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2주일(창조절기 1주일, 여성선교주일). 2023년 9월 3일
루가 10:38-42. 출애 2:1-10. 로마 16:1-7
우리가 구할 좋은 몫
대한성공회에서 처음으로 교회 절기로 지키는 창조절입니다.
더하여 여성선교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창조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고 회복하는 것과 여성 선교의 의미에 대해 묵상하며 지금 우리가 구할 좋은 몫은 무엇인지를 제시된 본문을 따라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를 먼저 묵상합니다.
전통적으로 오늘 이야기는 직전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가 10:25 이하)와 대조적으로 병행하여 해석합니다.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이라는 말인데요.
천대와 멸시를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존경받던 종교인들보다 ‘이웃 사랑’을 더 잘 실천합니다. 동생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는 ‘하느님 사랑’을 실천합니다.
사마리아 사람과 사제와 레위를 대비시켰다면, 반대로 마르타와 마리아를 대조적으로 설명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실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라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지금 학자들은 두 사람을 따로 나누어서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마르타의 시중드는 행위를 무시하거나 낮은 차원의 사랑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는 성서 공부와 식탁 봉사를 대조한 것이 아니라, ‘말씀 듣기’와 ‘걱정하기’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정말로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마르타와 마리아를 ‘행동형’ 영성과 ‘묵상형’ 영성으로 나누는 것은 애초부터 잘못된 교훈입니다. 1독서에 장차 히브리인들을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지도자 모세를 살려낸 여인들 또한 하느님께서 세우신 귀한 일꾼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용기를 갖게 한 것의 원천은 바로 지혜였다는 사실입니다.
그 여인들이 믿음을 행동으로 옮겼기에 결국 지도자를 세우게 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2독서에서 우리는 겐크레아 교회의 여성 봉사자 페베에 대해 소개하는 본문을 들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여성이 바울로의 편지를 가지고 로마로 간 사람이라고 봅니다. 믿을만한 메신저였다는 것이죠. 바울로는 페베를 ‘봉사자’ 즉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 라고 표현합니다.
사도행전의 일곱 보조자와 같이 교회에서는 모든 사역을 담당하는 일꾼 중의 일꾼을 말합니다.
겐크레아 교회의 지도자이고 바울로의 후원자인 페베가 복음의 정수가 담긴 바울로의 편지(로마서)를 들고 가서 읽어주고 해설해 줍니다. 그녀를 ‘성도의 예절을 갖추어 영접하라’고 부탁합니다. 초대교회부터 교회는 여성 지도자가 존재하였고 그 역할과 비중 또한 매우 컸습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도 여성 교우의 헌신으로 세워졌고 굳건히 서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기 모세를 살리기 위한 용감한 행동과 교회에 대한 헌신이 곧 마리아와 마르타의 지혜와 실천이 어우러졌을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마음에 품게 됩니다.
사제로서의 저의 기도 제목도 오늘 본문으로 인해 생겼습니다.
저는 항상 기도하고 공부하는 사제로 살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기도를 마냥 앉아서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공부가 그저 책만 파고 들어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기도와 공부는 공동체를 위해 시중드는 일과 말씀을 듣는 행위의 융합입니다.
기도하고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고백은 마르타처럼 헌신하되 생각이 많아 불평하지 말고, 마리아처럼 말씀을 듣되 이해한 만큼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으로 살게 해 달라는 다짐입니다.
우리는 아주 자주 둘 중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 하며 선택하려 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라는 우리 안의 두 본성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기에 결국 이로 인해 안심 혹은 좌절의 특이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실천의 영성과 기도의 영성이 어우러지는 그리스도인이 성숙함을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실천적 지혜’ (프로네시스, φρόνησις)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혜 즉 소피아(sophia)와는 구별되는 개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실천적 지혜는 성찰과 숙고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흔히 미덕이라고 말하는 용기나 절제 등을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할지를 곰곰이 먼저 따져보는 숙고를 잘하는 사람이 바로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지식과 경험 또한 필수적입니다.
요컨대 실천적 지혜를 가진 사람은,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숙고를 통해,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대안을 선택하고 그것을 행동에 옮긴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중용’의 길을 걷는다 했습니다.
어느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잡고 사는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여성 디아코노스 페베, 모세의 누이 미리암, 성서에 거명된 여성들의 행동을 숙고하고 깊이 새기며 실천적 지혜를 간구하자는 말씀입니다.
마르타의 헌신과 마리아의 영성이 잘 조화를 이루는 실천적 지혜를 함께 간구합니다.
오늘부터 10월 첫 주일까지 5주간 지키는 이 창조절기에 우리 생명의 근원을 성찰합니다.
하느님께서 지으신 이 세계는 원래부터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자는 날입니다.
1989년 동방교회에서부터 시작된 이 절기는 이제 전 세계의 교회가 함께 바치는 중요한 절기가 되었습니다. 절기가 그냥 절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작은 실천이라도 지혜를 모아 함께 하도록 노력하는 기간입니다.
당장 현실로 체감하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 각자와 교회 공동체가 참회하고 고백할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성서에서 전하는 생명을 살리는 삶, 생태적 신앙을 위해 함께 기도합니다.
기도와 숙고 가운데 옳은 행동이 나오도록 우리가 구할 몫은 실천적 지혜임을 기억합니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기도와 실천이 우리를 조금 더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마음을 모아 함께 지혜의 길을 걷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