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문명의 교차로에서 찬란하게 빛난 도시
격동과 파란, 열정과 좌절이 뒤섞인 부다페스트의 2,000년이 펼쳐진다
부다페스트는 유럽의 작은 도시이지만, 세계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동양과 서양을 넘나드는 지리적 관문인 이 도시는 수많은 침략과 점령을 겪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문화와 지식을 흡수하며 독특한 역사를 형성해왔다.
『부다페스트』는 부다페스트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살피며 이곳에서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복잡한 역사를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국가로서의 헝가리보다 더 오래된 부다페스트의 역사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작되며, 몽골과 튀르크, 합스부르크, 나치 독일과 소련의 점령을 지난 뒤에야 진정한 해방을 맞는다. 그 과정에서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어 있었던 도시는 하나로 합쳐졌고,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로 자리매김했다. 기나긴 격동의 역사는 수많은 영웅과 악한들을 낳았고, 시민들은 때로 숨죽이며, 때로는 분노를 표출하며 스스로의 역사를 움직여왔다. 부다페스트를 떠난 후에도 이곳에 대해 말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음악가, 문인, 영화감독, 과학자들의 궤적은 이 작은 도시의 영향력이 유럽 전체로 뻗어나가도록 했다.
기자로서 부다페스트를 오가며 유명인은 물론 현지인의 증언까지 수집한 저자 빅터 세베스티엔은 이곳에서 숨 쉬었던 사람들의 기록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엮는다. 혁명과 자연재해, 점령과 포위를 겪은 민중의 시선을 통해 복합적으로 역사를 재구성해가는 이 책을 따라가다 보면, 다양한 열망과 논리로 들끓었던 부다페스트의 카페에 앉아 있는 듯하다. 역사가 된 인물들을 개성 있게 되살린 이 책은 혁명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 찬 부다페스트의 한가운데로 독자들을 초대할 것이다.
저자 소개
빅터 세베스티엔 Victor Sebestyen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난민이 되어 헝가리를 떠났다. 『레닌(Lenin)』, 『1946년(1946)』, 『1989년 혁명(Revolution 1989)』, 『12일(Twelve Days)』 등을 집필해 호평을 받았다. 그의 저서는 16개 이상의 언어로 출판되었다. 언론인으로서 「데일리 메일(Daily Mail)」과 「타임스(The Times)」를 비롯한 영국의 여러 신문사에서 일했다. 1989년에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동유럽 곳곳을 누비며 보도했다. 옛 유고슬라비아에서 일어난 전쟁과 소련의 해체 과정도 취재했다. 「이브닝 스탠더드(Evening Standard)」의 외신부장, 미디어 부장, 수석 논설위원, 「뉴스위크(Newsweek)」의 부편집인을 역임했다.
목차
서론
프롤로그
제1부 마자르인
제1장 아퀸쿰
제2장 마자르인
제3장 몽골족의 침공
제4장 까마귀왕
제5장 제국의 역습
제6장 부둔, 튀르크인의 도시
제7장 전리품 분배
제8장 부다 탈환
제2부 합스부르크 왕가
제9장 바로크, 우울과 영광
제10장 언어, 진실, 논리
제11장 교량 건설자
제12장 대홍수
제13장 3월 15일
제14장 혁명 전쟁
제15장 복수극
제16장 유다페스트
제17장 시시 황후
제18장 이중 군주국, 패배 속의 승리
제19장 부다페스트의 탄생
제20장 카페 문화
제21장 헝가리의 유대인 집단 학살
제22장 비자유 민주주의
제23장 자국의 정당성
제3부 세계대전
제24장 종말의 시작
제25장 레닌의 제자
제26장 해군 없는 제독
제27장 히틀러와 함께 행진을
제28장 드러난 광기
제29장 부다페스트 포위전
제30장 해방
제31장 철의 장막
제32장 공포의 집
제33장 또다시, 혁명
제34장 진압된 혁명
제35장 군영에서 가장 즐거운 막사
제36장 마지막 의식
결론
주
참고 문헌
감사의 말
화보 출처
인명 색인
책 속으로
로마 시대의 아퀸쿰에서부터 소비에트 연방의 난민 휴가지가 되기까지,
혁명과 봉기, 점령과 지배의 부다페스트 2,000년
부다페스트는 다양한 세력의 침공과 혁명, 봉기로 부침을 거듭했다. 고대 로마와 마자르인, 몽골, 튀르크가 이곳을 차례로 점령했고, 그때마다 아퀸쿰(고대 로마 시기), 부다(마자르인 정착기), 부둔(튀르크인 점령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오늘날 헝가리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마자르인은 침략을 겪을 때마다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 도움을 청했으나, 번번이 혼자서 외세를 감당해야 했다. 유럽에 속하지만 공격을 받을 때마다 외면받아온 역사는 헝가리의 정체성을 “동양과 서양” 사이로 위치시켰다.
