磨崖碑後(마애비후)/讀中興頌碑(독중흥송비) 張耒(장뢰)
玉環妖血無人掃(옥환요혈무인소),漁陽馬厭長安草(어양마염장안초)。
潼關戰骨高于山(동관전골고우산),萬里君王蜀中老(만리군왕촉중로)。
옥환(玉環)의 요망한 피 쓸어 주는 사람 없고, 어양의 호마(胡馬) 장안의 풀 먹는다오.
동관(潼關)에 전사한 해골 산 보다 높고, 만리 피난간 군왕 촉나라 땅에서 늙었노라.
金戈鐵馬從西來(금과철마종서래),郭公凜凜英雄才(곽공름름영웅재)。
舉旗為風偃為雨(거기위풍언위우),灑掃九廟無塵埃(쇄소구묘무진애)。
쇠창과 철마는 서쪽에서 오고, 곽공(郭公)은 늠름하여 영웅의 재주이네.
깃발 들어 바람되고 눕히면 비 되고, 깨끗히 청소한 구묘(九廟)는 먼지 하나 없다네.
元功高名誰與紀(원공고명수여기),風雅不繼騷人死(풍아불계소인사)。
水部胸中星斗文(수부흉중성두문),太師筆下龍蛇字(태사필하룡사자)。
으뜸 공과 높은 명성 누가 기록할까, 시경 풍아(風雅)가 이어지지 못하고 시인들 죽었네.
수부(水部) 원길 흉중에는 북두성 같은 글이요, 태사(太師) 안진경 붓은 용과 뱀 필획(筆劃)이네.
天遣二子傳將來(천견이자전장래),高山十丈磨蒼崖(고산십장마창애)。
誰持此碑入我室(수지차비입아실)?使我一見昏眸開(사아일견혼모개)。
하늘은 두아들 보내 장래를 전하니, 높은 산 열 길은 푸른 석벽(石壁) 갈았네.
누가 이 비문(碑文) 가지고 내 방에 들어왔는가? 나로 하여금 한번 보니 어두운 눈이 열리네.
百年興廢增感慨(백면흥폐증감계),當時數子今安在(당시수자금안재)?
君不見(군불견),荒涼浯水棄不收(황량오수기불수),時有游人打碑賣(시유유인타비매)。
백년 흥폐는 개탄스러움 더하고, 당시의 몇 분들 지금 어디에 남아 있는가?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황량한 오수(浯水) 버려지고, 때로 노는 사람들이 탁본(拓本)하여 팔아먹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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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柯山集 巻十一/ 宋 張耒/讀中興頌碑
< 柯山集 (四庫全書本)/維基文庫,自由的圖書館
장뢰 대표작 소년유(少年遊) 풍유자(風流子)
이 시는《張右史文集(장우사문집)》 8권에 실려 있는 바, 작자가 당(唐)나라의 중흥비(中興碑)인 마애비를 보고 역사의 흥망성쇠를 슬퍼하여 지은 것이다.
마애비(磨崖碑)는 황정견(黃庭堅)의 〈題磨崖碑(제마애비)〉시 및 원결의 대당중흥송(大唐中興頌)에 설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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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磨崖碑(제마애비) 마애비에 적음 黃庭堅(황정견)
春風吹船著浯溪(춘풍취선착오계) 扶藜上讀中興碑(부여상독중흥비).
平生半世看墨本(평생반세간묵본) 摩挲石刻鬢如絲(마사석각빈여사).
봄바람 배에 불어 오계가 나타나고, 명아주 지팡이 짚고 올라 읽는 중흥비.
살아온 반생에 탁본을 보고, 문지러 돌에 새긴 글 실같은 귀밑머리네.
明皇不作苞桑計(명황부작포상계) 顚倒四海由祿兒(전도사해유록아).
九廟不守乘輿西(구묘불수승여서) 萬官奔竄鳥擇栖(만관분찬조택서).
