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한 사람, 들돌 이현수
<그와 함께 했던 풍경과 지척에서 함께 하지 못한 풍경>
2006.4.15. 그를 처음 만났다.
부석사행 문학기차여행에 참가하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 가운데
그를 발견하기는 쉬웠다.
그는 다른 사람과는 좀 다르게
바퀴의자를 이용해 걷는다는 사실을 메일로 알려왔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다가가 수줍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같이 짝을 이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 중에는 나중에 1 대 북맨이 되는 친구도 있었다.
(아, 그 친구 다음 주에 결혼한다하는데 행복한 출발이 되기를 기원한다.)
기차가 출발하고 얼마쯤 되었을까.
시집 한 권이 나에게로 넘어왔다.
문학기행에 함께 하는 정호승 시인의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설마 나를 사랑이 넘치는 사람으로 본 것은 아니겠지.
표지를 넘기자 '정차장님과의 첫만남'이라는 글씨가 싸인펜으로 쓰여있었다.
첫만남에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여기서부터 그의 뻔뻔함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그는 안동 여행에서 드디어 바퀴의자의 이름을 얻었다.
몇 달이 지난 뒤였으니 늦은 셈이다. 관풍.
그 이름에서 그의 뻔뻔함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음을 알았다.
바퀴의자에 관풍이라는 이름이라니.
관풍은 물보라 속을 뚫고 날았다.
하지만 관풍은 날개가 없는 용마였다.
주산지를 오를 때 하늘을 날지 못했다.
그는 주산지 입구에, 주왕산 입구에 관풍과 함께 남겨졌다.
뻔뻔하게도 혼자만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는 그렇게
삭막한 나의 가슴에 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틈새로 향기를 뿜어대었다.
고향의 향기였다.
갇혀있던 과거는 그 틈새에서 살아나
다시 더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그렇게 핀 꽃들은 『황홀한 책읽기』로 군락을 이루었다.
다시 하나하나 코를 대보았다.
향기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다.
나 말고도 그 향기에 아찔한 표정을 지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는 다시 한 번 뻔뻔함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나보다.
얼마전 문학기차여행을 그만두겠다는 비보를 날렸다.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을 버려두는 것은 뻔뻔함의 극치이다.
진정 뻔뻔스럽게도 신화가 되고 싶은가보다.
책의 맨 끝에 소개된 책은 『신화의 역사』이다.
그 글에서 신화가 되어버린 선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그도 관풍도 없는 여행길에서
그의 이야기를 신화처럼 나누기를 기대하는 뻔뻔함.
그 뻔뻔함은 도무지 용납할 수가 없다.
그가 뻔뻔함을 즐긴다는 것도 용납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마음을 고쳐먹는다면 기꺼이 용서해줄 아량쯤은 나에게 있다.
그의 뻔뻔함은 사랑이고, 희망이고, 젊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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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모임을 갖고 싶다.
뻔뻔한 그의 동의는 필요없다.
성대할 필요도 없다.
그에게 시 한 수 읊어주고,
그에게 노래 하나 불러주고,
그의 노래도 들어보고,
그와 함께, 그가 하던 것처럼 서로서로
뻔뻔함의 최고봉인 책선물이라는 것도 하고 싶다.
난 일주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지리산으로, 친구에게로, 부처를 맞으러,
틈틈히 그의 뻔뻔함에 복수할 음모를 꾸며볼 작정이다.
물론 누군가의 성원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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