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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로엔그린에 관한 여러 전설
볼프람 에셴바흐의 <파르지팔>, <티투렐>
콘라트 폰 뷔르츠부르크의 <백조의 기사>
작자 미상의 음유시인 서사시 <로엔그린>
그림 형제의 <독일 전설> 등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50년 바이마르 궁정 오페라 극장
배경 10세기 초 독일 안트베르펜 지방
<2006 바덴-바덴 페스티벌 / 210분 / 영어자막>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 마인츠.리용 합창단 연주 / 켄트 나가노 지휘 / 니콜라우스 렌호프 연출
로엔그린.........................백조의 기사. 파르지팔의 아들.....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테너)
엘자 폰 브라반트..............브라반트 공국의 공주................졸베이크 크린겔보른(소프라노)
프리드리히 폰 텔라문트.....브라반트 공국의 백작................톰 폭스(바리톤)
오르트루트......................텔라문트의 아내. 마법사............발트라우트 마이어(메조소프라노)
하인리히.........................독일 왕...................................한스-피터 쾨니히(베이스)
고트프리트......................엘자의 남동생..........................(묵역, 默役)
그외 네 명의 브라반트 귀족, 전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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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덕션 노트 === (내지 해설)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전혀 새로운 <로엔그린>
<로엔그린>은 리하르트 바그너가 전통적인 오페라 어법에서 자신만의 음악극으로 이행하는 과정에 위치한 과도기적 작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공연 시간도 무척 길고 음악은 이전의 오페라와는 비교할 수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측면까지 파고든다. 주인공 로엔그린은 성배의 기사이며 그동안 상당히 영웅적인 캐릭터로 그려지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2006년 6월 독일 남서부의 바덴-바덴 축제극장의 공연에서는 이런 관점이 무너진다. 간결하고도 확신에 찬 연출자 니콜라우스 렌호프는 전설에 기초한 이 이야기를 현대물로 바꾸면서 이전의 어느 프로덕션보다도 엘자와 로엔그린 커플을 눈보다 하얀 백색의 순결한 커플로, 오르트루트와 텔라문트를 악마적인 검은 커플로 명료하게 대비시켰다. 이를 위해 로엔그린 역에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 엘자 역에 솔베이그 크링겔보른이라는 리릭 테너와 리릭 소프라노를 캐스팅했다. 모차르트 오페라에 어울릴 가수들이 주역을 노래하면서 <로엔그린>의 분위기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켄트 나가노가 지휘하는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 오케스트라도 연출자의 의도에 면밀하게 반응한다. 결혼식이 열리는 2막 후반부가 거대한 종교음악처럼 연주된 것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 작품해설 === <불멸의 오페라 Ⅱ, 박종호> 865 ~ 881쪽
로엔그린
오래 간직해온 그러나 이룰 수 없는 꿈
사람은 마음속에 꿈을 간직하고 산다. 현재의 삶이 힘들고 지치더라도 언젠가는 꿈속에 그리던 기사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서 나를 구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판타지는 인류의 마음속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삶을 지탱하는 건강한 기제이며, 판타지가 없다면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기 힘들 수도 있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나아지리라는 꿈,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이상적인 이성을 만나고, 궁극적으로는 행복해지리라는 꿈, 그리고 복권에 당첨되거나 도박으로 큰돈을 버는 꿈, 또는 스타가 되고 싶은 마음, 할리우드 영화나 디즈니의 만화나 모두 기사를 기다리는 심정에서 비롯된 것들이 많다.
그런 인간의 공통된 무의식의 심성을 확실하게 표현한 작품이 <로엔그린>이다. 누명과 멸시와 질타 속에서도 자신을 구원해줄 기사만을 기다리면서 살아오던 소녀에게 판타지에서 그리던 모습과 똑같은 기사가 백조를 타고 나타난다는 것이다. 너무나 동화적인 ‘백조의 기사’ 이야기다. 그러나 그런 만큼 이것은 어린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어린 시절을 거쳐 온 모든 어른들의 숨겨진 동심을 들추어내는 우리 모두의 동화다. 오페라를 보는 동안 성인들이 그 마력에 빠져서 누구도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작품이 바로 <로엔그린>이다.
이 소재는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집단 무의식을 깨우쳐주는 우리 모두의 ‘기사님’에 관한 동화다. 그렇다면 결국 그 꿈은 멋지게 극적으로 이루어질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남고, 다만 우리의 영원한 꿈이 된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시리는 <로엔그린>이다.
