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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산행기
○ 제주행
제주 한라산 산행을 신청하고 나니 벌써 그 곳 특유의 땅 내음이 심장에 전해올 듯하다. 서울 건축사 등산동호회에서는 3월 정기산행으로 15년만에 개방된 한라산 돈네코 코스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거문 오름 등을 돌아보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7시에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서 일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는 주말 여행이었다.
IMF 이후에는 일정이 조금 길거나 경비가 많이 드는 여행을 삼가해 왔다. 그러고 보니 제주도를 언제 다녀왔는지 기억도 가물거린다. 마지막으로 다녀 온 것은 새 밀레니엄이 되기 전 오름을 좋아하는 김호석 화백 등과 돌아본 때인 것 같다.
나에게 전해오는 제주도의 인상은 특별한 땅내음이다. 그 땅은 인간이 때로 거친 자연 안에서 뿌리 내리고 억척스레 이끌어가는 생의 몸부림 그대로 느껴온다. 그래서 나에게 제주도는 관광지가 아니다. 그 장엄한 자연과 삶의 어우러짐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아름다움을 대하는 곳이다. 그 경관 또한 특별하다. 망망대해 가운데 솟아나 있는 입지에 의해 그 산과 물의 어우러짐의 감각은 더욱더 광활해진다. 그리고 섬이지만 육지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출발 당일이 되었다. 평일에 일을 보고 가려니 출발시간에 제대로 도착하는 것이 큰 숙제 같았다. 몇일을 쉰다 생각하니 그 만큼 일을 더 하고 가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져 바삐 현장을 다녀오다 보니 시간이 빠듯해졌다. 그래서 산행 일정 중 필요한 물건들을 더 챙겨야 할 것 같은데 그럴 시간이 없어 급히 길을 나섰다.
전철역으로 나가 급행을 타고 보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동인천역에서 연안부두 가는 12번 버스를 갈아 타고 여객터미널 정류장에 내렸다. 바로 앞 국내 여객선 터미널 좌측에 국제선 터미널이 보였다. 몇년전 그 곳에서 서해 바다를 거슬러 중국을 갔던 기억이 났다. 그 때 먼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에 여행하는 것이 퍽 설레고 긴장도 되었었다. 그런데 외국은 아니지만 이번에 가는 제주도도 항해 거리가 멀어 약간의 긴장감이 돌았다.
항해는 물위에 머무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 동안 평소와 달리 내가 디디고 설 바탕이 불안정해진다. 지구는 육지보다 훨씬 너른 면적이 물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바다는 디딜 수 없고 건물을 지을 수도 없는 공간이다. 그리고 항해의 목적지에 닿으면서 다시 안정된 공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배가 정박해 있는 부둣가 너머로 노을진 바다가 보였다. 그 항구 풍경을 찍고 싶었으나 어느새 어둑해져서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부두에 내려 건너가니 입구에서 이 회장이 마중해 주었다. 수속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나 바로 표를 받아 탈 수 있었다. 개찰구 안으로 들어서 걸어 나가니 승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고 거대한 배가 우측에 서 있었다. 그 배가 일행이 타고 갈 배였다. 줄을 서다 만난 몇몇 일행과 인사를 나누었다. 객실로 오르는 계단이 늘여진 골목길처럼 걸려 있는 계단으로 사람들이 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일기예보에 파도가 높아진다고 했는데 6천 500톤이나 되는 거대한 배여서 끄떡없을 듯 보였다.
기내로 올라 승선표에 적힌 방을 찾아가니 31명의 인원이 들어서기조차 어려운 비좁은 방이어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여성 일행분들의 방을 따로 마련하고 일부는 선내 통로등에 자리를 잡아 그런데로 밤을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행이 다 모이자 박기호 재무가 바로 회에서 준비한 술과 족발을 바닥에 펼쳐 놓았다. 나는 조금 먹다 뒤로 물러서 들어올 때 보이던 부두 풍경을 스케치 했다.
