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的中과 사띠에 의한 아빈냐 - 사띠에 의한 返照
.
.
A3:12 Yasmiṃ, bhikkhave, padese bhikkhu kesamassuṃ ohāretvā
kāsāyāni vatthāni acchādet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Idaṃ, bhikkhave, paṭhamaṃ bhikkhussa yāvajīvaṃ sāraṇīyaṃ hoti.
"비구들이여, 비구가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나와 출가한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 첫 번째 장소이다.
.
‘‘Puna caparaṃ, bhikkhave, yasmiṃ padese bhikkhu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Idaṃ, bhikkhave, dutiyaṃ bhikkhussa yāvajīvaṃ sāraṇīyaṃ ho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 두 번째 장소이다.
<A3:73 Ayaṃ vuccati, mahānāma, sekhā paññā.
마하나마여, 이것이 유학의 통찰지입니다. A3:73>
.
‘‘Puna caparaṃ, bhikkhave, yasmiṃ padese bhikkhu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Idaṃ, bhikkhave, tatiyaṃ bhikkhussa yāvajīvaṃ sāraṇīyaṃ hoti.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 곳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비구가 죽을 때까지 기억할 세 번째 장소이다."
<A3:73
‘‘Sa kho so, mahānāma, ariyasāvako evaṃ sīlasampanno evaṃ samādhisampanno evaṃ paññāsampanno
āsavānaṃ khayā anāsavaṃ cetovimuttiṃ paññāvimuttiṃ
diṭṭheva dhamme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ati.
有學의 戒-定(4正定)-慧(4聖諦) [= 8正道]을 구족한 후
자신의 아빈냐에 의해서 번뇌가 지멸(漏盡)된 心해탈과 慧해탈이 직접 확인되면 無學의 戒-定-慧>
.
.
M100
1) 바라드와자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전승을 따르는 자인데,
그들은 전승에 의해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세 가지 베다를 신봉하는 바라문입니다.
Santi,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anussavikā.
Te anussaven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seyyathāpi brāhmaṇā tevijjā.
바라드와자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전통주의자라서
구전되어온 것으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나니 예를 들면 세 가지 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다.
.
2) 바라드와자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단지 믿음의 기초 위에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이론가나 사상가입니다.
Santi pana,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kevalaṃ saddhāmattaken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seyyathāpi takkī vīmaṃsī.
바라드와자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단지 믿음만으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나니 예를 들면 논리가와 탐구자이다.
.
3) 바라드와자여, 어떤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은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진리를 스스로 곧바로 알아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합니다.
Santi, bhāradvāja, ek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바라드와자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한다."
.
9. 바라드와자여,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진리 가운데 스스로 곧바로 알아서,
지금 여기에서의 곧바른 앎에 대한 궁극적인 완성에 도달한 뒤에
청정한 삶의 기초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수행자들이나 성직자들 가운데 내가 있습니다.
Tatra, bhāradvāja, ye te samaṇabrāhmaṇā
pubbe ananussutesu dhammesu sāmaṃyeva dhammaṃ abhiññāya
diṭṭhadhammā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ādibrahmacariyaṃ paṭijānanti, tesāhamasmi.
8. "바라드와자여, 이 중에서 나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는 그런 사문 ․ 바라문들에 속한다.
.
M76
22. 싼다까여, 세상에 어떤 스승이 있는데 그는 전승에 의존하고 ‘구전만이 진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전승에 의존하고 구전에 의존하고 성스러운 문헌에 의존하여 진리를 설합니다.
싼다까여, 전승에 의존하고 ‘구전만이 진리이다.’라고 선언하는 스승에게도
어떤 것은 잘 기억되었으나 어떤 것은 잘못 기억되어 있고 어떤 것은 진실이나 어떤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230. ‘‘Puna caparaṃ, sandaka, idhekacco satthā anussaviko hoti anussavasacco.
So anussavena itihitihaparamparāya piṭakasampadāya dhammaṃ deseti.
Anussavikassa kho pana, sandaka, satthuno anussavasaccassa
sussutampi hoti dussutampi hoti tathāpi hoti aññathāpi hoti.
24. "다시 산다까여, 여기 어떤 스승은 전통주의자라서 구전되어 온 것을 진리로 여깁니다.
그는 구전되어온 것과 이러이러하다고 전승되어온 것과 성전으로 전해온 것에 의지하여 법을 설합니다.
산다까여, 그런데 구전되어온 것을 의지하고 구전되어온 것을 진리로 여기는 스승은
바르게 기억한 것도 있고 잘못 기억한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
23. 싼다까여, 이것에 대하여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현명한 자] ‘이 스승은 전승에 의존하고 ‘구전만이 진리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전승에 의존하고 구전에 의존하고 성스러운 문헌에 의존하여 진리를 설한다.
전승에 의존하고 ‘구전만이 진리이다.’라고 선언하는 스승에게도
어떤 것은 잘 기억되었으나 어떤 것은 잘못 기억되어 있고 어떤 것은 진실이나 어떤 것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는 ‘이것은 평안을 주지 못하는 청정한 삶이다.’라고 알아서 그러한 청정한 삶을 싫어하여 떠납니다.
Tatra, sandaka,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
‘ayaṃ kho bhavaṃ satthā anussaviko anussavasacco
so anussavena itihitihaparamparāya piṭakasampadāya dhammaṃ deseti.
Anussavikassa kho pana satthuno anussavasaccassa
sussutampi hoti dussutampi hoti tathāpi hoti aññathāpi hoti’.
So ‘anassāsikaṃ idaṃ brahmacariya’nti – iti viditvā tasmā brahmacariyā nibbijja pakkamati.
25. "산다까여, 여기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전통주의자라서 구전되어 온 것을 진리로 여긴다.
그는 구전되어온 것과 이러이러하다고 전승되어온 것과 성전으로 전해온 것에 의지하여 밥을 설한다.
