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인(金友仁)
[본관] 예안(禮安)
[생졸년] 1568년(선조 1)~1616년(광해군 8) / 향년 4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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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조 학사집(鶴沙集)
선산부 교수 김공 묘갈명 병서(善山府敎授金公墓碣銘 幷序)
공은 이름이 우인(友仁)이고 자가 자보(子輔)이며 예안 김씨(禮安金氏)이다. 이조 판서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의 5대손으로 제사를 받들고 있다. 증조 김좌(金佐)는 충순위(忠順衛)를 지냈고, 조부 김택민(金澤民)은 봉정대부(奉正大夫)로 사섬시 첨정(司贍寺僉正)을 지냈다. 부친 김윤의(金允誼)는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동부승지에 추증되었고, 모친은 숙부인(淑夫人)에 추증된 한양 조씨(漢陽趙氏)이다.
공은 융경(隆慶) 무진년(戊辰年,1568, 선조 1)에 태어나 일찍 과거공부를 하여 여섯 차례나 향해(鄕解 향시)에 입격하였으나 성시(省試 대과)에 번번이 낙방하였다. 삼경(三經)과 사서(四書)를 입으로 암송하여 한 글자도 틀림이 없었으나 끝내 쓰이지 못하였다.
일찍이 선산부(善山府) 교수(敎授)에 보임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 형제간에 우애가 있고 재물이 조금 넉넉하여 자손을 위한 계책에 급급해하지 않았지만 제사를 받듦에는 풍성함을 다하였으며,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친구들을 불러서 함께 즐겼다.
만력 병진년(丙辰年,1616, 광해군 8)에 병에 걸려 죽으니 향년 49세였다. 처음에 점불산(占佛山)에 장사 지냈으나 술가(術家)의 말에 따라 감천현(甘泉縣) 북쪽 고방산(庫防山) 오향(午向) 언덕에 이장(移葬)하였다. 첫째 부인 수안 김씨(遂安金氏)는 생원 김명성(金鳴盛)의 따님으로 공보다 8년 먼저 죽었고 영천군(榮川郡) 남쪽 황조동(黃鳥洞)에 장사 지냈다.
딸 셋은 진사(進士) 송상헌(宋尙憲)ㆍ사인(士人) 홍집(洪鏶)ㆍ송대덕(宋大德)에게 시집갔다. 둘째 부인 한양 조씨(漢陽趙氏)는 충의위(忠義衛) 모(某)의 따님으로 1남 3녀를 낳았는데 아들 초(鍫)는 과거공부에 능하였지만 쓰이지 못하였고, 딸 셋은 사인(士人) 이성윤(李成玧)ㆍ권처중(權處中)ㆍ권정(權鐤)에게 시집갔다. 아들 초(鍫)는 종제(從弟) 옥(鈺)의 아들 종미(宗渼)를 후사로 삼았는데 아직 아내를 얻지 않았다. 외손자와 외손녀 약간 명이 있어 아래에 기록한다.
공이 죽은 지 29년 뒤인 갑신년(甲申年,1644, 인조 22)에 둘째 부인 조씨(趙氏)가 죽어 장사도 치르지 않았는데 또 아들 초(鍫)가 죽었다. 아, 덕을 쌓은 가문에 태어나 현달함이 마땅한데도 막혔고, 장수함이 마땅한데도 요절하였고, 오래도록 자손이 있어 집안의 대를 이음이 마땅한데도 단지 외아들만 두었고 또 요절하였으니 운명이다.
초(鍫)의 부인 김씨(金氏)가 상(喪)을 치를 때에 애훼(哀毁)하며 먼저 요절한 남편의 상을 치르고 마침내 조씨(趙氏)의 관을 받들어 공의 묘소에 합장하였다. 이미 장례를 다 치른 뒤에 진사(進士) 송상헌(宋尙憲)에게 울며 말하기를 “저는 원컨대 숨이 끊어지기 전에 돌아가신 시아버지 묘소에 비석을 세우려 하니, 그대가 나를 위해서 비명(碑銘)을 요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송 진사(宋進士)가 김씨의 뜻을 슬피 여겨 나에게 와서 부탁하니 차마 사양할 수 있겠는가? 명(銘)은 다음과 같다.
공이 자식이 없다고 말하랴 / 謂公無子兮
옥수가 훤하였네 / 玉樹皎然
공이 자식이 있다고 말하랴 / 謂公有子兮
죽은 뒤에 적막해졌네 / 身後寂然
어진 며느리가 집안을 잘 꾸리고 / 賢婦足以經家
양자가 후사를 잘 이어서 / 過房足以托後
아마도 선대의 유업이 끊어짐이 없으리라 / 倘無墜於靑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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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脚註]
[주01] 옥수(玉樹) :
옥수경지(玉樹瓊枝)의 준말로 가문의 훌륭한 자제를 일컫는 말이다.
[주02] 양자(養子) :
원문의 과방(過房)은 자식이 없는 사람이 형제나 혹은 동종(同宗)의 아들을 데려다가 후사(後嗣)로 삼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김
초(金鍫)의 후사로 종제(從弟) 김옥(金鈺)의 아들 김종미(金宗渼)를 들인 것을 말한다.
[주03] 선대의 유업(遺業) :
원문의 ‘청전(靑氈)’은 푸른 빛깔의 털 담요로, 선조의 유업(遺業) 또는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물건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의 집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하였다.
왕헌지는 꼼짝 않고 누워 있다가 도둑이 탑(榻)에 올라 훔칠 것을 찾자,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아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그러자 도둑이 놀라 달아났다.《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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