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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 원문보기 글쓴이: peater
2013년 10월 25일 금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바오로 사도는 우리 각자는 선을 바라면서도 악으로 기울어지는 나약하고 비참한 존재임을 알린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 없이는 우리 모두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연 현상을 보고서 일기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대비를 하는 것처럼, 각 시대에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그에 맞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신다(복음).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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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차가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자주 당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왜 이렇게 운이 없는지, 또 자기 차를 들이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운전이 서툰지 늘 그들만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가 그의 운전 습관을 보면서, 운이 없거나 운전이 서툰 사람들을 자주 만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곧, 운전할 때에 급하게 제동하는 습관이 있어서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들이받는 사고가 자주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친구는 이렇게 충고하였습니다. “자네는 자신의 운전 습관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네. 세 번이나 비슷한 사고를 당했는데도, 급제동의 습관은 여전하니 참으로 답답하네. 그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똑같은 추돌 사고를 피하지 못할 것이네.” 단순한 이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만일 사고가 날 때마다 그 사고를 자신의 운전 습관을 고치라는 하나의 표징으로 알아들었다면, 더욱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채 운이 없다거나 다른 운전자들을 탓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많은 불행한 일은 우리의 잘못된 습관과 행동을 고쳐야 한다는 경고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자연 현상을 보고서 날씨를 예측하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알면서, 왜 일상의 사건들을 보고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모르느냐고 책망하십니다. 모든 사건에는 모난 부분을 고쳐 나가라는 암시가 있는 법입니다. 슬기로운 사람은 그러한 데에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는 한편, 어리석은 사람은 오히려 불평과 불만만 쏟아 놓습니다. |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축제와 환희의 시대> 오늘날 우리가 해마다 세고 있는 연도(서기, 西紀)의 첫출발점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한다는 것,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참으로 의미 있고 가슴 벅찬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 탄생 이전의 시대는 기다림의 시대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인류는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탄생 이전은 암흑의 시대였지만 탄생 이후는 광명의 시대입니다. 그전은 슬픔과 고통의 시대였지만 이제는 축제와 환희의 시대입니다. 이전의 시대는 죄와 죽음의 시대였지만 이제는 예수님 탄생으로 인해 구원과 생명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통곡할 필요도 없습니다. 구세주 하느님께서 우리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우리 곁에, 우리 안에 와계시며 우리 매일의 삶을 동반해주십니다. 죽는 순간까지 함께 하실 것이며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는 순간조차 우리를 지켜보실 것이며, 죽고 나서까지 확실하게 애프터서비스해주실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가까이 다가오신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과 함께 매일 매일 축제를 벌여야 할 새 시대인 것입니다. 더 이상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미래를 확실하게 책임져주실 것이니 매일 그분께 맡기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현상에 대해서는 기가 막히게 풀이해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해석(예수님으로 인한 새 세상에 관한)은 뒷전인 군중들을 향해 쓴 소리를 한 마디 던지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해석하고 풀이해야 할까요?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 시대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으로 인한 구원의 시대이자 축복의 시대입니다. 더 이상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처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그저 단순하게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하느님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것, 비천한 죄인인 우리의 발을 씻어주신 사랑의 하느님을 따라 우리도 이웃 사랑에 투신하는 것, 그저 하느님의 따뜻한 사랑의 품안에서 행복해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올바른 해석에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고통이 고통이 아닐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슬픔이 슬픔이 아닐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하느님의 위로 속에서 살기 때문에 잠시 지나가는 이 세상의 풍랑 앞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서도 눈부신 미소를 잃지 않을 것입니다. 거듭되는 불운과 실패 속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것입니다. 깊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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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다해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 맞지 않아도 되는 매 >
