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을 들여다보네.
황폐해지는 내 피부를 보네.
그리고 이렇게 말하네. “하나님께서 차라리
내 심장을 저렇게 수척하게, 사그라지게 하셨더라면!”
그러면 차라리 점점 싸늘해지는 심장이
나를 괴롭힐 리 없으니,
나는 평온하게
영원한 안식을 외로이 기다릴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세월’은 나를 슬프게 하려고,
어떤 부분은 빼앗아 가고, 어떤 부분은 남겨 두네.
그리고 한낮의 두근거림으로
이 저녁의 허약한 뼈대를 흔드네.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3.11.27. -
소설 ‘테스’로 유명한 토머스 하디는 시도 곧잘 썼다. 특히 연애시를 잘 썼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네’는 하디가 나이가 들어 어떤 여인에게서 느낀 연애 감정을 에둘러 표현한 시. 강렬한 맛은 없지만 천천히 음미하노라면 슬픔이 차오른다.
날이 갈수록 황폐해지는 피부와, 나이가 들어서도 식지 않는 연정을 느끼는 심장을 대비하며 ‘내 피부’가 아니라 ‘심장’을 늙게 해달라고 하나님에게 떼를 쓰는 그. 누구는 황폐하고 까칠해지는 피부 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하루하루 살기 바쁜데 한가하게 사랑 타령하는 이 인간을 어디까지 봐줘야 하나. 욕심 많은 시인에게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가 마지막에 이르러 한 방 먹었다. 내 심장이 수척해진다면 “영원한 안식(죽음)을 외로이 기다릴 수” 있겠다니. 외롭게 살다 간 사람들이 생각나 마음이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