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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봉화산(140M)
1.산행구간: 봉하마을-사자바위/봉수대-정토원-호미든 관음상-올빼미 바위-봉하마을
2.산행일자: 2011. 4.09(토요일)
3.산행거리 : 00 km
4.산행참가자: 안다제
5.구간별 거리 및 소요시간 :1시간30분
6.코스별 산행시각
◎ 북면 출발 (15:30)
◎ 봉화마을 주차장(16:00)
◎ 출발/정토원0.6km(16:05)
◎ 이정표/봉수대0.7km, 봉화산정토원0.65km,마애불0.3km(16:10)
◎ 자은암터(16:17)
◎ 이정표/대통령 생가0.3km,정토원0.3km,사자바위0.68km(16:20)
◎ 이정표/대통령 생가0.7km,호미든관음상0.2km,사자바위0.20km(16:28)
◎ 이정표/약수암0.6km,정토원0.1km,사자바위0.12km,호미든관음상0.2km(16:31)
◎ 봉화대(16:34)
◎ 정토원(16:38)
◎ 봉화산/140m/호미든 관음상(14:44)
◎ 대현고개/호미든 관음상0.3km,정토원0.6km,대현고개0.8km(16:52)
◎ 올빼미 바위(16:58)
◎ 이정표/봉수대0.70km, 봉화산 정토원0.45km(17:05)
◎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집(17:10)
◎ 주차장(17:20)
7. 산행기
제16대 고 노무현 전대통령은 1946생으로 진영읍에서 봉하마을에서 출생합니다.
중학교 까지 이곳에서 지내다.어려운 가정환경으로 부산상고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졸업후 회사에 취직하지만 변변치 않은 대우에 실망 고향으로 돌아가 고시공부에 마음을 먹게 되죠
1966년10월 부터 고졸출신자에게도 응시자격이 주어지는 사법및 행정요원 에비시험에 합격하면서 사법고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되죠
또 1975년 17회 사법고시에 합격, 2년간의 연수원 생활이후 77년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임용 됩니다.
그리고 1978년 변호사를 개업하게 되는데요.
이때부터 인권변호사로 치중하면서 부산 민주시민협의회를 만들어 재야로 나서며 노동법률상담소를, 그리고 6월 항쟁의 주역이 되기도 하죠
대우조선의 이석규씨가 파업중, 사망한 사건에 대하여 임금협상등 문제와 관련 이러 저러한 문제로 구속되기도 하죠
물론 구속적부심으로 풀려 나오긴 하지만 부산의 개업변호사 대부분이 선임계를 냈다는 후문입니다.
그리고 1988년 통일민주당 공천으로 부산 동구에서 13대 국회의원으로 당선 되면서 5공비리 관련 청문회에서 일약 청문회 스타로 대중 정치인으로 만드는 기반이 되었죠,
또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를 하며 민주당 잔류를 주장 하며 창당의 주역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991년 통합민주당을 출범하며 대변인으로 활동 하게 되죠.
1992년 3월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동구에 출마하지만 민자당 허삼수후보에 패하지만 1993년 3월 전당대회에서 최연소 최고위원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 합니다.
그 이후 1995년 6월 제1회 동시 지방선거에서 부산 시장 후보로 출마하지만 민자당 문정수 후보에게 패배 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총재를 중심으로 새정치 국민회의가 창당 되지만 그대로 민주당을 지키지만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종로에 출마하지만 또 다시 실패 하게 됩니다.
1997년 대선 국면을 맞아 정권 교체를 위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 부총재가 되면서 김대중 국민의 정부 탄생을 기여 하게 됩니다.
1998년 7월 종로구 보궐선거에서 국민회의 후보로 출마, 재선이 되면서 갈등의 현장 중재와 조정자역활을 하며 그예로 1998년 현대 자동차 파업 중재, 1999년 삼성자동차 매각협상등입니다.
2000년 4월에 치뤄진 16대 총선
또 다시 부산 북구 강서을에 출마 한나라당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전국의 지지자들의 모임인 노무현을 사랑하는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하게 됩니다.
