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쥴리니/빈필/DG
명불허전이고 올킬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할까 이 음반 듣고 나서는 다른 음반을 듣기가 힘들 정도이다. 성악곡에서 정말 잘 부르고 음색도 어울리는 가수가 특정 노래를 부른 것을 들었을 때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기악곡에서 이렇게 압도당하기는 쉽지 않은 데 쥴리니는 거장이고 빈필은 훌륭하다. 멋지게 울려퍼지는 금관과 다양한 표정을 아름답게 구사하는 현의 소리가 입체적으로 담긴 녹음도 훌륭한 것 같다. 도입부의 긴장감도 훌륭하지만 1주제의 포르티시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는 각별하다. 2주제의 유장한 흐름도 훌륭한데 조금 느린 템포에서 늘어지지 않으면서 장대한 느낌을 만들어 내는 것이 쥴리니의 특기인 것 같고 빈필과 함께한 교향곡 9번에서 가장 잘 살아난 것 같다. 2악장 역시 묵직한 템포인데 금관과 팀파니가 강렬한 스케르초를 구축해 나가고 트리오는 빈필의 싱그러운 소리가 흘러나와 대비를 만들어준다. 조금 삐딱한 시각에서 보자면 번스타인과 쥴리니의 연주의 경우 일단 빈필이 너무 훌륭했고 브루크너가 4악장을 완성하지 못해서 3악장까지 연주하면서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4악장까지 완성된 상태에서 기승전결 구조였으면 반트나 요훔같은 게르만 브루크너 전문가가 더 좋은 결과를 내 놓았을 지도 모르지만 현재 상태로 봤을 때는 쥴리니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3악장 역시 기본적으로 유장한 흐름을 보여준다. 중간에 조성이 불안한 부분이 있어 잘못하면 늘어진다는 느낌을 주기 쉬운데 자연스러운 흐름을 잘 만들고 있다. 조성이 흔들리는 부분에서 금관이 브루크너가 의도했던 것 같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보여주고 이어지는 평화로운 부분에서는 관조적인 느낌을 잘 살려주었다. 브루크너 만년의 마지막 작품이라 큰 스케일이 느껴지는 유장한 흐름이 잘 어울리고 첼리비다케의 경우 그동안의 선입견 때문인지 나머지 악장의 템포를 다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스케르초 악장의 템포에 거부감이 느껴지고 번스타인은 너무 말러 교향곡 9번 같은 느낌이라 감동은 받았지만 정답은 아닌 것 같고 결국 이 복잡 미묘한 방정식의 답은 쥴리니로 흘러가는 것 같다.
카라얀/베를린필/DG
이명재 님은 이 연주가 뛰어나기는 하지만 작위적이라고 평하셨는데 카라얀의 말러 교향곡 9번 녹음 중에 아날로그 버전의 1악장을 생각하면 좋은 녹음이 나올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들어 보았다. 주요 멜로디 라인이 부각되는 밸런스를 취해서 조금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기억 속의 그 음악처럼 좀 더 가슴 졸이게 만들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하는 게 아쉬웠다. 2악장의 스케르초는 치밀한 앙상블로 섬뜩한 느낌을 만들어 내었고 트리오는 좀더 민첩한 게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애절하게 넘어가는 표정 전환이 인상적이기는 했다. 3악장은 다양한 요소들을 잘 풀어냈고 애절한 부분, 격정적인 부분 다 잘 살려냈고 끝에 사그라지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는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에게 걸었던 기대에 비하면 아쉬운 연주였다.