잠시 후 식당에 가서 저녘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보니 몇 명이 방 한쪽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 밖에 배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정박해 있을 때 전혀 요동할 것 같지 않던 거대한 배가 물살이 흔드는대로 맥없이 흔들거렸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여수에서 부산까지 배를 타고 가다 멀미를 하고 힘이 쭉 빠졌던 일이 있었다. 그 후로 배멀미를 가장 두렵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배의 요동이 심해져 그런 일이 생길까봐 조심스러웠다.
정원이 950명이나 되는 배여서 배 안은 방이나 통로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그리고 요금이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수준을 맞추다보니 배안 분위기가 조금 남루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먼 항해를 더 지루할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깜깜한 바다를 떠가는 배 안은 침잠한 분위기가 되었다. 승객들의 그런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이벤트 프로그램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방송해서 팔씨름대회와 불꽃놀이 시간을 안내했다.
배가 더 흔들리고 어지러워 방바닥에 누웠다. 방송에서 9시 20분부터 갑판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다. 그냥 있으려다 선상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의 느낌이 어떤지 보려고 갑판으로 나가니 하늘에 별이 총총해 보였다.
사회자가 분위기를 고조 시키려고 “여행을 떠나요”를 열창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섯부터 카운트 다운을 한 후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총구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사된 물체가 하늘 높이 날아가 갖가지 모양을 그리며 터져 황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쏘아대는 불꽃이 더 격렬해지고 관중의 환호성은 높아갔다. 그리고 정점에 이르러 마쳤다. 그 불꽃놀이를 보느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갑판에 서 있다 보니 온 몸이 싸늘하게 느껴져 객실로 돌아왔다. 하지만 실내로 들어오니 밖에 있을 때보다 배의 흔들거림이 크게 느껴져 바닥에 누워 잡을 청했다.
부시럭 소리에 새벽잠을 깨었다. 다행히 배의 흔들림이 가라앉아 있어서. 방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목포 앞바다를 가고 있었다. 갑판에 나갔다. 주변을 돌아보았으나 뭍에서 새나오던 불빛도 없어서 맹숭해 보였다. 그 사이 서해 고속도로로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 왔으면 휠씬 빨리 닿았을 것 같았다.
하늘엔 여전히 깜깜한 밤에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불꽃놀이를 할 때 보이던 붇두칠성과 카시오페아 별자리 위치가 그 사이 바뀌어 있었다. 다시 수면 너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 인근 어촌에서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은 60~70년대처럼 여전히 가난한 모습일 것처럼 느껴졌다. 정적의 깜깜한 밤에 우리가 탄 배가 큰 물살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직 제주도까지는 많은 거리가 남아 있었다. 세면을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3시 35분 경이었다.
밧데리 충전을 위해 다시 복도로 나왔다. 사람들이 복도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자고 있었다. 잠시 여행이라 모두 아무렇지 않게 지내고 있었다. 한분이 깨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착 시간이 9시는 되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자리를 펴고 담요를 덮고 있으면서 방보다 편하다고 했다. 옆 여자분이 시간을 물으니 4시 24분이라고 했다. 목포에서 제주까지는 4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다시 갑판으로 나가니 바다내음이 났다. 배에서 나오는 기름 냄새도 섞여 있었다. 물은 맑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별이 총총해 보여 일출도 볼 수 잇을 것 같았다. 어촌에서 밝혀진 불빛은 그리움을 띠고 있는 듯 했다. 항로가 진도 쪽으로 항로가 이어지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잠이 들지 않은채 모두 기상하기를 기다렸다.
일출을 의식해 다시 갑판으로 나갔다. 동쪽 하늘에 조각달이 걸려 있었다. 어스름하게 조금씩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해가 뜨면 오랫만에 심해의 바다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다 표정이 살아나면 그 내음도 더 크게 느껴질 것 같았다.