이 오페라는 <탄호이저> 다음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작품들이 아직 오페라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한 악극을 향해 나아가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나는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유도동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관현악이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오케스트라의 스케일이 커지고 관악기의 수가 많아져서 풍부한 양감을 들려준다. 오케스트라만으로도 이야기의 전개를 상상할 수 있을 정도이며, 음악이 지극히 아름답다. 성악의 경우도 비록 아리아 형태의 곡들이 있긴 하지만 이전의 오페라에서 보이던 극에서 튀어나오거나 화려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동시에 부르는 중창의 형태는 이제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악극으로 이행하는 분위기가 짙다.
<로엔그린>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전주곡이다. 이 작품에는 서곡이 없는 대신 각 막마다 하나씩 모두 세 개의 전주곡이 나오는데, 이 역시 바그너의 특징과 오페라에 관한 그의 시각을 잘 대변한다. <로엔그린>은 서곡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전주곡의 시대를 연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바그너는 당시 오페라계에서 주로 이용되던 이탈리아나 프랑스풍의 서곡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극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던 바그너는 서곡이 너무나 크고 장대하며 비중이 높아서 도리어 극의 진행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원래 고전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는 하나의 서곡에 전 오케스트라의 기량이 집중되다가, 막상 막이 오르면 관현악의 비중은 떨어지고 대신 성악이 주가 된다. 그런 만큼 성악 대신 관현악이 주도하는 악극을 지향하던 바그너로서는 낡은 이탈리아풍의 서곡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전작 <탄호이저> 등에서 보여주던 대형 서곡은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대신 전주곡들은 각 막마다 막이 오르기 전에 나오게 되는데, 바로 이어질 장면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예고편의 구실을 확실하게 한다. 세 막이니 세 개의 전주곡이 각 막의 앞에 위치하는데, 세 개의 전주곡은 상대적으로 짧지만 각 막의 중요한 유도동기로 이루어져 내용을 암시하고 관객들에게 미리 적절한 기대와 집중 효과를 낸다.
<로엔그린>의 제1막 전주곡은 장대하며 전설처럼 몽환적이고, 제2막 전주곡은 어두운 음모의 세계를 상징하며, 제3막 전주곡은 금빛처럼 화려하여 바그너의 뛰어난 관현악 기술을 보여주는 명작들이다. 심하게 얘기하면 이 전주곡 세 개만 다 들어보아도 오페라 전체의 내용과 음악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이라는 전설은 당시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합친 것이다. 이 소재는 독일에서 전래되던 파르지팔의 전설에 북독일 신화, 성배聖杯의 전설과 기독교 사상, 그리고 훈족 침략기의 독일 역사 등 최소한 다섯 가지 이야기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드라마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원전으로는 많은 시집과 동화집이 거론되는데, 바그너가 독서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치팔> 및 <티투렐> 두 가지 전설집과 콘라트 폰 뷔르츠부르크가 쓴 <백조의 기사>, 작자 미상의 중세 음유시인이 쓴 서사시 <로엔그린>, 그림 형제의 <독일 전설> 중에 나오는 <로엔그린> 전설 등을 모두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들을 하나의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로 다듬어낸 것은 바로 바그너다. 게다가 바그너는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새로운 <로엔그린>에 모두 쏟아 부어서 수준 높은 구성과 문체로 완성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그너의 문학적 성과이며, 순수한 바그너의 작품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이 오페라의 소재, 즉 파르지팔, 성배, 기사단, 기독교 사상은 지금 멋있다는 수준을 넘어서 좀 이질적이거나 낯설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충분히 잘 이해하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유럽 문화에 대한 더 깊은 경험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이런 것들이 독일이나 유럽 사람들에게는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사실 바그너의 세계에 빠지기 위해서는 어차피 익숙해져야 할 것들이다. 이는 바그너의 다른 작품에서도 반복해서 다루어지는, 정말 바그너적인 소재들이기도 하다.
<로엔그린>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론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오페라에 어떤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물론 바그너의 예술 세계 자체가 그런 대우를 받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반유대주의나 나치즘 등이 그러하다. 특히 <로엔그린>이 그런 평가를 많이 받는 편이다.
예를 들면 엘자를 바그너를 비롯한 독일의 정신적 가치를 지키려는 계층으로 보고, 로엔그린을 진정으로 독일을 구하거나 일으키려고 오는 신 또는 예언자나 지도자적인 존재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엘자를 방해하는 오르트루트는 독일의 순수하고 진정한 발전을 저해하는 자로서 이방인, 더욱 노골적으로는 유대인으로 보기도 한다. 그리고 오르트루트의 남편인 텔라문트와 그를 따르는 네 명의 기사는 독일의 발전에 기여한 지도층이지만, 유대인 등의 세계에 현혹되어 있는 계층이다. 물론 독일 왕 하인리히와 백성들은 그대로 독일의 왕과 백성들이다.