반트/베를린필/RCA
최은규 님이 첼리비다케, 쥴리니와 함께 추천한 음반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이 인상깊다는 평을 하셨다. 1악장이 시작되면 현의 트레몰로가 또렷이 들리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1주제는 팡파르의 강렬한 느낌보다는 살짝 불안한 조성이 주는 긴장감에 더 무게를 둔 것으로 들렸다. 2주제에서는 저음현이 아름다운 표현을 들려주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여 1주제와 대비를 이루게 했다. 음울한 오보에 솔로가 나올 때도 바이올린의 트레몰로가 잘 포착되어 긴장감을 주고 이어서 현이 역선율을 연주하며 진행할 때는 몽롱하고 최면적인 느낌을 주었다. 앞서 언급한 부분 이외에도 현악군의 표현력이 잘 정돈되어 있지만 담담하여 심심할 수 있는 해석을 풍부하게 해 준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카논에서의 질서정연한 피치카토나 재현부에 1주제가 금관으로 나올 때 휘몰아치는 표현이 훌륭했다. 그동안 아껴두었던 템포 카드를 금관 코랄 이후 코다로 이어지는 부분에 활용해서 긴장감을 주었다. 스케르초는 카라얀 시절을 연상시키는 베를린필의 치밀한 앙상블이 귀에 들어왔다. 트리오는 다양한 주법에서 모두 적절한 효과를 가져오면서 멜로디 라인 표현도 좋은 현악군과 함께 깔끔한 목관 앙상블도 좋게 들렸다. 3악장은 카라얀, 번스타인, 아바도와 말러 교향곡 9번 4악장을 연주할 때처럼 베를린 필의 현악진이 우수에 가득찬 소리를 들려준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동기들이 등장하고 긴장을 조였다 풀었다 밝았다 어두웠다 해서 복잡하게 들리기 쉬운 악장이지만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정리해 주는 것 같았다.
요훔/드레스덴/EMI
1악장이 시작되면 현의 분명한 트레몰로 뒤로 금관의 1주제가 나오는데 금관의 소리가 카리스마있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웅장하다기 보다는 조금 피곤하게 들린다. 경과구를 약간 가속을 시키며 빠르게 연주하는 게 조금 특이하게 느껴지고 살짝 빠른 느낌으로 2주제가 나온다. 3주제는 일렁이는 느낌으로 표현되었고 일렁거리는 느낌에 나중에는 2주제도 동참을 한다. 브루크너 전문가의 해석이라 셈여림이나 템포는 자연스러운데 1주제의 금관 소리가 나올 때마다 이렇게 찢어지는 소리가 아닌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소리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감돈다. 코다에 들어가기 전에 혼돈의 클라이맥스가 만들어지는 부분에서는 다소 거친 금관 소리가 나쁘지 않은 역할을 하는 듯 하기는 했고 정적 뒤에 이어지는 코다에 긴장감을 더해주는 듯 했다. 스케르초는 3박자의 리듬감이 부각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들었고 트리오에서도 민첩한 연주와 자연스러운 장면전환 효과가 훌륭했다. 3악장에 들어오니 1악장은 조금 별로였지만 2, 3악장은 훌륭하다는 쪽으로 판단이 기울어진다. 불만의 중요한 요소였던 금관의 소리도 금관을 그렇게 도드라지게 밸런스를 잡지 않아서 그런지 3악장에서는 심하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과장된 표현이 없이도 이별 내지는 죽음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그렇지만 조용히 사그라지는 모습을 잘 표현해내서 요훔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첼리비다케/뮌헨필/EMI
최은규 님이 가장 먼저 추천한 음반이고 발매 당시 많은 애호가들로부터 좋은 반향을 일으켰던 음반이다. 첼리비다케 만년에 느린 템포가 특징적인데 보통 1시간 정도에 연주하는 이 작품을 80분 정도에 연주하고 있다. 4악장 버전으로 연주하여 100분이 넘어갔다면 감상하기 힘들었을지 모르겠지만 3악장으로 되어 있어 교향곡 7번, 8번에 비해 연주를 듣기 수월해진 면은 있는 것 같다. 느린 템포를 바탕으로 한음 한음 에너지를 쏟아 부은 해석 덕에 처음부터 거대하고 유장한 느낌이 든다. 특히 천천히 연주한 1악장의 2주제에서 첼리비다케 연주만의 특징이 잘 나타나는데 듣고 있으면 다른 연주와 달리 신비로운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하고 내지는 첼리비다케가 관심이 많았다고 하고 CD 자켓을 장식하고 있는 선불교의 마크와 일본의 카레산스이 정원의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한다. 잘못하면 곡이 변화없이 밋밋해질 수가 있는데 2주제가 반전되서 등장할 때는 템포를 느리게 잡지 않아서 전체적인 곡의 굴곡도 살리고 있는 듯 했다. 문제는 2악장일 것 같은데 템포가 느린데 개인적으로는 적당히 여유가 있어서 묵직한 느낌이 드는 범위를 넘어서서 스케르초가 아닌 것 같이 느껴진다. 특유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한 울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템포를 지지해 주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민첩한 느낌이 나야 할 것 같은 트리오에서도 템포가 느려서 대가의 해석이지만 좀 아니다 싶었다. 3악장에서는 다시 첼리비다케 특유의 장점이 살아났다. 동기 하나하나가 도드라지게 나타나지는 않았고 전체적으로 유장한 흐름 속에서 클라이맥스에서 터뜨려 주는 흐름을 보여주었고 마지막 긴 호흡의 호른의 소리가 잦아들고 정적이 조금 흐르고 박수 소리가 나오면 감동이 밀려오기는 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2악장의 템포는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아 표준적인 명연으로 추천을 하기는 어렵지만 다른 어떤 연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연주였다.