그런데 구전되어온 것을 의지하고 구전되어온 것을 진리로 여기는 스승은
바르게 기억한 것도 있고 잘못 기억한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는 '이것은 안식을 주지 못하는 청정범행이다.'라고 알아 그런 청정범행을 역겨워하며 떠납니다."
.
싼다까여,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설하신 평안을 주지 못하는 두 번째 청정한 삶인데,
이러한 삶 속에서는 현명한 자라도 노력하여 청정한 삶을 이룰 수 없고
혹은 이루더라도 착하고 건전한 올바른 진리를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Idaṃ kho, sandak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dutiyaṃ anassāsikaṃ brahmacariyaṃ akkhātaṃ yattha viññū puriso sasakkaṃ brahmacariyaṃ na vaseyya,
vasanto ca nārādheyya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26. "산다까여, 이것이 그런 삶으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결코 청정범행을 행할 수 없고
혹은 행하더라도 옳은 방법인 유익한 법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그분 세존께서 말씀하신
두 번째 안식을 주지 못하는 청정범행입니다."
.
24. 싼다까여, 세상에 어떤 스승이 있는데 그는 이론가이고 사변가입니다.
그는 이론을 두드리고 사변을 따르면서 자신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가르칩니다.
싼다까여, 이론가이고 사변가인 스승에게도
잘 된 이론도 있고 잘못된 이론도 있고 진실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231. ‘‘Puna caparaṃ, sandaka, idhekacco satthā takkī hoti vīmaṃsī.
So takkapariyāhataṃ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ṃ dhammaṃ deseti.
Takkissa kho pana, sandaka, satthuno vīmaṃsissa
sutakkitampi hoti duttakkitampi hoti tathāpi hoti aññathāpi hoti.
27. "다시 산다까여, 여기 어떤 스승은 논리가요 탐구자입니다.
그는 논리에 의해 안출(案出)되었고 탐구를 거듭하여 스스로가 구명(究明)한 법을 설합니다.
산다까여, 그러나 논리가요 탐구자인 스승은
논리를 바르게 전개한 것도 있고 논리를 잘못 전개한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
* Paṭibhāna (nt.) [paṭi+bhāna. Cp. late Sk. pratibhāna, fr. Pali]
understanding, illumination, intelligence; readiness or confidence of speech, promptitude, wit
paṭibhāna-paṭisambhidā: the 'analytical knowledge of ready wit'
.
25. 싼다까여, 이것에 대하여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현명한 자] ‘이 스승은 이론가이고 사변가이다.
그는 이론을 두드리고 사변을 따르면서 자신에게 나타나는 현상을 가르친다.
이론가이고 사변가인 스승에게도
잘된 이론도 있고 잘못된 이론도 있고 진실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Tatra, sandaka, viññū puriso iti paṭisañcikkhati –
‘ayaṃ kho bhavaṃ satthā takkī vīmaṃsī.
So takkapariyāhataṃ vīmaṃsānucaritaṃ sayaṃpaṭibhānaṃ dhammaṃ deseti.
Takkissa kho pana satthuno vīmaṃsissa
sutakkitampi hoti duttakkitampi hoti tathāpi hoti aññathāpi hoti’.
So ‘anassāsikaṃ idaṃ brahmacariya’nti – iti viditvā tasmā brahmacariyā nibbijja pakkamati.
28. "산다까여, 여기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이 스승은 논리가요 탐구자이다.
그는 논리에 의해 안출(案出)되었고 탐구를 거듭하여 스스로가 구명(究明)한 법을 설한다.
그러나 논리가요 탐구자인 스승은 논리를 바르게 전개한 것도 있고 논리를 잘못 전개한 것도 있고
사실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그는 '이것은 안식을 주지 못하는 청정범행이다.'라고 알아 그런 청정범행을 역겨워하며 떠납니다."
.
그래서 그는 ‘이것은 평안을 주지 못하는 청정한 삶이다.’라고 알아서 그러한 청정한 삶을 싫어하여 떠납니다.
싼다까여, 세상에서 존경받는 님, 아는 님, 보는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께서
설하신 평안을 주지 못하는 세 번째 청정한 삶인데,
이러한 삶 속에서는 현명한 자라도 노력하여 청정한 삶을 이룰 수 없고
이루더라도 착하고 건전한 올바른 진리를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Idaṃ kho, sandaka, tena bhagavatā jānatā passatā arahatā sammāsambuddhena
tatiyaṃ anassāsikaṃ brahmacariyaṃ akkhātaṃ yattha viññū puriso sasakkaṃ brahmacariyaṃ na vaseyya,
vasanto ca nārādheyya ñāyaṃ dhammaṃ kusalaṃ.
29. "산다까여, 이것이 그런 삶으로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결코 청정범행을 행할 수 없고
혹은 행하더라도 옳은 방법인 유익한 법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그분 세존께서 말씀하신
세 번째 안식을 주지 못하는 청정범행입니다."
.
[*부기
A3:65 ‘‘Alañhi vo, kālāmā, kaṅkhituṃ alaṃ vicikicchituṃ.
Kaṅkhanīyeva pana [kaṅkhanīyeva ca pana (saṃyuttanikāye)] vo ṭhāne vicikicchā uppannā’’.
3.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당연히 미덥지 못하고 의심스러울 것이다.
미덥지 못한 곳에 의심이 일어난다.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 끄달리지 마십시오.
‘‘Etha tumhe, kālāmā, 깔라마들이여,
mā anussavena,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mā paramparāya, 대대로 전승되어 온다고 해서,
mā itikirāya, ‘그렇다 하더라.’고 해서,
mā piṭakasampadānena, [우리의] 성전에 써 있다고 해서,
mā takkahetu, 논리적이라고 해서,
mā nayahetu, 추론에 의해서,
mā ākāraparivitakkena,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mā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mā bhabbarūpatāya,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mā samaṇo no garūti. 혹은 ‘이 사문은 우리의 스승이시다.’라는
생각 때문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말라].
