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준비된 일꾼
전도는 얼마나 신앙생활을 하고 얼마나 훈련을 받아야 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예수믿은 즉시 자기에게 일어난 변화를 증거할 수 있다. 몇년 전에 부산에서 전도할 때 여중 3학년 학생이 버스 안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는데 그 다음날 서면에서 전도에 참여하여 누구보다도 확신있게 복음을 외치고 그날로 여섯명의 영혼을 주님께 인도했다. 한 전도자가 이 놀라운 사실을 자신의 교회에서 간증했을 때 어떤 장로님이 “어떻게 예수를 믿고 그 즉시로 전도 합니까 나는 수십년을 믿고 장로가 되어서도 전도는 엄두도 못내는데 그거 잘못된 것 아니요” 하길래 그 전도자가 “아니 장로님은 성경도 모르십니까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를 만난 즉시로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되물었다고 한다.
1988년 부산전도여행에서는 예수를 믿은지 6주 된 청년과 십년 된 여집사님이 전도를 나가서 대청공원에 있는 청년 두 명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주님께서 십년된 집사님보다 6주밖에 안된 청년의 입을 빌어서 두 사람을 구원하신 적이 있다. 이와같이 준비된 일꾼이란 신앙의 연조나 직분과 상관없이 주께서 그 마음에 합한자 곧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최선의 방법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중요한 것만 몇가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영혼에 대한 사랑
영혼을 사랑함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주님께 쓰임받지 못한다. 이미 지옥에 가서 고통중에 있는 영혼에 대한 불쌍함과 지옥으로 끌려가는 영혼들의 처절한 결말이 실감나지 않는 사람은 입으로 사랑을 외칠지 모르나 실상은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만난 사람을 피하여 지나간 제사장과 서기관과 다름이 없는 사람일 뿐이다. 오늘도 지옥에서 들려오는 “내집의 형제 다섯에게 나사로를 보내어 그들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않게 하소서”라는 부자의 비명이 내귀에 실감나게 들리지 아니하면 전도하러 나갈 수도 없으며 나가도 아무일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을 사랑함이 없이 하는 일은 그것이 설교이든 전도이든 봉사든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전도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을 때 한번은 전도를 나가려는데 비가 왔다. 한 청년이 내게 와서 “오늘은 비가 오니까 전도 안나가지요” “그러지 뭐” 아무 생각없이 대답을 하고 돌아서는데 주님의 책망이 들려왔다. “얘야 너는 네 아이가 집을 나가면 비가 온다고 찾으러 나가지 않느냐 우산이라도 쓰고 찾으러 나가지 않겠니 지금도 잃어버린 내 자녀들이 길바닥에 즐비한데 어찌하여 비가 온다고 찾으러 나가지 않느냐” 주님의 부드러운 책망앞에 주님 마음을 모르면서도 아는 척 한 것이 부끄러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비를 맞으면서 길에 나가 전도할 때 거기서 만나야 할 한 영혼 때문에 밤마다. 문열어 놓고 마음 졸이시며 기다리셨고 또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눈에 실감나게 비춰졌다. 집나간 아내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이 있다면 그는 아내를 찾지도 아니할 뿐더러 혹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찾으러 나간다. 할지라도 딴짓만 하다가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이와같이 잃어버린 내형제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전도하러 갈 수도 없고 혹 나간다. 하더라도 형식적이요 외식하는 바리새인의 전도가 될 수밖에 없으며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교회선전이나 주님 대신 사람이나 자랑하며 종교적 자랑으로 일관하는 주님의 초점과 상관이 없는 일만 하다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이전에는 고층아파트와 휘황찬 거리의 불빛과 가로수와 보도블록이 내눈에 비춰졌지만 이제는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다며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주심으로 값주고 사신 그 귀한 영혼들이 내눈에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을 향한 내 눈을 주님이 열어 주셨습니다.”라고 울면서 말씀하시던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2) 열매를 얻기를 기대하는 일꾼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뿌렸으니 주님이 거두어 주시겠지요” 이와 같은 이들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다. 실상은 열심히 한 것도 아니요 스스로 위로하는 말에 지나지 않으며 달리 표현하면 형편에 맞추어 적당히 한데 대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무서운 사실은 하나님의 일을 적당히 하는 자는 유다의 둘째아들 오난과 같이 저주를 받기 때문이다. 38장 그런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주님은 추수할 것은 많으나 추수할 일꾼이 적다고 했지 씨뿌릴 일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며 시편에서도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말씀함으로 씨를 뿌리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으며 반드시 영혼을 거두어 가지고 돌아와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전도자에게는 열매 이상의 기쁨이 없으며 열매없이는 위로 받을 다른 것이 없다. 지방에 전도여행을 가면 열매가 없어 금식하며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며 열매로 위로해 주시도록 부르짖는 일꾼들을 많이 만나는 이유가 그것이다. 얼마 전에 서울의 어느교회 사모님은 이틀동안 전도의 열매가 없자 주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주님 오늘도 열매가 없으면 사모를 딴 사람으로 갈아 주세요” 실상은 열매가 없으면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이 기도에 하나님이 외면하셨겠는가 그날 사모님은 열매로 주님께 위로를 받았다. “애통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5:4 열매 때문에 울고 애통하면 반드시 기쁨으로 거둔다.
