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관해 알기쉽게 쓰여진 컬럼이네요.
참고되실 것 같아 데려왔습니다.
http://mlbpark.donga.com/nboard/ssboard.php?bbs=b_bullpen&s_work=view&no=185162&depth=0&page=1&word=자체검열&sn=&s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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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만평(2월 13일자 조선일보)은 아까운 작품이다. 그림 좌측만 놓고 보면 완벽하다. 노점상 하는 서민에게 국민성금을 내라고 협박하는 이명박과, 그걸 '머니!'라고 굳이 영어로 말하는 이경숙 콤비가 절로 쓴웃음을 자아낸다. 아이디어도 좋고 비판하는 대상도 분명하다. 만약 만평이 좌측 부분만 존재했더라도 2008년 최고의 시사만평으로 꼽히기에 큰 모자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만평이 순식간에 졸작이 되는 것은 우측 골목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한 노숙자, 아니 노무현의 모습 때문이다. 레임덕을 상징하는 오리 모자를 쓴 노무현은 소망교회 콤비를 바라보며 부러운 듯이 "나도 같이 다녀봐?"라고 혼잣말을 하고 있다. 대체 왜 여기에 노무현이 끼어드는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부러워하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만평 좌측에서 예리하게 빛나던 비판 의식은 우측에 '얼룩'이 틈입하면서 전체적인 주제와 구도를 흐트러놓는다.
만평을 그린 신경무가 이를 몰랐을리 없다. 그도 오른쪽에 있는 오리무현은 명백히 불필요한 것이고 만평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작품성이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만평을 위와 같이 그려야 했다.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단지 조선일보 편집부의 압력 때문일 거라고 어렴풋이 짐작했다. 아래에 보이는 만평의 원래 버전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치 '다른 그림 찾기' 하듯, 나중의 버전과 원래 버전 간의 차이점을 찾아보자. 우선 이명박의 말풍선 속 대사의 어조가 다르다. 원래는 '국민 성금으로!!!'라고 협박하듯 강하게 말하는 것으로 그려졌지만, 나중에는 '국민 성금으로...'라고 말꼬리를 흐리는 식으로 처리됐다. 성금함을 내미는 이경숙의 동작도 원본은 훨씬 단호하고 들이대는 모양새인데 반해, 나중의 버전은 '공손히 내미는' 것처럼 정적으로 그려졌다. 노점상 주인 할매의 반응도 원본이 훨씬 충격받았다는 표정이다. 신경무는 느낌표와 만화에서 사용되는 '이동 표시', '충격 표시' 같은 기호를 모두 제거하는 식으로 타협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그건 부차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이제 원본 만평 오른쪽을 보기 바란다. 골목 뒤편에는 오리무현 대신 검은 안경을 쓴 '건달' 두 명이 지켜보고 있다. 그들이 자문한다. "저...긴 무슨 파냐..?"하고 말이다. 건달들은 이명박과 이경숙 콤비를 자신들의 '나와바리'를 위협하는 '조폭'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강압적으로 국민에게 성금을 요구하는 소망교회 콤비의 행태가 마치 서민들을 삥뜯는 조폭과 다를바 없다는 비판이 원래의 만평에는 강하게 담겨 있었단 이야기다. 이 정도면 '올해의 만평'을 넘어 한국 신문만평 역대 베스트 5위권에 넣어도 모자람이 없는, 놀라운 촌철살인의 경지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만평이 어쩌다가 맨 위의 것과 같은 수준 이하의, 일관성 없고 주제의식도 모호한 졸작으로 전락했을까?
당초 각종 포털 사이트와 조선 홈페이지에는 '졸작'이 아닌 원본 만평이 게재되어 있었다. 또한 새벽 배달판도 대부분 원래의 멋진 버전 만평이 실린 채로 배달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가판에 뿌려진 신문과 현재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진 만평은 '졸작'으로 모두 교체가 되어 있다. 실제로 네이버나 엠파스에 가서 원래의 만평 링크를 클릭하면 '언론사의 요청으로 삭제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뜬다. 조선일보 편집부의 압력이 실제로 있었고, 자체검열을 통해 신속하게 만평이 저급한 버전으로 교체되었다는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다. 비슷한 상황 하에서 손문상 화백(당시 동아일보 만평가)은 끝끝내 검열을 거부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쪽을 택했다. 반면 신경무는 스스로 비판의 수위를 낮추고 자기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길을 선택했다. 비교가 된다.
