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규_ 휴맥스 대표
"나이 들어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도전하라"

필립스, 소니, 톰슨 등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디지털 방송장비 전문업체 휴맥스. 이 회사의 창업자인 변대규 대표는 국내 벤처업계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1989년 휴맥스의 전신인 건인시스템을 창업하고 영상자막 편집보드 및 가요반주기를 제조하던 그는 1994년 디지털가전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변경하고 1996년 디지털 셋톱박스를 개발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휴맥스는 1999년 수출 2000만 달러 돌파, 2000년 수출 1억 달러 달성, 2001년 수출 2억 달러를 기록하는 등 초고속 성장을 기록했다. 요즘, 변대규 대표는 소비자가전 부문에 인터넷과 방송이 융합하는 컨버전스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름에 따라 이 시장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저는 아주 분명한 목표를 갖고 사업을 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직업을 갖더라도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겠다는 욕심만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생각을 해보니 내가 교수가 되면, 뛰어난 교수가 되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교수야 하겠지만 그런데는 흥미가 별로 없었습니다. 교수가 아니라면 연구원이 되어야 하는데 그 쪽도 영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창업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훌륭한 교수, 훌륭한 연구원이 되지 못할 바에야 창업을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창업을 하게 됐습니다.
- 사업 초기에는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한 5년을 헤맸습니다. 사업초기에는 여기저기에서 연구개발 용역을 하며 돈을 조금씩 벌어서 제품을 만드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5년간 만든 제품은 거의 다 실패했습니다.이제 와 돌이켜보면 기술에 너무 치중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창업 초기에는 회사에 좋은 엔지니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엔지니어들만 모여 있으니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만 생각했지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기술로 뚝딱뚝딱 만들면 멋진 제품이 나올 거라는 식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거의 다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 사업 초기 넘어야 할 과제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제 경우에는 고객관점에서 생각을 하고, 그 생각에 맞춰 제품을 만든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을 하는 데까지 5년 이상이 걸린 것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대부분 ‘내 머릿속에 더 좋은 아이디어는 없을까? 내가 알고 있는 이 기술과 저 기술을 섞어서 새로운 기술을 내놓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걸 넘어가는 것이 첫 번째 숙제였습니다. 실제로 벤처기업들이 망한 원인을 분석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할 때는 가장 많은 이유가 이런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기술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생각에 파묻혀 제대로 시장을 읽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기술에 집착하지 않고 시장을 이해한다는 건 한마디로 ‘장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건이 팔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물건이 팔리면 돈이 많이 필요하니까 돈을 구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때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기술이 전문적인 것처럼 돈도 전문가가 맡게 해야 합니다. 회사가 커지고 돈을 관리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면, 당연히 그 부문의 전문가가 필요한데 많은 분들이 돈 문제를 너무 상식적이고 뻔한 것으로 치부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하지만 그 단계에서는 재무전문가를 기용해 돈을 끌어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사도 잘되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자금을 끌어 모으면, 이후에는 경영의 문제가 나옵니다. 회사가 커지면 생각지 못했던 경영관리의 문제가 생기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공부해야 합니다. 회사가 커지면 상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많습니다. 좋은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단계별로 벌어지는 변화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했지요.
- 좋은 경영자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좋은 경영자를 얘기할 때 좋은 의사를 예로 들곤 합니다. 좋은 의사란 어떤 사람입니까? 의학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환자를 많이 치료해본 사람이 좋은 의사일 겁니다. 의학지식만 많은 사람은 환자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환자를 잡습니다. 의학지식 없이 환자를 치료한 경험만 있는 사람은 말 그대로 돌팔이 의사입니다. 그런 사람은 간단한 병은 고칠 수 있지만 복잡한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경영도 그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관리를 하기 위해서는 경영에 대한 일반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고 직접 경영을 해본 경험도 있어야 합니다. 대학교수들은 지식이 많지만 회사를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의학지식만 있는 의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환자를 치료하기는 어렵지요. 또 경영에 대해 공부한 적 없이 기업 경영만 해본 사람은 돌팔이 의사이기 때문에 아주 복잡한 경영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회사가 커지면 경영상의 의사 결정도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지는데 그걸 잘 해내야 회사를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공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벤처기업 대표들 중에는 공부를 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영학에 관계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걸 하자니 경영지식이며 의사결정 방법 등 너무 많은 부분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지레 겁부터 먹는 것 같습니다. 물론 쉽진 않겠지만 그래도 평소에 틈틈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만나며 이것저것 다 따라하다가는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아니 시간이 나지 않아서 할 수가 없습니다.
- 지금까지 회사를 운영하면서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는지요?
1997년에 거의 망할 뻔했습니다.(웃음) 죽기 바로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요. 다행히 극복했지만요. 사업하다보면 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셋톱박스를 개발해서 1997년 말에 출하했는데 품질불량 때문에 전부 리콜되면서 회사가 코너에 몰렸습니다. 다행히 그 와중에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1998년에 출하를 해서 1998년 1월부터 새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두 달만 늦었어도 우리는 이미 죽은 회사가 됐을 겁니다.
- 회사를 운영하면서 영향을 미친 기업가가 있으신지요?
회사 경영 문제에서 제 스승은 피터 드러커 교수입니다. 그 분 책은 다 봤으며, 중요한 몇 권의 책은 몇 번씩 봤습니다.
- 요즘 공기업이나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무원이 되거나 공기업에 들어가는 게 원래의 꿈이었다면 그것이 옳은 선택이겠지요. 하지만 안정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공무원이나 공기업 입사를 꾀하는 거라면 좀 더 도전적인 정신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사람들 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당장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 그 길을 찾는다면 나이가 들어 후회하게 될 겁니다. 나중에는 ‘이렇게 사는 것보다 젊었을 때 무언가 해보는 게 더 좋은 삶이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전하는 삶이 당장에는 힘들겠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이전보다 훨씬 더 역량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보는 눈도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 젊을 때 도전해 본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지나치게 안정지향적인 삶을 좇으니까 이런 말이 잘 안 들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소위 안정지향적이라는 것이 먹고 사는 것에 대해 하는 말인데 인생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젊을 때 이런 저런 일을 몸소 겪으며 자신을 더 키워야겠지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정말로 내가 열심히 인생을 살았는가’ 하고 생각에 잠길 때,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 사람들은 후회를 하게 되지 않을까요?
-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우선 많이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많이 듣고 많이 공부하면 성공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세미나 같은 행사가 열릴 때마다 꼬박꼬박 참석하는 젊은이들을 발견하곤 하는데,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지나고 보면 그런 사람들이 사업에서 성공할 확률이 좀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회를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더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해봅니다. 혼자 골방에서 끙끙대서 성공하는 천재들도 있지만, 자신에게 그런 천재적인 능력이 없다면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많이 듣고 시장의 흐름에 대해서 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무실에서 머리만 싸매고 있다면 회사를 잘 키우기 어렵지 않겠나 싶습니다.
이 글은 도서출판 페가수스에서 출간한 <한국의 젊은 CEO들>에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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