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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 아머드 알리
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도 한국인의 이름이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리나라 언론치고 노벨상에 대해 무심한 곳은 별로 없다. 올해도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을 순차적으로 발표하였고, 마지막으로 경제학상을 남겨두고 있다. 수상자의 이름과 업적은 10월 이 즈음 언론의 단골메뉴이다.
오랜 세월 유명세를 탄 노벨상은 사람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상으로 인식된다. 어쩌면 상금의 크기가 상의 무게를 좌우하는 분위기 덕분이다. 그러기에 매년 수상 후보자들에 대한 품평은 두고두고 입길에 오른다. 특히 문학상과 평화상은 유난히 주목을 받아왔다. 문학상의 경우가 당장 출판시장으로 통한다는 이유라면, 평화상은 국제 이슈의 풍향계를 짐작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벨평화상 수상의 향방은 항상 정치적이다.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자로 가장 유력했던 인물은 겨우 16세에 불과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크레타 툰베리가 손꼽혔다. 그만큼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가 지구적 당면과제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환경문제로 수상한 사람은 12년 전 앨 고어 전 미국부통령이었다. 마침내 때가 무르익었다고 본 것일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생소한 인물이었다. 아비 아머드 알리(Abiy Ahmed Ali)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 위치한 에티오피아의 총리이다. 그는 43세로 아프리카 55개국에서 최연소 통치자이지만, 담대한 열정과 용기로 이웃나라 에리트레아와 국경 분쟁 등 아프리카 동북부지역의 현안을 단박에 해결하였다. 평화상을 선정하는 노르웨이 노벨위원회가 밝힌 대로 그 젊은 정치인은 ‘결정적이고 진취적인 결단’을 보여줬다.
인상적인 것은 1936년 에티오피아를 무력 침공하여 5년간 식민 통치를 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의 반응이었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은 “에티오피아와 전 아프리카 대륙에 매우 뜻 깊은 오늘 이탈리아의 모든 국민을 대신해 따뜻한 축하의 인사를 건넨다”면서, 이탈리아는 앞으로도 평화와 화해를 향한 에티오피아의 행동을 계속 지지할 것을 약속하였다.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의 노벨상 수상은 참으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는 에티오피아 좌파정치세력을 대표하지만, 총리가 된 후 나라 안팎의 분쟁을 단시간 안에 극복하고, 통합시켜냈다. 총리 직에 오른 지 다섯 달 만에 에리트레아의 아페웨르키 대통령과 만나 평화협정에 서명하였다. 두 나라는 외교관계의 복원과 항공편 운항을 즉각 재개하였고 적대 관계를 공식적으로 끝냈다.
사실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의 관계는 쉽게 화해할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에티오피아는 1952년에 에리트레아를 합병하였고, 이에 맞서 에리트레아는 1961년부터 30년 동안 독립투쟁을 벌였다. 그 와중에 에티오피아는 1974년부터 17년 간 내전을 겪기도 하였다. 에티오피아의 국민투표를 통해 1993년 에리트레아는 독립했지만, 앙숙인 두 나라는 얼마 전만 해도 불확실한 국경선 때문에 전면전(1998-2000)을 겪었다.
예가체프는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로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기호품이지만, 그렇다고 에티오피아란 나라에 대한 관심은 별개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만성적 분쟁국이 차지한 노벨평화상 덕분에 아비 아머드 알리 총리의 평화정책은 졸지에 에티오피아의 대표 브랜드로 눈부시게 부상하고 있다. 축하할만한 사건이고, 부러워할만한 토픽이다.
에티오피아는 본래 십자가로 유명한 나라이다. 에티오피아정교회 십자가는 곱틱십자가와 함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오죽하면 로마의 성물 전시장에 에티오피아 십자가 종류에 대한 카탈로그가 따로 비치될 정도이다. 이 나라의 십자가는 ‘빛 십자가’라고 불린다. 헬라어 이름 에티오피아에 담긴 ‘그을은 얼굴’이란 의미에 정녕 빛이 비췬 셈일까?
십자가만 관심을 끄는 것이 아니다. 해발 3천 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랄리벨라의 암굴교회 11곳은 낮에는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밤에는 천사들이 만들었다고 여겨질 만큼 힘든 과정을 겪었다고 한다. 암굴교회는 위에서 볼 때 건물 모양이 전체적으로 십자 기둥 형태이다. 그곳에서 생산한 둥근 눈의 이콘은 에티오피아의 얼굴을 닮아 순박하다. 점점 한국인의 경건한 발걸음이 그곳으로 가까이 느껴진다.
그 해의 평화상으로 누가 어떤 인물을 추천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최 측에서는 향후 50년 동안 밀봉하여 보관 후 공개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그럼에도 누가 누구를 천거했을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많다. 과연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상 후보자로 밀었을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2020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꼭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 바란다. 그가 한반도 비핵화와 군사력 감축을 통해 적대와 갈등을 줄이고, 평화협정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행여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극적인 화해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일본, 중국, 러시아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평화통일을 향한 한반도의 단일행동을 적극 응원한다면 아베, 시진핑, 푸틴까지 묶어서 공동수상하는 일에 넉넉히 한 표를 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