노사모라고 하죠.
2000년 8월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 직원들과 이메일로 대화하는등 수평적 토론 문화 확산 다면 평가등 인사평사 시스템을 만드는데 주력합니다.
그리고 2002년 3월 전국16개시도에서 치뤄진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당선 됩니다.
희망돼지 국민참여정치등 다양한 방식으로 후원금을 조성 미디어 선거, 인터넷 선거, 정책선거등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도 합니다.
드디어 48.9%의 지지를 얻어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 됩니다.
임기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그리고 2008년 2월 25일 임기를 마치고 고향인 봉하 마을로 귀향하게 됩니다.
2008년 태광실업 세무조사로 인한 박연차 게이트로 2009년 4월 40일 검찰로 출두하면서 세게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많은 설화를 남긴채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올빼미 바위에서 몸을 던집니다.
이상이 고 노무현 전 대동령 일대기 입니다.
◎ 북면 출발 (15:30)
2011년 4월 9일 천주산 산행후 울산으로 복귀하기는 이른시각
이곳 주위에 어딘가 가볼만한 곳이....없을까
고민합니다
마산시내 들어가서 요즘 많이 난다는 쭈꾸미를 생각했다 저녁 고래마을 약속시간때문에 그러기는 좀 뭐하고 해서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그리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그런곳, 봉하마을을 찾아 가기로 합니다.
북면을 둘러 남해고속도로를 지나 진영 동창원 IC로 뻐져 나갑니다.
봉하마을 버스주차장
고 노무현 생가및 사가와 올빼미 바위(좌)와 사자바위(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
◎ 봉하마을 주차장(16:00)
17번 국도인 진영읍 곳곳에 노무현 대통령 생가라는 이정표 따라 가는데.....
진영읍을 지나 봉하 3.0KM, 본산준공업지구를 가르키는 이정표를 지나면 잠시후 나타나는 노무현 대통령 생가의 방향 표기대로 삼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습니다.
그리고 길따라 잠시 들어 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역시 노무현 생가라는 이정표 따라 들어 갑니다.
공단 가장자리인듯 한 길...
대형트럭들이 수시로 드나드는길...
그리고 그길따라 계속들어 가면 2차선 포장도로와 함께 길가에 늘어선 노란띠....
고 노무현 전대통형 생가에 온기분입니다.
잠시후 한림 대현 가는 삼거리에서 봉하 900M남았다는 이정표 방향따라 들어서는데...
차가 밀리고 주변 곳곳은 많은 사람들로 붐빕니다.
오늘이 제삿날인가라며 들어 서는데 버스때문에 차량이 정체되기 일쑴니다.
오늘쪽의 주차장은 만원이고..
그곳에 주차못한 버스들의 편도 주차가 통행을 막고 있는 모입니다.
우리도 주변 한곳에 주차를 하고 이곳에 온 이상 봉화산에라도 다녀오자며 서두름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 가는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벽장 설명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와 올빼미 바위
많은 사람들이 참배중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올빼미 바위
산행 가이드
몰빼미 바위
◎ 자은암터(16:17)
먼저 두를곳은 고 노무현 전대통령 생가입니다.
전형적인 가옥에 촌에 살아본 분들이라며 애써 볼필요가 없을정도로 똑같은 그림들입니다.
부엌이며..
헛간..아시죠
여물 싸린다는것을요. 짝두도 있고....
다시 나와 뒷편에 잇는 현재 집 입구을 막고 있는 경비초소
많은사람들이 들어 가고싶어 시도 하지만 경비와 계속 실랑입니다.
경비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나라를 지키라고 보낸 아들들이 이곳에 있다는것만으로도 힘들텐데...
2009년 5월 23일부터 치뤄진 장례식장
마을 전체가 장레식장이었다는 소식은 언론매체를 통해 많이 봐왔기때문에 그때 생각이 간혹 떠 오름니다.
다시 도로 건너 오른쪽 추모의집을 뒤로 하고 무덤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들어 가는 길목 길목에는 추모의 글을 새긴 돌이박혀 있고..
