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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산-식기봉 2013/01/06 방곡 삼거리 매표소-뱃재 쪽으로 길 따르다 왼쪽산 기슭 밭-밀양박씨 무덤-미륵바위 능선-무명봉-정상-북서릉-장화바위-식기봉-벌천교회
도락산, 황정산, 수리봉 신선봉, 황장산, 문수산, 대미산, 문복대 등의 명산을 두르고 있어 빛을 보지 못하는 산을 간다. 명산들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능선이지만 산 자체로도 알려지지 않은 산행코스로 아기자기한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만기봉을 오른다. 산행 기점에서 하루 가족이 된 산행 동반자가 한자리에서 산을 등지고 산행 신고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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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의 방곡리 도자기 단지를 지나 상선암가는 길과 뱃재를 넘어 단양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왼쪽 밭두렁을 따라 산으로 들어선다. 얕은 마을 앞산부터 시작이기에 가벼운 야산으로 착각하기 쉬운 시작이지만 만만하게 볼 산은 아니다. 우리의 발길에 놀란 산토끼가 잠을 깨어 달아나는 양지바른 무덤을 지나 능선에 오르고 잠시 후면 바위들이 길을 막아 제법 가파른 길을 만들기도 한다. | ||
미륵바위 능선은 꽤 위협적인 길을 만들면서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여 사방의 산 물결이 굽이쳐 나가는 형상이다. 주변보다 상대적으로 고도가 낮으나 내가 선 지금의 능선에서 점점 솟아 오르는 듯한 산의 흐름도 마음을 안정시키는 기운을 내쏟는다. 상대적으로 낮아지는 산에 앉은 나 자신도 보다 낮은 자리에서 커다란 자연을 느끼는 게다. 멀리 산봉우리를 두고 눈 밭에 털썩 앉으니 깨끗한 순백의 아름다움이 내 안으로 들어와 온갖 잡다한 것을 버리라 한다. 산은 말없이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
오르락 내리락 하는 바위벽을 타도록 맨 밧줄이 너무 가늘고 낡아서 언 손들이 잡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아마 산꾼들의 발길이 적고 주로 주변에 이름이 널리 알려진 산을 찾는 이들의 관심 밖의 산이기에 관리가 허술한가보다. 허지만 모처럼 산경을 멀리서 보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산행의 위험이 너무 많이 노출되어 있다. 전문 산악인 외에는 지날 엄두도 못낼 벼랑길에 다행히 보조 자일을 준비한 탓에 다 함께 오를 수 있다. 높지 않은 산릉에 숨겨진 험로는 바짝 일행을 긴장하게 한다. | |
본래 산을 오른다는 건 산 너머 산의 반환점을 향해 가는 게지만 계속되는 밧줄 구간으로 손에 땀을 배게 한다. 바위 구간에서는 손에 든 작은 물건도 거추장스럽게 느끼기에 아예 스틱은 베낭에 꽂은 채 밧줄이나 바위 귀를 잡고 나아간다. 어려움이 많은 구간일수록 짙은 산 추억이 생길 거니까. 앞선 사람이나 뒤진 사람들 모두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는 게 중요한 게다. 앞서 길을 점검하면서 진행하는 선두의 안전 장치에 의존하는 대부분의 회원들 뒤에서 장비를 걷워 오면서 마무리하는 꼬리의 역할은 불확실한 산을 갈 때 가장 큰 힘이다. | |
앞에 다시 수직의 벼랑이 대기한다. 오금이 저릴 고소 공포증에 미끄러운 얼음 벽이니 신중한 내림이다. 높이 13,M 쯤 되지만 위에서 내려다 보는 이들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하다. 더구나 일직선으로 내려 가지 않고 오른 쪽으로 약간만 방향이 틀어지면 발을 가눌 바위가 움푹 패어 대롱대롱 줄에 매달리는 위험한 상황을 만날 수 있어서 멈칫하는 이들이 많다. 밧줄에 매달려 절벽에 서면, 누구나 도와 줄 수 없는 길이니 스스로 자신을 조심스레 내려 놓을 수 밖에. 지나와 아직도 줄을 선 사람과 높이를 겨눠보니 꽤 높고 까다로운 바위 벽으로, 바위 벽을 이루는 바위덩이에 얹힌 눈이 솜처럼 부드러운 것과는 퍽 대조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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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기봉을 오르는 마지막 바윗길도 녹녹치 않아 얼음을 덮은 눈이 발을 자꾸 아래로 떨어뜨린다. 