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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곧 대 환란 원문보기 글쓴이: Daniel
예수님이 승천 하신 후에 일곱 교회가 있던 소아시아의 수도가 버가모였다.
사탄 종교가 바벨론을 거점으로 왕성해지다가 페르시아에게 정복당하면서
근원지가 바벨론에서 소아시아의 버가모로 옮기게 된 것이다.
버가모는 정치, 권력, 이방 사탄 신 숭배, 또 학문의 중심지였다.
이곳에는 제우스 신전과
그들이 믿는 수호신 에스칼피우스의 제단이 있었는데,
그 제단에 살아있는 독사를 갖다 놓고 그것에 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의 바벨종교는
로마에 의해 더욱 육성해지기 시작했다.
왜일까?
당시 로마가 정복한 나라들이 바벨 종교를 거의 믿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로마 황제가 바벨 종교의 제사장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면
정복 국가들의 백성들에게 존경도 얻고 제사장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정복 국가들을 쉽게 통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바벨 종교의 조직은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신부의 직위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소아시아에 있는 로마 백성들도 이 종교를 통해서 로마 황제를 숭배하고
분향했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훗날 A.D.313년 이후
로마는 바벨론 사탄 종교와 기독교를 합쳤다.
그래서 카톨릭의 조직은 바벨 종교의 조직 구성과 같다.
그리고 바벨 종교의 창시자, 세미라미스가 담무스를 안고 있는 모습을
카톨릭에 합하여 성모마리아 상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A.D.97년경 이전의 소아시아 교회의 성도들은
바벨 종교를 겸하여 섬기는 성도들이 있었고,
여기에 니골라당의 교리가 더해져서 교회들은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 버가모 교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거기는 사단의 위(位)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
곧 사단이 왕좌를 차지하고 인간들의 배후에서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다.
<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
계2;12~17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位)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순교)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 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발람(미디안의 선지자)이
발락(모압의 왕)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 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발람과 발락이 이라는 이름이 나오니까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다.
그런데 발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니골라 당이라고 하신다.
고로 발람 = 니골라 당이라는 공식이 성립되겠다.
이 전 글 http://cafe.daum.net/wewill/F5eh/10
(네피림, 모압과 암몬을 그냥두시라 하신 이유 (3))
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 할때 60국을
쳐부수고 돌진한 내용을 읽었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자손들인 모압과 암몬은 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롯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압의 왕인 발락은 이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전혀 모르고,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성들을 쳐부수고 가나안 땅으로
진격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겁에 질려버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제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스라엘 앞에서 적들을 쳐부순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그런 소문이 세계에 쫙 퍼진 가운데 이스라엘 민족이 떡 허니
모압 맞은편에 진을 치고 있지 뭔가!
이스라엘은 모압을 치려고 진을 친 것이 아니라,
좀 쉬려고 진을 친 것뿐인데, 모압은 간장에 콩 조리듯이 바짝 쫄아버렸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거인 족들도 능히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스라엘의 백성의 머릿수에도 밀리는 모압은, 도저히 이스라엘을
상대해서 이길 자신이 없었다.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는 것 같이 자기들의 사면을 다 뜯어먹겠다고
상상하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에 당시 모압 왕이었던 발락이 겨우 생각해 낸 방법이
당시 미디안에 살고 있는 발람이라는 선지자를 찾아가서는,
무당에게 점치듯이 복채를 두둑이 주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주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의 자식의 족속이다.
이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모세에 이끌리어 탈출하면서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께 연단을 받던 시기였고,
이스라엘 민족도 하나님께 율법을 받은 지 약 4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르시기 전에도
이스라엘 외의 국가들에게서 은혜를 줄자를 찾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신 모양이다.
그렇겠지.. 하나님께서 세계를 나 몰라라 하실 분이 아니다.
출19;5
세계가 다 나에게 속하였나니
그러나 발람 선지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바람에 나는 겨처럼 가벼웠다.
그래서 출애굽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를 점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여호수아13; 22
점술가 발람도 칼로 죽였더라
그러나 발람이 변질되기 전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운 선지자였다.