싸늘한 새벽 공기에 다른 승객들도 일출을 보기 위해 갑판으로 나와 있었다. 일출을 기대한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배가 두런두런 해졌다. 일출 예정 시간은 6시 49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되어도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 수평선에 구름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조금 실망한 기분으로 주변을 바라보다 있다 잠시 후 다시 해 뜨는 방행을 바라보니 구름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신기한 것을 발견한 듯 그리고 실망한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에서 급한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었다.
배가 목포와 제주도 사이 추자도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배가 가는 위치가 나타나 있는 네비게이트 화면에는 제주도에 가까이 와 있는데 안개 때문에 시야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제주도가 가까이 다가와 보였다.
등대와 둑이 보였다. 다시 육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었다.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배가 서서히 항구로 접어들면서 배 안이 분주해졌다. 승객들이 짐을 챙겨 줄을 섰지만 정박할 때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다. 부두가 인부들이 로프를 던져 걸고 크레인으로 잡아 당겼다. 그렇게 정박할 때의 작업은 원시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계단이 내려지고 차가 오르내리는 램프웨이도 내렸다.
배가 항구에 닿고 보니 그 시간 이후의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다시 일었다. 연안부두에서 나와 대기하던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이동춘 제주 건축사회 회장과 강영준 등산 동호회 회장 그리고 김경복 회원이 반갑게 마중하며 인사를 했다. 이동춘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난 후 서울에 볼 일이 있다며 내렸다. 그리고 나머지 두 분은 우리와 함께 한라산 산행을 하기로 했다.
인근 식당으로 가서 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한라산을 오르기 위해 어리목으로 갔다. 원래 예정은 돈네코에서 시작해 어리목으로 내려 올 예정이었지만 어리목이 가는 길목에 있어 시간이 단축을 위해 거기서 산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 15년 만에 개방된 한라산 돈네코 코스
어리목 주차장에 내리니 날씨가 몹시 청명했다. 주변을 돌아보니 며칠 전 내린 눈이 두텁게 덮여 한겨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눈이 내리기 전만해도 남쪽의 봄소식을 전하며 예년보다 개화가 빠를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들뜨게 봄 채비를 하던 계절 시계가 다시 뒤로 감겨진 듯 침잠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산 표면의 차가운 표정과 달리 대기에는 여전히 봄기운이 베여 있었다. 그리고 그 복합된 기운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산행을 시작하는 어리목의 표고가 표지석에 973m로 새겨져 있었다. 입구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완만한 입구 오름길로 들어섰다. 어느새 사람 발자욱으로 다져진 길이 더운 공기에 눈이 녹아 질펀해지고 있었다. 길을 가로 지르는 계곡에는 눈이 녹아 개울로 물줄기가 되어 흘러 내렸다. 하지만 길이 아닌 산에 쌓인 눈은 더디 녹아서 앙상하게 벌거벗은 키 큰 나무들을 더 앙상하게 보이게 했다.
완만하게 굽이친 길을 따라 지리산의 더 안 쪽 품새로 점차 나아가다 긴 평원지대인 가제비 동산에 들어섰다. 주변으로 목초지처럼 완만한 지형이 너르게 펼쳐 있어 산을 오르는 느낌마저 잘 들지 않았다.
좀더 너른 평원지대가 보였다. 높은 지대지만 완만한 목초지 평원에 있는 것처럼 호젓함을 자아냈다. 앞 쪽 다른 일행이 멈춰서 완호성을 질러 바라보니 그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까마귀가 묘기 부리듯 공중에서 부리로 받아먹었다. 길 가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시야가 트인 저쪽에 여러개의 오름이 있었다. 한라산이 생길 때 여기저기 팟죽 끓듯 분화구가 터지며 그 오름들이 형성된 것 같았다.