Yadā tumhe, kālāmā, attanāva jāneyyātha –
‘ime dhammā akusalā, ime dhammā sāvajjā, ime dhammā viññugarahitā,
ime dhammā samattā samādinnā [samādiṇṇā (ka.)] ahitāya dukkhāya saṃvattantī’’’ti,
atha tumhe, kālāmā, pajaheyyātha.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Kittayissāmi vosantiṃ, [dhotakāti bhagavā,]
Diṭṭhe dhamme anītihaṃ;
Yaṃ viditvā sato caraṃ, tare loke visattikaṃ.
(“도따까여.”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고요를 설명하겠다.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닌 현재의 법에서.
사띠를 지니고 유행하는 이는 [고요를] 알고서
세간에 대한 얽힘을 건널 것이다....경전이해의 길[PTS166]>
anītihanti na itihītihaṃ1 na itikirāya na paramparāya na piṭakasampadāya
na takkahetu na nayahetu na ākāraparivitakkena na diṭṭhinijjhānakkhantiyā
sāmaṃ sayamabhiññātaṃ attapaccakkhadhammaṃ
taṃ kathayissāmīti 'diṭṭhe dhamme anītiha'nti. ]
.
S46:56
“세존이시여, 그러면 이 법문은 무엇이라 부릅니까?”
“왕자여 ‘깨달음의 구성요소’라 부른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구성요소입니다.
선서시여, 참으로 그러합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의 구성요소입니다.
세존이시여, 각각 하나씩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만 갖추어도 있는 그대로 알고 볼 것인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 모두를 갖추는 것은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Ko nāmāyaṃ, bhante, dhammapariyāyo’’ti? ‘‘Bojjhaṅgā nāmete, rājakumārā’’ti.
‘‘Taggha, bhagavā, bojjhaṅgā; taggha, sugata, bojjhaṅgā!
Ekamekenapi kho, bhante, bojjhaṅgena samannāgato yathābhūtaṃ jāneyya passeyya,
ko pana vādo sattahi bojjhaṅgehi?
10. [아바야] "세존이시여, 이 가르침이 밝힌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세존] "왕자여, 이것들은 깨달음의 고리라고 합니다."
[아바야] "세상의 존귀한 님이여, 실로 깨달음 고리입니다.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이여, 실로 깨달음 고리입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하나의 깨달음 고리를 갖추어도 있는 그대로의 것을 분명히 알고 또한 보게 됩니다.
하물며 일곱 가지 깨달음 고리를 갖추는 것에 대해서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
세존이시여, 저는 독수리봉산에 올라오느라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했는데 이제 다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법을 관통했습니다.”
Yopi me, bhante, gijjhakūṭaṃ pabbataṃ ārohantassa kāyakilamatho cittakilamatho,
sopi me paṭippassaddho, dhammo ca me abhisamito’’ti.
세존이시여, 저는 깃자꾸따 산에 오르면서 피곤하고 지쳤는데
이제 안정을 얻고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M37 ‘‘kiṃ nu kho so yakkho bhagavato bhāsitaṃ abhisamecca anumodi udāhu no;
yaṃnūnāhaṃ taṃ yakkhaṃ jāneyyaṃ –
yadi vā so yakkho bhagavato bhāsitaṃ abhisamecca anumodi yadi vā no’’ti?
"이 약카는 세존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뻐한 것일까, 아니면 그렇지 않은 것일까?
이 약카가 세존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뻐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봐야겠다."
.
.
A6:68
Eko paviveke anabhiramanto [PTS Page 423] [q 423/] cittassa nimittaṃ gaṇahissatīti2netaṃ ṭhānaṃ vijjati.
Cittassa nimittaṃ agaṇhanto sammādiṭṭhiṃ paripūressatiti netaṃ ṭhānaṃ vijjati.
무리지어 사는 것을 즐기면서 혼자 閑居를 즐길 수 없고,
그러면 마음의 표상을 취할 수 없고, 그러면 바른 견해를 갖출 수 없고,
그러면 바른 삼매를 갖출 수 없고, 그러면 족쇄를 제거 할 수 없고, 열반을 실현하리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A5:89
"일하기를 좋아하는 것,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잠자기를 좋아하는 것,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것<*閑居하지 않음>,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하지 않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은 유학의 비구를 망가지게 한다."
Kammārāmatā, bhassārāmatā, niddārāmatā, saṅgaṇikārāmatā, yathāvimuttaṃ cittaṃ na paccavekkhati –
ime kho, bhikkhave, pañca dhammā sekhassa bhikkhuno parihānāya saṃvattanti.
[Ime kho, bhikkhave, pañca dhammā samayavimuttassa bhikkhuno parihānāya saṃvattanti.]
[A5:149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은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비구를 망가지게 한다."]
.
A5:28 Seyyathāpi, bhikkhave, aññova aññaṃ
[añño vā aññaṃ vā (sī.), añño vā aññaṃ (syā. kaṃ.), añño aññaṃ (?)]
paccavekkheyya, ṭhito vā nisinnaṃ paccavekkheyya, nisinno vā nipannaṃ paccavekkheyya.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
그는 서서 앉아 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하고, 앉아서 누워있는 사람을 잘 살펴보기도 한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반조의 표상<*三昧相>을 잘 취하고
마음에 잘 새기고 잘 호지하고 통찰지로 잘 꿰뚫는다.
Ariyassa, bhikkhave, pañcaṅgikassa sammāsamādhissa ayaṃ pañcamā [pañcamī (sī.)] bhāvanā.
비구들이여, 이것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삼매 수행 가운데 다섯 번째 수행이다."
.
