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형! 어떻게 지네십니까?
<세월 앞에는 예외없는" 중 늙은이의 훈장>
-대한민국 대전(2시간 거리)에 있으면서도 올해들어 처음으로(6월28일) 1년 만에 우 리 친구들(죽마고우) 만났습니다. 얼굴은 세월에 잔상인양 주름과 검버섯이 연륜에 도장을 찍고, 허리는 굽고, 누구 눈치를 보는지 목소리는 진기가 빠져 힘이 없고 술이라면 한 술 하던 친구들이 정말 재미없게 한잔하는 "세월 앞에는 누구도 예외없는 중 늙은이"로 전락.. -한창 피 끓는 18살부터 집안에 대들보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퇴직시까지 일에만 정진한 지 외길 40여년을 넘어 지금도 그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지커주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 사드리며, “된장도 오래된 된장이 더욱 맛이 있듯이‘ 이제 우리 인생에 남은 1/3의 황혼의 삶을 선하고, 참되고, 건강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죽마고우”친구들이 되기를..
<어느 95세 노인의 일기: 은퇴한 대전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간증>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근무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 습니다. 그 덕에 65세에 당당히 정년퇴직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30년 후인 95세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답니다. 내 65년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 만, 퇴직 후 30년간은 부끄럽고 후회막심한 삶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퇴직할 때, 이제 나는 다 살았다... 남은 생은 그냥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만 죽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또 흐르고... 덧없고 희망 없는 삶으로... 무려 30년이 나 무의미하게 살았습니다. 30년이란 세월은 지금 내 나이 95로 보면 자그만치... 내 인생 의 3분의 1이나 되는 기나긴 시간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퇴직할 그때... 내 스스로 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건강하고 정신도 또렷합니다. 혹시 나는 앞으로 10년이나 20년은 더 살지도 모릅니다.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 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 때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 장형! 그때가 그립습니다?
<죽마고우의 영원한 캡틴 장형!>
.현중이 엄마는 건강하신지 ? 아이들(현중과 혜란 결혼은)? 건강은? 일은? 교회는? 어떠하신지.... 67년 한전에 입사하여 약11년간(군생활 3년포함) 한전 직장생활을 거쳐 79년 종합청사 과기처 원자력국(석사과정수료)근무, 84년 원자력연구소(박사과정수료)에서 늦깍이 학업과 원자력업무로 성장, 90년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 원자력진흥과 규제로 꽃을 피우며 현재까지 약 35년간을 원자력과 인연을 맺어 일을 하고 있으나 지금 돌이커 생각하면 우리들의 시작과 끝 친구들 “죽마고우”와 함께한 그 시간들만 추억에 남습니다.(술은 왜 그렇게 많이 먹었는지? 종종 봉천동 큰 형님과 형수님께 눈치없이 신세를 지고, 운동도 잘하여 야구도 4번타자로, 수준급의 탁구선수로 명성이 자자한 장형.. 정작 당구와 바둑은 잘 못하여도 언제나 친구들과 끝날 때 까지 함께.. 그러다 언제가 학업을 재개하고, 수원아가씨와 결혼을 한다고.. 나도 장형내외 덕분에 2년후에 장가가게 되었고,, 누가 먼저 한전을 그만 두었는지 기억은 않나지만 장형 미국 이민 가는 날 김포공항에서 돌아오면서 얼마나 서글퍼는지...그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줄기찬 노력과 변화의 모범을 보이는 장형 그림자를 보면서 나에게 도전을 준 나의 인생에 친구이며 선도자임에 감사드립니다. 한국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 참 우정이 우러나는 “죽마고우”라는 영원한 우정에 무대를 결성한 우리에 영원한 캡틴 장형! 요즈음 어떵게 지내십니까,,,,
<파도 너울속에 사라져간 이름이여>
-채석강은 변산반도 서쪽 끝 달기봉 아래 자리하고 있다. 강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수만 권의 책을 쌓아 올린 것 같은 와층으로 졌다고 해서 “채석강”이라 부른다...장형 생각이 남니까? 총각때 장형과 환구, 네가 호기있게 떠난 추억의 변산바다.