잠시 멈춰 그 풍경을 스케치 했다. 봉우리가 솟은 정상부가 있지만 그 같은 한라산은 때로 거대한 언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기야 제주도가 밑부리부터 치면 한라산 전체가 한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 보면 한라산이 곧 제주도인 샘이다. 그리고 시가지와 해변은 산의 밑자락 부분이다. 다시 오르다 보니 좌측의 조망 장소를 돌아나오는 일행과 마주쳤다. 만세동산이었다. 그 곳에 올라 바라보니 백록담 정상부가 보였다.
다시 느리고 완만한 길을 걸어 12시 55분 윗새 오름 휴게소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이 도시락 식사를 하고 있었다. 잠시후 15분후 통제 하겠다고 안내 방송을 하여 서둘러 자리를 정리하고 1시 20분 돈네코 가는 길로 들어섰다.
바로 앞에 한라산 정상 봉우리가 보였다. 조금 걸어가니 갈림길이 나왔다. 거기서 직진하면 백록담으로 올라갈 수 있지만 아직 그 길은 열리지 않았다. 정상부 가까이서 정상을 들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쉬웠다. 하지만 전에 올라 온 때 보았던 모습을 상상하며 지났다. 제주 강회장이 전에 이 길로 올라간 적이 있는데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그 앞을 지나 우측으로 지나갔다. 등산로가 남쪽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어 계속해서 남벽을 조망하며 지나게 되었다.
맞은편에서 오다 만난분이 남벽 갈림길에서 보면 풍광이 가장 멋지게 보인다고 했다. 계속 바라보면서 가는 동안 남벽의 형세가 조금씩 달리 보였다. 나무 데크로 된 길을 가다가 계단 부근에서 다시 암벽을 보니 균형감이 좋아 보여 잠시 멈춰서 수채화를 그렸다.
오래전에 한라산을 다녀갔지만 어쩐지 백록담만을 보고 간 것처럼 기억되어 있다. 마치 한라산은 인솔자 따라서 백록담을 다녀오는 것 같이 인식했다. 하지만 오늘은 긴 거리를 걸으며 제대로 한라산의 면모를 대하게 된 날 같았다. 몇 년 전부터 산을 자주 다닌 것도 산을 더 가까이 느끼게 되는 요인이 된 같았다.
스케치를 마치고 내림길을 걸었다. 오를때보다 더 완만하여 마치 평원을 걷는 것 같았다. 마치 너른 구릉지에 온 것 같았다. 고산대여서 큰 나무 숲이 없었다. 다만 구상 나무 등 고산지대 나무들과 산죽 등이 보였다.
스케치를 하는 사이 앞서간 일행이 멀리 갔는지 보이지 않다가 한참을 빠른 걸음으로 뒤따라가다 보니 저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합류해 정상을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제주 분들도 드물게 청명한 날씨라며 일행이 운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리저리 휘돌아가는 길이 완만하게 이어졌다. 저 아래 멀리 바다가 보였다. 그 곳까지 대기에 봄기운이 가득 산란했다.
잠시 후 살채기도에서 숲길로 들어섰다. 숲길도 여전히 완만했다. 돈네코까지 그렇게 완만한 지형일 듯 했다. 남쪽 경사면이지만 주변에는 어리목에서 올라올 때처럼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따뜻한 공기에 녹아 점차 질펀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해발 1000m 아래부터는 눈이 잔설로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주변에 숲을 이룬 키 큰 나무들의 앙상한 가지가 꿈틀거리듯 하늘로 뻗어 있었다.
한참 내려가다 보니 적송 지대 표지가 보였다. 백두대간 종주 때 삼척 인근을 지나며 큰 적송지대를 보았는데 난람대인 이곳에서 뜻밖이라 여기며 주변을 돌아보니 드문드문 큰 적송이 보였다. 거기서 지나온 남벽 분기점으로부터 4.43km 내려온 지점이고 돈네코까지는 2.57km가 남아 있었다. 다시 완만한 길을 내려 왔다. 그 아래로는 눈이 다 녹고 없었다.