Evaṃ bhāvite kho, bhikkhave, bhikkhu [evaṃ bhāvite kho bhikkhave (sī.)]
ariye pañcaṅgike sammāsamādhimhi evaṃ bahulīkate
yassa yassa abhiññāsacchikaraṇīyassa dhammassa cittaṃ abhininnāmeti abhiññāsacchikiriyāya,
tatra tatreva sakkhibhabbataṃ pāpuṇāti sati sati āyatane.
[*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다섯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바른 삼매를 수행하고 많이 닦을 때,
최상의 지혜로 실현시킬 수 있는 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최상의 지혜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그가 마음을 기울이면,
그런 원인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을 얻는다.]
.
A5:96 Idha, bhikkhave, bhikkhu
atthapaṭisambhidāpatto hoti, dhammapaṭisambhidāpatto hoti,
niruttipaṭisambhidāpatto hoti, paṭibhānapaṭisambhidāpatto hoti,
yathāvimuttaṃ cittaṃ paccavekkhati.
Imehi kho, bhikkhave, pañc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nacirasseva akuppaṃ paṭivijjhatī’’ti.
義無碍解, 法無碍解, 詞無碍解, 辯無碍解을 얻었고,
해탈한 대로 그 마음을 반조한다. -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부동을 꿰뚫는다.
.
A7:37 ‘‘Sattahi, bhikkhave,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nacirasseva
catasso paṭisambhid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a. Katamehi sattahi?
Idha, bhikkhave, bhikkhu
‘idaṃ me cetaso līna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ajjhattaṃ saṃkhittaṃ vā cittaṃ ‘ajjhattaṃ me saṃkhittaṃ ci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bahiddhā vikkhittaṃ vā cittaṃ ‘bahiddhā me vikkhittaṃ citta’nti yathābhūtaṃ pajānāti;
tassa viditā vedan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saññ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viditā vitakkā uppajjanti, viditā upaṭṭhahanti, viditā abbhatthaṃ gacchanti;
<* 心 태만, 내로 위축, 외로 산란-에 대한 반냐
受想尋 起住還이 확연(vid = 삼반냐).
.
sappāyāsappāyesu kho panassa dhammesu hīnappaṇītesu kaṇhasukkasappatibhāgesu
nimittaṃ suggahitaṃ hoti sumanasikataṃ sūpadhāritaṃ suppaṭividdhaṃ paññāya.
도움/되지 않은, 저열/수승, 흑/백으로 대비되는 법들의 표相을 잘 捕捉하고
잘 作意하고 잘 擔持하여 반냐로 잘paṭividdha꿰뚫는다. -
.
Imehi kho, bhikkhave, sattahi dhammehi samannāgato bhikkhu nacirasseva
catasso paṭisambhidā sayaṃ abhiññā sacchikatvā upasampajja vihareyyā’’ti.
이러한 7법을 잘 갖춘 비구는 오래지 않아 4-paṭisambhidā무애해를 자신의 아빈냐로 실현>
.
.
S22:94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상에는 어떠한 세상의 법이 있어서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으며,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가?
‘‘Kiñca, bhikkhave, loke lokadhammo,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8. 수행승들이여, 여래가 올바로 깨닫고 꿰뚫은 세상 속의 세상의 사실이란 무엇인가?
여래는 무엇을 올바로 깨닫고 꿰뚫고 나서,
설명하고, 교시하고, 시설하고, 확립하고, 개현하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밝히는가?
.
비구들이여, 물질은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이니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Rūpaṃ, bhikkhave, loke lokadhammo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a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1) 수행승들이여, 여래가 올바로 깨닫고 꿰뚫은 세상 속의 세상의 사실은 물질<*5蘊>이다.
여래는 그것을 올바로 깨닫고 꿰뚫고 나서,
설명하고, 교시하고, 시설하고, 확립하고, 개현하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밝힌다."
.
S46:30
“세존이시여, 그런 저는 빈집에 가서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가 솟아오르고 떨어지면서 전개되는 것을 [보면서]
‘‘So khvāhaṃ, bhante, suññāgāragato
imesaṃ pañcupādānakkhandhānaṃ ukkujjāvakujjaṃ samparivattento
4.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텅 빈 집에 들어가
이 다섯 가지 존재의 다발이 일어나고 사로지는 것을 관찰하여 <*自燈明>
.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法燈明>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최상의 지혜로 알았습니다.”
‘idaṃ dukkha’n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samuday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o’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ayaṃ dukkhanirodhagāminī paṭipadā’ti yathābhūtaṃ abbhaññāsiṃ.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90]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분명히 알았습니다.
.
세존이시여, 저는 법을 관통하였고 도를 증득 하였습니다. <*4聖諦 - 8正道>
그래서 제가 그대로 머무르면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런 [아라한의] 경지로 인도하게 될 그런 도를 닦고 많이 [공부]지어서 증득하였습니다.
Dhammo ca me, bhante, abhisamito, maggo ca me paṭiladdho;
yo me bhāvito bahulīkato tathā tathā viharantaṃ
tathattāya upanessati
yathāhaṃ –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pajānissāmi.
세존이시여, 저는 사실을 꿰뚫어 길을 얻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닦고 익히면, 그것은 진실로, 저를
'태어남은 부서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알 수 있는, 여여한 그러한 상태로 이끌 것입니다."
.
S56:21
‘‘catunnaṃ, bhikkhave, ariyasaccānaṃ ananubodhā appaṭivedhā
evamidaṃ dīghamaddhānaṃ sandhāvitaṃ saṃsaritaṃ mamañceva tumhākañca’’.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
S56:3
‘‘Ye hi keci, bhikkhave, atītamaddhānaṃ kulaputtā samm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ṃsu,
sabbe te catunnaṃ ariyasaccānaṃ yathābhūtaṃ abhisamayāya.
“비구들이여, 과거에 바르게 집에서 나와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모두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있는 그대로 관통하기 위해서 출가하였다."
.
.