슈리히트/빈필/EMI
자주 명반으로 거론되는 같은 콤비의 브루크너 8번에 비해서 금관의 소리가 부드럽게 녹음되어 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대체로 금관을 강조한 밸런스를 나쁘지 않게 해 주었다. 살짝 빠르게 잡은 템포에 특별한 강조점이 잘 들리지는 않지만 2주제가 반전되어 흐를 때 저음 파트를 담당하는 금관을 강조한 밸런스가 특이하게 들렸고 경과구의 템포를 조금 떨어뜨려 숨죽이는 듯한 느낌을 준 것도 조금 독특했다. 행진곡에서 괴기스러운 느낌이 잘 살기는 했지만 1악장이 전체적으로 강렬하지는 않았다. 2악장은 무난한 것 같은데 악단과 지휘자의 명성을 생각하면 스케르초도 트리오도 조금씩 아쉬웠다. 3악장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안타깝게 느껴졌다. 흐느끼는 듯한 악상이나 가보트 등의 현을 중심으로 표현이 좋은 부분이 있지만 몇 군데 빈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실수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 감동을 갉아먹는 듯 했다.
시노폴리/드레스덴/DG
고 박진용님은 앞서 녹음한 3, 4, 7번은 별로였지만 9번에서 시노폴리의 브루크너가 제 궤도에 오르는 것 같이 좋은 연주였다고 하셨고 고클에 김성익 님은 트럼펫이 아쉽고 2악장이 다소 빠른 느낌이며 전체적으로 무난한 연주라는 평을 하셨다. 브루크너에 조예가 깊으신 분들이니 잘 들으셨겠지만 내가 듣기에는 시노폴리의 3, 4, 7 번은 나쁘지 않았고 9번은 사실 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녹음이 되었으니 앞선 녹음들에 비해 특히 같은 악단과 연주한 요훔의 녹음에 비해서는 음질이 좋고 소리가 풍성해서 녹음과 악단이 중요한 브루크너에서 점수를 갖고 시작하는 것은 맞는데 1악장의 2주제와 2악장이 내가 느끼기에는 좀 빨랐다. 1악장 2주제를 빠르게 가져간 것은 시노폴리의 의도가 있었겠지만 좋은 효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1주제가 조금 부드럽게 표현되었고 2주제가 빠르면 바로크적인 느낌이 들 수는 있는데 교향곡 9번이 바로크적인 느낌이 강조되는 작품은 아닌 것 같고 비슷한 시도를 많이 하는 샤이의 경우 바로크적으로 들리는데 시노폴리의 연주는 그렇지 않았다. 2악장이 빠른 것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잘 살리는 것 같았고 트리오의 서정성과 대비를 잘 이루는 것처럼 들렸다. 3악장에서 그가 연주했던 비창이나 미완성 교향곡의 이미지를 갖고 깊은 감성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으나 생각보다 조금 절제를 한 것 같다. 긴 호흡으로 뽑아내는 1주제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기대에 비해서는 조금 아쉬웠다.