조선일보는 여러 단계의 검열을 거치는 신문이다. 크게는 보수 정치권력과 삼성으로 대표되는 경제 권력의 검열을 받고, 이는 다시 사주인 방씨 가문의 검열로 이어지며, 여기서 다시 편집국의 검열, 그리고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기자들 스스로의 자체 검열로 연결된다. 이렇게 피라미드처럼 검열이 위에서 내려오는 구조 하에서는, 아무리 종사자 개인이 올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기사를 쓰려 한다해도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신경무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권 내내 유치하고 치졸한 비아냥대기로 일관했던 그가 이명박 당선 이후에는 인수위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등 편집국과는 대조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이렇게 자체적인 필터링을 통해 통제가 되는데 훌륭한 결과물이 나올 리가 없다. 조선의 저 만평 교체 사건은 조선일보의 검열 시스템이 얼마나 철저한지, 그리고 이게 종사자들 개개인의 자발적인 자기 검열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훌륭하게 보여주는 사례라 할 만하다.
한겨레 신문은 이런 면에서 자유로울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근래 <한겨레> 지면을 보면, 이명박이 '후보'이던 시절의 치열하고 강력한 비판의 강도가 크게 누그러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굳이 비판을 하더라도 선택적으로, 수위를 낮춰서, 또는 외부 필자의 입을 빌려서 하려는 경향이 눈에 띈다. 물론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과 여러가지 거액의 소송이 있었고, 또한 새 정부 출범에 무작정 딴지걸기를 하지만은 않겠다는 의도에서 잠시 수위를 낮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명박이 취임도 하기 전에 저지르고 있는 무수한 본헤드 플레이를 생각하면 지금이 '허니문' 즐길 때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한겨레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역시 만평이다. 나는 각 신문사가 정치인의 얼굴을 관상학적으로 어떻게 묘사하느냐가 해당 신문의 관점을 보여준다고 믿는다. 가령 한겨레는 조지 부시를 원숭이처럼 그리지만 조선일보는 전형적인 미국인의 인상으로 묘사한다. 이런 차이는 노무현을 묘사하는 신문들의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조선이나 중앙이 최대한 천박하고 지저분하게 노무현을 그린다면, 한겨레나 경향은 다소 '어리숙'해 보이게 그린다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한겨레 만평 장봉군 화백의 이명박 묘사는 어떨까.
위의 만평을 보기 바란다. 2007년 11월 15일자인 위 만평은 한창 BBK를 둘러싼 공방이 치열하던 때에 그려졌다. 여기서 이명박의 얼굴은 마치 중세시대 종교화 속 악마의 모습처럼 묘사된다. 크게 구부러진 코, 튀어나온 턱, 움푹 패여 보이지 않는 눈과 두꺼운 눈꺼풀... 교활하고 냉혈한 악마이자 '독사의 자식'처럼 이명박을 묘사하고 있던 것이다. 이런 기조는 당분간 계속해서 이어진다.


이명박의 귀를 길고 크게, 그리고 눈동자가 보이지 않게 묘사하는 특징이 눈에 띈다. 특히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관상학에서 '음흉'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믿지 못할' '잔인한' 성격의 특징이다. 긴 귀가 악마의 특징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장봉군 만평은 이런 묘사를 통해 독자에게 이명박의 감추어진 '본성'에 대해 독자에게 각인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대선일 직전까지 이런 기조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가 당선 이후부터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시작된다.

위의 만평은 당선 직후인 12월 25일에 그려진 것이다. 변화는 작지만 눈에 띄는 것들이다. 귀는 길고 가는 형태에서 '둥글게' 변했고, 눈을 완전히 덮고 있던 양미간이 평평해졌다. 실제 이명박의 얼굴과는 달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점 역시도 이채로운 부분이다. 당분간 장봉군은 이런 선에서 이명박 묘사를 계속 이어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결정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다음 만평을 보면 그게 무언지 알 수 있으리라.