S12:65 .‘‘Tassa mayhaṃ, bhikkhave, etadahosi –
‘kimhi nu kho sati jarāmaraṇaṃ hoti, kiṃpaccayā jarāmaraṇa’nti?
Tassa mayhaṃ, bhikkhave, yoniso manasikārā ahu paññāya abhisamayo –
‘jātiyā kho sati jarāmaraṇaṃ hoti, jātipaccayā jarāmaraṇa’’’nti.
.......
tamanugacchanto jarāmaraṇaṃ abbhaññāsiṃ; jarāmaraṇasamudayaṃ abbhaññāsiṃ;
jarāmaraṇanirodhaṃ abbhaññāsiṃ; jarāmaraṇanirodhagāminiṃ paṭipadaṃ abbhaññāsiṃ.
1) 나는 그 길을 따라갔다. 그 길을 따라가서 나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발생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에 대해 곧바로 알았고 늙음과 죽음의 소멸로 이끄는 길에 대해 곧바로 알았다.
.
S12:20
‘‘Katamo ca, bhikkhave, paṭiccasamuppādo?
[세존] "수행승들이여, 연기란 무엇인가?
.
비구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
이것은 여래들께서 출현하신 후거나 출현하시기 이전에도 존재하는 요소[界]이며,
법으로 확립된 것이고, 법으로 결정된 것이며, 이것에게 조건 되는 성질[比緣性]이다.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보라!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이 있다.’라고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raṇaṃ.
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anuppādā vā tathāgatānaṃ,
ṭhitāva sā dhātu dhammaṭṭhitatā dhammaniyāmatā idappaccayatā.
Taṃ tathāgato abhisambujjhati abhisameti.
Abhisambujjhitvā abhisametvā ācikkhati deseti paññāpeti paṭṭhapeti vivarati vibhajati uttānīkaroti.
‘Passathā’ti cāha – ‘jātipaccayā, bhikkhave, jarāmaraṇaṃ’’’.
1) 수행승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생겨난다.'라고
여래가 출현하거나 여래가 출현하지 않거나 그 세계는
정해져 있으며 원리로서 확립되어 있으며 원리로서 결정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여래는 그것을 올바로 깨닫고 꿰뚫었으며, 올바로 깨닫고 꿰뚫고 나서,
설명하고 교시하고, 시설하고, 확립하고, 개현하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밝힌다.
그러므로 '그대들도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이 생겨나는 것과 같이
수행승들이여, 여기서 여실한 것, 허망하지 않은 것, 다른 것이 아닌 것, 구체적인 것을 조건으로 하는 것,
수행승들이여, 이것을 연기라고 한다."
.
.
abhisameti : [abhi + saṃ + i + a] attains; realizes.
-- fut. ˚samessati -- aor. ˚samiŋsu ˚samesuŋ -- ger. ˚samecca and ˚sametvā -- pp. abhisameta.
.
abhisamita : [pp. of abhisameti] completely realised
abhisamaya :
'Truth-realization', is the full and direct grasp of the Four Noble Truths
by the Stream-winner (Sotāpanna; s. ariya-puggala).
In the Com. the term is represented by 'penetration' (paṭivedha, q.v.).
Frequently occurring as dhammābhisamaya, 'realization of the doctrine'
Cf. S. XIII (Abhisamaya Saṃyutta) and Pts.M. (Abhisamaya Kathā).
.
.
S13:11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견해를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의 성취에 비하면
외도에 속하는 사문과 바라문과 유행승들의 성취는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
‘‘Evameva kho, bhikkhave, ariyasāvakassa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adhigamaṃ
upanidhāya aññatitthiyasamaṇabrāhmaṇaparibbājakānaṃ adhigamo
neva satimaṃ kalaṃ upeti na sahassimaṃ kalaṃ upeti na satasahassimaṃ kalaṃ upeti.
.
비구들이여, 견해를 구족한 자에게는 이처럼 큰 성취가 있고, 이처럼 큰 신통의 지혜가 있다.”
Evaṃ mahādhigamo, bhikkhave, diṭṭhisampanno puggalo, evaṃ mahābhiñño’’ti.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견해를 갖춘 자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고 위대한 초월적 지혜를 획득한다."
.
[(S13:1-10)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견해를 구족하고 관통을 갖춘 성스러운 제자에게는
괴로움이 대부분 멸진하고 해소되어 남아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그에게 남아있는 괴로움은 멸진하고 해소된 이전의 괴로움의 무더기에 비하면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 십만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이제 최대 일곱 생만이 [더 남아있다.]
‘‘Evameva kho, bhikkhave, ariyasāvakassa diṭṭhisampannassa puggalassa abhisametāvino
etadeva bahutaraṃ dukkhaṃ yadidaṃ parikkhīṇaṃ pariyādiṇṇaṃ; appamattakaṃ avasiṭṭhaṃ.
Neva satimaṃ kalaṃ upeti na sahassimaṃ kalaṃ upeti na satasahassimaṃ kalaṃ upeti
purimaṃ dukkhakkhandhaṃ parikkhīṇaṃ pariyādiṇṇaṃ upanidhāya yadidaṃ sattakkhattuṃparamatā.
3. [세존]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올바른 견해를 갖추고
진리에 대한 올바른 꿰뚫음에 도달한 고귀한 제자들에게는
이미 파괴되어 끝나 버린 괴로움이 더 많고 남아 있는 괴로움은 아주 적다.
많이 잡아 일곱 번을 더 환생한다 할지라도,
아직 남아 있는 괴로움은 이미 파괴되어 끝나 버린 괴로움과 비교하면
백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천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하며 또한 그 십만 배도 거기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
비구들이여, 법의 관통은 이처럼 큰 이익이 있고, 법의 눈을 얻음은 이처럼 큰 이익이 있다.
Evaṃ mahatthiyo kho, bhikkhave, dhammābhisamayo, evaṃ mahatthiyo dhammacakkhupaṭilābho’’ti.