괜찮은 아가씨들과 변산에서 3:3만남 이튼날 시외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채석강으로 가서 자연스레 파트너가 정해지고(그때도 장형은 나에게 양보를 잘하고 환구는?? 그 덕택에 나는 우수에 젖은 참한 아가씨를 만났지..) 나와 정아는 채석강 퇴적암 위에 서로의 이름을 깊게 깊게 새기며 시간가는줄 모르고 놀다가 우리 모두 마지막 버스를 놓쳐지(남자들의 음흉한 계산가운데) 각 팀마다 가능한 거리를 두고 마지막 팀으로 나와 정아는 족히 20리 바닷를 낀 시골길을 그 밤이 다 새도록 이야기하며 걷고 또 걸었지(정아의 “조리”가 끊어지는 바람에 나의 듬직한 등에 업힌 정아가 한 말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히 매돌고 있다 “이대로 죽을 때까지 업히어 가고 싶다 는 말”과, 만약에 “우리가 회갑까지 산다면 그 해 2월1일에 이 곳 채석강에 꼭 같이 오자고”하는 말이 귓가에 생생합니다...) 몇 년전 마침 채석강 대명콘도에 원자력세미나가 있어 간적이 있었지요.. 그 바위에 서서 먼 바다의 파도소리와 휘파람소리를 들으며 40년전 “큐피트의 빗나간 장난에 화살”로 파도 너울 저 건너편으로 사라져간 이름을 찾고 찾으며 지나간 세월에 씁씁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 장형! 이제는 우리 만납시다?
<수구초심>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여우가 죽을 때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둔다는 뜻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인간도 다 이와 같은 마음이며 이를 또 귀소본능이라 일컽는 모양입니다. 장형! 우리 참 열심히 살았습니다...위로 부모님, 동기간들 모시다 천국에 보내시고, 아래로 우리 자식들과 손자까지, 키우고, 양육하느라 숨가쁘게 달려왔고 정작 우리도 인생에 주연에서 조연으로 역할과 위치가 바뀌며 조만간 이 땅에서 막을 내릴 때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이제 우리는 처음 만났던 곳에서 시작과 끝을 함께하여야 할 것입니다. 저 번 죽마고우 만남에서 “범석”형의 역작 “죽마고우 카폐”를 통하여 서로의 그리움을 대신한 만남의 소식(최근사진 포함)을 함께 공유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장형이 9월에 한국에 올 계획이 뜻하지 않은 일로 만남이 어렵게 되어 그리움을 이 글을 대신합니다..
<죽마고우여 영원하라>
“톨스토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그게 바로 세상을 사는 이유라고“,,,,,그렀습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고 지금 함께하는 죽마고우 우리가 가장 주요한 사람이고,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좋은 일을 하며 사는 죽마고우여 영원하라
-나는 작년 3월 서유럽출장 겸 여행중 뜻하지 않은 가시(공황장해)로 인해 잠시 아픔이 있었으나 이러한 아픔을 통하여 타인의 아픔과 곤고함을 이해하며 지금은 거의 완치되어 더욱 많은 활동과 치유에 전념하며 위로자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붙임:최근 2년간 여행사진>
-2011. 8월: 산성교회 장로부부 여름수련회(홍콩, 마카오)
-2012. 3월: 서유럽출장 및 관광(영국,프랑스 관광후 come back(아픔))
-2013. 3월: 딸 가족과 휴가(일본, 오끼나와)
<이재규 드림>
-주소: 대전 유성구 테크노밸리 중앙A 310동-302호
-휴대폰: 010-6488-4693 -mail: gubong2003@hanmail.net
첫댓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다" 명언을 가슴 깊이 간직하면서 여생을 아름답게 삽시다. 훌륭한 글을 올려준 재규에게 감사하면서 죽마고우여 영원하여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