감을 느꼈다. 지금도 너무나 태연스럽게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거짓말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늘어놓고 있는 란을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란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무서운 눈빛으로 돌변한 석의 눈빛에 맞대응하고 있었다. 이건, 누가봐도 도전이라 볼만 했다.
"욕망으로 가득 찬 그대가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어머..."
"석아!"
석의 말에 입꼬리를 올리며 싱긋 웃어보이는 란은 무슨 얘기를 꺼내놓을 까 싶어 석의 말에 집중했고 팔짱을 끼고 이를 지켜보려 했던 다희가 제어 못하는 석의 이면을 알고서 그의 어깨를 잡아 이름을 불러 막았다.
"조심하세요."
다희 덕에 이성을 찾은 석은 란에게 차갑게 내뱉었다.
"뭘 조심하란건지 모르겠지만, 넌, 승준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싶지 않다는 거잖아? 가끔 너에게 찾아올게. 지금처럼 차갑게 대하지만 말아줘."
란은 처음 겪어보는 기분에 흥미로운 듯 실실 웃음을 쪼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한건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그것으로 그녀는 만족했다.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왔을 지 궁금하긴 하지만 종교를 떠나 그런 무속적인 힘으로 운명을 논하는 그러한 말들은 일절 믿지 않는 그녀였기에 악담을 늘어놓는다 하여도 전혀 동요할 리 없었다. 정말 누군가의 미래를 볼 줄 안다면 적절히 이용해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을 하니 이번 점심은 그 어느 때보다 달게 느껴지는 그녀였다.
열한번째 이야기
<검은 고양이와 나비>
# 1
"할머니~"
"우리 손자며느리 왔어?"
"헤헤... 왜 부르셨어요? 또 우리 남편 아파요?"
"아니. 친구들이랑 놀러 나갔다."
"뭐야, 나한텐 아프다고 그랬는데."
"허허허... 널 왜그렇게 피해 다니나 모르겠구나."
몽순과 마주앉은 다희는 치맛자락을 꼼지락 매만지며 거짓말하며 자신을 피해다니는 석한테서 마음이 상하고 있었다.
"석이 찾으러 가야겠어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부르신 거에요?"
"네게 부탁이 있구나."
"뭐든 말씀 하세요."
"석이가 아직 어려 조절을 못하는 구나. 똑똑한 다희가 옆에서 잡아주겠니."
"아~ 석이는 왜 그런데요? 애도 아니고."
"허허허...그러게나 말이다."
"할머니, 염려 마세요. 난 미래의 석이 아내니깐 당연히 해야죠."
"우리 다희 애까지 보려면 이 할미 오래오래 살아야 겠구나."
"아하하하하..."
"허허허..."
할머니의 부탁을 받으니 뭔가 사명감이 생기면서 석이만큼은 지켜야겠다고 다시 한 번 결심해보는 다희였다.
석의 집을 나와 그가 있을 만한 곳으로 걸어갔다. 괴롭히지도 않는 자신을 매번 피하기만 하는 석이가 정말 얄미웠다. 같은 중학교로 배정까지 받아 석과 떨어지지 않아서 몹시 좋은 다희와는 다르게 한 숨을 내쉬던 석의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바보."
작게 중얼거리며 흙길에 돌아다니는 자잘한 돌멩이들 틈에서 유독 눈에 들어온 꾀 큰 돌을 발길질을 하며 앞으로 걷어찼다. 돌멩이가 발길질에 의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저만치서 툭하니 떨어지고는 데구르르 굴러가 담벼락에 부딪히며 멈췄다.
"윤다희가 진짜 좋아하는 애가 누구냐고!"
"모른다고."
"진짜 치사하게 안 알려 주기냐?"
"다른 누구에게 쉽게 알려주는 게 아니야."
"이자식이 진짜!"
