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의 초청으로 산행을 마치고 홍난파선생님의 생가가 있다는 화성군에
저의 내자와 같이 방문하였으나 이정표도 없어 친구가 고생을 하였습니다
6시경 찍은 사진이라 선명치 못 합니다..정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짝 였습니다
웅이 ♪의 뒷골목 얘기 (73)
화성시 활초동에 있는 난파(홍영후)의 생가입니다 ..원래 생가 소멸로 1986년 다시
복원 한 모습입니다만 초가와 옛모습을 그대로 복원하였고 달랑 한체 뿐인 생가와
주위가 정말 산골짝 동네였습니다
옆 모습으로 본 생가와 싸립문 입니다 달랑 방두개/ 부억/ 마루/뿐였고
마당도 없었습니다..
생시에 사용 하시던 바이올린 설명문 입니다
마루 우측에 설명되어있는 액자가 달랑 서너개 있었습니다
마루 모습입니다 실제 한평 반 정도 크기 였습니다 창호지가 따 찢어져 있네요...
부억 모습입니다..썰렁 하네요..
6시가 넘으니 사진이 컴컴 하네요 이 사진을 찍기위해 노력 해 준 친구 박지환에게
감사드립니다 ..역사에 해박하고 저에게 헌신적인 친구 덕에 찍었습니다
홍난파 선생의 생애
홍난파는 1898년 4월 10일(음력 3월 19일)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 활초리에서 아버지 혼준과
어머니 이씨부인의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본명은 영후, 호는 난파, 본관은 남양이다.
난파는 7세때 서울로 이사하여 이화학당근처에서 살면서 정동감리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서양 음악인 찬송가를 듣고 배웠으며 중앙기독교 청년회(YWCA)중학부 1학년대 이미 간단한
찬송가는 독보법을 스스로 해독하는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중앙기독교청년회 중학부를 졸업한 난파는 이듬해인 1913년 9월 당시 우리나라의
유일한 음악교육기관이던 조선정악전습소의 양악부에 입학하여
김인식선생으로부터 바이올린 및 악전대요등을 배웠다.
- (중략) -
한편 신문과 잡지에 음악에 대한 교양면보급에 힘을 기울였으며
제일 처음 음악 평론도로서 후학도들에게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 중 난파는 흥사단 단가를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1936년 도산 안창호와 함께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어 심한 고문을 당하였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머리를 다친 것이 원인이 죄어 결성 요양원(현 위생병원)에
입원하였으나 해방의 서광을 보지 못한채 1941년 8월 30일 44세를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생가 앞부분 입니다..밭이 있고 사방이 언덕길 작은 마을 였습니다
생가 초가 위로 보이는 초생달이 요절한 천재의 아품처럼 처량 했습니다
생가 앞의 이 이름모를 꽃은 난파 선생님의 恨을 알런지요...
낙엽을 밟으며 속절 없는 인생에 /혼이 깃든 노래가 그래도 남았음을 위로 삼았습니다
운전 해주고 안내하며 좋은 식사와 포도 몇상자까지 안겨준 박지환군의 우정은
별도 후기로 올려 드리려 합니다^-^ (싫다구여? ㅎㅎ)10/3 일 얘기 끄읏^-^
ㅡㅡㅡㅡㅡㅡㅡ 후기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웅이 ♪의 뒷골목 얘기 (73)/후기
길가의 코스모스조차 화사한 가을 날씨처럼 정겨웁고 맑은 하늘은
우리네 情과 나눔을 반기듯 시야를 즐겁게 합니다
홍난파 선생님 생가 앞부분 동네 모습입니다 인가도 없고 그저 낮고 높은
언덕사이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고향의 봄 가사 그대로 였습니다
다시 보는 홍난파 생가 모습 전경입니다
생가 앞에 있는 안내 표시판 입니다
쪽문이 있는 방의 모습입니다(안방) 한평 반 정도의 크기 였습니다)
마루는 없고 흙바닥 마루터 상단 부분 입니다 (어제 미쳐 못 올린 것)
친구가 저에게 사준 저녁 식사입니다..반찬이 많네요..고맙습니다^-^
요즈음 문화 행사가 많습니다 세종문화회관 분수대 축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연휴기간 가족동반 돈 안들어가는 광람이 쏠~쏠 합니다^-^
우리 님들께 한과 한 상자씩이라도 드리고 싶은게 저의 마음 입니다
그저 마음으로 받아 주시옵고 평안한 명절 되십시요
이 꽃 한송이를 즐거운 명절을 지내시는 모든님들과.......또 어느 한구석
썰렁한 마음 갖고 계신분께 위로차 올립니다
건강 하시길 기원 합니다
첫댓글 혼자 도배하는것 같아 죄송합니다/이 글은 작년 2006년 초가을에 찍어온 사진과 글인데 웹사이트 홍난파 노래엔 꼭 제 사진이 돌고 돌아서^-^ 자랑할겸 헤헤~~^-^
웅빠님, 얼마든지 도배 해 주세염,..ㅎㅎ..제가 요즘 좀 게을러져서 정말 죄송해 집니다.. 썰렁해진 이 뜨락에 이렇게 좋은 자료 올려 주시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자랑 많이 해 주세요..^^* 쓸쓸하고 퇴락한 음악가의 생가를 보니 속이 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야 말로 암것도 없는 곳에도 지나간 곳이라면서 관광자원으로 또는 교육자원으로 후세에 남기는데,...-.-=.. 그나마 웅빠님 같은 분이 계셔서 이렇게나마 흔적을 봅니다..
무슨 말씀을요, 뜨락님들을 위한 웅빠님의 정성은 늘 보물입니다.
홍남파 생가는 제가사는곳에서 가깝습니다 모르시는분들은 찾아가기 조금 힘드실것입니다
들꽃향기님,..정말 반갑습니다..^^*.. 계신 곳이 마침 웅빠(웅이님의 또 다른 애칭..ㅎㅎ)님의 글의 소재가 되었던 곳이었군요..^^*.. 이래저래 인연이 많은 것 같아 더 반갑습니다..
웅이님께서는 아주 많은 정보를 주고 계시는데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노래를 따라부르며 어린시절로 가봅니다.
부부와,친구와...저녁무렵 저 지난세월속으로...멋진 풍경입니다. 울뜨락은 대장쌤님을 비롯하여 .. 너무 많은것을 앉아서 알게해주어 늘 감사 하옵니다요~~~~
혼자 맛있는 거랑 좋은데랑 다 다니시네 ㅎㅎㅎ 덕분에 눈에 잘 담아갑니다
웅빠님의 도배? 저 참 좋아하는데요?,.^^ 늘 감사합니다,.
난파선생의 이름이 제 아들녀석 이름과 같군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이렇게 모르는 것을 웅이님 글에서 또 배웁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