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모임 4W
2023-09-03 No. 2023-36
카카오톡을 이용해서라도 꼭 구역 식구들과 말씀을 나누고,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 축복하며 기도하십시오!
▣ 환영합니다! (Welcome)
1. 구역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합시다.
2. 지난 한 주간 동안 세겹줄 모임을 했는지 “꼭” 확인하십시오.
3.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감사할 만한 일이 있습니까?
4.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했던 일이 있습니까?
5. 최근 3 개월 내 당신이 큰 기쁨을 느낀 적 있습니까?
▣ 찬양합니다! (Worship)
· 찬송가 428장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 찬송가 431장 “주 안에 기쁨 있네”
· 찬송가 434장 “귀하신 친구 내게 계시니”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쁨을 누리는 것에 관련된 찬양을 부르셔도 좋습니다.
▣ 말씀을 사모합니다! (Word)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빌립보서 1:1-2)
작년 하반기부터 우리 성도와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렇기에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큰 기쁨을 누려왔습니다. 이 기쁨을 우리 성도와 함께 나눔으로써 성도가 여러 가지로 뒤숭숭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힘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쁨은 근원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살피는 빌립보서는 1절에서 보는 것처럼 바울과 디모데가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 감독, 집사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주후 50년 전후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빌립보에 복음을 전파했고, 수년 후에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는 도중에 빌립보에 들러 권면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예루살렘에서는 모함으로 인해 사로잡혀 폭행과 부당한 재판을 받는 중에 자신이 로마 시민인 것을 밝히며 가이사의 재판을 청구합니다. 그 결과 겨울 동안에 지중해를 거쳐 로마로 가서 2년 남짓을 가택연금 상태로 재판을 기다리던 중에 이 편지를 써서 빌립보에 보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로 이 편지를 보낸 때가 주후 63-4년경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된 견해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전형적인 편지 형식으로 발신자와 수신자를 언급한 다음에 문안하는 첫 구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2절)를 언급합니다. 물론 바울은 항상 편지를 보낼 때 서두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안부’로만 치고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바울과 초창기 전도자들뿐만 아니라 오늘날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예수님은 절대적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가리켜 굳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이라고 할 때는 창조주요 섭리하시는 대주재이시며 참 신이신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그칠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이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리켜 아버지라고 할 때 이 고백에는 1) 나를 만드신 분이시다(아버지가 없다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2) 내 위의 권위자이시다(그래서 나는 그분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3) 내 아버지이시다(보호자요 공급자이며 내 생애 전반에 훌륭한 가이드이시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담겨 있습니다.
이 중 세 번째가 우리에게 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렇잖아도 불확실하던 시대를 살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가져온 사회의 변화에 최근 갑자기 두각을 나타내면서 급격하게 영역을 넓혀가는 인공지능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좀 생각해볼라치면 정말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어차피 다 살게 돼 있어!”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신간이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오히려 무지가 가져오는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갈 뿐입니다. 이런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시라는 생각은 우리를 크게 담대하게 하고 힘든 중에도 나름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이실 뿐 아니라 창조 가운데 지금도 운행하시면서 만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시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어떤 마음이 듭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에 대해 성경에 명확히 기록돼 있기는 자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주시면서까지 나를 구원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내가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귀하게 생각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서는 보잘것없고 존재감 없이 살면서 때로는 우리의 삶을 비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 안에 들어 있을 정도로 영원한 존재이며, 영원하신 주님의 목숨을 대가로 구원 받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를 지금도 만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버지 되셔서 우리에게 공급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할렐루야!
1) 당신이 기도할 때나 일상 생활을 할 때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까?
2) 당신의 아버지에게서 가장 바라고 원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모든 것을 제공해주실 수 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2. 은혜와 평강은 늘 우리에게 있어서 언제라도 우리가 누릴 수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친숙하지만 잘 알지는 못하는 말들입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함께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은혜와 평강의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말합니다(2절). 은혜 같아 보이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평강 같아 보이는 수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시라면 그것들은 다 사이비라는 것입니다.
