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는 음력 7월 7일 저녁에 견우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의 전설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전설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등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나라와 일본 등에도 퍼져 있다.
이 시의 처음 두 줄은 서두이고, 맨 마지막 두 줄은 시인의 위로이며, 가운데 열 줄은 견우와 직녀의 만남과 헤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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七夕歌(칠석가) 칠월 칠석의 노래 張耒(장뢰)
人間一葉梧桐飄(인간일엽오동표), 蓐收行秋回斗杓(욕수행추회두표).
神官召集役靈鵲(신관소집역령작), 直渡銀河橫作橋(직도은하횡작교).
사람 사이 한잎 오동 떠다니니, 욕수神 가을로 가 북두 자루 돌렸네.
신관들 불러 모아 신령 까치 부려, 곧 건너는 은하 가로다리 만들었네.
河東美人天帝子(하동미인천제자), 機杼年年勞玉指(기저년년노옥지),
織成雲霧紫綃衣(직성운무자초의), 辛苦無歡容不理(신고무환용불리).
은하수 동쪽 미인은 하느님 딸이고, 베틀에서 해마다 옥 손가락 수고롭네.
짜서 만든 구름 안개 자색 비단옷에, 힘들고 기쁨 없이 얼굴도 꾸밈없네.
帝憐獨居無與娛(제련독거무여오), 河西嫁與牽牛夫(하서가여견우부).
自從嫁後廢織絍(자종가후폐직임). 綠鬢雲鬟朝暮梳(녹빈운환조모소).
하느님은 홀로 지내며 즐김없음 가여워, 은하 서쪽 견우에 시집을 보냈네.
시집 간 뒤는 베틀 일 폐하고, 초록빛에 구름 머리만 아침저녁에 빗었네.
貪歡不歸天帝怒(탐환불귀천제노), 責歸却踏來時路(책귀각답내시로),
但令一歲一相見(단령일세일상견), 七月七日橋邊渡(칠월칠일교변도).
기쁨 탐하고 오지 않아 하느님이 노하고, 꾸짖어 오던 때 길 밟게 하네,
단 1년에 한번 서로 보게하고, 7월 7일 다리를 건너게 했다네.
別多會少知奈何(별다회소지내하)? 却憶從前歡愛多(각억종전환애다).
匆匆萬事說不盡(총총만사설부진), 玉龍已駕隨羲和(옥룡이가수희화).
이별많고 만남적어 어찌아는가? 도리어 종전 사랑 많은 기쁨 생각하네.
서둘러도 온갖 일 말 다 없고, 옥룡은 이미 멍에 지어 복희 화합 따르네.
河邊靈官催曉發(하변령관최효발), 令嚴不肯輕離別(영엄불긍경리별).
便將淚作雨滂沱(변장루작우방타), 淚痕有盡愁無歇(누흔유진수무헐).
은하 주변 신령 관리 새벽 재촉 나오고, 엄한 령에 가벼이 이별 못하네.
곧 눈물 나서 비로 쏟아지니, 눈물 자국 다 있어도 수심은 그치지 않네.
我言織女君莫歎(아언직녀군막탄), 天地無窮會相見(천지무궁회상견).
猶勝嫦娥不嫁人(유승항아불가인), 夜夜孤眠廣寒殿(야야고면광한전).
내 전하리 직녀 그대 탄식 마소, 천지는 무궁해 서로 보아 만나리라,
여전히 선녀 항아 시집 가지 않았고, 밤마다 외롭게 자는 광한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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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뢰(張耒, 1054~1114)는 북송의 관리이자 문인이다.
초주(楚州) 회음(淮陰) 사람으로 자는 문잠(文潛)이고, 호는 가산(柯山), 완구선생(宛丘先生), 장우사(張右史) 등이며, 신종(神宗) 희녕(熙寧) 6년(1073) 진사(進士)가 되었다.
철종(哲宗) 때 기거사인(起居舍人)에 오르고, 임회주부(臨淮主簿), 저작랑(著作郎)을 거쳐, 소성(紹聖,1094~1098)초에 용도각(龍圖閣)에 근무하면서 윤주지주(潤州知州)가 되었다.
원우당적(元祐黨籍)에 연좌되어 선주(宣州)로 옮겼다가 폄적(貶謫)되어 황주(黃州)의 주세(酒稅)를 감독하고, 다시 복주(復州)로 옮겼다. 휘종(徽宗, 1100∼1125)이 불러 사관검토(史館檢討)와 태상소경(太常少卿)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나가 영주(潁州)와 여주(汝州)의 지주(知州)가 되었다. 숭녕(崇寧,1102~1106) 초에 다시 당적에 연좌되어 파직됐다.
일찍이 소식(蘇軾)을 애도하며 복상(服喪)했다고 방주별가(房州別駕)로 쫓겨난 뒤 황주(黃州)에 안치되었다. 나중에 풀려나 진주(陳州)에 거주했으며 생활이 어려웠으나 가난을 말하지 않았고 늙을수록 지조가 더욱 굳었다.
시부(詩賦)와 사(詞)에 뛰어나 황정견(黃庭堅), 조보지(晁補之), 진관(秦觀)과 함께 ‘소문사학사(蘇門四學士)’로 불렸다.
시는 이치와 평담(平淡)을 추구했고 백거이(白居易)의 시풍(詩風)을 본받았으며, 악부(樂府)는 장적(張籍)의 성당체(盛唐體)를 배웠다. 촉학파(蜀學派)의 중요 인물로, 촉학이 전파되는 데 기여했다.
시문을 창작하면서 유학의 이치를 밝히는 것을 중요한 임무로 여겼다.
저서에 <시설(詩說)>과 <가산집(柯山集)>, <가산시여(柯山詩餘)>, <완구집(宛邱集)>, <명도잡지(明道雜志)>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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