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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첫 한 주간 열린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 순회 강연회에서 신앙인들을 향한 메시지의 중심 주제는 ‘성숙한 신앙’이었다. 최근 번역 출간된 그의 저서 "그리스도교의 오후"에 따르면, 교회 역사에서 근대 이전은 오전에 해당하는 시기고, 오후인 지금은 성장보다는 성숙을 꾀해야 하는 시대다. 팬데믹을 지나며 역성장하는 본당(성당) 상황을 지켜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메시지라 생각한다. 할리크 몬시뇰은 나아가 현재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노드 개혁 목적은 교회의 제도적 구조를 새롭게 하는 일인데, 이러한 모든 개혁에는 신앙생활의 쇄신, 특히 깊은 차원의 영성을 심화시키는 일이 선행되거나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짧은 강연 일정 탓에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성숙한 신앙으로 건너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충분히 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나눠 보려 한다.
5월 5일,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 초청 서울 강연회가 마리스타교육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중앙)과 참석한 사람들 모습. (사진 제공 = 우리신학연구소)
미성숙한 신앙 체험, 혹은 현상
본당 사목위원 6년 차로 접어들면서 성숙한 신앙과 거리가 멀다고 느꼈던 사례들이다. 본당에서 단체나 봉사직 소임을 맡지 않고, 주일 미사 정도만 출석하는 대부분 신자 중에서 본당 활동을 동네 주민센터의 서비스 정도로 생각하는 신자분들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 ‘손님은 왕’이 표상하는 자본주의 작동 원리를 몸으로 체화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본당에서도 손님의 입장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경우다. 3년 전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비대면 전환을 예상하고 고가 LED 스크린과 방송 장비를 구매했을 때, 많은 말이 쏟아졌다. 개중에는 진심 어린 걱정과 우려의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업체 선정과 장비 운용을 위해 긴긴 시간 고민하고 배워야 했던 봉사자들에게는 상처로 남는 말들도 많았다.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직접 신자들과 만나는 구역, 반의 경우에도 구역장, 반장들이 신자들과의 관계에서 받는 상처들도 많은 것 같다. 반 모임을 위해 처음 연락을 하면 개인 정보를 어떻게 알았냐는 항의(?)에서부터 시작해 각종 본당 전달사항에 대한 정말 다양한 요구를 접하다 보면, 내가 반장인지 콜센터 직원인지 혼란스러운 경험들을 하게 된다. 반장을 맡아 반원들에게 성사표를 집집마다 배달하던 아내가 배달에 앞서 신자들에게 문자로 언제 방문할 것이고, 어떻게 수령할 것인지를 묻고 누구는 집으로, 누구는 우편함에, 누구는 다시 사무실에 맡겨 달라는 응답에 맞춤형으로 응하는 모습은 택배 서비스를 연상케 한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소진되는 봉사자들을 종종 목격한다.
봉사직 소임을 맡은 신자에게서 보이는 미성숙한 모습은 현상으로는 유아기적 신앙, 수동적 신앙 모습으로 드러난다. 유아기적 신앙은 사회에서 아무리 유능한 평신도들도 교회 봉사직을 맡으면 사제 앞에서는 그저 말 잘 듣는 아이와 같아진다는 모습을 빗댄 표현이다. 수동적 신앙 모습은 함께 걷는 여정을 강조하는 ‘시노달리타스’(함께 걷기) 사목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처럼 들린다. 하지만 신학적 지식과 본당 상황에 대한 정보량, 사목 경험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사제와 퇴근하고 짬을 내 봉사해야 하는 평신도 봉사자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고려하지 않고, 이 둘을 단순 비교해 미성숙한 신앙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유아기적 신앙, 수동적 신앙은 겉으로는 미성숙한 신앙의 모습이지만, 본질은 교회 구조 개혁 문제와 더 관련이 깊다. 다시 말해 교회가 평신도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들이 사목 현장 적재적소에서 역할을 하도록 교회 구조를 개혁하지 못한 문제이면서, 사제 중심으로 굳어진 독특한 한국 교회의 문화와 관련이 깊다는 생각이다.
지역센터로서 본당을 인식하는 일도 시노달리타스!
지난해 본당 차원의 시노드 경청 모임에서 나온 의견 중에 본당이 속한 지역센터로서 본당 역할에 대한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시노달리타스의 의미도 사제, 수도자, 평신도로 구분한 세 지체들이 어떻게 교회 안에서 함께 걸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에 집중됐다. 중요한 논의이지만, 시노달리타스의 범위가 교회 안으로만 제한될 위험이 높아 보인다. 교회 밖에서 보는 본당 모습이 신자들만의 게토화된 공동체로 보이는 이유다.
“예수님께서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성경 말씀을 프란치스코 교종은 예수님께서 교회 안에서 문을 두드린다고 말하면서 교회 밖으로, 세상 속으로 나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교회 울타리를 넘어서, 특히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엇이 바뀌어야 할지 우리 스스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비판을 넘어 자신의 현장에서부터 작은 실천을 시작하기
“주교에게 기대하는 것 자체가 성직주의일 수 있습니다”, “비판만 하는 것도 성직주의입니다!” 할리크 몬시뇰의 마지막 서울 강연에서 한국 교회의 상황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나온 인상적이었던 답변들이다. 비판적 신앙 의식을 지녔다고 생각되는 강연회 참석자들에게 비판을 넘어 자신의 현장에서 작은 실천을, 운동을 하라는 초대로 들렸다.
성숙한 신앙은 위기를 통해서 온다는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의 의견에 공감하는 한편,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위기는 지금의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부활을 체험한 이들에게 부활이 의미가 있듯이, 위기는 위기라고 언급되는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는 이들에게만 위기다. 그런 점에서 오늘 한국 교회의 모습을 위기로 인식하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코로나가 왔을 때 이런 위기 담론이 잠깐 차고 넘쳤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생각이 많은 듯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모양새다. 할리크 몬시뇰의 의견 대로 시노달리타스를 주제로 다루는 이번 세계 주교 시노드가 그런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지만, 많은 지역 교회는 이 역시 이벤트로 중요한 이 시기를 보내는 듯하다. 이번 순회 강연회가 이러한 상황 인식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뭔가 작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들로부터 작은 실천들이 운동으로 일어나기를 소망해 본다.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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