은혜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은혜’와 ‘복’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은혜가 우리에게 값없이 주어질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영원하심과 관련돼 있어서 결코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데 대한 칭찬과 격려의 의미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은혜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원한 신분을 주셔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 삼아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에 대하여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내 행위로써 받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자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한 하나님의 작정 가운데 우리에게 베푸신 것이기에 우리로서는 그저 받고 감사하며 기뻐할 것 외에는 없습니다. 때로 이 은혜는 우리가 보기에는 불공평하고 부당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그렇더라도 대주재이신 하나님의 전권에 있는 것이기에 우리의 생각이나 행위에 따라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다만 이 첫 번째 은혜는 그 자체가 출발점이 되어 우리에게 두 번째 은혜를 누릴 수 있게 해줍니다. 두 번째 은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지식이 자라면서 본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일부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성숙해나갈수록 이 두 번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관계,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 등등을 더 잘 알게 됨에 따라 흔들림 없는 정체성을 가지고 존재감을 만끽한다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기꺼이 헌신하고, 그 과정에서 성령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경험하고 그로써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이루어냄으로써 하나님의 기쁨을 더할 수 있다든지 하는 것들입니다.
성도에게 은혜는 기본적으로 주어진 것들임에도 은혜를 얼마나 누리는가는 성도에게 달려 있습니다. 은혜가 내게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알고 반복해서 묵상하면 그 은혜를 점점 더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반면, 내가 세상의 삶에 정신이 팔여 은혜를 묵상하지 못하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모든 비결을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패배자로 루저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평강의 본질은 ‘하나님 안에’ 또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평강은 하나님의 존재방식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삼위일체로 존재하십니다. 신격의 세 위격이 평강 가운데 존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존재방식으로부터 파생된 것이 평강이기에, 온전한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성도가 하나님 안에, 또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전제조건입니다.
세상은 평강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평화’나 ‘편안’으로 미혹시키려 합니다. 세상이 알고 있는 ‘평화’는 갈등의 부재를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없으면 평화가 있다고 합니다. 주 안에 있는 평안은 단순한 갈등의 부재를 넘어 평안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깊은 관계, 즉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관계 안에서 교제함으로써 누리를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편안’은 그저 육적인 안녕을 가리키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서 있다가 앉으면 편안하고, 앉아 있다가 누우면 편안합니다. 이런 편안은 그저 좋은 안마의자나 침대면 해결될 값싼 것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평화나 편안에 미혹되면 우리는 쉽게 그것들이 평안이라도 되는 양 하나님과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는 것에 게을러질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나 편안은 마귀가 우리를 미혹하는 좋은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하신 바울의 간절한 바램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3) 당신이 누리고 있는 은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들은 정말 은혜라고 부를만한 것들입니까?
4) 당신이 생각했던 평안이 참된 평안인지 아니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나 ‘편안’은 아니었는지 점검해보십시오.
▣ 함께 사역해요! (Work)
1. 실천과제:
이번 한 주간 당신이 받은 은혜와 평안을 주님 앞에 다시 말씀드리면서 주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매일 새롭게 올려 드리십시오.
2. 기도제목 나눔
· 구역 가족과 각 가정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합니다.
· 반복되는 기도제목이라도 무시하지 마시고, 함께 기도합니다.
· 세겹줄 모임별로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
3. 교회를 위한 기도 (주보 2면의 기도제목으로 함께 기도해요.)
4. 선교사/선교기관을 위한 기도 (담당 선교사/기관은 주보 3면 참조)
5. 전도대상자들을 위한 기도
· 전도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전도하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을 목록으로 만들어 구역에서 함께 나누고 기도합니다.
· 한 주간 동안 전도대상자들을 만나고 전도를 시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