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아리에티
정 우 민
한적한 시골길로 낡은 벤츠 승용차가 들어온다. 승용차를 운전하는 이는 마키 사다코 할머니로 병약한 손자 쇼우를 태우고 시골 별장으로 오는 길이다. 쇼우는 일주일후 심장 수술을 받을 예정이고 요양을 위해 예전에 어머니가 몇 년간 살았던 이 별장에 온 것이다. 마침내 비포장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울창한 정원을 가진 낡은 저택이었다. 할머니의 아버지때 부터 살던 집이라 쇼우가 이 집에 머물게 되니 4대째 인 셈이다.
정원에 발을 디디게 된 순간 뚱뚱한 고양이 야옹이의 주목을 받던 월계수 나무 잎사이로 작은 움직이는 생명체를 쇼우는 보게 된다.
나뭇잎을 타고 춤추듯 미끄러지면서 사라진 것은 이 집 마루 밑에 사는 소인 아리에티였다. 아리에티는 14살 소녀로 키는 10cm밖에 되지 않지만 인간과 똑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인간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작은 사람- 소인’이다.
호기심 많은 아리에티는 마루 밑에서 엄마(호밀리),아빠(포드)와 함께 세 식구로 살고 있다. 허브차를 즐겨 마시는 엄마는 창문에 늘 바다 사진을 붙여 놓고 ‘언젠가는 꼭 바다를 볼거야’라고 말한다. 아빠는 전기제품을 만들고 맥가이버같이 여러 기술을 갖고 있다. 이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의 물건을 가져가면서 (훔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빌리는' 것이라 주장한다. 이들은 음식과 생활용품 뿐만 아니라 전기와 가스까지 빌려 쓰는 고단위의 ‘노하우’도 갖고 있다. 이들‘빌리는 사람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들에게 들키는 일이다. 실제로 이 별장엔 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인간들에게 들켜 한 가족은 행방불명이 되고 또 한 가족은 이사를 가서 아리에티 가족만 남은 것이다.
아리에티가 마침내 14살이 되어 아빠와 함께 모든 장비를 챙겨 빌리는 작업에 처음 도전하게 된다. 아리에티는 빨래집게로 머리를 질끈 묶고 날렵한 복장으로 나선다. 오늘의 미션은 쥬스에 넣을 각설탕 한 개와 집안에 필요한 티슈 몇 장이다. 둘은 손전등을 들고 전원 콘센트를 들어내고 벽사이의 공간에 작은 못을 계단삼아 밟고 낚시 바늘과 밧줄로 장애물을 통과한다. 마침내 아빠는 신발과 장갑에 양면 테이프를 붙이고 각설탕이 있는 식탁에 오르는 데 성공한다. 각설탕을 무사히 빌린 그들은 티슈를 얻으러 간 쇼우의 방에서 안자고 있던 쇼우에게 움직임을 들키고 만다. 쇼우는 예전에 어머니에게서 이집에 소인들이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아까 정원에서 보았다며 그들과 친해지려 하나 놀란 부녀는 그 아까운 각설탕도 떨어뜨리고 재빨리 도망치고 만다.
쇼우는 마루밑 통풍구에 각설탕과 ‘잃어버린 물건’이란 메모를 써서 두지만 아리에티는 가져가질 않는다. 아리에티 가족은 이 좋은 집에서 이제 이사를 가야하나하며 전전긍긍한다. 아리에티는 각설탕을 돌려주려 담쟁이덩굴을 타고 쇼우의 이층 방에 올라가다 쇼우의 창문앞에서 까마귀의 습격을 받는다. 까마귀로부터 아리에티를 구한 쇼우는 소인들은 결국 멸종할거란 말을 해서 아리에티에게 상처를 준다. 하지만 아리에티는 ‘우린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아’하며 나름 굳은 의지를 보여준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버지가 얼핏 본 소인들을 위해 만든 인형의 집을 보여준다. 그 안에는 정교한 화장대와 소파 , 부엌 가구 , 그리고 전기를 넣으면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 다 갖춰져 있다. 할머니의 아버지 때부터 소인들이 오면 사용하라고 기다렸지만 여전히 그들은 흔적이 없다고 말한다.
이사할 장소를 구하러 갔던 아빠 포드는 발목을 다쳐 같은 소인 스피라에게 부축을 받아 집에 돌아온다. 아리에티는 자신들 말고도 소인이 있다고 한껏 기뻐한다. 인디언 소년같은 스피라는 강한 활을 자랑하고 귀뚜라미 뒷다리를 아리에티 가족에게 선물로 주려하지만 엄마는 질겁을 한다.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자신이 심장수술을 곧 하게 되고 자신이 얼마 못 살거라는 말을 한다. 아리에티는 심장이 그렇게 안 좋으냐고 걱정한다.