위의 그림은 1월 25일자 만평이다. 어떤 변화가 보이는가? 바로 눈이 없던 이명박의 평상시 얼굴에 '눈동자'가 생겼다는 점이다. 작지만 또렷하게 점으로 찍힌 두 개의 눈동자가 생겨났다. 화룡점정이다. 이로써 이명박은 간교하고 음험한 사탄의 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고길동 아저씨를 인상시키는 순하고 부드러운 눈매의 소유자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후 장봉군은 계속해서 이 방식으로 이명박을 그려나가고 있다.


새로운 그림에서 이명박의 얼굴을 보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겉으로는 아무리 심신미약 상태 같은 말을 내뱉더라도 결코 '해치지 않을' 것만 같은, 선량한 아저씨 같은 이미지가 아닌가. 바로 위의 만평도 대선 전까지의 관상으로 이명박을 그렸다면 굉장히 충격적인 효과를 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위의 것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돈을 내라고 강요하는 모습은 협박이라기보다는 '구걸'을 하는 모습 같다는 인상을 주며, 만평 전체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오히려 이명박의 묘사 자체만 놓고 본다면 조선일보 신경무 쪽이 한겨레 장봉군보다 더 '네거티브'하다.
한겨레 만평의 이런 변화가 뜻하는 바는 무엇일까. 이건희는 계속 그렘린처럼 그리며 투쟁하더라도, 거액의 소송이 걸린 대통령 당선자와는 앞으로라도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의지의 표명일까. 아니면 대통령을 악마의 관상으로 그리는 것은 국가적으로 유익할 것이 없으니까 순화해서 표현하자는 내부적인 의견 조율이 있었을까. 어느 쪽이건, 한겨레가 이처럼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대척점에 있는 대통령과 '허니문'을 보내고 비판의 수위를 낮추며 '순화'된 태도로 대응하는 모습은 보기 씁쓸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최근 인수위의 행태를 보면 굳이 '진보' 언론까지 자진해서 허니문 기간을 제공해줄 이유는 조금도 없어 보인다. 배우자의 잘못된 버릇은 신혼 초기부터 고쳐놓지 않으면 같이 사는 내내 발목을 잡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취임 전부터 강력한 비판의 수위를 유지해서, 최대한 하나라도 삽질을 덜 하도록 '방지'하는 게 한겨레 같은 신문이 할 일이 아닐까. 허니문이랍시고 살살 봐주며 넘어가는 동안, 시간은 어느새 흘러가고 운하는 국토를 두동강낼 것이며 온 나라가 영어에 지배당하는 영어 공화국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걸 막을만한 언론은 기껏해야 프레시안이나 한겨레, MBC가 전부다. 정신차려라, 한겨레.
부연.
그렇다고 꼭 장로님을 '악마'처럼 그리는 게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이런 만평의 변화가 한겨레 전체의 이명박에 대한 비판 수위가 낮아진 것과 분명 연관이 있어 보이기에 하는 얘기다. 악마로 묘사하는 것이 지나친 극단이라면, 당선되자마자 갑자기 마음착한 아저씨로 묘사하는 것 역시 보기 민망한 일이다. 장봉군 화백은 앞으로 자신이 이명박을 어떻게 그려낼지에 대해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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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기름 닦느라 고생했지? 이번엔 돈만 내! 우와 순간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아는 교수님도 조선일보 연재하실 때 결론부는 편집부가 알아서 써 넣는다고 하셨어요
우와... 진짜 변했다... 한겨레도 수위조절 하는거 ㅠㅠ욕하고 싶지만 애정으로 욕은 안하고 앞으로 잘하길.. 한겨레가 살아남는 길은 계속 까느거 밖에 없음
한겨레 얘긴 솔직히 별로 공감 안되는데..
22222222조선일보는 만평보다 ..개같은 해드라인 쓰레기같은 그 해드라인이 문제라고 생각함-_- 어디서 조선일보랑 한겨레를 비슷하게 놓으려고 하는지; 이 글 진짜 이해안가는데;
제발 한겨레 부탁이야ㅠㅠ
조선에 대한 부분은 공감.!!그치만 조선과 한겨레를 비교한다는것 자체가 한겨레굴욕...;;
처음엔 음험하게 그렸다가 내려올수록 순진한척하며 살살 꼬시는 그런 악마같이 그려놓은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