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는 "구단에서 오랫동안 함께한 분들이 (헤어져서)되게 아쉽다고 얘기를 했다. 나 역시 똑같은 마음이었다. 밖에선 섭섭할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 전북은 고마운 구단이다. 10년 가까이 월급 주고, 한 번도 다른 팀으로 보내지 않았다. 팬분들께 인사를 못 하고 온 건 아쉽지만, 지금 전북의 상황도 그렇고…. 훗날 은퇴하고 나면 은퇴식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전주를 떠나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그라운드'였다. 입단 후 전북의 K리그1 6회 우승, FA컵 2회 우승을 이끌고 도움상(2014년), 베스트일레븐(2014년, 2017년)에 선정되는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던 이승기의 출전시간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줄어들었다. 2022시즌, 전북 입단 후 처음으로 리그에서 20경기 미만(16경기)을 뛰었다. 지난 겨울 김건웅 이수빈 오재혁 등의 무더기 영입으로 입지가 좁아졌다.
이승기는 "팀의 세대교체를 떠나 내 실력 문제로 경기에 못 나서는 건 아닌지, 스스로 반문도 해봤다"고 했다. 이어 "원래 36세에 은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계속 훈련을 하다 보니까 더 하고 싶었고, 몸도 괜찮다고 느꼈다. 팀과 안 좋아져서 나가는게 아니었다. 구단에서도 '무조건 나가라'는 건 아니었다. 지난 겨울부터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일"이라고 말했다.
팀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에이전트가 없는 이승기는 동계훈련을 하면서 본인이 직접 협상을 벌여야 했다. 시즌에 돌입하고 '잔류각'이 잡힌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박진섭 부산 감독이었다. 이승기는 "감독님께서 직접 전화가 주셔서 내가 원하는 조건을 말씀드렸다. 감독님은 내게 고참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재활 중인 상태였지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결정이 났다. 나를 원하는 팀이 부산이어서 더 좋았다"고 돌아봤다.
이승기는 "내가 가는 곳이 2부리그여서 전북 선수들이 그냥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내가 맺은 계약 조건을 알고는 선수들, 특히 고참들이 부러워하더라. 다른 팀을 가려면 많은 걸 포기해야 하니까"라고 말했다.
이승기는 이제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한다. 지난해 전주에 차린 신혼집을 부산으로 옮기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광주 출신인 신혼부부의 부산 생활은 낯설 수밖에 없다. 아직 집을 구하지 못해 아내 친척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는 이승기는 "나는 울산에서 대학을 다니고, 원정도 많이 다녀서 괜찮지만, 아내가 힘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부산의 빨간 유니폼에 새겨진 등번호 88번에도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이승기는 "팀내 최고참으로서 책임감과 같은 부분이 더 신경쓰인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부산과 김천 상무의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이승기는 몸이 근질근질한 눈치였다. 이날 경기에서 부산은 3대1로 승리했다. 2승1무, 기분좋은 무패 질주를 하고 있다. 이승기는 "축구화를 막 신기 시작했다. 통증이 어느 정도 잡혀야 팀 훈련에 참가할 것 같다"며 "마음 같아선 바로 뛰고 싶지만, 부산 팬분들께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순 없다"고 했다. 상주 상무(현 김천) 시절 1부 승격을 경험한 이승기는 팀의 1부 승격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