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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을 본받는 자 되라” (2편)
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의 사도 바울.
그러면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유대교 바리새파의 교법사로 신앙할 때와 비교하여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성경으로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행9: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행9: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즉시(卽時) = 그 자리에서 바로.
회당(會堂) = 유대인의 집회 장소로 예배, 자녀 교육, 재판소로 사용됨.
전파(傳播) = 전하여 널리 퍼뜨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쌔,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습니다.
사울이 유대교의 바리새인으로 다메섹에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으러 가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는,
머뭇거리거나 망설이지 아니하고 즉시로 각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핍박받을 것을 각오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습니다.
말세에도 ‘교파’(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를 떠나서 ‘말씀’(예수님=진리)으로 오신 기독교인들은 사울을 본받아서,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핍박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즉시로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바르게 전파하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행9: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증명(證明) = 증거로써 사물을 밝혀 확실하게 함.
굴복(屈服) = 힘이 못 미쳐 복종함.
“사울이 힘을 더 얻어 구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말씀으로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라고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바르게 깨달은 ‘기독교인’(예수님의 제자)들은 사울을 본받아서,
‘교파’(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에 속한 세상적인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신앙과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성경말씀으로 증명하여 교파의 기독교인들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행9: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공모(共謀) =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 어떤 일을 모의함.
사울이 다메섹에서 여러 날 동안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명하여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였습니다.
사울이 유대교 바리새파의 교법사로 있을 때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였었는데,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파하니』 입장이 바뀌어,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죽임을 당하려고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말세인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지 않고,
세상과 벗된 신앙을 하는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은 절대로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기독교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세상과 벗된 교파의 신앙을 버리고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을 해야 한다.”고 하면,
사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후에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은 것처럼,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에게 틀림없이 많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기독교인들은 세상과 벗된 교파의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핍박을 받아야 복이 있습니다(마5:10-12).
행9: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행9: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계교(計巧) = 여러모로 빈틈없이 생각하여 낸 꾀.
‘그’(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한)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유대인들이=지금은 교파의 기독교인들이) ‘사울을’(예수님의 제자를=지금은 성경적인 기독교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다메섹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사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다메섹 성에서 성벽 밑으로 밧줄에 달아 내렸습니다.
행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행4:36-37)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행22:3 사울의 고향)에 가서 만나매,
수리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유대교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정통’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들이 『이단』이라고(행24:5,14.28:22) 하며 핍박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나라에는 ‘정통’으로 인정받는 유대교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있었고,
그리고 유대인들이 『거짓으로 이단으로 몰아서』 핍박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이 없지만 『에세네파』도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님께서 성경의 모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유대교인들의 역할을 하는 사람의 계명을 좇아 신앙하는 ‘교파’(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의 기독교인들을 세우셨고,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을 하는 교파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께 속하여 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을 세우셨습니다.
이 글을 읽는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인’들의 역할을 하는 교파에 속하지 마시고 사울을 본받아 교파를 떠나서(살후3:6),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을 하는 ‘성경말씀’(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는 기독교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행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행13: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금식(禁食) = 일정한 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음.
안수(按手) = 기도를 받는 사람의 머리 위에 손을 얹는 일.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과 사울이라.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나머지 ‘세 사람’(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이 ‘두 사람’(바나바와 사울)에게 안수하여 보내었습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금식하며 기도하고 세 사람이 안수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사도로 세웠습니다.
행14: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이렇게 하여 성령께서 바나바와 ‘바울’(사울)을 예수님의 사도로 세웠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을 세울 때에 이스라엘 나라의 허락을 받고 세웠으며,
신약시대의 사도들을 세울 때에 로마의 허락을 받고 세웠습니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종들을’(선지자들과 사도들을) 세우실 때에 각 나라의 왕이나 정부의 허락을 받아서 세우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조물주이신데,
이 우주의 극히 작은 일부분인 티끌과 같은 지구와,
그리고 지구에 있는 각 나라 정부나 문교부의 허락을 받아야만 ‘종’(지금은 목사)으로 세울 수가 있고,
허락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종’(목사)으로 세우고 싶어도 세울 수가 없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하나님보다 아주 못한 잡신들도 정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자신들의 종들인 무당들을 세웁니다.