4.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진리에 대한 꿰뚫음은 매우 유익하다.
이와 같이 진리의 눈을 얻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
M77 [(paṭipadā)보리분법들/8正道/8해탈/8승처/10까시나/4종禪/8vipassanā-ñāṇa -D34 참고]
⑫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 <*捨念淸淨 상태에서>
.
"우다인이여, 또한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길을 설했습니다.
그 길을 실천하는 대로 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252. ‘‘Puna caparaṃ,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evaṃ pajānanti –
29. "다시 우다이여, 나는 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이 꿰뚫어 알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닦음을 설했다.
.
‘이 나의 몸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이루어지고, 부모에 의해 생겨나고,
밥과 죽으로 키워지고, 무상하고, 떨어져 나가고, 닳아 없어지고, 부수어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식에 의존하고 그것에 묶인 것이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ṃ’.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분리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여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
우다인이여, 예를 들어
에메랄드가 아름답고 품질이 좋고 팔면으로 잘 깎이고 투명하고 청정하고 일체의 모습을 갖추어,
거기에 푸른 색이나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 색이나 갈색의 실로 꿰뚫어져 있어,
눈 있는 사람이 그것을 보고 손에 올려놓고
‘에메랄드가 아름답고 품질이 좋고 팔면으로 잘 깍이고 투명하고 청정하고 일체의 모습을 갖추어,
거기에 푸른 색이나 노란 색이나 붉은 색이나 흰 색이나 갈색의 실로 꿰뚫어져 있다.’라고
관찰하는 것과 같습니다.
Seyyathāpi, udāyi,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
Tamenaṃ cakkhumā puriso hatthe karitvā paccavekkheyya –
‘ayaṃ kho maṇi veḷuriyo subho jātimā aṭṭhaṃso suparikammakato accho vippasanno sabbākārasampanno;
tatridaṃ suttaṃ āvutaṃ nīlaṃ vā pītaṃ vā lohitaṃ vā odātaṃ vā paṇḍusuttaṃ vā’ti.
우다이여, 예를 들면 아름답고 최상품이고
팔각형이고 아주 잘 절단되었고 맑고 투명하고 모든 구색을 다 갖춘 에메랄드가 있는데,
거기에 푸른색이나 노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 실이 꿰어져 있다 하자.
그것을 눈 있는 사람이 손에 올려놓고
'이 에메랄드는 아름답고 최상품이고 아주 잘 절단되었고 맑고 투명하고 모든 구색을 다 갖추었구나.
거기에 푸른색이나 노란색이나 붉은색이나 흰색이나 갈색 실이 꿰어져있구나.'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
<*이렇게 아름다운 寶石도 原石을 이리 저리 반복 加功하고
거기에다 이런 저런 장식을 해서 만들어진 과정을 안다(기억난다).
- 즉 산스크리트(상카라-行)이다. - 라는 것을 返照>
.
우다인이여, 이와 같이 나는 나의 제자들에게 길을 설했습니다.
그 길을 실천하는 대로 나의 제자들은 이와 같이
‘이 나의 몸은 물질로 이루어지고, 네 가지 광대한 존재로 이루어지고, 부모로부터 생겨나고,
밥과 죽으로 키워지고, 무상하고, 떨어져 나가고, 닳아 없어지고, 부수어지고, 흩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의식에 의존하고 그것에 묶인 것이다.’라고 분명히 압니다
Evameva kho, udāyi, akkhātā mayā sāvakānaṃ paṭipadā, yathāpaṭipannā me sāvakā evaṃ pajānanti –
‘ayaṃ kho me kāyo rūpī cātumahābhūtiko mātāpettikasambhavo
odanakummāsūpacayo aniccucchādanaparimaddanabhedanaviddhaṃsanadhammo;
idañca pana me viññāṇaṃ ettha sitaṃ ettha paṭibaddha’nti.
우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나의 제자들이 이와 같이 꿰뚫어 알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닦음을 설했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사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성장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분리되고 분해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여 여기에 묶여있다.'라고.
.
그렇게 해서 나의 많은 제자들은 곧바른 앎의 완성과 그 구경에 도달했습니다.
Tatra ca pana me sāvakā bahū abhiññāvosāna-pāramippattā viharanti.
그리하여 많은 나의 제자들은 최상의 지혜의 완결과 완성을 성취 하여 머문다." <*實參 경험의 완성>
.
M61 ‘‘Taṃ kiṃ maññasi, rāhula, kimatthiyo ādāso’’ti?
‘‘Paccavekkhaṇattho, bhante’’ti.
8. "라훌라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울의 용도는 무엇인가?"
"비추어보는 것<*返照>입니다, 세존이시여."
.
사마타 경(A10:54)
54. ‘‘No ce, bhikkhave, bhikkhu paracittapariyāyakusalo hoti, atha ‘sacittapariyāyakusalo bhavissāmī’ti –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ṃ.
1.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남의 마음 길에 능숙하지 못하다면
'나는 나 자신의 마음 길에 능숙하게 되리라.'라고 공부지어야 한다.
‘‘Kathañca, bhikkhave, bhikkhu sacittapariyāyakusalo ho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자신의 마음 길에 능숙하게 되는가?"
Seyyathāpi, bhikkhave, itthī vā puriso vā daharo yuvā maṇḍanakajātiko ādāse vā
parisuddhe pariyodāte acche vā udapatte sakaṃ mukhanimittaṃ paccavekkhamāno
sa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asseva rajassa vā aṅgaṇassa vā pahānāya vāyamati.
No ce tattha passati rajaṃ vā aṅgaṇaṃ vā, tenevattamano hoti paripuṇṇasaṅkappo –
‘lābhā vata me, parisuddhaṃ vata me’ti.