점쟁이와 선지자의 차이는 복채를 받고
복을 빌어주거나 그렇지 않거나, 저주를 하거나 그렇지 않거나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는 절대 돈에 개입되지 않는다.
돈에 미혹되는 순간부터 참선지자가 점쟁이, 복술하는 자로 전락하게 된다.
발람처럼 말이다.
발람 선지자는 갈대와 같이 흔들리면서 사람의 의중에 더 마음을 두었던 모양이다.
발람이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증거는 아래쪽에서 다시 설명하겠다.
민22;1~
이스라엘 자손이 또 진행하여 모압 평지에 진쳤으니
요단 건너편 곧 여리고 맞은 편이더라
십볼의 아들 발락이
이스라엘이 아모리 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보았으므로
모압이 심히 두려워하였으니
이스라엘 백성의 많음을 인함이라
모압이 이스라엘 자손의 연고로 번민하여
미디안 장로들에게 이르되
이제 이 무리가 소가 밭의 풀을 뜯어 먹음과 같이
우리 사면에 있는 것을 다 뜯어 먹으리로다 하니
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그가 사자(사신)를
브올의 아들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이집트)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혀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데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발람)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다.
당시에 발람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가나안 일대에서
바벨 종교를 섬기던 사람들이 발람을 분명히 괴롭혔을 것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발람을 보호하시고 사용하시기 위하여
발람을 괴롭게 하는 자들을 처단해 주셨을 것이다.
또한 바벨 종교를 섬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좋은 예언을 주신 것이 아니라,
사탄에게서 돌이키고 악을 멈추라고 하셨을 것이고,
돌이켜 회개 하지 않으면 죽으리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것을 모압 왕 발락도 알고 있었지만,
발락 왕은 이러한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자초지종은 모른 채,
그저~ 발람이
신적 영 권이 있는 영험한 사람인 줄만 알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무당에게 찾아가듯이 발람에게 복채를 들고 찾아갔다.
우리 교회 중에서도 이러한 발람 같은 일을 하는 권사를 만나 본 적이 있다.
진짜, 점집처럼 돈 통을 가져다 놓고는
하나님의 예언을 말한다고 하는 사람이었다.
뭘 알아맞추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영험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상당히 고압적인 태도로 말한다.
또 근엄한 척하며 공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권위적인 모습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러한 발람이 진짜 이 시대에도 수두룩하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매
발람이 그들 에게 이르되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는 대로
너희에게 대답하리라
위 말씀을 보면
발람이 여호와 하나님께 물어 보겠다고 한다.
그러니 발람은 무당이 아니라,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선지자 역할을 한 것이 분명하다.
좀 가벼워서 나중에 타락한 선지자로
문제가 된 사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발람이 하나님의 선지자였다는 증거는
신약의 베드로 후서 1장에 기록되어 있다.
거짓 선생이 민간에 일어났는데, 그 비유를 발람선지자,
곧 미친 선지자 발람에 비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벧1;20~22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되
말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것을 금지하였느니라
다시 민수기 22장으로 돌아가서요~~
모압의 발락이 보낸 사신들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말씀으로 기회를 주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회를 주신다.
그러나 기회는 주시지만, 그 선택은 우리 인간에게 맡기신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와 함께한 사람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고하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라
이르기를
보라(발락이 말하기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있어 지면에 덮였느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여호와께서 허락지 아니 하시느니라
모압의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고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 하더이다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귀족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컨데
아무것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발람)를 높여 크게 존귀케 하고
그대(발람)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컨데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발락이 그 집에 은, 금을 가득히 채워서
내게 줄찌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어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찌니라
여기까지는 발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아주 잘 이행했다.
그런데 발락 왕이
발람에게 더 높은 귀족을 보내서 발람을 떠받들어 주며, 존귀케 해주고,
무슨 청을 하던 지 다 들어주겠다는 말이, 발람의 귀에 어른거렸다.
슬슬 발람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발람은 이 때,
훗날 발락 왕이 자신을
토사구팽 시킬 것까지 계산을 하고 하나님만을 따랐어야 했다.