샤이/콘서트헤보/DECCA
개인적으로 샤이를 좋아하기도 하고 커플된 바하/베베른의 6성부 리체르카레도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해서 궁금했던 녹음이었다. 그러나 고클 김성익 님의 리뷰가 최악이라 구입은 좀 머뭇거리게 되었다. 그 리뷰 말고도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어서 오히려 더 궁금하기도 하기는 했다. 들어본 느낌으로는 '나름대로 괜찮은 데' 였다. 물론 '쥴리니는 거장이고 빈필은 훌륭하다' 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트리지는 못했지만. 1악장이 샤이의 특징이 가장 잘 배어있는 것 같고 고클 리뷰에서도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다. 샤이의 브루크너는 0, 2, 6, 7번에 이번에 9번을 들어보았는 데 지속음과 에코를 강조해서 오르간적 음향을 연출하는 걸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 읽었던 리뷰대로 63마디의 포르티시모 투티가 별로 파괴력있게 들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그런 대목에서 맥이 빠진다고 느낄 수는 있다. 2주제에서 플륫이 지속음이나 메아리를 만들어 나간다. 다른 연주보다 플륫의 부선율이 강조된 편인 데 나한테야 좋게 들리지만 물론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김성익님은 트럼펫 솔로가 너무 튄다고 공격하고 계신데 커플된 바하-베베른 음악에서 성부간 밸런스를 잡은 걸 들으면 이해가 될 것 같았다. 2주제가 제법 빠르다는 생각이 드는 데 langsamer라는 악상기호에 주목한 것 같다. 독어의 비교급은 좀 미묘한 의미를 가지는 데 더더욱 느리게라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느리게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 2주제를 제법 빠르게 가져가는 건 후에 나온 아르농쿠르의 음반에서도 보인다. 하여간 그리 설득력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2악장의 금관도 그렇게 강렬하진 않다. 어쩌면 그래서 스케르초가 약하게 들릴 지 모르겠다. 대신 금관과 따라들어오는 현의 음량을 비슷하게 맞춘 걸 보면 다이나믹을 손해보면서 왜 음량 배분을 이렇게 했는 지에 고개가 어느정도 끄덕여진다. 경과구에서 악기가 번갈아 나오면서 멜로디를 만들어 나가는 부분은 정말 한 악기가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음량 배분이 좋다. 3악장은 비교적 긴 호흡으로 연주했다. 갈망의 팡파르 역시 강렬하지는 않다. 하지만 3악장 끝 부분은 가슴에 여운을 남길만큼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었다. 전체적으로 매일 듣기에는 그렇지만 가끔은 듣고 싶어지는 연주였다.
아바도/빈필/DG
아바도는 빈필과 교향곡 1, 4, 5, 7, 9번의 음반을 남겼고 9번은 가장 나중에 발매가 되었다. 발매 당시에 다른 음반들은 자켓에 금박 코팅이 들어가 있는 데 9번만 그렇지 않아서 수집가들의 불만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시리즈 전반적으로 현을 앞세운 밸런스에 살짝 빠른 템포가 공통점인데 1번에서는 효과가 확실히 좋았는데 나머지 작품들은 호불호가 엇갈리는 듯 했다. 9번의 경우 리뷰어에 따라서 힘이 없고 맥이 풀린 듯 하다거나 디테일에 주목하느라 큰 그림을 놓친 것 같다는 평을 하셨다. 아바도에 대한 팬심 내지는 아바도가 지휘한 베를린필의 말러 9번을 좋아했던 기억 등을 갖고 들어도 1악장 1주제는 조금 유약하게 들렸다. 2주제는 살짝 빠른 느낌이었는데 전개되면서 목관의 에코가 잘 들리고 대위구조가 투명하게 잘 보였다. 오보에가 멜로디를 이어가거나 목관의 아리오소 이후에 플륫이 역진행을 할 때 밸런스가 자연스럽게 들렸다. 이런 경험을 갖고 1주제가 재현되면서 팡파르가 나올 때는 현의 출렁거리는 멜로디가 잘 들렸고 트럼펫의 불협화음 효과도 잘 살아나서 다른 명연들처럼 카리스마가 느껴지면서 짓누르는 느낌은 아니지만 차분하게 조여드는 느낌이었고 이쪽도 나름대로 섬뜩했다. 2악장에서는 스타카토를 붙인 금관 악기들의 일사분란한 움직임이 돋보였고 이어지는 오보에의 멜로디는 유난히 냉소적으로 들렸다. 트리오에서 현이 민첩하게 연주하다가 애절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자연스러웠다.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파르지팔의 성배의 동기를 연상시키 듯 3악장이 시작되고 세상에의 이별이라고 했던 바그너 튜바의 코랄, 폴카, 카논 풍의 어두운 행진 등 3악장의 다양한 동기들과 에피소드를 하나하나 잘 살려냈지만 그러다보니 복잡하게 들리는 면이 없지는 않았다. 글도 살짝 템포를 떨어뜨리면 사라져가듯 연주하는 코다는 복잡했던 기억을 지우고 정화감을 남겨 주었다.