가다보니 물웅덩이가 나왔다. 까마귀가 물을 마시려는 듯 물가로 다가가고 있었다. 옆 표지에 그 지점이 썩은 물통이라고 쓰여 있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시 밀림 입구라고 쓰인 곳을 지났다. 거기서 입구가 멀지 않은 듯 했다. 표지에는 0.8km로 쓰여 있었다. 길이 더욱 완만해졌다. 너른 초록색 굴거리 나무 잎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그런 활엽 상록수 나무들이 숲에 생기를 느껴지게 했다. 나오다 보니 돈네코 코스 개방을 축하하는 프랭카드가 걸려 있었다. 조금 더 내려오니 앞이 원하게 트여 보였다. 서귀포 시내가 보이고 그 앞에 바다도 보였다.
관리소에 도착해 자료를 받고 뒤에 오는 일행을 기다렸다. 그 관리소 건물은 돈네코 코스를 개방하며 새로 지은 듯 보였다. 박 재무가 뒤에 일행이 다 도착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려야 될 것 같다고 했다. 굽은 길을 돌아 내려왔다. 나오는 입구에 일정한 간격으로 밭뚝처럼 돌담을 둘러쳐 놓은 양씨 묘소가 보였다. 제주도에는 밭이나 묘소 등에 그처럼 해 논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밭을 일구나 나온 돌을 치우기도 하고 들녘에 불이 났을 때 다음 구획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6시 돈네코 입구에 도착했다. 돈네코의 지명은 맷돼지가 물을 찾아 내려오는 내(川)라는 의미로 붙여진 것인데 이 곳 지명은 서귀포시 상예동이다. 개인적으로 산행하는 사람들의 손님으로 모시려는 택시가 너댓대 기다리고 있지만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버스의 단체 일행인 것을 알고 단념하는 표정을 지었다. 거기서 우리가 바로 앞에서 지나온 남벽이 멀리 보였다.
일행이 다 도착해 대기하던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행했다. 지나다 수석 박물관을 들렀다. 그 곳에서는 산삼을 배양하는 곳도 있었다. 강사가 설명을 하다 앞에 놓인 산삼 샘플을 박기현 전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회장에게 몽땅 주며 잘 씹어 드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크게 효험이 나타날 거라고 했다. 특히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이니 주량을 스스로 자제하라고 했다. 일행이 부러운 듯 ‘와’ 하고 함성 소리를 냈다.
그곳을 나와 서귀포시 시내로 가는 길에 창 우측으로 한라산 전체의 거대한 윤곽이 보였다. 우리가 지나는 길도 그 뿌리로 느껴져 다시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라산은 바다 가운데 거대하게 솟아 놀라 육지를 끌어 올린 모습으로 완만하게 퍼져 있다. 가까이에는 상록수나 가로수가 있고 그 다음으로 다른 능선이 겹쳐 있어 정상이 더 멀게 보였다. 희멀겋게 보이는 정상부가 마치 전설의 고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늘 다녀 온 곳이 더 신비롭게 여겨졌다. 8시 숙소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하루 여정을 마쳤다.
○ 거문오름
더운 방에서 자고 나니 몸이 가뿐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새로운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어제 그토록 청명했건만 어두운 구름이 끼어 있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차가 가는 방향에서 우측에 보이는 한라산이 구름에 덮여 있었다.
97번 국도로 이동해 가다 거문 오름에 도착했다. 거문 오름은 해발 456m 둘레 4551m 면적 641,005m2 이며 2007년 유네스코 세게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탐방안내소 도착하자 그 곳 책임자로 보이는 분이 세계자연유산에 대한 설명과 탐방시 주의할 사항을 각별히 전한 다음 해설사 한 분을 동행해 입장시켰다.