이런 비유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현학적이어서 들으면 혹하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바그너의 의식 구조로 볼 때 어느 정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오페라는 이런 비유가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게대가 유대인의 입장이라면 엘자를 자신들 유대인으로 거꾸로 설정해도 드라마는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이 어찌 되었든 그것이 더 중요하지는 않다. 오페라 <로엔그린>은 단순한 구원자인 백조의 기사를 기다리는 보통 인간 개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더욱 감격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이다.
1850년 바이마르 궁정 오페라 극장에 <로엔그린>의 초연이 화려하게 올려졌다. 그날은 괴테의 생일이기도 해서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의 명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지휘는 바그너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이 공연의 실제적인 산파 역할을 했던 리스트가 맡았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초연에 정작 바그너는 참여하지 못했다.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독일로 귀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주인공 없이 <로엔그린>은 올려졌으며, 유럽 오페라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됨과 동시에 악극 세계의 신호탄이 되었다.
11년이나 지난 1861년 빈 궁정 오페라 극장 공연 때 바그너는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로엔그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감동하여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한다.
제1막 안트베르펜의 세르데 강변
제1막 전주곡 ★★★
장대하나 아름답고, 몽환적이나 견고하다. <로엔그린>의 세 전주곡 중에서는 물론이고, 바그너의 모든 관현악곡 중에서도 가장 긴장미 넘치는 명곡 가운데 하나다.
독일 왕 하인리히
막이 오르면 세르데 강변에 기사와 병사들이 당당하게 늘어선다. 독일 왕 하인리히 1세가 변경을 위협하는 훈족을 토벌하기 위해 출정할 군대를 모으려고 이곳 안트베르펜에 왔다. 왕은 작센의 귀족과 기사들을 거느리고 강변에 앉아 있고, 반대편에는 이 지방의 귀족과 기사들이 앉아 있다. 왕은 독일 민족의 정기를 내세우며 이곳을 방문한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해줄 것을 역설한다. 왕의 연설에 귀족들이 합창으로 화답한다.
브라반트 공의 남매
그런데 이 안트베르펜은 영주가 죽고, 프리드리히 폰 텔라문트 백작이 섭정으로 있어 정세가 안정되지 않은 곳이다. 텔라문트 백작이 앞으로 나와 이곳 사정과 후계 문제를 왕에게 호소한다. 그는 “이곳 영주였던 브라반트 공이 죽었을 때 두 남매를 남겼다. 그런데 어느 날 누나인 엘자가 어린 남동생인 고트프리트와 숲으로 간 이후, 영주의 후계자인 동생은 실종되었다. 혼자 돌아온 엘자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거동으로 보아 그녀가 동생을 죽였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원래 엘자와 혼인하기로 되어 있던 백작 자신은 하는 수 없이 프리스란트 공 라트보트의 딸인 오르트루트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백작은 오르트루트의 부추김대로 “이 땅은 제가 다스리는 것이 적당하고, 엘자는 살인죄로 다스려야 한다”고 왕에게 호소한다.
아리아(엘자) ★★★
조용하고도 슬픈 합창 속에서 엘자가 불려 나와 재판이 진행된다. 그러나 엘자는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고 꿈 이야기만을 한다. 엘자의 꿈으로 알려진 아리아 <혼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Einsam in truu:ben Tagen>이다. 그녀는 꿈의 기억에 취해 몽환적인 기분으로 노래한다. “혼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내며 주님께 기도했어요. 꿈에 눈부시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가 제게 다가왔어요. 그는 부드럽게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저는 그분을 기다릴래요.” 엘자의 노래를 듣고 그녀의 순수함에 마음이 움직인 왕은 백작에게 고소를 취하하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백작은 그간 독일 왕국에 대해 자신이 세운 전공을 내세워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왕은 결국 판단을 하늘에 맡기는 ‘신의 재판(바로 결투를 의미한다)’을 선택하여 결투로 승부를 가리도록 한다.
기도(엘자) ★
결투에서 한쪽이 여자인 경우에는 다른 기사가 여자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결투의 팡파르가 울려도 엘자를 위해 나서는 지원자는 아무도 없다. 상대는 백전노장인 텔라문트인 것이다. 그러자 엘자는 “꿈에서 본 그 기사를 저를 대신해서 내세우겠다”면서, 자신을 위해 싸워줄 기사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이 대목이 <엘자의 기도 Des Ritters will ich wahren>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리아(로엔그린) ★★
그때 세르데 강에 백조 한 마리가 끄는 작은 배가 나타난다. 거기에는 엘자가 꿈에서 보았던 바로 그 기사가 눈부신 순은 갑옷을 입고 서 있다. 모든 사람이 기사의 위용에 숨을 죽인다. 은빛의 기사는 배에서 내려 백조에게 이별의 노래 <고맙다, 아름다운 백조여 Nun sei bedankt, mein lieber Swan!>를 부르고 백조를 돌려보낸다.