명황(현종)이 만들지 않은 백성 살 계책이고, 뒤집힌 세상 안록산 때문이네.
종묘를 지키지 못하고 수레 타고 서쪽에 가니, 관리들 새가 둥지 찾듯 도망갔네.
撫軍監國太子事(무군감국태자사) 何乃趣取大物爲(하내취취대물위)?
事有至難天幸耳(사유지난천행이) 上皇跼蹐還京師(상황국척환경사).
군사 거느리고 나라 지킴은 태자의 일이니, 어찌 곧 큰 자리를 취하게 되었을까?
일은 지극히 어려웠으나 하늘이 다행히 돌보아, 현종은 몸 굽히고 서울로 돌아왔네.
內間張后色可否(내간장후색가부) 外間李父頤指揮(외간리부이지휘).
南內淒涼幾苟活(남내처량기구활) 高將軍去事尤危(고장군거사우위).
안으로는 장후가 얼굴빛으로 가부를 정하고, 밖으로는 이보국이 턱짓으로 지휘했네.
흥경궁은 처량하여 구차히 살아가고, 고력사 장군 떠나자 일은 더욱 위태로웠네.
臣結舂陵二三策(신결용릉이삼책) 臣甫杜鵑再拜詩(신보두견재배시).
安知忠臣痛至骨(안지충신통지골) 後世但賞瓊琚詞(후세단상경거사).
신하 원결(元結)은 용릉행과 두세편을 읊었고, 신하 두보는 두견행 시로 재배했네.
충신의 아픔이 뼈에 스민 줄 어찌 알리? 후세는 단지 구슬 같은 글을 감상할 뿐이네.
同來野僧六七輩(동래야승율칠배) 亦有文士相追隨(역유문사상추수).
斷崖蒼鮮對立久(단애창선대립구) 涷雨爲洗前朝悲(동우위세전조비).
함께 야승 예닐곱 명이 오고, 또 있는 문사들이 서로 쫒아 따라왔네.
절벽 푸른 이끼 비문을 대하고 서 오래이고, 지난 비는 앞 조정의 슬픔 씻기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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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황정견이 60세인 숭녕 3년(1104년) 3월 오계(浯溪)를 찾아가서 절벽에 새긴 원결(元結)의 비문을 보고 지은 것으로 <황산곡문집> 권8에 ‘서마애비후(書磨崖碑後)’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칠언고시로 지(支) 제(齊) 미(微) 운을 썼다. 마애비는 현종이 안녹산의 난 후에 장안으로 돌아오자, 원결이 호남성 기양현(祈陽縣) 서남쪽에 있는 오계의 절벽을 다듬어 송문(頌文)을 새긴 것이다. 이 시는 대체로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처음 두 줄은 서문에 해당되고, 다음 여섯 줄은 현종의 실정과 고초이며, 그 다음 두 줄은 충성스런 신하의 시를 감상함이고, 마지막 두 줄은 비문을 보러 방문한 주변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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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唐中興頌(대당중흥송 : 당나라를 중흥시킨 공적을 찬양함)
元次山[結](원차산[결])
天寶十四年, 安綠山陷洛陽, 明年陷長安, 天子幸蜀, 太子卽位於靈武.
明年皇帝移軍鳳翔, 其年復兩京, 上皇還京師.
於戱! 前代帝王, 有盛德大業者, 必見於歌頌,
若今歌頌大業, 刻之金石, 非老於文學, 其誰宜爲?
천보십사년, 안록산함낙양, 명년함장안, 천자행촉, 태자즉위어영무.
명년황제이군봉상, 기년복량경, 상황환경사.
오희! 전대제왕, 유성덕대업자, 필현어가송, 약금가송대업, 각지금석, 비로어문학, 기수의위?
天寶 14년(755)에, 安綠山이 洛陽을 함락하고 이듬해 長安을 함락하니, 天子(玄宗)가 蜀 지방으로 파천하고 太子(肅宗)가 靈武縣에서 즉위하였다.