번스타인/빈필/DG
브루크너와 말러는 애호가는 겹치는 경우가 많지만 지휘자는 겹치지 않는 편이라 요훔이 말러를 자주 연주하지 않았던 것처럼 번스타인도 브루크너를 자주 연주하지는 않았다. 번스타인의 경우 생전에 브루크너 교향곡 중에서 6번과 9번만 무대에 올렸다고 하는데 9번의 경우 음반으로 남아 있다. 고클래식에서 쥴리니, 첼리비다케, 반트 등을 제쳐놓고 최고의 선택으로 올려놓아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음악을 들어보니 번스타인이 왜 유독 브루크너 9번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9번을 연상시키는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었다. 연주를 들으면 평소엔 내성적이고 소심했을지 모르지만 내면에는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를 갖고 있었던 브루크너를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하나의 주제 안에서도 템포를 많이 조였다 풀면서 터뜨릴 때는 확실하게 쏟아내는 연주인데 작은 봉우리까지 모두 클라이맥스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기도 했다. 평화로운 느낌보다는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1악장의 2주제도 유니크하지만 경과구처럼 흘러가기 쉬운 카논이나 1주제의 반전 멜로디가 이렇게 강렬하게 들리는 연주는 없을 것 같고 연주에 매료되면 다른 연주들이 싱겁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묵직한 느낌으로 조금 느리게 연주한 스케르초는 전율 내지는 약간의 공포가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이고 슈베르트를 연상시키는 상큼한 소리로 변신하는 트리오에서는 빈필이 출중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3악장에서는 말러의 교향곡 9번 4악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번스타인 특유의 장점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암울한 고뇌와 번민, 쓸쓸함 등의 감정에 빠지게 하며 곡이 끝나면 그대로 감동에 남아 있고 싶어서 절대 4악장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결국 말러 교향곡 9번과 닮은 작품은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이 아니라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인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종교적인 숭고함을 추구하거나 미완성 작품이 주는 아련한 아쉬움을 느끼고자 한다면 잘 안 맞겠지만 비극 작품을 보고 나서 느끼는 정화감같은 것을 느끼고 싶다면 이만한 연주가 없을 것 같다.
인발/RSO프랑크푸르트/TELDEC (Samale-Mazzuca 1985)
인발과 RSO 프랑크푸르트의 브루크너 전곡 녹음은 초판 중심의 특이한 판본이 늘 눈길을 끌고 특히 교향곡 4번을 초판으로 연주한 연주는 메이저 음반사에서 나온 음반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것 같다. 교향곡 9번의 완성판도 그러해서 결정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우면서도 독보적 위치를 오랫동안 점해왔던 것 같다. 1악장은 가늘고 깔끔한 느낌인데 중후한 질감에 카리스마 넘치는 명연들에 설득을 당해서 그런지 조금 심심하게 들렸다. 전체적으로 살짝 빠른 템포를 잡고 트럼펫의 불협화음이 등장하거나 할 때도 별로 튀지 않게 밸런스를 잡았는데 담담하다기보다는 밋밋하다는 쪽으로 평가가 기울어진다. 2악장의 스케르초는 약간 빠른 편인데 조금 애매했다. 확실하게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지는 못하는데 그렇다고 그로테스크한 느낌도 약해서 임팩트가 약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민첩하게 연주한 트리오까지 합쳐서 생각한다면 약간 현대적인 느낌을 주기는 한 것 같다. 3악장은 다양한 동기들을 부각시키지 않아 복잡하게 들리지 않았고 울부짓는 듯한 클라이맥스가 있는 아디지오 악장으로 들렸다. 4악장을 포함하였으니 무게 중심은 4악장으로 옮겨졌다. 4악장의 앙상블은 정말 깔끔하고 좋은데 낭만적인 부분, 바로크적인 부분, 현대적인 부분이 번갈아 나오면서 어울리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깔끔한 앙상블로도 복잡한 곡을 정리해 주지 못하는 듯 했다. 답을 다 가르쳐주는 마지막 금관 코랄로 들어가서 1악장의 도입부를 회상하는 순간이 와도 완전한 해방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판본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끝나고 나서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들고 참신한 해석을 내놓는 누군가가 중후한 음색의 악단과 다시 한번 다루어 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르농쿠르/빈필/RCA
꽤나 기대했던 음반이다.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의 4악장 완성판에서 인발의 연주가 결정반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아쉬운 부분이 있던 터에 아르농쿠르가 빈필을 기용하여 4악장 완성판을 냈다고 하고 게다가 독어로 해설까지 했다고 하니 나의 호기심을 매우 자극했다.