2중창(엘자, 로엔그린) ★★
기사는 왕에게 인사를 하고는 엘자에게 “나를 당신의 기사이자 남편으로 받아들이겠냐”고 묻는다. 이에 엘자는 “당신에게 몸도 마음도 다 바치리라”고 맹세한다. 그러자 기사는 도리어 되받아서 그녀에게 맹세를 하게 한다. 그것은 “승리했을 때 나는 당신의 남편이 될 것이지만, 대신 절대로 나의 이름과 내력을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2중창 <금지된 질문의 노래 Zum Kampf Fu:r ein Magd>이다. 엘자는 이를 승낙한다. 기사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말한다. “엘자, 당신을 사랑하오!”
결투와 피날레 ★★
드디어 기사와 백작의 결투가 시작된다. 텔라문트 백작은 미지의 기사의 위력에 눌려 두렵고, 주위에서도 그를 만류한다. 그러나 백작은 결국 싸우기로 결심한다. 국왕 하인리히가 앞으로 나와 “신이여, 진실한 자가 이기게 도와주소서”라고 왕의 기도를 한다.
몇 번의 겨루기 끝에 결국 기사가 승리한다. 기사는 쓰러진 백작을 향해 “신의 승리로 네 목숨은 내 손에 있지만 용서한다”고 준엄하게 말한다. 엘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기사는 “승리는 당신의 순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르트루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엘자와 기사의 승리를 찬양하고, 장대한 합창 속에 막이 내린다.
제2막
제2막 전주곡 ★★★
앞뒤 막의 다른 두 전주곡과는 달리 상당히 어두운 곡이다. 2막의 음모와 불안의 그림자가 저현부低絃剖로 짙게 드리운다.
제1장 밤, 안트베르펜 성
부부의 2중창(오르트루트, 텔라문트) ★★★
이 오페라 전체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아주 대조적인 장면이다. 텔라문트와 오르트루트 두 부부의 2중창은 악마적이고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결국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텔라문트 백작이 아내와 앉아 있다. 결투에서 진 그는 추방당하여 이제 아침이 되기 전에 이 땅을 떠나야 할 처지이다. 백작은 왕에게 호소하라고 부추겼던 아내를 윽박지르면서 그녀를 탓한다. 그러나 오르트루트는 태연하다. 그녀는 사실 마법의 힘을 가진 이교도 마법사였다. 그녀는 “그 이방인은 결코 당당히 이긴 것이 아니고, 마법으로 당신을 이겼다. 나도 엘자에게 마법을 걸어서 그 남자에게 금단의 질문을 하도록 하겠다. 그런 마법을 쓰는 자는 몸을 조금만 다쳐도 마법을 잃고 치명적인 상태가 되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부부는 격렬한 2중창으로 복수를 맹세한다.
아리아(엘자) ★★
성의 발코니에 엘자가 나타난다. 그녀는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 행복을 ‘미풍에 부르는 엘자의 노래’인 아리아 <산들바람이여 Euch Lu:ften>로 노래한다.
아리아(오르트루트) ★★★
오르트루트는 불쌍한 모습으로 가장하여 엘자에게 접근한다. 엘자는 그녀를 가엾게 여겨 “왕에게 두 사람의 선처를 간청해보겠다”고 말하고 안으로 사라진다. 혼자 남은 오르트루트는 불타는 심정을 담아 아리아 <모욕당한 신들이여 Entweifte Go:tter!>를 부른다. “모욕당한 신들이여, 당신의 치욕의 대가를 받으시오. 나의 성스러운 복수를 도와주시오. 내 위선과 속임수에 축복을 내리소서”라면서 복수를 기원한다. 엘자가 다시 나타나서 오르트루트를 내일 있을 자신의 결혼식에 초대하고, 둘은 성 안으로 들어간다. 이 모습을 숨어서 지켜본 텔라문트가 나온다. 그는 “이렇게 불행이 성으로 들어간다”고 말하고서 퇴장한다.
제2장 아침
브라반트의 수호자
아침이 되어 날이 밝고, 사람들이 모인다. 전령이 포고문을 발표한다. “텔라문트 백작을 추방한다. 엘자를 위해 싸웠던 이방인은 엘자의 남편이 된다. 그에게 브라반트 공작의 지위를 주고 브라반트를 다스리게 하려 했지만, 그 스스로 작위를 거절했다. 그러므로 그를 다만 ‘브라반트의 수호자’라고 부르기로 공포한다. 그는 결혼식을 올린 다음 날 하인리히 왕을 따라 브라반트 군대의 사령관으로 출정한다.”
