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옹혜근 선사 - 억불시대에도 ‘和尙’으로 추앙 |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란 제목으로 유명한 고려 말 선풍을 진작한 고승 나옹혜근(懶翁惠勤, 1262~1342) 선사가 지은 선시다. 지공선사, 무학대사와 더불어 한국불교의 3대 화상으로 추앙받고 있는 나옹스님은 고려 공민왕과 우왕의 왕사를 맡으며 국가와 불교발전에 크게 기여한 선승이다.
조사신앙 여긴 듯, 여러 곳 봉안
지공.무학스님과 함께 한 화폭에
<사진> 양산 통도사에 봉안돼 있는 나옹스님 진영.
나옹스님은 13 20년(충숙왕 7) 경남 영덕에서 태어나 20세에 문경 묘적암에서 요연 선사를 은사로 “삼계고해에서 해탈해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입산한 스님은 양주 회암사로 옮겨 수년간의 치열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스님은 1347년 원나라로 유학을 떠나 10년 동안 머물며 지공선사와 평산처림 선사 등을 만나 가르침을 배우고 법을 인가받았다. 39세 나이에 유학을 마치고 고려로 돌아온 스님은 공민왕의 간곡한 요청에 신광사에 머물며 수행 정진했다. 결국 왕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산천을 주유하며 인연 따라 법을 설하다 1371년 공민왕으로부터 왕사로 책봉 받는다. 만년에는 회암사 중창에 온 전력을 기울였지만, 1376년 5월 중신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밀양 영원사로 추방되던 중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때문에 신륵사에는 나옹스님의 비와 부도가 모셔져 있다. 이러한 스님의 사상을 재조명하기 위해 경상북도 영덕군은 대각사상연구원 공동으로 지난 2월 학술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조선건국에 기여한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한 나옹스님의 진영은 양산 통도사, 여주 신륵사, 순천 선암사, 상주 남장사, 남양주 불암사, 양주 회암사 등 여러 사찰에 봉안돼 있다. 스님의 진영은 남장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공스님과 무학대사 등과 함께 봉안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 삼화상은 고려후기의 사회적 모순과 불교계 내부의 갈등을 잘 인식하고 있었고 이를 개혁하고자 노력했던 고승들이다. 때문에 조선시대 억불정책 아래에서도 삼화상은 조사신앙의 대상이 되어 여러 곳에 모셔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통도사 삼성각에 모셔져 있는 나옹스님의 진영은 1807년(순조 7)에 서봉 인총스님의 증명아래 양공, 의윤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이 진영은 전신 좌안 8분면상의 지공스님을 중심으로 왼쪽에 나옹스님, 오른쪽에 우안의 무학대사를 한 화폭에 담았다. 연한갈색의 벽면과 미색 돗자리로 반분된 화면에 녹색장삼과 홍색각사를 모두 착용하고 있어 녹색과 홍색이 주 색조를 이루고 있다. 나옹스님과 무학대사는 한 가지 본을 좌우만 바꾸어 놓은 것처럼 표현기법이 동일해 이름이 쓰여 있지 않으면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하게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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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옹혜근 선사 - 억불시대에도 ‘和尙’으로 추앙 |작성자 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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