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나해) 마르 7,1-8.14-15.21-23;
15/08/30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Laudato Si’) IV
오늘은 회칙 ‘찬미를 받으소서’의 제1장 지구의 환경 오염과 제2장 피조물에 대한 창조의 가르침, 제3장 인간이 초래한 생태 위기의 근원들에 이어, ‘제4장 온전한 생태학(137-162항) ’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회칙에서 제안하는 핵심은 정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온전한
생태학입니다. 이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우리의 고유한 자리와 우리와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생태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15항)입니다. 사실, “자연은 우리 자신과 분리되거나 우리가 사는 단순한 배경으로
여겨질 수 없습니다”(139항). 이는 모든 분야에서 사실입니다. 경제와 정치, 여러 문화, 특히
가장 위협을 받는 문화와 우리 삶의 모든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문제와 인간 사회의 문제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오늘날 환경 문제의 분석은 인간, 가정, 직업 관련 도시 상황의 분석과, 인간들 자신과의 관계 분석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141항). 따라서 “자연계와 사회 체계의
상호작용을 고려하는 포괄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환경과 사회와 관련된 두 가지 별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동시에 환경적인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에 당면한 것입니다”(139항).
이 제4장 온전한 생태학은 환경 생태학, 경제 생태학, 사회 생태학(138-142항), 문화 생태학(143-146항),
일상생활의 생태학(147-155항), 공동선의
원칙(156-158항), 세대 간의 정의(159-162항)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 환경 생태학, 경제 생태학, 사회 생태학(138-142항)
모든 것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지구의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성분들은 우리가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단편적이며 분리된 지식은 더 폭넓은 관점으로 통합되어야 합니다. 이는
“생태계들 사이의 관계와, 사회 상호 작용의 다양한 분야들 사이의 상호 관계”(141항)를 고려하려 하고, 또한
제도적 차원을 포함합니다. “사회 제도의 건전함은 환경과 인간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칩니다”(142항).
II. 문화 생태학(143-146항)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생태학은 인류의 문화적 보화를 보호하는
것도 포함합니다”(143항). 이는 민족들의 권리와 문화를, 그들 문화의 지역 사회 주체들의 적극적 참여와 “토착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관심”(146항)으로 통합하여야 합니다.
III. 일상생활의 생태학(147-155항)
온전한 생태학은 일상생활을 포함합니다. 이 회칙은 도시 환경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인간은 적응이라는
훌륭한 능력을 갖고 있고, “환경의 제약에 반응하는 개인과 집단은 주변 환경의 적대적 영향을 완화하고
무질서와 불확실성 안에서도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놀라운 창의력과 관용을 보여 줍니다”(148항). 그럼에도 공적 공간, 주택, 교통을
포함한 인간 삶의 질의 온전한 개선은 여전히 더욱 진전될 필요가 있습니다.(150-154항).
생태학의 인간적 차원은 또한 “인간 삶과 우리 본성에 새겨져
있는 도덕률의 관계”(155항)를 나타냅니다. “우리의 몸은 환경과 다른 생명체와의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 우리 자신을 확립합니다. 우리의 몸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을 하느님 아버지의 선물이며 우리가 더불어 사는 집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몸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피조물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155항).
VI. 공동선의 원칙(156-158항)
온전한 인간 생태학은 “공동선의 개념과 분리 될 수 없는 것”(158항)입니다. “불의가
판치고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빼앗기고 소모품처럼 여겨지게 되는”(158항) 오늘날의 상황에서 공동선을 위한 노력은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158항)에 기초한 연대를 이루어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V. 세대 간의 정의(159-162항)
공동선은 또한 미래 세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삶이 짧아 기다릴 수 없는” 오늘날의 가난한 이들을 잊은 채로 “세대 간 연대와 분리된 지속가능한
발전을 더 이상 논할 수 없습니다”(159항).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이사 29,13; 마르 7,6-7) 라고 예언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들어,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 라고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연을 잘 가꾸어
우리에게 이롭게 사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꾸고 돌보다 보니, 우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을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까지 여기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신 교황님의 가르침을 따라, 우리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가꾸기도 하지만, 주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우신 의도와 유지 관리하시려는 뜻도 존중하기로 합시다. 아울러 개인이나 어느 한 부류의
필요와 이익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 전체의 선익을 고려하여, 공동선의 개념에 관련하여 자연을 가꾸고 개발하기로
합시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