신부 입장
사람들이 늘어선 가운데 신부 엘자의 행렬이 들어온다. 신부가 행진을 할 때, 갑자기 오르트루트가 교회로 들어가려는 신부를 막아선다. 오르트루트는 “자신의 신분도 묻지 못하게 하는 남자를 어떻게 믿느냐? 악마일지도 모른다”며 엘자의 마음이 흔들리도록 부추긴다.
신랑 입장
국왕과 미지의 기사 일행이 등장한다. 기사는 엘자를 방해하는 오르트루트를 물리친다. 그러자 이번에는 텔라문트가 앞으로 나와 왕에게 “그는 마법으로 결투에서 이겼습니다. 저는 공정한 판결을 요구하므로, 기사는 신분을 밝혀야 합니다”라고 웅변하며 대중을 부추긴다. 그러나 기사는 “설혹 왕이 물어도 대답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에게 물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는 엘자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왕과 기사 일행이 성 안으로 들어가는데, 엘자는 이 일로 기사에 대한 의구심이 더욱 커진다. 그러자 이때를 놓치지 않고 텔라문트가 접근하여 “기사의 몸을 조금만 잘라보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오늘 밤 내가 당신 처소로 가겠다”고 말한다.
이 광경을 본 기사가 텔라문트를 쫓아내고, 엘자에게 “혹시라도 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요?”라고 말하자, 엘자는 당황하면서도 “저에게는 모든 의심을 넘어서서 사랑이 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군중들의 찬미의 합창 속에 두 사람은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제3막
제3막 전주곡 ★★★
누구나 한번 들으면 깊은 인상에 젖을 만큼 다이내믹한 곡이다. 폭발할 것 같은 ‘환희의 동기’로 시작되면, 장대한 금관군의 웅장한 주제는 듣는 이를 확실하게 흥분시킨다. 곡은 바로 <결혼행진곡>으로 이어지며 막이 오른다.
제1장 신혼부부의 침실
혼례의 합창 ★★★
전주곡에 이어서 결혼 행진곡으로 유명한 <혼례의 합창>이 연주되는 가운데, 결혼 축하 행렬의 인도로 엘자와 기사가 등장한다. 결혼의 숭고함을 찬미하는 고금의 명곡이지만, 실제 오페라 무대에서 합창으로 듣는 원곡과 그 가사는 더욱 감동적이다. “그대들이 부부가 되기까지 수많은 역경을 이겨온 당신들의 용기와 승리, 그리고 사랑이 이제 그대들을 부부로 맺어줍니다. 이제 밖에서 들리는 떠들썩한 하객들의 소리와 화려한 겉모양은 잊어버려요. 진실로 사랑하는 당신 두 사람만을 위해 오늘의 신방이 준비되어 있어요.”
신방의 2중창(엘자, 로엔그린) ★★★
신혼부부가 초야를 치른다. 엘자는 행복에 취해 신랑의 품에 안기고, 이제야 둘만 남은 신혼부부는 신방의 2중창으로 알려진 감미로운 노래 <이제 노래는 사라지고 Das Suu:sse Lied verhallt>를 부른다. “감미로운 노래는 사라지고, 우리는 만난 후 비로소 처음으로 단둘이 되었소. 우린 세상에서 떨어져 있어, 누구도 우리 가슴의 고동 소리를 듣지 못하오. 나의 순결한 아내 엘자여! 당신이 행복한지 말해주오.” “제가 천상의 기쁨을 누리는 이 순간, 저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평범해요.”
그러나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엘자의 머릿속에는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간다. 결코 그것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맹세했음에도, 마침내 엘자는 “당신의 이름도 부를 수 없다니 섭섭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저에게만 이름을 말해주세요”라고 금단의 질문을 하고야 만다.
금단의 파기
그때 텔라문트가 하인리히 왕의 출정에 반대하는 불만 많은 귀족 네 명과 함께 미지의 기사를 살해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엘자가 재빨리 건네준 칼을 받아 든 기사는 단칼에 텔라문트를 쓰러뜨린다. 기사는 “이제 우리의 행복은 다 끝났다”고 비탄에 빠져 읊조린다.
이에 엘자는 “영원한 신이시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슬프게 말한다. 기사는 네 명의 귀족에게 “텔라문트의 시체를 왕 앞으로 옮기라”고 명령하고, 엘자에게는 “당신이 물은 나의 이름은 국왕 앞에서 대답하겠다”고 말한다.