그러나 미련한 발람의 마음은 발락 왕 쪽으로 점점 기울었다.
그렇게 발람의 맘이 기운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는..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귀족들과 함께 행하니
그가 행함을 인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여호와의 사자(천사)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서니라
발람은 나귀를 타고 그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천사)는 포도원 사이 좁은 길에 섰고
좌우는 담이 있더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천사)를 보고
몸을 담에 대고 발람의 발을 그 담에 비비어 상하게 하니
발람이 다시 채찍질하니
여호와의 사자가 더 나아가서
좌우로 피할 데 없는 좁은 곳에 선지라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는지라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나귀가) 이르되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뇨
발람이 나귀에게 말하되
네가 나를 거역하는 연고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너를 죽였을 것이라
여기서 발람의 성정이 나온다.
자신이 평생 부리던 나귀가 말을 안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나귀를 때리고 칼이 있었으면 죽였을 것이라고 한다.
참~~정도 없고 모질다.
갑자기 나귀가 왜 그런지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고 말을 하게 하신다.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네가 오늘까지
네 일생에 타는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든지 네게 이같이 하는 행습이 있더냐
가로되(발람이)
없었느니라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머리를 숙이고 엎드리니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보라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하므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나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이같이 세 번을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씀하되
내가 범죄 하였나이다
하나님께서 발람을 죽이시지 않기 위해서 나귀까지 사용하시며
그의 잘못된 생각을 돌이키려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시고 이렇게 피할 길을 주신다.
이리하야, 발람은 하나님을 두렵게 생각하고는,
발락 왕을 만나서는
일곱 단을 쌓고 거기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준비하라고 한다.
그래놓고는 발람은 발락 왕이 원하는 대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축복해 버렸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이에 발락 왕은 손뼉까지 치면서 팔딱팔딱 뒤며 발광을 하는 것이다.
제사 준비까지 다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불렀더니
오히려 축복을 하는 발람의 모습을 보고 발락 왕이 안달복달을 하는 것이다.
이때 발람 선지자는 철이 든 것처럼 이런 말을 한다.
민23;8
하나님이 저주치 않은 백성을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
맞는 말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민23;12
여호와께서 내 입에 주신 말씀을
내가 어찌 말하지 아니할 수 있으리이까
민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사람)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민23;23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아주 바른 말을 잘 했다.
이렇게 철든 것 같은 말을 해놓고도 발람은,
아직도.... 발락 왕이 자기를 존귀케 해주고,
무슨 말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한 그 약속이 귀에 어른어른 거리고
그 달콤한 속삭임에 미련을 못 버렸다.
자꾸만 사람들에게 영광이 받고 싶어졌다.
자신이 왕 옆에서 점이나 쳐주면
왕까지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위와 권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드디어 발람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정신 줄을 휘리릭 놓고 헤까닥 갔다.
그리고 발람은 발락 왕에게 모사를 베푼다.
모압의 미녀들을 풀어서
이스라엘 남자들을 미혹하고 음행하게 하여,
우상에게 절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멸하실 것이라고 가르쳐 준다.
이 계략이 먹힐까?
그런데 먹혀들어 갔다.
왜일까? 우째 이런 일이~~~
이에 드디어 이스라엘의 남자들 중에도
믿음이 신실치 않은 사람들이 추려지게 되었다.
알곡과 가라지가 갈라지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은 대환란을 겪게 될 우리에게도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바로 발람 같은 거짓선지자가 일어나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할 것이다.
드디어 발람의 계략이 이스라엘에게 먹혀들어 갔다.
이 미혹에 따른 벌로 이스라엘에는 염병이 돌고 24,000명이나 죽었다.
민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민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백성들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모압)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 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서 떠나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에 들어가서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 명이었더라
발람의 간계가 먹혔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될 줄을 모르셨을까?
단순히 발람의 간계에 이스라엘 백성이 넘어갔으니 발람의 잘못이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염병이라는 징계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사람들 보다
이 세상의 정욕에 굶주린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감히 하나님을 업신여긴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낮에는 구름 기둥과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며
하늘에서 천사가 먹는 만나를 식량으로 주셨어도....