그리고 그묘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추모하고 있는 무덤
태극기가 오른쪽에, 그리고 그왼쪽에 단아한 모습으로 안장 되어 있습니다.
곡장및 비석받침강판 안내라는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묘역 뒷편 벽(곡장)과 비석받침은 특수한 재질인 내후성 강판입니다.
5년정도 산화되면서 표면에 녹이 쓸면 그녹이 보호피막(코팅)이 되어 남아있는 내부의 철을 영구적으로 보호합니다.
"처음에는 검정색이지만 표면이 부식이 되면서 붉은색으로 변하다가 최종적으로 암적색으로 정착된다, 매일 변하는 모습이 다르고 햇빛과 그늘에 따라 달리 보이며 비 오는날에는 짙은 수묵의 색채를 보인다.
그변하는 과정이 세월과 함께 하여 기억을 담기에는 이만한 재료가 없다. 그성징때문에 이재료의 벽체는 긴장을 불현듯 조성한다.
많은기념식 시설에 이재료를 쓰는 까닭이다.-묘역을 설계한 건축가 승효상 교수"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다시 빠져 나와 대통령 길따라 올라가보기로 합니다.
들길을 지나 산입구에 봉화산 산행안내도가 서있습니다.
현위치에서 마애불상과 100m,등 적혀 있구요
다시 이를 지나 올라서는데 사자바위까지 올라가는 계단이 설치 되었다는 안내와 이길을 노무현 대통령 산책길이라 하여 대통령의길이라고 명명하였다는 정토원 합장의 안내플랜카드을 지나 올라섭니다.
봉수대0.7km, 봉화산정토원0.65km,마애불0.3km의 이정표를 지나 왼쪽 암릉쪽으로 넘어가는데...
제법 넓은 공터입니다.
자은암 터로 추정되는 곳이라 합니다.
가야국 김수로왕의 허황후가 돌배(浮石船)를 타고 아유타국을 떠나 도착한 곳이 김해인데요.
그리고 그는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는데요. 허황후가 바다를 건너 김해까지 도착해 수로왕과 혼인하게 된 은혜에 감사함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절 4개가 있다고 합니다.
모은암(母恩庵), 부은암(父恩庵), 자은암(子恩庵), 해은암(海恩庵)이 그것인데요.
그중에서 하나인 자은암인데요 지금은 그흔적을 알길 없지만 추정을 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바위 하나가 영락없는 올빼미 형상입니다.
그리고 그아래 바위틈에 생긴 자연동굴이 하나 있는데요.
스님이 한분 들어 가더니 나오질 않습니다.
해서 따라가보지만 굴속은 깜깜하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습니다.
해서 후레쉬로 터떠려 보지만 보이느게 없습니다.
설에 의하면 이 동굴에는 10년 전부터 공부하며 불공을 드리는 스님 한 분이 계신다는데 아마도 그스님인가 봅니다.
다시 나와 발길을 옮깁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와 봉하마을
봉하마을 뜰
◎ 봉화대(16:34)
대통령 생가0.3km,정토원0.3km,사자바위0.68km의 이정표에서 대통령길을 따라 들어 갑니다.
사자바위의 사면길입니다.
잠시후 대통령 생가0.7km,호미든관음상0.2km,사자바위0.20km의 이정표를 만나는데 이곳에서도 대통령의 길을 따라 들어 가는데....
앞서가던 관광객 한분이 길없다라면서 돌아 나오지만 우리는 계속 전진합니다.
이윽고 안부에 올라서는데....
약수암0.6km,정토원0.1km,사자바위0.12km,호미든관음상0.2km에서 역시 대통령의 길을 따라 올라섭니다.
잠시후 데크길따라 올라서면 사자바위의 봉화대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봉하마을은 평화롭기 그지 없읍니다.
봉화대에서 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
봉화대에서 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지와 봉하마을
봉화대에서 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사가
◎ 정토원(16:38)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묘지도 삼각형의 조성 되어 있고 그밑면 가운에 묘지가 조성 되어 있는 모습에 많은 관광객들이 참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는 정토원으로 내려섭니다.
