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출신 명장 라스 폰 트리에의 페르소나였으며, 지난 반 세기 가장 뜨거운 찬사를 받은 예술영화들에 출연한 독일 스타 배우 우도 키어가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고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인의 현재 파트너이자 화가인 델버트 맥브라이드는 버라이어티 인터뷰를 통해 키어가 이날 아침 미국 캘리포니아 팜스프링스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확인해줬다. 사망 원인은 곧바로 공개되지 않았다.
일찍이 동성애자임을 공개 천명하고 당당하게 배우 일을 해낸 사람이기도 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젊은 시절 그의 파트너 중 한 명이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1945~82)였다.
60년에 걸쳐 200편이 넘는 영화와 TV 시리즈에서 역할을 맡았던 키어는 대담하고 실험적이며 아방가르드의 아이콘이 됐다. 그는 동시대 가장 존경받는 영화 제작자들과 협업하고 뮤즈 역할도 했다. 키어는 라스 폰 트리에가 연출한 여섯 편의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했으며, 2000년 뮤지컬 비극 '댄서 인 더 다크'는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독일이 항복 문서에 조인하기 전날(1944년 10월 14일), 쾰른에서 태어난 키어는 독일에서 "끔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묘사했다. 아버지는 "이미 결혼했고 세 자녀가 있었고" 어머니는 가난 속에서 그를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2002년에 "공장에 일하러 갔다"고 밝힌 것은 자신의 유일한 "의도 — 내가 태어난 그 비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고 털어놓았다.
키어는 18세에 런던으로 이주해 영어를 배웠고, 1966년 단편 영화 '로드 투 생트로페' 주연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10년도 채 안 돼 키어는 대표작 중 하나인 1973년 전설적인 언더그라운드 영화감독 폴 모리세이가 연출하고 '워홀'을 연기한 조 달레산드로가 공동 주연한 충격적인 영화 '앤디 워홀의 프랑켄슈타인'에 출연했다.
10년의 고난이 끝나자 그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어 첫 제국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키어는 1979년 전설적인 헝가리 작가 미클로스 얀초의 서사시 '헝가리 광시곡' 전반부에 주연을 맡았다. 같은 해 그는 독일 개척자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와의 여러 협업 중 첫 작품 '제3세대'에 출연했으며, 다음해에는 파스빈더의 걸작 14부작 미니시리즈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주연을 맡았다.
키어는 한 가지 스타일, 한 장르, 한 나라 출신의 작품에 안주하지 않았다. 그는 유럽, 북미, 심지어 남미 전역에서 활약하며 스타 지망생에서 신뢰할 수 있는 조연, 그리고 컬트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그는 카멜레온 같은 재능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는 몇몇 프로젝트에 무명 역할로 출연했다. '다리오 아르젠토의 대표작 '서스페리아', 파스빈더의 'BRD 3부작' 클로저 곡, 마돈나의 '"Deeper and Deeper"와 이브의 'Let Me Blow Ya Mind'(그웬 스테파니 피처링) 뮤직비디오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롭 좀비의 지적인 공포 영화 '로드 오브 세일럼'에서 마녀사냥꾼 역을 맡았다.
그는 주로 기이하고 날카로우며 소규모, 작은 예산 영화에 매달렸지만, 주류 영화를 결코 피하지 는 않았다. 최근 몇 년간 그는 베를린에서 피치 퍼펙트 유니버스 TV 리프 '범퍼'에서 독일인 레코드 프로듀서 클라우스 역으로 출연했다. 그는 또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2017년 SF 코미디 '다운사이징',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세 편 영화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카우걸 블루스'(Even Cowgirls Get the Blues), '돈 워리', 그리고 제니퍼 쿨리지와 린다 에반스가 공동 출연한 최근 주연 영화 '스완 송'도 있다.
이번 달에도 키어는 브라질 거장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의 두 편의 인상적인 역할로 다시 주목받았으며, 두 작품 모두 그를 칸으로 복귀시켰다. 키어는 2019년 영화 '바쿠라우'에서 무자비한 현상금 사냥꾼 여단장 역으로, 올해 영화 '시크릿 에이전트'에서는 2차 세계대전 경험으로 비유적으로나 문자 그대로 상처를 입은 유대인 재단사 한스로 출연했다.
유작으로 일본 영화 겸 게임 콘텐츠 ‘OD’를 남겼다. 제작자 코지마 히데오는 이날 자신의 X 계정을 통해 “(할리우드) 파업으로 ‘OD’의 촬영이 오랫동안 재개할 수 없고, 부득이하게 촬영을 내년으로 재조정했다. 우도는 이 기간에도 자주 연락을 취했고, 9월 말 밀라노에서 직접 만났을 때도 내년 촬영 재개를 누구보다 기대하고 있었다. 그 때도 굉장히 건강하고, 평소의 유머로 웃게 해줬다. 정말 믿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코지마 히데오는 “우도는 단순한 배우가 아닌 시대의 아이콘이었다”며 “이제 그와 같은 사람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