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6일 묵상 본문 : 이사야 14장 24절 - 32절 – 심판의 메시지 앞에서도 주님이 나의 피난처임을 고백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롭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이 어두운 것은 하나님 앞에 서는 저의 모습 때문입니다.
여전히 부족함과 세상의 것을 탐하는 마음이 가득함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저의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마음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내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마음을 주옵소서.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시고 새로운 피조물로써의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본문
24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
25 내가 앗수르를 나의 땅에서 파하며 나의 산에서 그것을 짓밟으리니 그 때에 그의 멍에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고 그의 짐이 그들의 어깨에서 벗어질 것이라
26 이것이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이며 이것이 열방을 향하여 편 손이라 하셨나니
27 만군의 여호와께서 경영하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폐하며 그의 손을 펴셨은즉 누가 능히 그것을 돌이키랴
28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이 경고가 임하니라
29 블레셋 온 땅이여 너를 치던 막대기가 부러졌다고 기뻐하지 말라 뱀의 뿌리에서는 독사가 나겠고 그의 열매는 날아다니는 불뱀이 되리라
30 가난한 자의 장자는 먹겠고 궁핍한 자는 평안히 누우려니와 내가 네 뿌리를 기근으로 죽일 것이요 네게 남은 자는 살륙을 당하리라
31 성문이여 슬피 울지어다 성읍이여 부르짖을지어다 너 블레셋이여 다 소멸되리로다 대저 연기가 북방에서 오는데 그 대열에서 벗어난 자가 없느니라
32 그 나라 사신들에게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여호와께서 시온을 세우셨으니 그의 백성의 곤고한 자들이 그 안에서 피난하리라 할 것이니라
바벨론의 멸망을 선언하던 이사야 선지자는 이번에는 앗수르의 멸망을 선포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역사를 경영하심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되며 반드시 이루어짐을 말씀합니다.
그리고서 앗수르를 징계하시는 모습이 소개 됩니다.
이 모습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략했으나 점령하지 못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고 죽게 될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 결과 유다의 짐이 벗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됨을 보여줍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의 결과임을 선언합니다.
이어서 아하스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은 블레셋을 징계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당시 블레셋은 가나안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정권 혼란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누립니다.
그러나 그 이후 또 다시 어려움이 닥칠 것이며 결국 블레셋이 소멸 될 것을 선언하십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블레셋이 등장한 마지막의 모습이 될 것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블레셋의 사신들이 와서 연합하자고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것을 권면합니다.
나의 묵상
하나님의 이어지는 열방에 대한 심판은 죄를 간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준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 신실하게 성취될 것을 선언하심으로써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신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힘센 국가와 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세력들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힘을 가지려고 하며 그 힘을 사용해서 자신의 필요를 채우려 한다.
나라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이런 욕심과 교만은 쉽게 드러난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면 그 방법이 치졸하고 부도덕할지라도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여긴다.
동물의 세계에서 적용되는 약육강식의 모습은 어느 정도 일정한 법칙 아래에서 진행된다.
동물들은 나름대로 원칙을 지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정한 법칙을 지키지도 않고 욕심은 끝이 없다.
그래서 동물보다 못한 모습을 가질 때가 허다하다.
이런 세상을 심판하시고 멸망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정당하며 공의로우시다.
어떤 이는 세상의 악을 보며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조차 하나님이 자신에게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 불평하며 원망한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의 심판 대상임을 망각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자신이 일정한 원칙, 법도 지키지 않으며 끝없는 욕심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못보고 있는 것이다.
무지함은 교만으로 연결되며 교만은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이스라엘과 유다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열방도 심판하신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심판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 심판은 정당하며 각 나라의 죄악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에 합당하다.
그 안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담겨 있다.
그런데 그곳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한 배려가 늘 담겨 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32절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이 유다의 구원이 되심을 선언하신다.
그리고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고난에서 피할 길을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고 죄가 관영한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제공한다.
계속해서 선포되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심판을 대하기만 하는 마음은 불편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심판이 없이는 구원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는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구원에 대한 소망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사야를 통해 나타나는 이스라엘과 유다, 그리고 바벨론을 비롯한 열국의 심판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게 만든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는 믿음이 구원의 방법이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구원의 은혜를 받게 만드는 것이다.
세상의 연합이 구원이 될 수 없다.
세상의 방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블레셋과의 연합을 위해 보내진 사신들에게도 반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고난을 피할 수 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 주님과 교제하는 삶이 심판을 피하고 자유 하는 삶의 비결이다.
요즘 나라 안팎으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각국의 이해가 서로 얽혀서 문제만 커지게 만드는 것을 본다.
일희일비하며 요동하는 마음들은 하나님의 심판임을 느낀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는 유일한 능력은 바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임을 말씀이 가르쳐 준다.
구약에서도, 그리고 신약에서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삶이 능력이 된다.
오늘도 그 주님 안에 거하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이며 능력임을 기억하고 승리하는 삶이되길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주님 안에 살기 원합니다.
심판의 메시지 앞에서 심판의 상황 앞에서 주님 품안이 피난처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옵소서.
주님과 교제함이 구원의 길임을 알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 안에서 주님과 동행하게 하옵소서.
세상의 소식에 흔들리지 않고, 상황과 여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로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