일단 4악장 완성판 연주라고 부르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4악장 스케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한 것이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끊어서 해설과 더불어 담고 있고 음악이 담긴 CD에는 3악장까지 연주되어 있다. 따라서 인발과 나란히 4악장 완성판연주로 놓을 수는 없을 것 같고 대신 4악장을 공부하려 한다면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CD1에는 아르농쿠르가 브루크너 교향곡 9번 4악장을 해설하고 있다. 9번 트랙까지 독어로 같은 내용을 18번 트랙까지 영어로 반복하고 있다. 두 언어 모두 아르농쿠르의 모국어는 아닌 것 같고 양쪽 다 칠순을 맞은 할아버지의 친근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이야기하고 있다. 독어 쪽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좀 들어있고 하는 걸로 보아서 워크샵은 독어로 진행되었고 영어부분은 나중에 삽입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브루크너는 4악장을 완성했고 -여기서 완성이라는 말은 멜로디 라인의 스케치가 끝났다는 것이다.-악기들로 대위구를 입히는 작업이 좀 남아있는 상태라고 한다. 브루크너는 Instrumentation을 스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진행한 편이므로 브루크너가 2달 정도만 더 살아서 작업을 했다면 완성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악장을 연구하는 데 3개의 자료가 있는 데 1. 스케치, 2. 총보, 3. 피아노 버전?이 있다는 것 같다. 도입부에 이어 1주제와 1주제를 노래하듯 만든 2주제, 코랄의 옥타브 3주제와 발전부까지 9분여는 완성이 되어 있고 다음 15마디는 완성은 되어 있지 않다는 것 같다. 트럼펫과 트럼본의 불협화음등이 논란 거리인 것 같고 어떤 부분이 맞고 틀리고 하는 것들에 대해 토의를 하고 있다. 나름대로 일반인을 상대로 쉽게 설명하려고 하시는 것 같은 데 '이렇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게 정답이다' 하면서 비교하면서 들려주는 데 뭔가 둘이 다른 듯 하다는 건 알겠으면 서도 이해가 확 와닿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어려운 것 같다.
CD2는 다른 브루크너 9번 연주와 같이 1악장에서 3악장까지의 연주가 들어있다. 최고의 브루크너 악단인 빈필을 이끌고 이제 거장의 대열에 올라선 아르농쿠르가 연주를 했으니 연주는 훌륭하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으로 내성부를 섬세하게 살려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폭발적인 느낌보다는 잔잔하게 진행하는 듯한 느낌이었는 데 2악장까지는 '이 지휘자가 이 악단 데리고 했으니 이 정도 연주는 나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들었는 데 3악장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일단 잔잔히 울려퍼지는 금관에 익숙해져서인지 날카롭게 쏘는 듯한 트럼펫이 매우 충격적으로 들렸고 빠르게 진행되는 가보트도 상당히 특이하게 들렸다. 재미는 있고 좋은 것 같기는 한 데 오래도록 즐기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4악장을 공부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자료이지만 완성판 연주를 보유한다고 하기는 좀 어렵고 연주는 3악장의 개성적인 해석이 재미를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쥴리니-빈필의 연주를 덮어버리기엔 좀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 물론 브루크너의 9번 음반을 모으는 수집가에게는 꼭 갖추어야할 아이템이 될 것이다.
반베이눔/콘서트헤보/필립스
이명재님이 레코드포럼에서 1순위로 추천하여 관심이 갔던 음반이다. 1950년대의 모노 녹음을 1순위로 추천하기 쉽지 않은데 무슨 매력이 있었을까 싶기도 했고 제목은 ‘객관적인 브루크너의 마지막 인사’였다. 기대를 갖고 음반을 틀었을 때 일단 이 교향곡의 명연이라고 불리우는 쥴리니나 첼리비다케의 연주에 비교하면 1주제는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고 느꼈다. 경과구에서 2주제까지는 조금 빠르게 진행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서정적인 느낌을 손해볼 것 같았는데 휘몰아치는 느낌으로 묘한 감동을 주었다. 3주제도 최면적이기 보다는 극적이었고 트럼펫의 밸런스를 꽤 크게 잡았음에도 중심 주제를 침범하지 않는 듯이 들렸다. 이런 몰아치는 전개 때문에 코다에 들어가기 전에 숨을 죽이는 곳에서 더 극적인 효과가 나는 듯 했다. 스케르초도 빠르게 몰아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격렬한 연주가 왜 객관적인 브루크너일까 싶었는데 3악장은 담담했다. 마지막 인사는 할 말은 많지만 장황하게 들떠있지 않고 차분했다. 처절함 때로는 흥겨움 이런 요소들을 차분하게 표현해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 옛 이야기를 하듯 만들어 버린 듯 했고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을 쥴리니, 빈필보다 우선 순위로 추천하지는 못할 것 같다.