쇼우는 호의로 인형의 집의 작은 정교한 부엌을 아리에티의 집에 옮겨 주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지진과 같은 엄청난 파괴와 놀라움을 준다.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부엌이 맘에 드니?’라고 했지만 그것이 엄청난 시련을 몰고 올 줄은 몰랐다. 의심 많은 가정부 하루 아줌마는 인형의 집의 작은 부엌이 없어지고 쇼우가 마루 밑을 뒤진 흔적을 발견한다. 드디어 마루 밑의 집에서 엄마 호밀리를 발견한 하루 아줌마는 호밀리를 잡아 투명한 병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마치 이전에 곤충을 잡아서 하듯 두껑 대신 랩을 씌우고 랩에 숨 쉬는 구멍을 뚫어준다.
경악한 엄마는 발버둥을 치지만 나갈 수가 없다. 엄마의 아우성을 들은 아리에티와 쇼우는 엄마를 구하기로 한다. 쇼우는 아리에티를 자신의 어깨에 태우고 아줌마의 관심을 다른 데 돌리고 엄마를 구하는 데 성공한다.
아리에티 가족들은 정들은 집을 떠나 야밤에 이사를 하게 된다. 무서운 너구리같은 동물들을 피해 천신만고 끝에 안내를 맡은 스피라와의 약속장소에 도착한다. 시냇가에 주전자를 이주용 배로 갖고 온 스피라와 그 배를 타는 아리에티 가족을 목격한 야옹이는 쇼우에게 이를 알려준다.
쇼우는 아리에티에게 마지막 작별의 선물로 각설탕을 주고
아리에티는 자신의 머리를 묶은 작은 빨래집게를 선물한다.
아리에티는 쇼우의 손가락을 끌어 안고 ‘꼭 , 건강해야해, 꼭 살아야해’하며 눈물을 흘린다. 쇼우는 ‘아리에티 , 너는 나의 심장의 일부야, 너로 인해 나는 살 의욕이 생겼어 너를 영원히 잊지 않을 거야’라고 말한다.
이 만화영화는 1952년에 메리 노튼이 지은 동화 ‘바로우어즈’가 원작이다.
‘바로우어즈’가 ‘빌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미래소년 코난’,‘벼랑위의 포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등을 만든 아시아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히트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제자격인 37살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작품이다. 3D영화와 현란한 CG액션영화가 범람하는 현실에서 이런 평면 애니메이션 영화가 과거의 짙은 향수를 느끼게 한다. 실제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14년간 일한 요네바야시 감독은 ‘3D애니메이션은 일시적인 유행일 뿐이다. 사람 손으로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이 결국 남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거대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과 더불어 사는 그들의 소박한 삶이 장면마다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뭇잎에 달린 이슬방울이나
바람부는 정원숲의 장면이 수채화같이 디테일하고 친숙하다. 요네바야시감독은 “나뭇잎 가장자리 울퉁불퉁한 부분, 벽돌 끝이 부서진 부분 등 세세한 것까지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던 어린 시절에 누구나 배를 타고 떠나면 소인국이 있을 것이란 상상을 했고 ,한 번씩 조그만 사람들이 집주변에 살고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소인이 날개달린 예쁜 요정이 아니기에 그들 나름의 생활인으로 인정받는 상황이 휴머니티가 있다. 쇼우와 아리에티의
‘크기’를 초월한 우정이 돋보인다.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화가 요즘 나온 잔혹하고 피 비린내 나는
영화 -인육을 먹는 장면과 단두대로 목을 자르는 장면까지 나오는 영화 ‘악마를 보았다’, 장기매매를 위해 오백 개의 장기를 떼 내고는 자신의 눈알까지 파내버리는 외과의사가 나오는 영화 ‘아저씨’, 잔혹한 외계 사냥꾼인 프레데터가 가공할 힘으로 두개골과 척추가 붙은 채로 인간의 머리를 뜯어내는 장면이 나오는 영화 ‘프레데터즈’, 자신이 좋은 소리를 듣기위해 수 억짜리 하이엔드 오디오 앰프를 사기위해 수많은 아이들을 유괴하여 죽여 버리는 악인이 나오는 영화 ‘파괴된 사나이’-에 지친 필자의 가슴을 순화시켜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