3. "비구들이여, 마치 장식을 좋아하는 어리고 젊은 여자나 남자가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기미나 반점을 보게 되면 그 기미나 반점을 제거하려고 애를 쓰고,
기미나 반점을 찾지 못하면 '이것은 내게 이득이다. 나는 깨끗하다.'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흡족해지고 그의 의도한 바가 성취되는 것과 같다.
Evamevaṃ kho, bhikkhave, bhikkhuno paccavekkhaṇā bahukārā hoti kusalesu dhammesu –
‘lābhī nu khomhi ajjhattaṃ cetosamathassa, na nu khomhi lābhī ajjhattaṃ cetosamathassa,
lābhī nu khomhi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a, na nu khomhi lābhī adhipaññādhammavipassanāyā’ti.
그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의 반조는 유익한 법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짓는다.
'나는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었는가? 아니면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지 못했는가?
나는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를 얻었는가? 아니면 위빳사나의 높은 통찰지를 얻지 못했는가?'라고."
.
M76
[아난다] “싼다까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비유를 설하겠습니다.
세상에서 어떤 현명한 자들은 비유를 통해서 말한 바의 의미를 터득하기 때문입니다.
싼다까여, 마치 사람이 그 손과 발이 절단되었다면,
그에게는 거닐거나 서있거나 잠자거나 깨어있을 때에 항상 끊임없이 손과 발이 절단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보고 ‘나의 손과 발은 절단되었다.’라고 알 듯,
‘‘Tena hi, sandaka, upamaṃ te karissāmi; upamāyapidhekacce viññū purisā bhāsitassa atthaṃ ājānanti.
Seyyathāpi, sandaka, purisassa hatthapādā chinnā;
tassa carato ceva tiṭṭhato ca suttassa ca jāgarassa ca satataṃ samitaṃ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ti, udāhu paccavekkhamāno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ti?
‘‘Na kho, bho ānanda, so puriso satataṃ samitaṃ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 ti.)
[(chinnāva hatthapādā,) (sī. syā. kaṃ. pī.)]
Api ca kho pana naṃ paccavekkhamāno jānāti – ‘chinnā me hatthapādā’’’ti.
"산다까여, 이에 대해서는 비유를 들겠습니다.
여기서 어떤 지자들은 비유를 통해 말의 뜻을 완전하게 알 것입니다.
산다까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의 팔과 다리가 끊어졌다고 합시다.
그의 팔과 다리는 걸어갈 때에도 서 있을때에도 잠잘 때에도 깰 때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끊어져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반조할 때 '나의 팔과 다리는 끊어졌다.'라고 압니다.
마찬가지로 싼다까여, 수행승으로서 거룩한 님이며, 모든 번뇌를 끊은 자이며, 수행을 이룬 자이며,
해야 할 일을 마친 자이며, 짐을 내려놓은 자이며, 목표에 도달한 자이며, 존재의 결박을 끊은 자이며,
올바른 지혜로써 해탈한 자라면, 그에게 거닐거나 서있거나 잠자거나 깨어있을 때에,
항상 끊임없이 번뇌가 부수어져 있으므로, 그것을 보고 ‘나에게 번뇌는 부수어졌다.’라고 압니다.”
‘‘Evameva kho, sandaka, yo so bhikkhu arahaṃ khīṇāsavo vusitavā katakaraṇīyo
ohitabhāro anuppattasadattho parikkhīṇabhavasaṃyojano sammadaññā vimutto
tassa carato ceva tiṭṭhato ca suttassa ca jāgarassa ca satataṃ samitaṃ
(ñāṇadassanaṃ na paccupaṭṭhitaṃ – ‘khīṇā me āsavā’ti;) [(khīṇāva āsavā,)
(sī. syā. kaṃ. pī.)] api ca kho pana naṃ paccavekkhamāno jānāti – ‘khīṇā me āsavā’’’ti.
산다까여, 그와 같이 비구가 모든 번뇌를 부수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끊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이 되면
걸어 갈 때에도 서 있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깰 때에도 언제나 한결같이
'나의 번뇌는 멸했다.'라는 지와 견이 현전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반조할 때 '나의 번뇌는 멸했다.'라고 압니다.<*아빈냐>"
.
정형구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Khīṇā jāti, vusitaṃ brahmacariyaṃ, kataṃ karaṇīyaṃ,
nāparaṃ itthattāyā’ti – abbhaññāsi.
그는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고, 해야 할 일을 마쳤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알았다."
.
.
A5:200 ‘‘Tassa kāmanandīpi nānuseti, byāpādanandīpi nānuseti, vihesānandīpi nānuseti,
rūpanandīpi nānuseti, sakkāyanandīpi nānuseti
(so) [( ) katthaci natthi] kāmanandiyāpi ananusayā, byāpādanandiyāpi ananusayā,
vihesānandiyāpi ananusayā, rūpanandiyāpi ananusayā, sakkāyanandiyāpi ananusayā.
"이러한 그에게는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고, 악의를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고,
잔인함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고, 물질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고,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다.
그에게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앟고, 악의를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고,
잔인함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고, 물질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있지 않고,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즐기는 것도 잠재해 있지 않기 때문에
.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niranusayo, acchecchi [acchejji (syā. kaṃ. ka.)] taṇhaṃ,
vivattayi [vāvattayi (sī.)] saṃyojanaṃ, sammā 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a.
Imā kho, bhikkhave, pañca nissāraṇīyā dhātuyo’’ti.
이를 일러 '비구는 잠재성향이 없다. 갈애를 잘라 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바르게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가 있다."
.
S36:3
"비구들이여, 비구가 즐거움을 느낄 때 탐욕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괴로움을 느낄 때 적의의 잠재성향을 버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경우 무명의 잠재성향을 버리면,
Yato kho, bhikkhave, bhikkhuno sukhāya vedanāya rāgānusayo pahīno hoti,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o pahīno hoti,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o pahīno hoti,
수행승들이여, 수행승이 즐거운 느낌에서 유래하는 탐욕의 경향도 끊어 버리고,
괴로운 느낌에서 유래하는 분노의 경향도 끊어 버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 무명의 경향도 끊어 버리면,
.
