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먹는 것이 아니라 뱉는 것이다"/ 장욱진
그림과 수필
"40년을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 하는 것이니까."
까치와 나무 1986
그리고 천진했던 어린 시절에의 향수가 감미롭고 서글프게 전신을 휘감는 것을 느낀다. 태양과 강과 태고의 열기를 뿜는 자갈밭, 대기를 치스치는 여름 강바람-
이런 것들이 나 역시 손색없는자연의 아들로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이럴 때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공허하지 않다. 자연의 침묵이 풍요한 내적 대화를 가능케 한다.
가족 1949 31.5*31.5cm 캔버스에 유채
그럴때 나는 물이 주는 푸른 영상에 실려 막걸리를 사랑해 본다. 취한다는 것, 그것은 의식의 마비를 위한 도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근본에서 사랑한다는 것이다.
악의 없이 노출되는 인간의 본성을 순수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사랑하려는 마음을 가짐으로써 이기적인 내적 갈등과 감정의 긴장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리고 동경에 찬 아름다움의 세계와 현실 사이에 가로 놓인 우울한 함정에서 절망 대신에 긍정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절실한 정신의 휴식인 것이다.
가족 1988 27.5*35cm 캔버스에 유채
그렇다, 취하여 걷는 나의 인생의 긴 여로는 결코 삭막하지 않다. 그 길은 험하고 가시덤불에 쌓여 있지만 대기의 들장미의 향기가 충만하다.
새벽 이슬을 들이마시며 피어나는 들장미를 꺾어들고 가시덤불이 우거진 인생의 벌판을 방황하는 자유는 얼마나 아프고도 감미로운가! 의식의 밑바닥에 잔잔히 깔려 있는 허무의 서글픈 반주에 맞춰 나는 생의 환희를 노래한다.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
자기를 한곳에 몰아 세워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아무것도 욕망과 불신과 배타적 감정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괴로움의 눈물을 달콤하게 해주는 마력을 간직한 것이다.
길 1975 22.8*30.5cm 캔버스에 유채
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 뒷산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강바람이 나의 전신을 시원하게 씻어 준다. 석양의 정적이 저멀리 산기슭을 타고 내려와 수면을 쓰다듬기 시작한다.
저멀리 노을이 머지않아 달이 뜰 것이다. 나는 이런 시간의 쓸쓸함을 적막한 자연과 누릴 수 있게 마련해 준 미지의 배려에 감사한다. 내일은 마음을 모아 그림을 그려야겠다. 무엇인가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1965. 8. 현대문학>
앞뜰 1983 24*33.5cm 캔버스에 유채
수필:마을
40년을 그림과 술로 살았다. 그림은 나의 일이고 술은 휴식이니까.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 산다는 것은 소모 하는 것이니까.
나는 내 몸과 마음을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려 다 써버릴 작정이다. 남는 시간은 술을 마시고. 옛말이지만 <고생을 사서 한다>는 모던한 말이 있다. 꼭 들어맞는다.
그림과 술로 고생하는 나
앞뜰 1969 44*37cm 캔버스에 유채
그런 나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내 처나 모두 고생을 하는 것이리라. 그래도 좋은데 어떻거나. 난 절대로 몸에 좋다는 일은 안한다. 평생 자기 몸 돌보다간 아무 일도 못한다. 다 써버려야지.
자동차가 있는 풍경 <1953> 39*30cm 캔버스에 유채
술? 난 거의 덕소의 화실에 있다. 시내로 나오면 어지러워서 술을 먹을 수 없다. 술먹는 것도 황송(?)한데 밥을 어떻게 먹으며, 안주는 미안해서 더욱 안 먹는다. 교만하게 반주 따위도 안한다. 술의 청탁도 가리면 뭘하나? 요새 술이 나빠졌지만 어떻게 하나. 참아야지.
자화상 <1951> 14.8*10.8cm 종이에 유채
남들은 일하고 여가를 등산이나 낚시로 보내지만 나는 술로 보낸다. 그저 그림 그리는 죄밖에 없다. 그림처럼 정확한 내가 없다. 난 그림에 나를 고백하고 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림처럼 정확한 놈이 없다. 내년봄에 전시회를 약속했더니 그림을 통 못그리겠다. 목적이나 가지면 짐스러워지고 그게 꼭 그림에 나타난단 말이야.
<1973.12.8.조선일보>
나무와 집 <1988> 34.5*34.5cm 캔버스에 유채
나무와 새 <1957> 24*34cm 캔버스에 유채
수필:주도40년
대학에서의 월급봉투는 집사람의 조그마한 선물값을 치르면 하루를 더 지탱하기 어렵게 된다. 어쩔수 없었던 외상술 어디서나 잘 주고 또한 잘 갚았다. 빚을 갚고 얻어 마시는 한 잔의 술은 즐겁기만 하였다. 돌아설때의 기분은 그지없이 흐뭇하였다. 이러한 흐뭇함은 그림의 아이디어와 함께 영원한 동반자로 나에게 존재했던 것이다.
마을 <1983> 25*34cm 캔버스에 유채
무엇이든 끝을 보고서야 시원해지는 것이 나의 벽이다. 미적지근한 술은 흥미없다. 막걸리가 좋고 소주, 고량주는 더욱 좋다.
가족들도 괴롭고 술집 주인도 괴롭고 나 역시 고되다. 이 괴로움과 고역은 최후의 남은 기력마저 불태우는 것이 전제로 하는 것이다. 생사의 갈림길에 스스로를 놓이게 할 때, 더 이상은 들어갈 수도 없고 지탱할 수도 없을때 KO되면서 완전휴식의 며칠을 가지게 된다.
