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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3)
교회아(敎會我)란 무엇인가?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성격과 교회에 대해서 앞에서 배웠다. 곧 우리의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봤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성격은 교회론적으로 이루어져 감을 배웠다. 물론 우리 개개인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아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져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창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심을 입고 십자가의 도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자들은 이제 교회아로서의 자기 인식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곧 개인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자로서의 자기 인식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두 가지 형태로 살아갈 수 있다. 하나는 개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교회아 의식을 가지고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삶의 차이를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거기에 따라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 하는 것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곧 교회아 의식을 가지고 교회답게 생각하고 교회답게 행동하고 교회답게 모든 것을 결정해 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구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아 의식이 없이 산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아니다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아니면 우리에게는 구원이 없는 것이다.
한국 교회의 큰 문제 중에 하나가 개인 구원을 너무 강조한다는 것이다. 물론 개개인이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성격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개인구원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개인 구원의 강조는 그리스도인 개개인의 성화를 위해서는 유익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로 인해 교회로서의 자기 인식 곧 교회아 의식이 전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삶은 전혀 성경적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뿐만 아니라 이런 삶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 곧 교회로서의 삶의 양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봤듯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에베소서 2:20-22절에 보면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의 구원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함께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 곧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져가 교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구원이 교회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할 때 교회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교회아로서의 바른 의식과 삶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가 구원과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는 절대로 교회아를 가질 수 없고, 교회다운 의식과 삶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아를 가지고 교회다운 생각과 삶을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나타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아를 공부하기 전에 지난 시간에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교회에 대해서 공부한 것이다. 하여튼 우리는 올바른 성경적 구원관과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의 바탕 위에서 교회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교회아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교회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이것이 왜 우리의 삶에 중요한지에 대해서 공부하고자 한다. 이 공부를 통해서 우리가 교회아로서의 분명한 자기 인식과 교회다운 생각과 삶을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 가운데 나타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앞에 아름답고 성숙한 교회로 세워져 가며,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증시해 가는 역사가 있게 해 주시기를 소망한다.
그러면 교회아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한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연결되어 있는 교회의 지체로서의 자기 신분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기 인식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잠시 봤듯이 거기에 따라 우리의 삶의 양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연결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로 살아가기 전에 우리는 철학적인 자기 인식 가운데 살았다. 곧 인간 홍길동으로 산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연결되어 함께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가는 자가 된 후에는 인간 홍길동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의 홍길동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개개인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쉽다. 물론 개개인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진정 주님의 몸된 교회에 연결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라면 교회아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교회답게 생각하며, 교회답게 모든 삶의 영역에서 살아가야 한다. 만약 교회아로서의 의식이 없이 하나의 개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써 사회성을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지 개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과 거리가 먼 것이다. 곧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반드시 교회아로서의 자기 신분을 인식하고, 교회아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은 신앙생활 곧 교회생활에서만 교회아를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행보 곧 교회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 등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교회아를 가지고 살아나가야 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방법이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고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생의 행보와 그러한 결정을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중심 혹은 인생의 삶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인생의 모든 행보와 결정을 교회아 의식을 가지고 결정해 나가지 않고 개인 그리스도인으로만 결정해 나가는 것은 결국 개인주의이다. 그러므로 사실 이런 개인주의적인 삶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몸된 교회에 연결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아를 가지고 교회다운 행보를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연결된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다운 삶을 살아 나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개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교회아를 가지고 교회답게 살고 있는지 늘 마음 깊이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주어진 기회 곧 자기의 성취나 영광, 행복을 향상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맞닿을 때 신앙생활이나 교회아로서의 행보를 양보하거나 위협하는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사단은 항상 우리가 이 땅에서 좀 더 높은 삶의 질을 제시하며, 세상과 타협하게 만들고, 더 많은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면 나중에 더 뛰어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 않느냐 하면서 현재의 신령한 행보를 양보하라고 미혹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는 진리 중 하나는 ‘오늘의 신령한 한걸음이 없으면 내일의 신령한 한걸음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2:10-12절을 보면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다. 이 말씀은 21:5절에 보면 보좌에 앉으신 이가 하시는 말씀이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지금 교회아로 행하지 않으면 나중도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신자 각자는 지교회에 접붙여진 한 지체로 서 있다. 그리고 우리를 이 교회에 부르시고 붙여주셔서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이 교회의 사명자로서 늘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연결된 교회의 지체로서 교회의 일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이 땅에서 일하는 기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교회의 지체이며, 지체와 몸으로 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와 분리된 성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보편적 교회, 즉 공교회이며, 우주적 교회이다. 지역교회는 우주적 교회의 일부로서 이 땅에 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교회는 이 땅에 그냥 존재하지 않고 반드시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움직인다. 곧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사명을 이루는 기관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인 ‘나’는 개인의 사명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사명을 항상 함께 생각하여야 한다. 교회의 사명과 개인의 사명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항상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사명 따로, 나 인생 따로가 아니다. 내 인생과 교회의 사명은 항상 함께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가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의 사명에 근거하지 않는 개인의 사명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라면 우리의 모든 삶이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곧 이 땅의 모든 삶을 통해서 그것이 공부든, 직장 생활이든, 취미 생활이든 모든 삶이 교회의 사명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아는 앞에서 살펴본 대로 교회의 지체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용어이다. ‘나’를 설명하는 데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겠지만, 신자는 항상 자신이 이 땅에 교회아로서 서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해야 한다. 이 땅은 오직 교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다. 모든 교회적 활동이 이 땅 가운데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일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교회적 활동이란 소위 말하는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하는 활동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활동을 포함한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가장 강력하게 이 땅에 증거하시는 분이시다. 그 분은 승천하셨지만 남아있는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 가운데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 개인의 사명도 이 교회의 사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을 통하여 이 교회의 사명 곧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 충만히 드러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성령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그의 인도를 잘 받아가는 ‘성신 충만의 삶’이다.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인 우리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 세상은 우리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바로 이 사명 곧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증시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교회는 항상 이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을 역사의 흐름 속에서 드러내었었다. 이 땅의 교회들은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이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서 부름 받은 존재이다. 교회가 시대와 함께 증거하여야 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사명은 결국 개인의 삶에서 나타나게 되어있다. 개인이 성도로서 자신의 사명을 자각하고 교회아로서 삶을 살아갈 때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가 찬연히 드러나며, 교회가 그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교회에서 어떤 자로서 부름 받은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서 있어야 하며, 우리의 인생길에 있어서 모든 결정과 결단 가운데 그 실질이 드러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생활을 하든지, 가정생활을 하든지, 직장생활을 하든지, 결혼을 하든지, 모든 문제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고, 교회아로서 신령한 행보를 하고 있으며, 그 실질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지 항상 우리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자신에게 물어보고 점검하고 반성하고 재정비해야 한다.
나의 부르심은 교회의 사명과 연결되어 있고, 하나님나라의 증시의 일로서 귀결되며, 하나님 영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신령한 행보를 위해 배운 바에 따라 신령하게 결정하며, 사는 것이 곧 교회아로서 실질 있는 행보요, 사명인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하게 마음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교회아로서의 자기 인식인 것을 우리 각자가 잘 알 것이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앞길에 주어진 모든 선택의 문제와 결정과 행보를 신령한 눈으로 판단하고, 교회아로서 교회답게 생각하고 교회답게 결정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온전히 증시하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길 소망한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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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자 : 손재호 교수
*본글은 2024년 8월 16-17일에 부천개혁성경신학교 2024년 봄학기 집중강의 겸 부천개혁교회 제직교육을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란 주제로 실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