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유니콘스 야구단은 어차피 팔려나갈 운명이었습니다. 최근에 전해들은 얘기로 미루어본다면, 현대는 그 시점이 문제였지 더 이상 구단을 지탱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현대 구단이 파탄의 조짐을 보이고 바깥으로 매각설이 흘러나온 것은 2년 전쯤인 2005년 봄이었습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박용오 총재를 만나 구단 매각을 요청한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은 2005년 5월 어느날, KBO 이상일 사무차장(현 운영본부장)에게 현정은 회장측에 연락을 취해 회동 날짜를 잡으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현대 구단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박 총재가 현 회장을 직접 만나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심산에서였습니다.
만남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일식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현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박 총재에게 구단 매각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 배석했던 이상일 운영본부장은 " 너무 긴장되고 어려운 자리여서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맛없는 식사를 했다 " 고 돌이켜보기도 했습니다.
현대 구단이 심각한 운영난에 처한 것이 바로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현대 구단은 매년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80억 원, 현정은 현대 회장과 야구사랑이 유별난 정몽윤 현대화재해상보험 회장이 각 40억 원씩 갹출, 구단운영비를 지원해왔습니다.
그러나 현정은 회장이 경영권 분규를 겪으면서 2005년부터 지원을 중단해 현대 구단은 2006년까지 정몽구, 정몽윤 회장의 지원금만으로 꾸려갔으나 한계에 부닥쳐 현저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렵사리 굴러갔던 현대 구단은 2007년부터 지원 젖줄이었던 현대기아차의 공급이 끊기게 되자 더 이상 버텨내지 못하고 급기야 매각의 도마 위에 오르는 운명을 맞은 것입니다.
정몽윤 회장은 작년 12월 KBO 하일성 사무총장을 만나 구단 매각을 다시 한 번 의뢰했습니다.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져있는 현대 구단 관계자들은 바람 앞의 등불같은 처지에 놓인 구단의 앞날을 바라보며 긴 한숨만 내쉬고 있습니다.
그 때부터 KBO 하일성 총장의 고뇌도 깊어졌습니다. 선뜻 원매자가 나서지 않고 있던 차에 농협이 신상우 KBO 총재를 통해 매입의사를 불쑥 밝혔던 것입니다.
하지만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시피 농협은 현대 구단 인수설이 불거지자 1월18일 오후 인수방침을 확인했고, 그 1시간 뒤 느닷없이 인수보류 발표→인수 포기를 선언하는 등 야구판을 쥐고 흔들었습니다. 농민의 이익을 총체적으로 대변해야할 기업인 농협이 그 이유야 어찌됐든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법적인 문제, 주변의 역학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졸속으로 일을 처리하려던 나머지 그 동티가 나버리고만 것입니다.
농협의 이같은 행태는 농민들은 물론 야구팬과 야구계를 우롱, 기만한 일로 지탄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프로야구계에 큰 풍파만 일으켜 놓고 무책임하게 발을 뺀 농협은 그 후 KBO에 가타부타 공식적인 태도표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KBO 이상일 운영본부장은 " 아직까지도 농협측에서 현대 구단 인수를 포기했다는 공식적인 통보를 받지 못했다 " 며 쓴 웃음을 짓더군요. 농협의 끊고 맺음이 흐리멍텅하고 이 지경인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이번 현대 구단 매각 파동 속에서 KBO가 비난의 화살을 집중적으로 받았는데, 굳이 시비를 가린다면 그 잘못의 추궁은 농협이 받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KBO로선 8개구단의 한 축이 무너지는 판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판이고 어디까지나 야구판을 흔들림 없이 이끌어가야할 의무가 있는 단체입니다. 다만 농협과의 협상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일 처리과정에서 지나치게 공개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역작용을 일으킨 점은 지적받아야할 것입니다.
현대 구단은 작년 입단 신인들의 계약금을 아직 지급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올해 신인으로 뛰게 될 선수들의 계약금 지급도 유보된 상태입니다. 2006시즌 현대는 장원삼(계약금 2억 5000만 원)을 비롯 모두 14명의 신인을 받아들였으나 그들에 대한 계약금 11억 3500만 원이 미지급 상태입니다. 올해 신인은 장효준(1억 8000만 원) 등 5명으로 계약금 합계가 4억1500만 원입니다. 어느 기업체가 인수하든 이 몫은 떠안아야합니다.
농협 소동 이후 최근에 다시 미국의 교포기업이 현대 구단 인수 의향을 밝혔다가 26일 오전에 철회, 없었던 일이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갈팡질팡하고 있는 현대 구단의 진로는 다시 오리무중으로 빠져들었습니다.
KBO 주변에서 떠돌고 있는 현대가의 지원(온정의 손길)은 위와같은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KBO는 올해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8개 구단으로 꾸려간다고 언명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KBO가 보유하고 있는 200억 원 가량의 기금에 손댈 수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것조차도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올 한해, 프로야구판은 획기적 변혁의 동력을 찾고, 치열한 모색을 거듭해 부흥의 기틀을 다져야하는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홍윤표 OSEN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