제2장 아침, 세르데 강변
출정의 아침
제1막과 같은 세르데 강변이다. 드디어 출정하는 날 아침이다. 팡파르와 함께 국왕을 따라갈 브라반트 군대가 등장한다. 이어 지휘관인 미지의 기사가 등장하는데, 텔라문트의 시체를 앞세우고 입장하자 모두들 크게 놀란다. 기사는 “지난밤에 텔라문트가 나를 습격하여 그를 죽였다. 그리고 엘자가 서약을 깨고 나의 신분을 물었다”고 밝힌다.
성배 이야기(로엔그린) ★★★
그는 조용히 자신의 신분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머나먼 나라에서 In fernem Land>로 시작하는 이 로엔그린의 독백은 흔히 <성배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머나먼 곳에 몬살바트라는 성이 있고, 그곳에는 성배가 보관된 사원이 있다. 가장 순수한 남자들이 ‘성배의 기사’로 선택되어 성배를 지키고 있다. 그곳의 왕은 파르지팔이다. 나는 그의 아들이자 성배의 기사인 로엔그린이다. 성배 기사들은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는데, 정체가 발각되지 않는 한 그 힘은 계속된다. 그런데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쓴 엘자를 구하라는 사명을 띠고 이곳으로 왔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의 숭고한 신분에 감격한다. 엘자도 그에게 이곳에 머물러달라고 애절하게 부탁하지만, 그는 “나는 사명을 다했으며, 엘자의 질문으로 신성한 금기가 깨어진 이상 나는 성배를 지키는 몬살바트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따라서 지금 국왕의 원정에 참여할 수 없지만, 이번 전쟁에서 당신들은 큰 승리를 거두어 훈족이 다시는 독일 땅을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러고는 엘자를 향해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그런데 왜 약속을 어겼나?”라고 원망한다.
아리아(로엔그린) ★★
그때 강에서는 백조가 배를 끌고 로엔그린을 맞이하러 나타난다. 로엔그린은 강가로 다가선다. 그는 엘자에게 자신의 칼과 뿔피리, 반지를 정표로 준다. 그러고서 백조를 향해 작별의 노래인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백조여 Mein lieber Schwan>를 부른다.
피날레 ★★★
그러자 흰 비둘기 한 마리가 배 위로 나는 것이 보인다. 이것을 본 로엔그린은 기뻐하며 백조의 목에 묶인 사슬을 풀어준다. 그러자 백조가 강물 속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아름다운 소년의 모습으로 변하여 땅으로 올라온다. 그는 바로 오르트루트의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해 있던 고트프리트 왕자였던 것이다. 그를 보자 로엔그린은 일동을 향해 “이분이 새 브라반트 공입니다”라고 말한다. 고트프리트가 국왕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자, 브라반트의 모든 군대가 고트프리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엘자는 기뻐하며 동생을 맞이하고 남매는 뜨거운 포옹을 한다.
그러다가 엘자가 눈을 돌려 강가를 보는데, 이미 로엔그린은 거기에 없다. 그는 백조 대신 새로 온 비둘기에게 배를 끌게 하고 강 가운데로 나아가고 있다. 멀어지는 배 위에서 로엔그린이 자신의 눈물을 숨기기 위해 방패로 얼굴을 가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엘자는 너무나 비통하여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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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09년 12월 28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바그너, 로엔그린
3막 혼례의 합창이 결혼식의 신부 입장시에 연주되는 음악이다
3막의 오페라로 1850년 리스트의 지휘로 바이마르에서 초연되었다
원하는 일을 이룰 때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조건이 동화나 신화에는 자주 등장하지요. 그리고 주인공이 이 금지사항을 깨트리면서 이야기는 대개 비극으로 발전해갑니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가 직접 대본을 쓰고 작곡한 오페라 [로엔그린]도 이런 ‘금지와 위반’을 기본 틀로 삼은 이야기입니다.