이를 두고 ‘비구의 잠재성향은 제거되었다. 그는 올바로 보는 사람이다.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버렸다.’라고 한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niranusayo sammaddaso acchecchi [acchejji (bahūsu)] taṇhaṃ,
vivattayi [vāvattayi (sī.)] saṃyojanaṃ, sammā 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경향을 끊어 버린 '바른 관찰자'라고 한다.
그는 갈애를 부수고 결박을 자르고 자만을 꿰뚫고 괴로움의 종극에 도달한다."
.
S44:9
"다만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버렸다.’라고만 설명합니다.’라고.”
Api ca kho naṃ evaṃ byākaroti –
‘acchecchi taṇhaṃ, vivattayi saṃyojanaṃ, sammā 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대신에 그에 대해
'그는 갈애를 끊었고, 결박을 풀었고, 아만을 완전히 부수고, 괴로움을 끝냈다.'라고 선언합니다."
.
M2
ayaṃ vuccati, bhikkhave – ‘bhikkhu sabbāsavasaṃvarasaṃvuto viharati, acchecchi [acchejji (ka.)] taṇhaṃ,
vivattayi [vāvattayi (sī. pī.)] saṃyojanaṃ, sammā 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모든 번뇌를 단속하여 머물고, 갈애를 끊어버렸고,
족쇄를 풀어버렸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버렸다.'고 한다."
.
M20
Dantebhidantamādhāya jivhāya tāluṃ āhacca cetasā cittaṃ abhiniggaṇhato abhinippīḷayato abhisantāpayato
ye pāpakā akusalā vitakkā chandūpasaṃhitāpi dosūpasaṃhitāpi mohūpasaṃhitāpi
te pahīyanti te abbhatthaṃ gacchanti.
Tesaṃ pahānā ajjhattameva cittaṃ santiṭṭhati sannisīdati ekodi hoti samādhiyati.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수행승은 사유과정의 스승이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이 사유하고자 원하는 사유를 사유할 것이고,
자신이 사유하고자 원하지 않는 사유를 사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갈애를 끊고, 결박을 풀고, 자만을 완전히 정복하여, 괴로움의 종식을 이루었다.”
Ayaṃ vuccati, bhikkhave, bhikkhu vasī vitakkapariyāyapathesu.
Yaṃ vitakkaṃ ākaṅkhissati taṃ vitakkaṃ vitakkessati,
yaṃ vitakkaṃ nākaṅkhissati na taṃ vitakkaṃ vitakkessati.
Acchecchi taṇhaṃ, vivattayi [vāvattayi (sī. pī.)] saṃyojanaṃ,
sammā 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사유의 행로에 대해 자유자재한 비구라 하나니,
그는 원하는 사유는 사유할 것이고 그가 원하지 않는 사유는 사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갈애를 끊었고, 족쇄를 풀었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었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었다."
.
|
첫댓글 경문에서 '마음의 표상을 취한다.', 혹은 '삼매의 표상을 취한다.'라는 표현에서 <取>라는 표현이 나타나면
gahita : [pp. of gan.haati] grasped. (nt.), grip.
우리의 일상적인 표현의 '기억한다-수지한다.'
혹은 catch(포착한다)라고 방편적으로 이해하시면 ?
----위와 같은 댓글을 본문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實參은 없고
"그는 논리에 의해 안출(案出)되었고 탐구를 거듭하여 스스로가 구명(究明)한 것을 말하고" ...
처음부터 잘못된 종교철학적 신념에 의하고 ... 그것에 기초한 논리전개는 엉터리일 수도 있는데
자신만의 언어표현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 ㅋㅋㅋ.... ㅠㅠ
@봄봄 실참에 대한 당위성이......논리적으로도 맞는 말씀이십니다^^;;
다만 하기가 싫다는.....ㅠㅜ
부기한 내용-
[깔라마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스스로}가
‘이러한 법들은 해로운 것이고, 이러한 법들은 비난받아 마땅하고,
이런 법들은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이러한 법들을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손해와 괴로움이 있게 된다.’라고 {알게 되면}
그때 그것들을 버리도록 하라.] ---
<*어떤 법들이 괴로움을 가져오지는 알 수 있도록 하여서, 버릴 수 있도록 하라.
어떤 법들이 불선법인지 알 수 있게 되면 그때서야 버릴 수 있습니다.
(전승이나 사변적 논리가 아닌 본인이 직접 경험한 아빈냐에 의한 버림)
={직접 확인하여 / 스스로 알아서 버리도록 하라.}>
아빈냐가 드러난 사람은... 당연히 버리면 되겠구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라도...
탐,진,치에 물든 마음으로... 자신이나 남이나 자신과 남을 해치는 것이라고 여겨지면......버릴 수 있다고 봅니다.
법은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는 정형구의 설명이지요.
"거울의 용도는 무엇인가?"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
9. "라훌라여, 네가 몸으로 행위를 하고자 하면, 너는 그 몸의 행위를 이렇게 반조해야 한다.
'나는 이제 몸으로 행위를 하려고 한다.
나의 이런 몸의 행위가 나를 해치게 되고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되고 둘 다를 해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 몸의 행위가 해로운 것이어서 괴로움으로 귀결되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반조는 어려운 수준이니까.........
현대의 쉬운 용어로... 시뮬레이션.......^^
@니까야 넵. 문자로만 이해. ^^
또 부기...
"(세존께서 '도따까여'라고 말씀하시면서)
그대에게 聞法이 아닌 見法에서<=직접 확인한> 고요를 칭찬하겠다.
이 [고요]가 確然한 후
사띠를 지니고 유행하면 세간의 얽힘을 건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