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 <오디세이>를 보지 못했습니다. 8월 5일 오늘 개봉이니 당연하죠.
대신 해외 시사평과 원작 대조 기사들을 뒤져서, 놀란이 원작을 얼마나 다르게 바꿨는지 미리 예상해봤습니다.
그리고 찾아보다 보니 20년 전 브래드 피트의 <트로이>가 겪었던 고민과 놀랍도록 겹치더군요. 같은 질문 — "신화 속 신들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 — 에 두 영화가 각각 어떻게 답했는지, 주제별로 나란히 놓고 봤습니다.
하나. 신을 얼마나 지울 것인가
호메로스의 원작 두 편 모두 신들이 사건에 직접 개입합니다.
오디세이아의 아테나·포세이돈, 일리아스의 아프로디테·아레스처럼요. 두 영화 다 이 신적 개입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는 점은 같습니다.
다만 정도가 다릅니다. <트로이>(2004)는 신들의 개입을 아예 통째로 들어내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대결을 순전히 인간 대 인간의 싸움으로 만들었습니다. 감독 볼프강 페터젠은 "인간의 대결이 신화가 되어 전해질 만큼 위대했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죠.
반면 외신 보도에 따르면 <오디세이>는 신은 줄이되 키클롭스, 키르케, 세이렌 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은 그대로 남겨뒀다고 합니다. 트로이가 신화를 아예 역사물로 바꿨다면, 오디세이는 신화적 경이로움은 지키면서 신의 '개입'만 덜어낸 절충안을 택한 셈입니다.
둘. 감독은 각색을 어떻게 정당화했나
캐스팅과 각색을 둘러싼 논란은 두 영화 다 피하지 못했습니다. <오디세이>는 헬레네 역에 루피타 뇽오가 캐스팅되면서 반발이 있었는데, 놀란 감독은 "원작 자체가 신화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라 역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트로이> 쪽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논란을 맞았습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를 나이 차 나는 '보호자-소년' 구도로 바꾸면서 원작의 동성애적 뉘앙스를 지운 걸 두고, 신화 연구자들은 원작에서 파트로클로스가 오히려 연장자였다는 점을 근거로 명백한 오류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쪽은 놀란처럼 감독이 적극적으로 방어한 기록은 딱히 없고, 오히려 주연이었던 브래드 피트 본인이 "서사가 얕아졌다"는 비판에 동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종류의 논란 앞에서, 한쪽은 각색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주장했고 다른 쪽은 한계를 인정한 셈입니다.
※ 아래부터는 결말 관련 예상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셋. 결말을 어디까지 순화했나
원작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아내와 재회한 뒤 이타카로 돌아가 계속 왕좌를 지키고, 텔레마코스는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긴 여자 노예 12명을 가차 없이 처형합니다. 해외 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영화는 이 결말을 크게 순화했다고 합니다 — 노예들은 목숨을 건지고, 구혼자 처단 장면도 복수극보다 생존 사투에 가깝게 그려지며, 결말도 왕좌를 지키는 대신 왕위를 아들에게 넘기고 부부가 망명길에 오르는 것으로 바뀐다고 하네요. (사실이라면요. 실제로 보고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트로이> 쪽은 결말 자체보다는 서사의 압축과 생략이 논란의 중심이었습니다. 10년에 걸친 전쟁을 몇 주로 압축하면서 원작의 굵직한 사건들이 상당수 빠지거나 수정됐고, 이 부분이 평론가들의 "깊이가 없다"는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결말을 인간적으로 다시 쓴 오디세이, 방대한 서사를 통째로 쳐낸 트로이 — 두 영화가 '분량'이라는 같은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넷. 평단과 관객, 반응은 갈렸나
<트로이>는 개봉 당시 온도차가 컸습니다. 평론가들은 원작 대비 깊이 부족을 지적했지만 일반 관객 평가는 좋았고, 오락 영화로는 확실히 성공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작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중이 트로이 전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연상하는 이미지가 됐죠.
<오디세이>는 다른 양상입니다. 개봉 전부터 로튼토마토 팝콘지수가 98%로 보도되는 등, 대중성과 평단 반응이 함께 좋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트로이>가 감내해야 했던 "상업적이라 얕다"는 비판을, <오디세이>는 비선형 서사와 심리적 해석 여지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피해가는 중인 것처럼 보입니다.
정리하면 (어디까지나 예상입니다)
정보만 놓고 보면, 두 영화는 같은 딜레마 — 신을 얼마나 지울 것인가, 방대한 원작을 어떻게 쳐낼 것인가, 각색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 — 앞에서 계속 다른 답을 골랐습니다.
트로이가 매번 더 급진적인 쪽을, 오디세이가 매번 절충안을 택한 셈이죠. 결국 신화를 영화로 옮긴다는 건 신을 걷어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지 고르는 일인 것 같은데, 그 선택이 20년 사이 관객의 마음을 얻는 방식조차 바꿔놓은 셈입니다.
실제로 보고 나면 이 예상이 얼마나 맞았는지, 후기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작성자 로더리고
사진 및 움짤 출처 구글
첫댓글 오디세이 직접 보시면 알겠지만 글에 쓰신 그정도으로 신들을 지우지는 않았습니다. 신들의 존재와 그들의 개입은 계속 언급되고 느껴질 정도라고 보면서 느껴졌습니다. 다만 신화처럼 신들이 서로 회의하고 등장하고 하지 않아서 해석의 여지는 있습니다. 트로이는 아예 역사물로 만들었지만.
오, 정확한 지적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못 보고 외신 정보만으로 예상한 거라 이 부분은 제가 좀 뭉뚱그렸네요. 신들이 직접 회의하고 등장하는 원작 방식은 안 쓴 것 같은데, 존재감 자체는 계속 느껴지는 거군요. 보고 나서 이 부분 다시 정리해서 후기 올리겠습니다
트로이 다시보고 오디세이 보려는데
디렉터스컷을 찾기 어렵네요
그게 다 나온다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