잡신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각 나라 정부나 문교부의 허가를 받은 세상 학문을 가르치는 신학교를 졸업하게 하여 ‘종’(목사)으로 세우신다.”는 것은,
성경말씀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처음 장로교가 들어왔을 때에도 지금과 같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신학교가 있었으며,
그리고 그러한 신학교를 졸업한 분들을 장로교의 목사로 세웠습니까?
그러면 장로교 초창기에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신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목사가 되신 목사들은 다 엉터리 목사들입니까?
장로교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에,
지금과 같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신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하고,
그냥 성경말씀만을 배우신 후에 안수하고 세워 목사가 되신 그 분들이야 말로,
지금 장로교의 목사들보다는 참된 목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종’(선지자와 사도=지금은 목사)들을 택하여 세우실 때에는,
누구의 허락이나 허가를 받지 않으시고 사도 바울처럼 세우십니다.(눅6:12-16)
갈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
“‘사람에게서 난’(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사람들이 사도로 세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바울은 사도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유대교인들의 신앙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가 없겠지만,
이렇게 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택하여 사도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당시 유대교의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은 ‘사람에게서 난’(사람의 뜻을 따라 된) 자들이요.
‘사람으로 말미암은’(사람들이 세운)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자들이 절대로 아닙니다(요8:23,44).
오늘날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하나님의 법)으로 세운 자들이 아니라, ‘사람의 법’(교파의 교리=헌법)으로 사람들이 세운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법(성경말씀)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일합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동일(同一) = 서로 같음. 똑 같음.
“그리스도이신 ‘예수’(말씀=복음)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약 이천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믿는 자들에게 주신 ‘말씀’(복음=신약)은,
그 당시나 지금이나 이 후에나 다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나 지금 우리나라의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나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은 동일하니,
지금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말씀’(하나님의 법=성경말씀)대로 신앙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하나님의 법)대로 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 됩니다(마7:21-23).
기독교인들은 사도 바울을 본받아 ‘예수님의 말씀’(하나님의 법=성경말씀)을 좇아 바르게 신앙하려고 애쓰는 복된 기독교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행13: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교 바리새인이며 교법사였던 사울이 다메섹에 가다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제자가 되고,
그 후에 수리아 안디옥 교회에서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게 하고 안수하여 1차 전도여행을 보낸 후에는,
‘사울’이 ‘바울’이라는 새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 후로는 ‘사도 바울’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행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행13: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행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시기(猜忌) = 새암하여 미워함.
변박(辯駁) = 시비를 가려서 논박함.
비방(誹謗) = 남을 헐뜯어 말함.
담대(膽大) = 겁이 없이 용기가 많음.
자처(自處) = 자기 스스로 어떤 사람인 체함.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비시디아 안디옥)이 거의 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듣고자 하여 유대인의 회당에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 바울의 ‘말한 것’(성경을 바르게 풀어서 전하는 말)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을 먼저 ‘너희’(유대인들)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이스라엘 민족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지금은 우리나라 교파의 기독교인들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로 ‘향하노라’(복음을 전하러 가노라).”