몇 년 전에 수단에서 선교하다가 휴가차 한국에 들어온 신부님이 공항을 통과하는데 얼마나 애를 먹었었는지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는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할 때였습니다. 저도 그 때 휴가차 한국에 들어왔었는데, 공항에서 일일이 체온을 재는 것을 통과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본의 아니게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지명을 받아 공항에서 오랜 검사를 받아야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수단에서 케냐로 나오는 비행기에는 에어컨이 없어서 그 안이 찜통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견디기 힘든 더위 속에 있다가, 케냐에서 한국으로 오는 대한항공엔 에어컨이 너무 잘 나와 비행기 안에서 그만 감기가 들어버린 것입니다. 콧물이 자꾸 나와 훌쩍거리니 승무원들이 보며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신고한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경에 하느님 나라에는 어떠한 불완전한 것도, 어떠한 더러운 것도 들어올 수 없다고 합니다(계시 21,27). 그렇게 거룩했던 세례자 요한까지도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보다도 못하다고 합니다. 이는 완전히 완전해지지 않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나라가 하느님나라라는 뜻입니다. 더러운 것은 다른 것도 더럽히고, 마치 하와가 자신의 죄를 아담에게 옮겼듯이 죄는 다른 이를 죄짓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시대의 징조를 풀이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하시며, 어떤 사람이 재판관 앞으로 향하는 장면을 이야기합니다. 즉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올 것을 알고 빨래를 걷고 널어놓은 것들을 치우는 등의 대처를 하고,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질 것을 알아 그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처럼, 자신을 고소한 사람과 재판관 앞까지 가기 전에 그와 함께 합의를 보라고 합니다. 만약 합의를 보지 못하면 결국 감옥에 갇히고 마지막 한 닢까지 갚지 않으면 절대 그곳에서 나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감옥은 마지막 한 닢을 갚을 수 있다면 나올 수 있는 감옥을 의미합니다. 즉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바로 마지막까지 해결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연옥에서 그 보속을 다 할 때까지 결코 나올 수 없으리란 해석밖에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감옥에 갇히기 싫다면, 심판관 앞까지 도달하기 전에 미리 합의를 해야 하는 것처럼, 죽기 전까지 자신의 모든 죄를 미리 깨끗이 씻고 보속을 최대한 다 해서 연옥생활을 되도록 하지 말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왜 당하지 않아도 되는 고통을 아무 대책도 없이 당해야 하겠습니까?
이태리에서 교구차로 굴리던 오래된 라노스를 폐차해야 할 때가 왔었습니다. 그 때 여러 서류들을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그 차에 관련된 모든 공납금을 다 냈다는 증서가 필요했습니다. 즉 딱지 떼여 돈을 내지 않은 것이 있어서도 안 되고, 세금이 밀린 것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으면 먼저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절대 차를 폐차시켜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하늘나라 들어가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면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완전한 것이 있다면 심판관 앞에 다다르기 전에 모든 보속을 치르는 것이 현명합니다. 왜냐하면 연옥의 고통은 그렇게 간과해버릴 간단한 고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치릴로는 이렇게 연옥의 고통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괴로움을 한데 합친 것보다 연옥의 아주 미소한 괴로움이 더 혹독합니다.”
저는 그래서 비르짓다의 7기도를 바칩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을 묵상하며, 하루에 7방울씩을 보속하는 것입니다. 성녀에게 내려주신 이 기도를 12년 동안 매일 바치면 연옥에 가지 않는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벌써 그것을 바친 지가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기복신앙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전 죽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를 많은 이에게 추천했지만, 끝까지 하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신자라고 해도 연옥의 고통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고통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하는데도 말입니다.
전대사를 받거나 죽기 직전에 병자성사와 전대사를 받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사랑의 실천이나, 기도와 희생으로 나의 잘못들을 최대한 보속하는 것도 괜찮을 것입니다. 연옥이 하늘나라를 위해 거쳐야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굳이 맞지 않아도 되는 매를 맞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리도 시대의 징조를 안다면, 대비할 줄도 아는 것이 현명하리라 믿습니다.
10월25일(금) 음9/21
聖 크리스피니아노 형제
수아송의 성 크리스피노(Crispinus)와 성 크리스피니아노(Crispinian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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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선교 활동,
밤에는 구두 수선공으로서 최선을 다헸던
프랑스 수이송의 순교자 성 크리스피누스 형제시여
님들을 기억
하는 오늘
저희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
을 보내주옵소서!...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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