새와 나무 <1973> 27.4*35cm 캔버스에 유채
대학에서 떠난 1960년대의 10년간 무참히도 마시면서 주기적인 술의 행각은 계속되었다. 어린 딸들을 데리고 맨발로 고무신을 끌면서 번화가를 유유히 걷기도 하였다. 딸들이나 나나 부끄러움없이 날아다녔던 것은 너무나도 다행스러웠던 일이다.
가족, 캔버스에 유채, 17.5 x 14.0 cm, 1978년작
가족, 캔버스에 유채, 27.0 x 21.8 cm, 1979년작
<일>, 10년간 너무나 적었던 그림의 양이지만, 아끼는 사람들에게 넘겨져 있는 것은 오히려 흐뭇하기만한 조각들이다. 덕소의 공부방은 고요하기도 하다. 부지런히 캔버스를 채워야지, 그러고는 꼭 한 잔의 술을 집사람한테 받아야지. 정말로 주정(酒酊)에서 주도(酒道)를 알게되는 일은 삶의 길만큼이나 어려운가 보다. <1973.8.여성동아> 이 글은 주도(酒道) 40년에서 일부를 발췌한것입니다.
<강변 풍경 Riverside Landscape> 1990. 28.5X20.5cm.
수필:새벽의 세계1
언제부터인진 몰라도 나에게는 이른 새벽의 산책이 몸에 붙었다. 고요하고 맑은 대기를 마시며 어둑어둑한 한적한 길을 걷노라면 새들의 지저귐 속에 우뚝 우뚝 서있는 모든 물체의 이 씁쓸한 맛의 색채를 던져준다. 이럴때처럼 싱싱한 나무들의 생명을 느껴본 일은 없다. 저마다 구김살 없는 다른 꼴의 얼굴들로 소리 없이 웃으며 생생한 핏줄의 약동으로 속삭여주는 듯도 하다. 시끄러운 잡음과 먼지를 뒤집어 쓰지 않은 싱싱한 새벽의 표정을 나는 영원히 닯고 싶은 것이다.
<1958.4.12. 경향신문>
<無爲自然 Living an Idle Life in the Nature> 1990. 28.5X20.5cm.
수필:새벽의 세계2
나의 지나간 40여년은 오직 그림과 술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림은 내가 살아가는 의미요, 술은 그 휴식이 었던 것이다. 그림을 그릴때면 몇 달이고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게 내 습성이다. 나는 심플하다. 때문에 겸손보다는 교만이 좋고 격식보다는 소탈이 좋다. 적어도 교만은 겸손보다는 덜 위험하며, 죄를 만들 수 있는 소지가 없기 때문에, 소탈은 쓸데없는 예의나 격식이 없어서 좋은 것이다.
<나무 Tree> 1979. 65X42cm.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 서울로 표상되는 문명이 싫은 것이다. 그래서 12년 전부터 아예 서울을 버리고 이곳 한강이 문턱으로 흐르는 덕소에 화실을 잡았다. 나는 나를 찾아 오는 사람들에게 덕소의 비를, 덕소의 달을, 덕소의 바람을, 덕소의 모든 것을 얘기해 준다. 그만큼 나는 덕소를 사랑한다.
새벽 2시건 3시건 눈만 뜨면 나는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어떤때는 샛별이 보일때까지도 혼자서 쏘다닌다. 그건 서성이는 것도 아니며 더욱 무얼 찾는 것도 아니다. 새벽을 사랑하고 새벽을 느끼고 새벽이 곧 나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 새벽산책으로부터 돌아와 화폭과 마주하면 거기 또 하나의 세계가 형성된다. 나는 그것을 추구하며 이룩해가는 것이다. 나의 직업은 이렇게 새벽으로부터 출발한다.
화가는 항상 이렇게 쪼그리고 앉은 자세로 작업을 했다.
내 일은 언제나 내가 해야 한다. 가족이라도 누가 옆에서 거들어주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몇년 동안을 혼자서 자취를 한다. 아내는 그런 나를 위하여 일주일에 한번씩 나들이를 한다. 밥을 손수 지어 먹으며 부엌 벽이건 어디건 공간만 있으면 그?꼭? 그리는 재미, 말하자면 그만큼이 나의 생활의 재미다. 그러나 나는 또한 누구보다도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 사랑이 그림을 통해서 서로 이해된다는 사실이 다른 이들과 다를 뿐.
철저하게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철저하게 사물을 보는 눈, 철저한 작업, 철저한 자유...... 나는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 그 이상은 낭비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달리 새벽이 나의 생활세계이고, 술이 휴식이고, 내 몸을 위해 좋다고 하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건만 나는 누구보다 건강하다.
뜻대로 산다는 것은 그대로 하늘의 뜻이기도 하단 말인가.
나는 직관을 믿는다. 무엇이든 더불어 오래 사고하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한다. 가족이 생각나면 언제라도 맨발인 그대로 혜화동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곳 덕소에 화실을 잡은 것도 직관에 의해서였다. 남이 어찌 생각하든 그런건 상관없다. 결국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에 나를 철저히 소모시키는 작업에만 흥미가 있을 뿐이다.
이곳 덕소에 자리 잡은지 12년이 됐어도 나는 아직 집앞을 흐르는 한강물에 발 한번 담가본 적이 없다. 그것은 언제 이발을 했는지 기억을 못하는 것이나, 한 벌 이상의 양복이나 넥타이를 준비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서 신앙과 같은 천성의 소치다.
<산다는 것은 소모하는 것, 나는 내 몸과 마음과 모든 것을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려야겠다. 남는 시간은 술로 휴식하면서> 내가 오로지 확실하게 알고 믿는 것은 이것뿐이다.
시인학교
가시나무새 - 앙드레 가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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