래틀/베를린필/EMI (SMPC 2011)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의 완성본은 말러 교향곡 10번에 비해 음반이 부족한 편이다. 말러 10번 쿡 버전 녹음을 남긴 샤이도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은 3악장 버전으로 녹음을 남겼다. 인발의 연주가 있지만 프랑크푸르트 RSO의 음색이 말러 10번과는 어울려도 브루크너 9번과는 궁합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 결정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아쉬웠고 아르농쿠르가 빈필과 함께 강의 형태로만 4악장의 조각들을 보여주고 3악장 버전으로 연주한 것은 아쉬웠다. 말러 10번 쿡 버전을 2번이나 녹음한 래틀이 브루크너 교향곡 9번 4악장 버전도 녹음을 했고 악단도 베를린필이라 기대를 갖게 했다. 판본도 인발의 버전보다는 나중에 나온 것이라 기대가 되었다. 1악장이 시작되고 인발의 연주처럼 투명하고 가벼운 질감이라 ‘여기서 이러면 조금 곤란한데’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1, 2주제가 나오고 현으로 인버전된 멜로디가 나오면서 중후한 느낌도 나오기 시작했다. 전개부에서 큰 음향의 혼란으로 빠져들 때는 래틀 특유의 미묘한 템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해서 재현부에서 코다에 이르기까지 템포를 조였다 풀었다하며 만들어 내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스케르초는 3박자의 리듬이 분명한 다이내믹한 연주였고 스케르초의 중간부분은 냉소적인 느낌이 나게 연주했다. 트리오는 애절함보다는 민첩함에 포인트를 둔 것 같았다. 말러 교향곡 9번의 4악장을 연상시키는 애절한 음색으로 3악장이 시작되었다. 4악장 버전임을 염두했는지 가보트의 리듬을 그렇게 강조하지 않는 등 3악장의 다양한 요소를 하나하나 부각하기보다는 정화감을 주는 느린 악장으로 연출한 듯 했다. 4악장에서는 신비한 느낌의 도입 이후에 베토벤 교향곡 9번의 1악장을 연상시키는 붓점 리듬과 멜로디가 등장하고 조성이 불안한 듯한 바이올린과 플륫의 멜로디에 이어 밝고 서정적인 현의 멜로디가 이어진다. 발퀴레의 잠의 동기를 연상시키는 에피소드가 나오고 천국의 문이 열리는 듯한 코랄이 등장한다. 이쯤되면 브루크너가 상상하던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인발의 연주에서는 4악장이 조금 정신없게 느껴졌는데 이 연주에서는 좀더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금관의 코랄 덕분인지 조금 덜 복잡하게 느껴졌다. 팡파르가 1악장의 도입부를 회상하고 살짝 무조적인 경과구를 지나서 웅장한 푸가가 나오고 테데움 내지는 말러 교향곡 3번을 연상시키는 피날레가 끝나면 3악장 버전을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밀려왔다. 당분간은 이 음반이 4악장 버전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의 결정반이 될 것 같다.
테이트/로테르담/EMI
대부분의 분들이 별 관심이 없었고 가끔 들어본 분들은 좋지 않은 평을 했던 음반이다. 모차르트 전문가가 왜 브루크너를 시도했는지 알 수 없으나 결과가 썩 좋지는 않다는 분도 계신데 레코드 자켓에는 그라모폰의 ‘깨끗하고 균형잡힌 레코딩’이라는 평과 CD Classica의 ‘적절한 템포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잘 구현했다는 평’을 적어 놓고 있다. 애호가들의 반응은 EMI가 레드라인 시리즈를 내면서 음원 중에 그래도 좀 좋은 것을 골라 주지 이건 좀 너무했다는 평도 있었다. 1악장을 들었을 때 느낌은 앙상블이 특별히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은데 조금 심심하고 재미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다이내믹 폭이 크지 않아 잔잔한 흐름인데 고급스럽고 멋져 보이려면 악단의 음색이 대단히 매력있어야 할 것 같은데 좀 아쉬웠다. 얌전한 느낌이 1악장보다 강렬해야 제맛일 것 같은 2악장에서 더 아쉽게 느껴졌다. 3악장도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클라이맥스 등에서 에너지를 쏟아붓는 강렬한 연주에 비해 조금 덜 피곤하게 들을 수 있는 점은 있지만 심심하다는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다. 2악장의 트리오나 3악장의 가보트 부분 등 꽤 괜찮게 들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심심했고 정화감을 준다거나 고급스럽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 건 좀 아쉬웠다.