퍽-
석을 벽쪽으로 밀어붙이던 남자아이가 주먹을 날려 석의 얼굴을 때렸다. 미처 피하지 못한 석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고 자신보다 큰 체격에 밀리는 것도 모자라 힘에서도 밀리는 것에 대한 화가 일렀다. 석의 눈동자가 변하기 시작했다.
"감히..."
- 가만두지 마
"감히 뭐? 때려봐!"
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손바닥을 툭툭 털더니 남자아이를 벽쪽으로 밀쳐냈다.
"너, 이자식. 해보자 이거냐?"
석은 바람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고 서서히 그를 중심으로 바람이 일기 시작할 때였다.
"그만해!"
갑자기 나타난 다희가 석을 뒤에서 끌어안았다. 다희가 나타남으로써 일기 시작했던 바람이 멈추고 석의 돌연히 변한 무서운 눈빛에 지레 겁부터 먹은 남자아이는 벌벌 떨다 후다닥 도망을 쳤다.
"이래서, 넌. 혼자 둘 수가 없어."
# 2
"봤나. 야 눈깔 변하는 거."
처음보는 석의 모습에 찬희는 실로 놀란 모양이었다.
다희는 다행히 큰일이 나지 않은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동안 잠잠하다 싶었던 그를 깨운 란의 행동에 다시 걱정이 앞섰다. 여전히 스스로 통제를 못하고 있는 석이었기에 더 그러했다.
"가, 뭐 볼 줄 아는 기가. 그 뭐더라..."
"무당 말하는거지?
"아, 그래, 그거가?"
아직 시간이 있는 점심시간동안 찬희는 석의 반에 들어와 그의 자리에 앉아 아까 상황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다희는 석의 대변인으로써 그의 물음에 답해주고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찬희를 이해시키는 것이 먼저일 것이라 판단되었다.
"뭐... 쉽게 표현해면 그런 거지만, 석의 같은 경우는 좀 달라. 보통 무당이 하는 굿판을 벌이거나 하진 않거든."
"우와~ 실제로 보기는 첨이네. 와 이 어리노. 늙은 할매 연상켔드만."
"모르는 소리. 어린 여자애도 있는데."
"쿡쿡... 이 바닥을 알아보면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야를 두고 한 소리 었드나? 할매가 유명하다 카드만."
"그렇지. 이 나라의 대통령도 가끔 찾아뵙는 유명인이시니깐."
"우와~ 신기하네~"
찬희는 턱을 괸 채 다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이해했다는 표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궁금한 게 하나 있다."
"뭔데?"
"아까, 눈깔 변할 때 와 막은 기가? 뭐라 욕망이니 어쩌니 하던 것 같은데...니가 이름 불러가 다시 눈깔 돌아왔다 안 카나."
"그건..."
5년 전 일이었다.
석의 할머니께 불렸던 그날, 석의 옆에서 그를 잡아달라는 할머니와의 약속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었으며 그에 관해선 자기 몫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할머니도 느끼지 못한다는 석의 기운을 자신만이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석을 만났던 그 날.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목소리가 나오는 곳을 알아내고 방문을 열자 같은 또래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땀을 흘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인사를 먼저 했을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일렀다. 그 때문일까. 그 이후로 석이 힘을 쓰면 비록 멀리 있더라도 그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안 할머니께서 그런 부탁을 자신에게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기척을 느낄 수 있을 뿐, 직접 그와 접촉하지 않는 이상 그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 때문에 무의식 적으로 석은 줄곧 자신을 피해다녔을 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석이 어떠한 능력이 있는 지. 석의 몸속에 빙의된 혼이 누구인지. 그것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직도 스스로 그 힘을 조절을 못하는 건지. 아니면 그러한 힘을 다룰 줄 알면서도 아까와 같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건지. 10년을 넘게 그와 있었으면서도 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 같이 느껴지니 석이가 그토록 바랬던 자신의 평범함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첫댓글 재미있게 읽고갑니다..담편도 기대할께요
댓글을달아주셔서너무나감사할따름이에요. 님때문이라도더욱더열심히 완결까지 올려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