거문오름 탐방코스는 탐방소로부터 용암 협곡, 알오름 전망대, 숫가마터, 화산탄, 선흘 수직 동굴, 탐방안내소의 내부 코스와 능선 9개 봉우리가 이어진 능선코스를 합해 8km의 탐방로가 이어지는데 3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9시에서 12시 30분 간격으로 입장하며 1일 3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그리고 매주 화요일은 자연 휴식의 날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에서 이번 일정에 참가 신청을 할 때 왜 거문오름만 세계유산이 되었는지 궁금했었다. 그런데 직접 와서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니 그 까닭이 이해되었다. 거문 오름이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데는 겉 표면의 식생보다 만장굴 등 이 오름을 모태로 생성된 용암 동굴계의 전 생성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계자연유산 지정은 1972년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 유산및 자연 유산 보호협약”에 따라 정해진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소중한 문화및 자연 유산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하는 것이다. 2009년말 자료에 의하면 148개국 890 곳이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이중 689곳이 문화유산, 176곳이 자연유산, 25곳이 복합유산이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종묘, 해인사 대장경판과 장경판고, 불국사와 석굴암, 창덕궁, 수원화성,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 화순 및 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 왕릉이 있다. 그리고 이 곳 같은 자연 유산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지정된 세계자연유산은 모두 제주에 있다. 2007년 한라산 천연보호구역과 성산 일출봉, 그리고 거문오름 용암동굴계가 일괄하여 세계 자연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거문 오름 용암 동굴계는 거문오름과 뱅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을 포함하고 있는데 앞으로 계속해서 더 많은 동굴이 발견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거문오름은 예로부터 방하 오름으로 불리다 후에 검은 오름으로 불렸는데 돌과 흙이 유난히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는 데서 유래 하였다. 용암동굴은 화산 분출시 나온 용암이 흘러가면서 먼저 굳어진 용암 표면과 아직 유동적인 그 내부의 액체 용암이 빠져나가 공동부로 남은 곳이다. 거문 오름 용암 동굴계는 오름의 생성으로부터 분출된 용암의 흐름과 지형적 흐름과 체계를 보여준다. 이 거문 동굴들은 규모가 크며 생성 시기가 매우 오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굴의 내부 구조나 각종의 많은 동굴 생성물들이 보존되고 있고 그 경관이 뛰어나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다 동행한 임성희 해설사가 데크 길에 잠시 멈춰 바닥에 널려 있는 이끼긴 돌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했다. 바닥에 지표수가 스며들어 지하수로 용출되기 때문에 음료수 등 지질을 오염 시키는 물질을 버려선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가다 무너진 용암 협곡을 가리키며 그를 통해 동굴의 생성과정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작은 능선을 넘어서니 안쪽에 밀림이 보였다. 하지만 안개가 끼어 시야가 멀리 트이지 않고 어디로 이동하는 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거문 오름이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오름의 밑바닥 지점으로 내려가니 오래전 원주민이 살았던 삶터가 있었다. 화전민들의 삶터흔적인데 인근에는 숯가마터도 있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했던 병영터와 군수 기지 병참로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역사의 아픔을 뒤돌아보게 한다.
거문 오름은 그만의 지질을 바탕으로 특이한 식생이 발달되어 있다. 돌아보다 보니 바위틈에서 더운 바람이 나오는 곳도 있는데 그런 환경으로 난대 온대 식물 지방 식물이 공존한다. 그처럼 겨울에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데도 눈이 잘 녹지 않는다.
곶자왈은 돌무더기에 숲이 생성된 곳이다. 주변에 흙들이 없다보니 돌 사이에 나무가 자란다. 하지만 공급 조건이 부족해서 나무가 오래 살지 못한다. 그리고 그만의 특이한 식생 상태를 보인다.
거문오름에는 식나무가 많은데 전체 협곡 수림의 80% 정도를 차지한다. 그 나무는 사철나무로서 열매가 가을에 초록색으로 맺혀 겨울에 빨갛게 익는다. 산 능선을 돌면 주변의 오름 군을 볼 수 있는데 안개가 끼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능선길을 걷다보니 봉우리마다 “멀리 흘러온 용이 방향을 바꾸어 산속으로 숨은 형국” “누운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희롱하는 형국” 등 나름대로 그 지형에 부합되게 용과 관련된 설명을 써 놓았다. 능선길 마지막 지점의 1봉 전망대에도 주변 풍광 사진을 설치해 놓았지만 여전히 안개가 짙어 시야가 열리지 않았다.