17세기 이후 부다페스트를 차지한 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그전까지 부다를 점령하고 있던 튀르크인들을 몰아내고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곳을 통치했다. 이 시기에 헝가리는 합스부르크 가문과 긴밀하게 관계를 맺은 헝가리 귀족과 나머지 계층의 빈부격차가 커지고 비(非)마자르인에 대한 차별이 극심해지는 등 사회 갈등이 심화되었지만,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고 헝가리어 부흥 운동을 일으키는 등 독립된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뚜렷이 하기도 했다. 마자르인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이루어진 자치권 요구는 1848년 혁명과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으나, 비마자르인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한계와 합스부르크의 반격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이 쇠하자, 헝가리는 나치 독일과 운명을 함께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를 통치한 호르티 미클로시 제독은 히틀러의 충직한 부하로서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했고, 무장 폭력배들을 동원해 백색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전쟁 말기에 그는 패전을 예감하고 뒤늦게 히틀러와의 결별을 선언했지만, 이는 나치에 의한 부다페스트 포위전(마르가레테 작전)으로 이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헝가리는 소비에트 연방 국가가 되었다. 헝가리에 공산당을 조직한 라코시 마차시는 소비에트 독재 정권의 수장으로서 반공주의자들을 대거 숙청했고,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받고자 반유대주의자임을 자처했다. 그 결과 러이크 라슬로를 비롯한 상당수의 정치인들이 원인 불명으로 사라졌고, 그들의 이름은 오랫동안 거론되지 못했다.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은 곳은 부다페스트였다.
1956년과 1989년 혁명은 부다페스트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도시임을 증명한 사건이었다. 1956년, 부다페스트는 소련의 “붉은 군대”에 대항해 봉기를 일으켰다. 헝가리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한 이 봉기는 헝가리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지만, 부다페스트에서만 2,0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발생시키며 진압되었다. 한 차례 좌절된 혁명은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89년에 이르러 진정한 힘을 발휘했다. 1989년 6월 16일, 약 20만 명의 부다페스트의 시민이 광장으로 모였다. 1956년 혁명 영웅들의 시신을 다시 이장하는 의식에 참여하려고 모인 것이었다. 그들은 혁명 당시 총리로서 소련에 대항했던 너지 임레의 명예를 회복시키면서 약 30년간 억압되었던 자유를 향한 열망을 드러냈다.
자유를 향한 부다페스트의 열망은 이곳을 냉전 종식을 예견한 도시로 만들었다. 부다페스트를 뒤덮은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동독 난민들은 이곳을 서방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으로 삼았다. 동독은 자국민들이 서방 세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요청했지만, 부다페스트는 그 요청을 거절했다. 이로써 부다페스트는 사회주의 국가의 몰락에 앞장선 도시가 되었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낸
부다페스트의 예술가와 과학자들
부다페스트는 세계의 위대한 문인과 음악가, 과학자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부다페스트』는 20세기에 걸친 부다페스트의 역사를 꼼꼼하게 톺아보면서, 그 안에 살았던 예술가와 문인들의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음악가 프란츠 리스트(리스트 페렌치)는 헝가리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지만 헝가리 국민들에게 사랑받았고, 그 역시 조국에 대한 마음을 한시도 놓지 않았다. 비타민 C를 발견하여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센트죄르지 얼베르트는 동료 과학자들이 고향을 떠나는 와중에도 부다페스트에 남아 나치에 대항하는 지하 조직을 이끌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케르테스 임레는 유대인으로서 박해받았지만, 수용소에서 돌아온 뒤에도 부다페스트에 남아서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시인 미하이 뵈뢰슈머르치와 소설가 요커이 모르, 아서 쾨슬러, 세르브 언털은 주요 정치적 사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들을 남김으로써 우리가 그 역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한편 정치적, 인종적 박해를 피해 부다페스트를 떠난 사진작가 앙드레 케르테츠와 로버트 카파, 영화감독 알렉산더 코르더, 물리학자 레오 실라르드, 유진 위그너, 존 폰 노이만, 에드워드 텔러 등은 부다페스트의 역사가 한 사람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부다페스트』는 이들이 남긴 기록과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당대 부다페스트를 조망한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관대한 동시에 가장 잔혹했던 도시,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를 이야기할 때 이곳에 살았던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헝가리는 중세부터 유대인들에게 가장 관대한 국가였고, 부다페스트는 “유다페스트”라고 불릴 만큼 많은 유대인이 거주하던 도시였다. 부다페스트의 유대인들은 헝가리어를 배우고 헝가리인과 협력하며 적극적으로 사회에 섞였고, 공업과 상업, 은행업, 전문직 분야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나 이방인인 유대인들은 이곳에서도 탄압을 면치 못했다. 그들은 14세기에 흑사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었고, 튀르크인들이 부다에서 물러난 뒤에는 부역자 취급을 받았다. 유대인들이 곳곳에서 맹활약하던 19세기에는 마자르 민족주의 세력의 표적이 되었고, 집단 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헝가리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같은 노선을 택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당시 유대인은 공산주의를 퍼뜨리는 볼셰비즘의 앞잡이로 지목되었고, 약 50만 명이 아우슈비츠로 강제이송되었다. 유대인 학살에 앞장섰던 호르티 제독이 히틀러와 결별하면서 그 이상의 학살은 저지되었지만, 유대인 탄압의 역사는 헝가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책은 부다페스트의 복잡한 역사를 다루면서 독자들을 로마 시대의 변경 도시에서부터 몽골족과 튀르크인의 침공, 1848년 혁명과 20세기의 전쟁과 학살 한가운데로 이끈다. 유럽의 변경 지역으로서 “동양과 서양 사이”라고 불린 부다페스트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일어난 곳이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생기 넘치고 소란스럽지만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새로운 면을 속속들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