사월초팔일 준비를 하느라 등 만들기에 한참이고...
수광전안의 모습은 고 노무현,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영정이 놓여 있는게 시야에 들어 옵니다.
다시 빠져나와 호미든 관음상 으로 올라갑니다.
호미든 관음상을 올라가면서...
봉화산
◎ 봉화산/140m/호미든 관음상(14:44)
데크 벤치에는 김해 봉화산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고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에 경호원을 보내 원장이 계신가 알아 보라고 했던 그곳이 바로 정토원이란 사찰인거 잘 아시죠.
그리고 그 원장이 선진규라는 분이랍니다.
선진규 원장과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인연은 5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1959년 우리 국민들은 부패하고 무능한 자유당 정권과 남북 대결로 인해 입에 풀칠을 하기도 힘든 상황에 있었습니다.
동국대 불교대학의 청년 불교학도 31명은 불교 혁신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자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 상징으로 '호미를 든 관음상'을 세우기로 했었죠.
산중에 점잖케 앉아계신 부처님이 아니라 호미를 들고 밭에 나가 중생들과 함께 허리 굽혀 일하며 세상을 구제는 관음보살을 모시기로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관음보살상이 봉화산 정상에 세워졌고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습니다.
이 호미를 든 관음상을 세우는 데 앞장섰던 분이 당시 동국대 불교학과 학생이었던 선진규 원장이시고 이 분이 그 자리에 세운 사찰이 바로 정토원입니다.
그리고 이 호미를 든 관음상이 세워진 날은 4월 5일로 식목일이었는데요. 당시에도 봉화산은 다른 산들과 마찬가지로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었다고 합니다.
식목일날 이 산에 나무를 심기 위해 주변 학생들을 동원했는데요.
그 때 나무를 심으러 올라갔던 학생 중에 중학교 1학년이던 노무현 학생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노대통령은 나중에 선진규 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부처님께서 밖으로 뛰쳐나온 날 나도 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봉하마을 쪽
한림면 가동리쪽
한림 시산리쪽
정토원과 봉하마을쪽
대현고개
호미든 관음상
◎ 올빼미 바위(16:58)
다시 이곳에서 대통령갈따라 내려서는데요 산거리에서 우리는 대현고개쪽으로 방향을 자고 내려섭니다.
오른쪽 에는 과수원과 함께 임도길따라 내려서는데...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길에는 차들이 다니고 있습니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면서....
대현고개에서 정토원으로 들어 가는일입니다.
호미든 관음상0.3km,정토원0.6km,대현고개0.8km의 이정표를 뒤로 하고 건너편 산쪽으로 올라섭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능선길....
무엇에 썼는지 정상 부근에 시멘트 로 만든 블륵이 있고...
그리고 그길따라 내려서는데 정토원에서 오는길과 합류하는데.....
올빼미 바위 상단입니다.
그리고 들어갈수 없게 울타리가 쳐져 있고..
경비 둘이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고노무현 전대통령은 경호원한데 정토원 원장이 계신지 가보라고 했던 그자리
그 자리입니다.
그리고 짤막한 유언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되죠..
올빼미 바위 상단에는 이름없는 무덤 한기 만이 자리를 지키고 잇을뿐 더이상 말이 없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섭니다.
올빼미 바위 하단
망개....
올빼미 바위 하단
올빼미 바위...저쩍으로 해서 저짝으로 떨어 젺는가......
올빼미 바위
추모의 집
추모의 집 내부
◎ 주차장(17:20)
길은 있지만 미끄러워 조심해야 할 그런길...
잠시후 노란 리본이 메여져 있는 올빼미 바위 아래...
올빼미 바위에서 이곳으로 떨어 졌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지기도 합니다.
어째튼 명복을 빌며 봉수대0.70km, 봉화산 정토원0.45km의 이정표를 지납니다.
그리고 추모의 집을 둘러 본후 주차장으로 복귀 울산으로 이동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