위기의 순간 백조를 타고 나타난 정체모를 기사
10세기 초 안트베르펜. 텔라문트 백작 프리드리히와 그의 아내 오르트루트는 죽은 브라반트 공작의 딸 엘자가 남동생 고트프리트를 죽였다고 고소합니다. 엘자가 스스로 상속인이 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주장이지요. 그러나 사실은 엘자 다음으로 상속의 권한을 가진 사람은 바로 텔라문트 백작이고, 엘자의 남동생은 마법을 쓰는 오르트루트가 백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 사건의 재판관이 된 국왕 하인리히는 당사자들의 결투로 하늘의 뜻을 들어보기로 합니다. 결투에 이긴 사람이 곧 정의로운 사람인 셈이죠. 아무도 엘자 편을 들어 프리드리히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엘자는 꿈에 본 기사에게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결투를 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합니다(‘홀로 괴로운 날들을 보내며 Einsam in trueben Tagen’). 엘자의 부름을 듣고 미지의 기사가 백조를 탄 채 이들 앞에 나타납니다. 기사는 엘자의 청을 기꺼이 승낙하지만 자신의 출신과 이름과 신분을 결코 물어서는 안 된다고 엘자에게 당부하지요. 기사는 결투에서 승리해 엘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결투에서 패배한 프리드리히와 아내 오르트루트는 수치심에 치를 떨며 서로를 비난하다가, 함께 복수의 계략을 꾸밉니다(‘굴욕을 당한 신들이여, 복수를 도우소서 Entweihte Goetter! Helft jetzt meiner Rache!’). 오르트루트는 엘자의 발밑에 엎드려 선처를 호소하고, 마음 여린 엘자는 오르트루트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결혼식 날이 되자 오르트루트는 ‘신분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엘자를 내가 왜 섬겨야 하느냐’며 갑자기 태도를 바꿉니다. 오르트루트와 프리드리히가 엘자에게 끊임없이 백조의 기사에 대한 의혹을 불어넣는 것을 보고 기사는 불같이 화를 내며 둘을 쫓아버립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묻지 말아라
혼례의 합창이 울려 퍼지고, 엘자와 기사는 신방으로 들어갑니다(‘사랑과 축복이 기다리는 곳으로 Treulich gefuehrt ziehet dahin’ - 혼례의 합창). 백조의 기사는 두 사람이 나눌 사랑에 기뻐하지만, 기사에 대한 의혹과 버림 받는 데 대한 불안으로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던 엘자는 결국 금지된 질문을 던지지요. 기사에게 출신, 이름, 신분을 물은 것입니다. 그때 프리드리히가 기사를 죽이러 달려 들어오지만, 기사는 재빨리 칼로 그를 죽입니다. 기사는 백성들에게 출정을 약속했지만, 아침이 되자 하인리히 왕 앞에 나아가 ‘출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프리드리히가 자신을 죽이려 했고 엘자가 약속을 깼다는 사실을 밝히며 그는 자신이 몬살바트 성배의 기사 로엔그린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죠(‘여러분이 갈 수 없는 먼 나라에 In fernem Land, unnahbar euren Schritten’ - 성배의 노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자신은 몬살바트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백조로 변했던 엘자의 남동생 고트프리트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려주고 떠나지만, 엘자는 동생의 품에서 정신을 잃고 죽고 맙니다.
중세문학에 등장하는 ‘백조의 기사’를 소재로 삼았다
바그너는 중세 기사문학 작품인 볼프람 폰 에셴바흐의 [파르지팔], 콘라트 폰 뷔르츠부르크의 [백조의 기사], 작자 미상의 서사시 [로엔그린] 그리고 그림형제의 [독일 설화집] 등을 참고해서 자신의 [로엔그린]을 창작했습니다. 바그너는 언제나 이처럼 고대신화 또는 중세문학 작품에서 소재를 가져다가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을 뽑아내고 각색해 ‘현대적인 심리극’을 만들었지요. 신화나 설화가 어느 시대의 사람들이나 공감할 수 있는 ‘원형’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간파했던 것입니다. 바그너가 참고했던 중세의 서사시 [로엔그린]에는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 원전에는 엘자의 동생 고트프리트도 마법사 오르트루트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엘자에게 기사의 비밀을 캐내라고 유혹하는 사람은 자기 남편이 마상 시합에서 로엔그린에게 진 다른 백작부인이죠. 기사가 엘자를 떠나는 시점 역시 결혼식 직후가 아니라 아들을 둘이나 낳은 다음입니다.
바그너는 ‘통일된 강력한 민족국가’인 독일을 열망하며 오페라 [로엔그린] 속의 남성상들을 창조했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백조의 기사’ 로엔그린은 심리적 상처를 고쳐주는 치료사(엘자의 억울함을 풀어줌)인 동시에 순수한 ‘독일정신’을 제시하는 예언자(남동생 고트프리트를 되돌려주어 공작 가문의 혈통을 계승하게 함)이며, 다신교를 몰아내고 기독교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사제(다신교 사제인 오르트루트의 흑마술을 이겨냄)로 그려졌습니다.
바그너의 반유태주의 및 독일 통일주의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입니다. 하인리히 왕 역시 역사 속의 인물 그대로가 아니라 바그너의 의도에 맞게 바뀌었습니다. 특히 영웅의 민족적 사명을 무조건 지지하고 신뢰하는 여성에 대한 열망이 강조됩니다. 그래서 호기심과 불안 때문에 로엔그린과의 약속을 어긴 엘자에게 벌을 준 것이죠.
