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견자 : 독일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A.F.뫼비우스
★ 명칭 : "위상기하학적 성질을 가지는 곡면" -
안과 밖의 구분이 없습니다.
★ 특징 : 안과 밖의 구분이 없습니다. 안으로 가다보면 밖으로 나오고
밖으로 가다보면 안으로 들어옵니다.
★ 내용 : 보통 상상의 세계에 뫼비우스의 원리로 만들어진 행성이 있다면. 영원이 탈출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 한 것이 시사하는 것은 절망 고통 혼돈(카오스) 같은 것이죠. 인간의 무한한 능력이면서 혼돈 같은 내용을 말하는 뜻입니다.
★ 뫼비우스의 띠
뫼비우스의 띠는 모든 것에 안과 밖의 구별이 있다는 고정 관념을 깨게 하였다. 직사각형 모양의 띠의 양끝을 그대로 붙이면 보통의 띠가 된다. 직사각형 모양의 띠의 끝을 한 번 꼬아서 즉, 180도 회전시켜서 다른 쪽 끝에 붙이면 색다른 모양의 띠가 만들어진다. 뫼비우스의 띠는 이와 같이 긴 테이프를 한 번 꼬아서 양끝을 붙여서 만든 곡면이다. 꼬지 않고 그냥 붙인 테이프와 뫼비우스의 띠는 전혀 다른 곡면이며 특히 위상수학에서 좋은 예가 되고 있다. 보통 테이프는 경계가 두 개인 반면 뫼비우스의 띠는 경계가 하나밖에 없다. 즉, 보통 테이프는 한 쪽 면은 노란색을, 다른 쪽 면은 빨간색을 칠할 수 있으나 뫼비우스의 띠는 면을 따라 색칠하다 보면 모두 한 가지 색으로 칠해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독특한 성질이 있는 띠를, 1865년 처음 발견한 독일의 수학자의 이름을 따서 '뫼비우스의 띠'라고 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들어진 2차원 공간에서 여행을 하여 한 바퀴 돌아 처음 자리에 오면 처음 모습과는 좌우가 바뀐다. 즉, 이런 공간에서는 좌우의 방향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는 벨트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만들어서 쓰기도 한다. 두 개의 바퀴에 둥그런 띠 모양의 벨트를 그대로 걸면 기계의 한쪽 면만 닳게 되는데, 이것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한 번 꼬아서 걸게 되면 벨트의 양쪽 면이 골고루 닳아 벨트의 수명이 훨씬 길어진다. 또 그대로 걸면 쉽게 빠지던 벨트도 이렇게 걸면 잘 빠지지 않는다.
★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그 소설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무비판적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비판을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을 통해서 사물의 한 면을 바라보기만 하는데, 사물이나 생각은 한 면만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반대편 이렇게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공간은 이어져있고, 서로 통하는 길은 무한대이고, 끊임없이 연결되고 교류된다는 의미에서, 무비판적은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꾸짖고 있는 것이죠. 그 작품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지닌 다양한 의미는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 (예) 1.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고, 또 한 아이는 그을음을 전혀 묻히지 않은 깨끗한 얼굴로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학생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잠시 후에 한 학생이 일어섰다. " 얼굴이 더러운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 교사가 말했다. " 왜 그렇습니까 ?" 다른 학생이 물었다. 교사는 말했다. "한 아이는 깨끗한 얼굴, 한 아이는 더러운 얼굴을 하고 굴뚝에서 내려왔다. 얼굴이 더러운 아이는 깨끗한 얼굴의 아이를 보고 자기도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반대로 깨끗한 얼굴을 한 아이는 상대방의 더러운 얼굴을 보고 자기도 더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학생들이 놀람의 소리를 냈다. 그들은 교단 위에 서 있는 교사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 한 번만 더 묻겠다."
교사가 말했다. "두 아이가 굴뚝 청소를 했다. 한 아이는 얼굴이 새까맣게 되어 내려왔다. 제군은 어느 쪽의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 똑같은 질문이었다. 이번에는 한 학생이 얼른 일어나 대답했다. "저희들은 답을 알고 있습니다. 얼굴이 깨끗한 아이가 얼굴을 씻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말을 기다렸다. 교사는 말했다. " 그 대답은 틀렸다." "왜 그렇습니까 ?" "더 이상의 질문을 받지 않을 테니까 잘 들어 주기 바란다. 두 아이는 함께 똑같은 굴뚝을 청소했다. 따라서 한 아이의 얼굴이 깨끗한데 다른 한 아이의 얼굴은 더럽다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 (예) 2.