그 당시 사도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을 유대인들이 ‘버리고’(듣지 않고) 변박하며 비방하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니,
예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이방인에게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여,
이방인들이 영생의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행13:47-48).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이’(예수님의 제자들이) 먼저 우리나라 ‘교파’(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등)의 기독교인들에게 먼저 전할 것이로되,
교파의 기독교인들이 ‘버리고’(교파 목사가 전하는 말씀이 아니니 ‘이단’이라고 하며 듣지 않고) 변박하며 비방하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로 자처하니,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본받게 하여 머지않아 이방인에게로 ‘향하게’(복음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복음=성경말씀)을 변박하고 비방하며 시기한 것처럼,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기독교인들도 교파에 속하지 않고 성경적인 신앙을 하는 ‘성도들이’(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르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듣지 않고,
변박하며 『이단』이라고 비방하며 시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은 유대교인들을 본받는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마24:15)라고 하였으니 이 글을 읽고 깨닫는 기독교인들은 복된 사람이며,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시49:20)고 하였습니다.
행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행13:51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행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귀부인(貴婦人) = 신분이 높은 부인.
유력자(有力者) = 세력이 있는 사람.
선동(煽動) = 남의 감정을 부추기어 어떤 일을 일으키게 함.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비시디아 안디옥)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안디옥 성)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유대인들을)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버리고(마10:14-15) 이고니온으로 피하여 가서(마10:23) 복음을 전하였는데,
바울과 바나바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장로들도 교파의 교인들을 선동하여,
예루살렘교회 이초석 목사가 경북 구미에서 집회하는 것을 방해한 적이 있었습니다.(대략 1990년경)
그리고 임재근 목사라는 분이 경북 풍기에서 집회를 하였는데,
교파의 목사와 장로들이 집회 장소인 교회 앞에 차를 세워 놓고 밤에는 차 전조등을 켜고,
차안에서 집회에 참석하는 교파의 교인들을 감시하여 참석하지 못하게 방해한 적도 있었습니다.(1987년경)
이렇게 남의 집회를 방해하는 것은 유대인들이나 하였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남의 집회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남의 집회를 방해하는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은, 유대인들을 본받아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선동하는 것은, 북한의 공산당이나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본받지 말고, 예수님의 제자인 바울과 바나바를 본받는 신앙을 하시기 바랍니다.
행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행14:2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행14:4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행14: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행14:6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행14: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악감(惡感) = 좋지 않게 생각하는 감정.
표적(表蹟) = 하나님의 능력이 겉으로 나타난 흔적.
기사(奇事) = 기이한 일.
능욕(凌辱) = 업신여겨 욕보임.
‘이에’(비시디아 안디옥에게 유대인들이 두 사도를 핍박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이고니온으로 가서)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전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그러나 ‘두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두 사도)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두 사도가 이고니온에 오래 ‘있어’(머물면서) ‘주’(예수님)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니),
주께서 ‘저희’(바울과 바나바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예수님의)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전하게 하시니),
‘그 성내’(이고니온성 안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두 사도)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성읍)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두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전하니,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쫓아내니,
그 곳을 떠나서 이고니온이라는 곳으로 가서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고니온에서도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감을 품게 하여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이고니온에서도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행14:19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행14:20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행14:21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초인(招引) = 죄인이 남을 끌어들임.
내치다 = 들어서 내던져 버리다. 들어서 냅다 던지다.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있는 루스드라까지 쫓아와서,
무리를 초인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루스드라 성 밖에 끌어 내치니라.
바울의 제자들이 돌에 맞아 죽은 것 같은 바울을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루스드라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예수님의 말씀=성경말씀)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두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 그 지경에서 쫓아내고(행13:50),
두 번째는 이고니온의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도망하였고,
세 번째는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돌로 거의 죽도록 쳤습니다.
유대인들이 ‘두 사도’(바울과 바나바)를 핍박하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심하여 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교파의 목사들과 교인들도 성경말씀을 좇아서 바르게 신앙을 하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이,
시간이 흐를수록 심하여져서 앞으로 점점 더 악한 짓을 많이 행하게 됩니다(딤후3:13).
이렇게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그 지경에서 쫓아내고 돌로 거의 죽도록 치고, 사도 바울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이단』이라고 하며 핍박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을 본받는 자 되라”는 말씀을 이어서 전하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 화: (042) 936 - 7599
부족한 종 전대복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