이듬해 황제가 鳳翔縣으로 군대를 옮겨 그해에 兩京(長安과 洛陽)을 수복하니 上皇(玄宗)이 京師로 돌아오셨다.
아! 前代 제왕 중에 盛德과 大業이 있었던 자는 반드시 歌頌에 드러났으니, 지금 대업을 노래하고 칭송하여 金石에 새기는 것은 문학에 노련한 사람이 아니면 그 누가 마땅히 하겠는가?
頌曰,
噫嘻!前朝, 孼臣姦驕, 爲昏爲妖.희희!전조, 얼신간교, 위혼위요.
邊將騁兵, 毒亂國經, 群生失寧.변장빙병, 독란국경, 군생실녕.
大駕南巡, 百僚竄身, 奉賊稱臣.대가남순, 백료찬신, 봉적칭신.
天將昌唐, 繄睨我皇, 匹馬北方.천장창당, 예예아황, 필마북방.
獨立一呼, 千麾萬旟, 戎卒前驅.독립일호, 천휘만여, 융졸전구.
我師其東, 儲皇撫戎, 蕩攘群兇. 아사기동, 저황무융, 탕양군흉.
復復指期, 曾不踰時, 有國無之.부복지기, 증불유시, 유국무지.
頌은 다음과 같다.
슬프다! 前朝는 요망한 신하들 간사하고 교만하여 어리석고 요사한 짓을 하였네.
변방 지키던 장수(安綠山)가 치달려 나라 기강을 어지럽혀 백성 평안을 잃었네.
大駕가 남쪽으로 순행하니 백관들이 몸을 숨기고 적을 받들어 신하 노릇을 하였네.
하늘이 唐을 창성케 하려고 우리 황제를 돌보아 匹馬를 타고 북방으로 달리게 하셨네.
홀로 서서 한 번 외치시니 천만 깃발을 펄럭이며 군사들이 앞에서 말을 몰았도다.
우리 군대 동쪽으로 가니 태자께서 군대를 위무하여 흉악한 무리를 소탕하셨네.
다시 또 기한을 정하시고 때를 넘긴 적이 없으셨으니 나라가 있은 이래로 없었던 일이네.
事有至難, 宗廟再安, 二聖重歡. 사유지난, 종묘재안, 이성중환.
地闢天開, 蠲除妖灾, 瑞慶大來. 지벽천개, 견제요재, 서경대래.
兇徒逆儔, 涵濡天休, 死生堪羞. 흉도역주, 함유천휴, 사생감수.
功勞位尊, 忠烈名存, 澤流子孫. 공로위존, 충렬명존, 택류자손.
盛德之興, 山高日昇, 萬福是膺. 성덕지흥, 산고일승, 만복시응.
能令大君, 聲容沄沄, 不在斯文, 능령대군, 성용운운, 부재사문,
湘江東西, 中直浯溪, 石崖天齊. 상강동서, 중직오계, 석애천제.
可磨可鐫, 刊此頌焉, 何千萬年? 가마가전, 간차송언, 하천만년?
일이 지극히 어려웠으나 宗廟가 다시 편안해지고 두 聖君께서 거듭 즐거워하시네.
천지가 개벽하여 요사스러운 재앙을 말끔히 제거하니 상서로운 경사가 크게 왔도다.
흉악한 무리와 패역한 무리가 천자의 은택에 흠뻑 젖으니, 죽은 사 산 자 심히 부끄럽네.
功勞는 지위 높아지고 忠烈에는 이름 보존되니, 은택이 자손까지 전해지네.
盛德이 일어남이 산처럼 높고 해처럼 떠오르니 萬福을 이에 받게 되었네.
大君의 명성과 모습이 길이 전해지게 하는 것이 이 글에 달려있지 않겠는가?
湘江의 동서쪽 가운데로 浯溪와 만나는 곳에 바위벼랑이 하늘과 나란하니 갈아서 글을 새길 만하기에 이 頌을 새기니, 어찌 천만 년만 전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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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