곱추와 앉은뱅이는 아파트 재건축으로 인해 살 집을 빼앗겨 버린다. 아파트 입주권이 나오지만, 입주금이 없어 시에서 주는 이주 보조금보다 약간 많은 돈을 받고 입주권을 팔고는 자신들의 집에 세든 사람들의 전세금을 계산해 주고 무일푼이 돼 버린 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잃고 만다. 동네의 다른 사람들은 집을 잃을 때 쇠망치를 든 사나이들과 한바탕 다툼을 벌였지만, 꼽추네 식구들은 가만히 있는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살 집마저 잃어 버린 그들은 복수를 결심한다. 기름통까지 준비하고 마음도 굳게 먹는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적극적임에 반해 꼽추는 겁을 낸다. 앉은뱅이는 살이 피둥피둥한 부동산업자를 만나 그와 집의 가격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동산업자의 거짓말에 화가 난 앉은뱅이는 그를 차에 태운 후 기름을 붓고 불을 지른다. 잔인한 살인을 하게 된 앉은뱅이, 그와 함께 복수를 음모한 꼽추이지만, 그는 그런 앉은뱅이가 무서워진다. 앉은뱅이는 강냉이 기계를 사서 생활할 계획을 세우고 꼽추는 약장수를 따라가겠다고 나선다. 그는 앉은뱅이의 복수심이 무서워 떠나겠다고 한다. 둘은 헤어지고 혼자 남은 앉은뱅이는 눈물을 흘린다. 곱추와 앉은뱅이는 사내의 이득 몫을 뺀 나머지 이십만 원을 자신들의 몫이라며 찾아온다.
교사는 분필을 들고 돌아섰다. 그는 칠판 위에서 "뫼비우스의 띠"라고 썼다.
★ <뫼비우스의 띠가 상징하는 것>
이 작품에서 '뫼비우스의 띠'가 지닌 다양한 의미는 두 개의 이야기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우선 첫 번째 이야기에서, 굴뚝 청소와 관련된 교사의 질문에 대하여 더러운 아이와 깨끗한 아이가 있다는 전제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고정 관념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교사는 이런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칠판에 그리게 된다. 말하자면 여기서 등장하는 뫼비우스의 띠는 흑백 논리, 혹은 항상 안과 밖이 존재한다고 믿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는 도구이다.
다음으로 두 번째 이야기에서, 앉은뱅이와 곱추는 자신들의 입주권을 헐값으로 사들인 부동산 업자로부터 사기당한 돈을 다시 받아내기 위해 그를 납치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부동산 업자로부터 자신들의 몫을 되돌려 받은 뒤에도 그를 풀어 주지 않고 차와 함께 불태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원래 피해자였던 앉은뱅이와 곱추는 가해자로 처지가 바뀌게 된다. 뫼비우스의 띠는 바로 이처럼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쉽게 알 수 없는 왜곡된 현실의 상징이다.
굴뚝 청소를 하고 나온 아이들처럼 이 세계에서 부동산 업자는 자신의 더러움을 알지 못하고 앉은뱅이와 곱추로 대표되는 소외 계층도 자신의 깨끗함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혼란한 세계에서 끝내 부동산 업자를 불태워 죽인 앉은뱅이처럼 당장의 이익을 위해 쉽게 행동하는 지식의 간사함을 고발하는 것 또한 뫼비우스의 띠가 상징하는 의미의 하나이며, 다른 한편으로 뫼비우스의 띠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다는 점에서 빈부의 격차 없이 평등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첫댓글 삼각형 모양의 재활용마크도 뫼비우스 띠를 응용해서 만든 마크이고, 끝이 없다는 개념과 뫼비우스 띠가 만나서 만든 수학기호의 무한대(∞) 등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답니다.
뫼비우스의 띠가 의미하는 바가 참으로 크군요. 많은 생각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으로 확인해보았더니, 정말 그러하군요. 신기합니다.^^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것에 마음이 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