3) 깨끗한 그릇
더러운 그릇은 쓸 수 없는 것 같이 죄인은 주님께서 쓰실 수가 없다. 이 말은 죄를 안지은 사람을 주님이 쓰신다는 말이 아니라 주님의 보혈로 해결되지 않은 죄를 품은 사람은 주님이 쓰실 수가 없다는 말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허물을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19).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예수의 피로 죄씻음 받는 기쁜 소식이라면 전도자 안에 해결되지 않은 죄를 품고서야 어찌 이 기쁜 소식을 실감나게 전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그런 복음을 받겠는가 전도할 때마다. 죄에 대한 자백이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우리를 기쁘게 한다. 그런 다음에 이 복음을 기쁨으로 전할 수 있다. 하나님과의 투명한 관계 그것이 전도현장에서 쓰임받는 길이다. 때로는 이십년 삼십년 묵은 죄를 비추어 주심으로 고통가운데 죄를 자백하고 자유함을 얻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제간에 속으로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들이 해결되면서 주님 안에서 형제를 귀히 여기고 사랑할 때 이 사랑을 누리지 못하고 멸망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하게 된다.
4) 끈질긴 기도
전도하러 나갈 때마다. 한 시간 이하로 기도해본 적이 없다. 때에 따라서는 두 시간 세 시간 어떤 때는 여섯 시간 기도하고 나간 적도 있다. 물론 기도는 시간의 양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절하게 기도하며 인간의 생각과 판단이 부인되고 세상정신이 사라지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한나의 기도와 같이 우리의 인격이 그렇게 간절해지도록 그리고 아버지의 마음을 품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한다. 이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부족함과 허물을 깨닫고 죄를 자백하며 그동안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방자하게 산 것을 내어놓고 긍휼을 구하고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품게 된다. 지금까지 미천하고 짧은 경험이지만 기도할 때마다 영혼이 더욱 귀해지고 무엇보다도 나의 갈망을 위한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갈망을 위해 기도 했을 때 주님은 한번도 외면하신 적이 없으며 그때마다 반드시 열매로 갚아주시고 열매로 위로해 주셨다.
어떤 전도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교회일은 아무리 해도 전도를 해서 영혼을 건지지 않으면 기쁨이 없습니다.”
2. 준비된 영혼
“주님은 준비된 일꾼을 준비되지 않은 영혼에게 보내시는 일이 없다” “당신이 준비된 일꾼이면 주님이 준비된 영혼에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준비되지 않은 일꾼이면 준비되지 않은 영혼으로 당신을 괴롭게 하여 당신을 준비시킬 것입니다.” 준비된 영혼이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어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이다. 전도의 비결은 바로 성령께서 인도하심에 따라 이와같은 준비된 영혼을 만나는 것이다. 전도자가 성령이 충만하면 나가는대로 이와같은 영혼을 만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로 하여금 깨지고 겸손케 하기 위해 까다로운 사람을 만나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 어느 교회에서 전도를 나갔는데 여집사님 둘이서 아파트 벨을 눌렀더니 오십대 남자가 들어오라고 하더니 막 야단을 치는데 “내가 이 아파트에 이사온지 2년이 넘었는데 인제 전도를 오시는거요 내가 얼마나 예수믿고 싶어서 기다렸는 줄 아십니까?”라고 하며 예수를 영접하고 주소와 이름을 적어 주었다. 이런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은 것은 믿음으로 나가보면 곧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눈이 어두워 이 사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치동에서 어느 집사님이 아파트 벨을 누르고 복음 전하러 왔다고 하니까 “그러지 않아도 주위의 권유가 많아서 믿으려던 참입니다.”하며 문열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부천에서 어느 칠순 할머니는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한 후에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좋은 걸 왜 이제 왔노 좀 젊었을때 전해주지.”하고 안타깝게 말하더란다.
강화도에서 전도를 처음 나간 할머니는 어느집에 들어 갔더니 “그렇지 않아도 어젯밤 꿈에서 예수 믿으라는 사람을 만났습니다.”라며 반갑게 맞아 주고 예수를 영접했다. 부산에서 어느 집사님은 기도를 하는데 어떤 사람의 모습이 자꾸 보여 웬일인가 했는데 전도를 나가자마자 길을 지나가는데 기도회 때 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들어가서 복음을 전한 결과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를 영접했다. 이와같이 주님의 역사는 무궁무진하며 이루 다. 헤아릴 수도 기억할 수도 없으리만치 많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에 멸망해가는 영혼을 보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양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버지의 절실한 필요인 것이다.
Ⅳ. 맺음말
어느 시골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 주보 뒷면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 “신앙은 손자까지 봐야 한다.” 그렇다 요즘처럼 단지 교인을 얻기 위한 전도가 많고 여러가지 일과 프로그램 교회조직과 복잡한 교회살림에 마음을 빼앗기기 쉬운 시대에 살면서 좋은 책도 많고 좋은 말도 어느 시대보다. 풍성하다. 물질적으로나 외형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가운데 절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인격을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든 시대를 살면서 우리 각자가 주님 앞에서 스스로 질문해보자.“내가 복음을 전해서 예수를 믿고 예수를 닮고 예수의 일 곧 영혼을 건지는 일을 하고 있는 영적인 자녀가 있는가” 그리고 한번 더 질문할 것은 그 영적인 자녀로 말미암아 예수를 믿고 예수를 닮고 전도의 열매를 맺는 영적인 손자가 있는가” 왜냐하면 열매는 생산성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사도바울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이렇게 말했다.“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11: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날 다른 것들은 사라질 것이나 이것만은 주님이 계산하시겠다고 하셨다.
<옮긴글>
[출처] 전도자의 조건 (은혜성서교회) | 작성자 사무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