틴트너/RSNO/NAXOS
브루크너의 교향곡 00번, 0번이 모두 포함된 전집을 남긴 틴트너의 브루크너 사이클에서 마지막 교향곡 9번은 로얄 스코티쉬와 함께 했다. 곡이 시작되고 1주제에 약간의 탄력을 넣은 것이 귀에 들어오는데 시도의 신선함보다는 건조한 녹음 속에서 금관 소리가 약간 피곤하게 들리는 것이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비브라토나 트레몰로를 잘 구사해서 현이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것이 인상적인데 어떻게 들으면 인발의 프랑크푸르트 RSO처럼 사이버적인 느낌이 든다. 소리가 조금 가벼운 편이라 중후한 소리가 어울릴법한 교향곡 9번과 궁합이 안 좋을 것 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내가 듣기에는 어딘지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특히 목관의 리졸루토 이후에 현악이 인버전된 멜로디를 연주할 때는 빠져드는 느낌을 받았다. 2악장은 비교적 빠른 연주임에도 3박자의 스케르초 리듬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트럼펫이 조금 튀는 듯이 들렸는데 불협화음의 효과같다기 보다는 미스톤처럼 들렸다. 1악장에서 인상깊었던 현의 신비한 느낌은 트리오에서 애절하게 늘어뜨리는 부분에서 다시 받을 수 있었다. 3악장 도입부의 멜로디가 조금 건조하게 연주되어 기대했던 애절한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카논에서 금관에 현이 묻혀 행진곡 느낌이 살지 않는 등 조금 거친 소리의 금관에 현이 묻혀 아쉬울 때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금관이 조금 거칠고 날카롭다고 느낄 때가 많았지만 마지막 혼 소리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낸 것 같았다. 틴트너가 유서처럼 남긴 녹음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르며 숙연해지게 만든다.
빌드너/Westphalia 뉴 필하보닉/NAXOS (SMPC, 1996년)
인발과 래틀의 연주를 접한 후 4악장 버전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특히 판본에 대한 흥미가 생겼다. 말러 교향곡 10번의 경우 판본에 따라서 악기 편성이나 대위 구조가 꽤 다르기는 해도 주요 멜로디 라인에서는 큰 변화가 없었는데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의 4악장은 판본에 따라 다른 곡이라고 생각될 만큼 차이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지휘를 맡은 빌드너는 1956년생,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빈필의 바이올린 단원을 거친 지휘자이고 오페라를 자주 지휘하는 분인 듯 했다. 1악장이 시작되고 특이한 부분 보다는 가끔 녹음이나 연주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 들어오는 데 가끔 밸런스가 거칠게 느껴졌고 특히 클라이맥스에 도드라진 팀파니가 썩 좋은 소리가 아니라서 아쉬웠다. 2악장 스케르초는 정박에서 살짝 벗어나는 미묘한 템포 운용이 조금 재밌게 들리기도 했다. 3악장에서는 최고의 악단이 메이저 레이블에서 녹음한 최신 녹음들과 비교하면 금관의 음색이 아쉬웠다. 4악장은 코랄 부분이 뻥 뚫어 주는 느낌이 부족했고 약간은 애절하게 들리기도 했다. 피날레에서는 여전히 금관의 음색은 여전히 매우 아쉬웠지만 금관 뒤에 깔리는 현악이 독특한 효과를 내면서 말러의 교향곡 3번의 피날레를 듣는 듯한 정화감이 밀려오기도 했다. 빌드너는 바이올린과 음악학을 모두 전공했다는 이력답게 브루크너 교향곡 3번 음반에는 여러 버전을 비교할 수 있게 해 놓았고 9번 음반은 4악장 버전을 담아서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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