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개인적으로 비평을 무척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비평을 하면서부터 책에 몰입이 잘 안 된다. 뭔가 눈에 거슬리면 메모도 해야하고, 뭔가 이상하면 체크도 해야한다. 물론 이런 독서가 나의 사고력에 기여한 바를 무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책에 완전히 빠져들어서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르게 책을 읽던 시절이 훨씬 좋았던 것 같다.
스무 권씩 하는 장편 소설을 눈에 핏줄세워가며 읽던 시절에 나는 비평에 ㅂ도 몰랐다. 그저 신나게 읽었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재미있는 책을 다시 읽기를 매우 좋아한다.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표시해뒀다가 백번이고 다시 읽는 습관이 있다. 내가 이문열 삼국지를 열 아홉살에 사서 읽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학까지 시간이 남자, 삼국지와 수호지를 사서 읽었는데, 그 이후로 삼국지는 내가 기록한 것만 60번을 넘게 읽었다. 기록하지 않은 것이 몇 번일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몇 번을 읽었는가와 별개로 지금 다시 읽으면 또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들이 있다.
처음엔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의 부분이 좋았지만 좀 지나자 주유와 장간, 조조의 부분이 좋았다. 그러다가 여백사 이야기가 좋아지는가하면, 계륵이 나오는 부분이 좋아지기도 했다. 다시 유비와 상산초옹이 만나는 부분이 좋아졌다 싶으면 읍참마속이 좋아지곤 했다. 그렇게 나는 삼국지를 맛있게 읽었다. 읽고 또 읽고, 또 읽은데 또 읽고, 어떤 부분은 종이가 좀 닳았다 싶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나서 내가 다시 만난 것은 임꺽정이었다. 나는 벽초 선생이 마치 옆에서 얘기해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너무 감칠맛나는 우리말에 홍간것이다. 장기튀김이나 굴비엮음이니, 말들이 너무 정겨웠다. 나는 그래서 아직도 장길산보다 임꺽정을 한참 높게 친다. 이 임꺽정을 내 기록에 의하면 약 50번을 읽었다. 비공식적으로 어림잡으면 임꺽정은 백 번은 읽었지 싶다. 아직도 나는 임꺽정이 태어나기 이전의 이야기인, 이교리 이장곤의 주의상책 북방길 에피소드를 가장 좋아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른 소설을 읽으면서 왠지 삼국지나 임꺽정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가가 부족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불만을 글로 적었던 것 같다. 대학 문학수업에서 나는 생전 처음으로 비평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 '비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도 국어 사전을 찾아 보면 비평의 뜻은
비평 [批評]
[명사]
1 사물의 옳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따위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함.
2 남의 잘못을 드러내어 이러쿵저러쿵 좋지 아니하게 말하여 퍼뜨림.
이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옳고 그름이나, 미추를 분석하여 가치를 논하는 것에 재주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전혀 동의할 수 없었다. 그저 뭔가 부족함이 느껴졌을 뿐이니까. 그 후로도 나는 비평이 뭔지 몰랐고, 비평에 대해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에 백과사전을 어둠의 경로로 구했고, 재미삼아 이것저것 검색해 보기로 했다. 물론 처음엔 야하고 믕믕한 것들부터 검색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비평! 그때 읽은 내용은 지금 네이버에서 비평을 백과사전으로 검색했을 때 나온 내용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예컨대, 문예비평은 시나 소설의 좋고나쁨을 판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때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은 과거의 뛰어난 시나 소설이다. 즉, 전통이 가치를 규정한다. 그런데 그 전통을 유지하는 사회질서가 붕괴될 때에는 전통에 유래한 기존의 비평 척도 자체가 비평의 대상이 된다. 이때 비평은 기존 평가기준에 대한 새로운 비평에서 출발하는 창조에 의하여 크게 전진한다.
이게 비평이었다. 고전에 견주어 보는 것이 평, 어깨비와 평할 평자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았다. 물론 요즘 비평은 메타비평에 가깝지만, 그 시절 내가 소설을 읽는 기준이 삼국지와 임꺽정에 있음은 분명했다. 아니 사실은 지금도 좀 그런 면이 있다. 내가 소설에서 느낀 모범적 구조라든지, 형식은 거의 고전에 있다. 현대 소설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왠지 구식인지 옛 것이 더 재미있다. 요즘 소설들은 뭔소린지 당최 모를 얘기가 너무 많다.
요즘은 그냥 옛날처럼 책에 푸욱 빠져서 완전히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놈이 잘 없다. 언제나 벽초같은 선생이 옆에 앉아 옛날 얘기 해주는 듯한 그 기분을 다시 맛 볼지...... 요즘엔 오자가 왜 그렇게 눈에 띄는지.. 왜 나는 그런 것들을 그렇게 찾아내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다 부질없는데... 그냥 소설에 취하고 싶은데....
다 부질 없다. 젠장..
첫댓글 구할 수 있다면 박태원의 갑오농민전쟁을 읽어 볼 것.....고원정의 빙벽은 부록.....
당대비평이라는 말도 있지요. 비평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비평이란 말은 없지요. 비평은 쉬운 게 아니지요. 애정없이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서면으로 가봐야겠습니다. 집회가 있다는군요. 놀면 뭐하요. 목이 터지도록 노래를 부르고 싶은데, 잘되었지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