경사도 급해서 겨울 산행을 어렵게 한다. 바위 틈에 손을 넣고 한발 한발 고도를 높이는 게 모험이지만 스스로를 가늠하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삶은 탄탄대로를 달리는 멋진 차가 아닌 한발한발 세월의 줄을 타는 곡예같은 한바탕 놀음 아닌가. 만기봉에 오른다. 정상 표시목은 사그라져 허리가 부러져 누워 있는 걸 세우고 작은 봉우리에 서 있음에 작은 행복을 맛본다. 이어서 가야할 길이 있음에도 삶의 한 가닥의 매듭을 푼듯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예까지 오는 길이 준 어려움의 선물이 아니랴. | |
만기봉에서 조금 떨어진 전망바위에 오찬자리를 편다. 사방에 명산을 둘리고 앉으니 둘러처진 병풍이 몇폭인지 가늠할 수 없다. 반찬이 아니라도 그릇그릇 담은 자연에 배부르다 아니할 이 있을까. 산꾼답게 산야초로 담은 술 한잔을 반주로, 산초 두부 한 조각 입안에 향으로 굴리니 신선의 흉내를 제대로 내는 것 같다. | |
'잠시 돌아서 전망대에서 나아갈 능선을 내려다 보면서 쉬어가자구.' 진행하는 능선에서 왼쪽 돌출부위 로 돌아가서 장화바위와 식기봉을 내려다 본다. 거대한 바위가 줄지어 있는 모습이 멋진 풍경으로 나열되지만 거기를 우리는 가야 하는 게다. 온몸으로 산행을 해온 터라 장화 바위를 지나지 않고 내려가고 싶은 공감대와 다 거치고 가자는 공감대로 나뉜다. 산은 말없이 아무 간섭을 하지 않고 자신에 맞는 길을 선택하라 할 게다. 전망대에서 암릉을 보면서 자신이 갈길을 결정하도록 산행 마무리 갈길을 한눈에 내주는 산도 드물기에 굳이 무리하면서 식기봉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게다. | |
도락산을 오른 쪽으로 식기봉을 향하다가 명산의 웅장한 모습을 멀리서 바라본다. 단양 팔경 계곡의 상류에 위치한 도락산은 원점 회귀 산행으로 더할 나위 없는 재미를 간직한 아름다운 산이다. 그 산 등에 있을 때는 산의 큰 얼굴을 볼 수 없더니 작은 동산에서 한 눈에 산을 본다. 일부만 다시 벼랑길을 걸어 식기봉으로 간다. 까다로운 바위 벽을 기어가다시피 하면서 식기봉에 오른다. 식기봉에 명찰을 달고 사방을 둘러 보니 식기를 엎어놓은 모양의 바위 위라서인지 사방으로 시원하게 시야가 열린다. | ||
역시 뒤로 도락산이 배경이 되고 멀리 앞으로는 백두대간의 남한의 중심점이 있는 줄기 답게 대미산 황장산, 벌재를 지나는 긴 능선이 우람한 줄을 선다. 대간에서 갈라져 충주호에 발을 담그는 산릉도 속속 눈에 잡히고, 산골의 작은 촌락들이 드문드문 계곡을 따라 삶터를 이룬 모습들이 무척 다정하게 다가선다. 얼마 걸리지 않으리란 예상과는 달리 한줄로 한 사람씩 매달리는 구간이 많아서 의외의 시간을 흘린다. |
식기봉을 종점으로 내림길에 선다. 바위벽을 따라 내리는 길의 흔적이 희미하다. 눈이 덮여 길의 윤곽을 잡기 어렵지만 오가는 산 섭생들이 눈 위에 남긴 흔적이 이정표로 작용한다. 마지막 바위턱에서 사방을 바라보고는 오름이 없이 거침없는 내림이다. 다행히 길이 아니어도 겨울이란 이점으로 눈이 검불을 덮어 준 게 빠른 걸음을 걷게 한다. 예정한 벌천교회로 종점을 찍으니 '입산금지' 팻말이 막고 서서 혼란스럽다. 산행 기점에는 없던 표시가 종점에만 걸음을 막으니, | |
땅거미가 지니 추위가 빨리 살을 파고 든다. 방곡 도예 체험장에 간단한 젯상이 차려지고 새로운 산행 신고식인 시산제를 지낸다. 모든 산객들의 안전한 산행과 건강 그리고 행복까지 한꺼번에 모아 소망의 불을 지피는 게다. 어느 산악회나 이맘때면 명산을 찾아 산에 들어가는 허락을 구하는 제가 한창일 때다. 떡국도 끓이고 음복으로 마신 한 잔 술도 추위 때문에 금방 끝낸다. 모쪼록 소망하는 바를 산의 너그러운 마음에 맡기고 귀가한다. 함께 한 모든 산객들이 2013년 새로운 해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산행을 즐겼으면 한다. |
솔씨 하나 우연히 떨어져 싹을 틔우고 곱게 자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건 생명의 놀라움이다. 우리 네도 우연히 바위 벽에 떨어져 정착한 솔씨의 삶의 확률만큼이나 어렵게 세상에 나지 않았으랴. 솔처럼 아름다운 우리로서 세상을 아름답게 했으면 한다. 2013/01/22 경북 문경 산북의 산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