아쉬움을 느끼며 숲길을 걸어나오니 바로 그 곳이 들어가던 길과 만나는 길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일행이 지나는 탐방로는 태극을 닮았다 하여 태극로로 불린다.탐방을 마치고 나오다 보니 안개가 걷히며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입구의 삼나무 숲은 안의 비밀을 간작하려는 듯 감싸고 있었다.
○ 올레 2코스
점심을 먹고 올레 2코스 섭지코지로 갔다. 출발 때 나눠준 일정표에는 4시간 코스로 적혀 있는데 이동이 지체되어 1시간 동안 돌아보라고 했다. 차에서 내린 곳은 근래 지은 휘닉스 아일랜드 앞이었다. 서울에서 이번 행사에 참가할 때 그 안에 안도 타다오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건물을 함께 보고 오려고 이번 여행을 맡은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이번 일정에 올래길이 포함되어 있는 것도 신청 이유였다. 그동안 올래길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그 것이 실제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어서 실제 한번 접해보고 싶었다. 그 말에서 전에 와 보았던 제주도 풍경과 다른 신비한 모습이 연상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해안이 조망되었다. 좌측에는 일출봉이 바로 앞에 보이고 우측으로 해안선이 바다를 휘감으며 펼쳐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풍력 발전기가 대여섯기 서 있었다. 원사장이 그 곳을 가리키며 올레길 코스라고 하며 한 시간 동안 자유롭게 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았다. 우선 시간상 건성으로 접할 수 밖에 없게 된 상황이었다. 정말 삶이 베어나는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바라보이는 풍광은 그저 전부터 보아온 해변 풍경이었다. 해안에 닿았다는 것 외에 특별히 이름 붙일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일행은 해안길을 따라 좌측으로 바다 풍광을 즐기며 걸었다. 가다가 잠시 멈춰 사진 촬영을 하기도 했다. 나는 해안길을 걷다 출발전 생각했던 건물들을 찾아보기 휘닉스 아일랜드 안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 길을 걷다보니 저쪽에서 해녀 한분이 잠수복차림에 도구를 등에 짊어진 완벽한 복장을 한 채 걸어오고 있었다. 그 곳을 삶터로 일터를 오가는 진짜 올레길의 모습이었다. 뜻 밖에 그 민속적인 모습을 접한 것이 반가워 사진을 찍으려 하니 저쪽에서 먼저 “사진 찍어 뭐 하려고” 하며 예기를 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셔터를 눌렀는데 잘 나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아스팔트 길, 우측에는 휘닉스 파크라는 호화 휴양시설이 지어져 있다. 그래서 해녀가 낯선 곳을 지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씁스르하게 느껴졌다. 올레길은 일터로부터의 귀가의 길이다. 바다에 나가 일을 하다 하루해가 저물 때 가족이 걱정할 것을 염려하면서 서둘러 귀가하던 길이다. 또 농토에서 일을 하다 귀가하던 삶의 길이다. 자연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그 삶터에 깃든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느끼던 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올레길이라는 상표를 붙여 삶과 무관한 사람들이 관광의 대상으로만 보려 할 것 같았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개발 지역은 도시에 한정된 듯 했다. 그 도시와 자연은 대비적이었다. 그러니 이제 인공의 손길은 도시에 머물러 있지 않다. 자연에 상품처럼 이름을 붙이고 그것을 상업화하고 있다. 그로써 그 대상이 삶터의 진솔함과 숭고함이 아닌 관광지로 인식되게 된다. 그리고 돈을 내고 여행을 신청한 사람들은 아깝지 않게 볼거리를 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본질과 왜곡되어 가는 것이 안타깝게 여겨진다.