인간들은 기적을 두 눈으로 보고도
그 기적이 일상적이 되어 버리고 익숙해지면 시큰둥해지는 법인가 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한 감각이 사라진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이 미혹을 받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계신다.
살후 2;9~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미혹을 받고 그것을 수용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
위 '데살로니가 후서'의 내용이다.
이스라엘이 미혹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 이유는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을 심판하실 계획이 있으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특한 간계를 꾸민 타락한 발람 선지자는 살아남았을까?
발람이 살아남았다면 공의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민3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그 후에 네가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라
민31;6
모세가 매 지파에 일천 인 씩 싸움에 보내되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에게
성소의 기구와 신호 나팔을 들려서
그들과 함께 싸움에 보내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미디안을 쳐서 그 남자들을 다 죽였고
그 죽인 자 외에 미디안의 다섯 왕을 죽였으니
미디안의 왕들은 에위와 레겜과 수르와 후르와 레바며
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이런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시고자 하나님께서 발람을 막으셨지만,
결국, 발람은 기어코 자신의 탐욕과 정욕에 눈이 멀어 절제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은 발람의 타락을 막으시려고 그가 탄 당나귀까지도 이용하셨다.
그것도 당나귀에게 말까지 하게 하시다니...
그런데도 탐심이 가득한 미련한 사람은 이런 기적을 보고도
사탄이 사람을 통해 살살 꼬시는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미련한 발람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권자임을 잊고
발락의 권세에 편승하려는 간악을 발했던 것이다.
이 세상의 권력, 권세 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을 멸시한 대가는 실로 컸다.
발락은 이스라엘의 칼에 맞아 죽었다.
위와 같은 사건으로 모압과 암논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신23;3~8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니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찌니라
이러한 내용을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하게 하셨고
요한 계시록에도 발람의 교훈을 우리에게 상기시키셨다.
그리고 발람의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을 니골라 당이라 하신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현 기독교 내에서 발람과 같은 배도의 죄악이 넘치고 있다.
권위와 권세와 탐욕에 찌들어서
발람의 길로 가고 있는 목사들과 성도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말씀이다.
우리는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신 발람의 교훈을 깨닫고,
니골라 당의 교훈,
육체는 악한 것이니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가르침에 미혹되어
탐욕과 정욕을 따라 악을 발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을 떠나야 한다.
그 니골라 당은 우리의 생명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
그저 니골라 당은 자신들의 죄악을 합리화시키려고
많은 말들을 만들어 교리화시켜서 다 같이 죽자고 사람들을 미혹한다.
곧 대중이 많이 모이면 안도감을 주기 때문에 다수를 니골라 당에 편승시키려는 것이다.
회개하고 악에서 돌이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계신다.
아직 죽을 날이 먼 것 같아서...
대환란이 아직 먼 것 같아서...
조금만 더 해 먹고 나중에 회개하자는 심사인가?
오늘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른다 .
개인적 종말은 순식간에 다가올 수 있다.
이제부터 목사, 장로, 감독의 조건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감독=목사>
딤전3;1
미쁘다 이말이여 ,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함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딛1;5~9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미쁘신 말씀의 가르치심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회개하고 돌이키자.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구덩이 지옥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성경이 용서와 사랑이라는 명분 아래서 모든 악을 용납하시는가?
잊지 말자.
니골라 당의 교훈을 가르치고 그렇게 행하는 자는 종말이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탄의 회' 라고 하신다.
안이하고 탈콤한 말을 하면서 넓은 길로 인도하는
'사탄의 회' 니골라 당의 말을 따르지 말자.
예수님과 성경을 이용해서
권위를 거머쥐고 자신의 유익을 취하면서
타인의 인생들을 좌지우지하는데 맛이 들린 사람들은
위 말씀을 왜곡하여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변개시킬 것이다.
그래도 그들의 말을 듣지 말자.
첫댓글 바벨 종교의 조직이 바로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신부의 구성으로
이것을 카톨릭에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