유리 피라미드처럼 생긴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건물은 멀리서부터 눈에 띠어 바로 찾아갔는데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물은 보이지 않아서 너른 단지내를 이리저리 걷다가 해변가에 들쳐 있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오기전 이 곳을 소개한 사이트를 통해 확인한 모습이었는데 건축적으로 그리 명징해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 조성된 지니어스 로사이는 안도 타다오가 그동안 해 온 대표작들에 쓰인 언어들이 복합적으로 구사된 모습이었다.
그 곳으로 다가가며 보니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그곳이 바로 성산 일출봉과 유채밭이 어우러져 제주도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인상 지워진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명소의 땅을 사업체에서 구입하여 휘닉스 아일랜드를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원래의 자연 모습이 이 시설을 건설하면서 망가졌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원래의 땅의 체취를 보전하면서 개발한 모습에 위안을 삼고자 했다. 그 자연을 보존한 것이 이 곳 가치를 높인 결과가 되었을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가보니 타고 온 차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전 안쪽으로 이동한 것이 아닌가 하고 차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에게 부탁을 하여 이동하다 돌아나오는 버스를 만나 건너 탔다. 일행이 그 쪽으로 나올 줄 알고 안에서 기다리다 오는 중이라고 했다.
잠시후 일행이 다 모여 차를 타고 저녘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도착한 식당 앞에 도착해 내리니 바로 앞에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 보여 반가웠다. 흰 백사장에 바다는 빛깔이 보드라운 에머럴드 빛을 띠고 있었다. 식사 도중에도 그 풍광이 어둠에 묻힐까봐 걱정이 되어 식사를 일찍 마치고 해안을 걸으며 조용히 바다의 숨소리를 들었다.
파도가 일렁인 물결이 스며들듯 부서졌다. 파도에 밀려온 물살이 희고 고운 모래 위로 퍼지자 윤기가 번지르 해졌다. 그렇게 바닷내음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 것도 퍽 오랜만이었다. 옆 방파제에서는 낚시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곳으로 가까이 가 보니 바다가 더 깊은 물빛을 띠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일행들도 잠시 그 바다를 바라보다 올라타고 차가 제주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그 이동중에도 드문드문 바다가 보였다.
공항에서 수속을 하고 7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진항공사에서 운행하는 비행기인데 메이저 항공사에 비해 요금이 저렴하다고 했다. 그리고 근무복도 활동적인 청바지 차림이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옆좌석에 앉으신 만화가와 예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도착 방송을 했다. 그 분은 술로 고생한 후 술 끊는 책을 썼다고 했다. 배로 올 때는 13시간이 결렸지만 비행기를 타고 오니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짐을 찾은 후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을 향해 흩어졌다.
제주도
2010. 3. 14
덩치 큰 몸이
시원도 모를 망망대해에 떠서
늘 그리움을 안고 산다.
그를 달래듯
유채꽃이 바닷바람에 살랑이고
먼 바다에서
싫컷 실려온
비릿한 공기가
삶 내음과 범벅이 되고
시리게 푸른 하늘은
바다에 닿아
에머럴드 빛깔이 된다.
그래도 섬은
먼먼 친정집처럼
뭍이 가끔 그리워진다.
첫댓글 글솜씨 또한 그림솜씨 또한 대단합니다. 잘보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ㄳ 합니다'''^^
사모님과 함께 가장 즐거운 여행이 되신 듯 합니다. 늘 안전하고 즐거운 산행 되시기 바랍니다.
몸으로 한번 여행하고 마음으로 또 한번 제주를 다녀왔읍니다 감사하게 잘 읽었읍니다^*
회의 재무를 맡아 2박3일의 길고 먾은 인원이 참가한 제주도 한라산 돈네코 산행 행사의 경비지출과 예산 정리등 여러가지 신경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어려운 소임을 묵묵히 차질없이 하시는 모습이 진실한 품성이 느껴집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