결혼식에서 연주되는 ‘혼례의 합창’이 흘러 나오는 오페라
비극 오페라 [마지막 호민관 리엔치](1842)가 성공을 거두고 이듬해 초 ‘낭만적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드레스덴에서 초연한 뒤 바그너는 드레스덴 궁정극장의 지휘자가 되었고, 이후로 작곡과 지휘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소년 시절 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그는 베버가 섰던 바로 그 지휘대에 서는 영예를 누리게 되었지요. 베토벤을 존경했고 베토벤 음악의 영향을 받았던 바그너는 1846년에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1850년 바이마르 궁정극장에서 초연된 [로엔그린]의 주제를 바그너가 찾아낸 것은 이미 1841년 겨울, 파리에서였지만 본격적으로 작곡에 임한 것은 1846~48년간이었습니다. 이 작품에는 [리엔치]의 성공으로 기대에 찼던 바그너가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해 경제적 곤경을 겪으며 유태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가는 과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유태인의 상업주의가 당대 예술을 망치고 있다며 분개한 바그너는 유태인들이 만들고 지원하는 예술을 ‘타락의 꽃’이라고 불렀습니다.
[로엔그린]은 [탄호이저]에 이어 바그너가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여 작곡한 마지막 작품입니다. 요즈음도 결혼식장에서 신부 입장 때 피아노로 연주되는 ‘결혼 행진곡’이 바로 3막 ‘혼례의 합창’인데요, 이 곡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낭만주의적인 선율이 강세를 보이며 음악적 형식이 보수적인 편입니다.
전주곡부터 상당히 전통적인 형식에 충실하며, A장조를 기조로 삼아 성배의 종교적인 상징과 로엔그린의 환상적 출현 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로 바그너는 아리아와 레치타티보가 교차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인 형식을 떨쳐버리고,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유도동기)와 무한선율이 강조되는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로엔그린 이후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니벨룽의 반지], [파르지팔] 같은 작품들은 완결된 아리아로 안정감을 주지 않고, 끝없이 계속되는 선율로 청중에게 불안감이나 도취감을 선사합니다. 불협화음의 정도가 훨씬 강해진 이 작품들은 현대 오페라의 길을 열어주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추천 음반 및 영상물
로엔그린 / 엘자 / 오르트루트 / 하인리히 순
[음반] 제스 토머스, 엘리자베트 그뤼머, 크리스타 루트비히, 고틀로프 프리크 등, 루돌프 켐페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 1962-63년 녹음(EMI)
[음반] 제임스 킹, 군둘라 야노비츠, 기네스 존스, 칼 리더부쉬 등, 라파엘 쿠벨리크 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및 합창단, 1971년 녹음(DG)
[DVD] 페터 호프만, 캐런 암스트롱, 엘리자베스 코널, 지크프리트 포겔 등, 볼데마르 넬손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괴츠 프리드리히 연출, 1982년 바이로이트 실황(유로아츠)
[DVD]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크트, 솔베이크 크링엘보른, 발트라우트 마이어, 한스 페터 쾨니히 등, 켄트 나가노 지휘, 베를린 독일교향악단 및 리용 국립오페라 합창단, 마인츠 유럽합창아카데미, 니콜라우스 렌호프 연출, 2006년 바덴바덴 실황(오푸스 아르테)
첫댓글 210분짜리 장편 작품입니다...마치는 시간 감안하시길!
10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직 한글자막이 나오지 않는 걸로 봐서 이 공연은 한글자막버전 출시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아쉬운대로 영어자막으로 감상합니다...<로엔그린>을 이미 접해보신 분이라면 영어자막이라도 그리 힘들지 않을 것이고,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작품해설을 정독해서 내용을 숙지하고 오시면 그럭저럭 감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놓치기 아까운 공연이라 영어자막버전으로 무리를 해봅니다...
<불멸의 오페라 2 / 박종호> ★★★
최신 기술의 화질과 음질이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니콜라우스 렌호프의 혁신적인 연출은 놀라게 하기나 야하게 하기를 넘어서 현대적이면서도 수긍이 가고 아름다운 무대의 모범을 보여준다. 지휘자 켄트 나가노의 음악도 무척 훌륭한 편이다. 클라우스 플로리안 보그트(로엔그린 역)는 비록 헬덴 스타일은 아니지만 미성의 테너도 바그너에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졸베이크 클린겐보른도 뛰어나고 현대적인 엘자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다. 발트라우트 마이어(오르트루트 역)는 노래는 물론이고 대목대목의 눈빛과 표정이 '과연' 하는 감동을 남긴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1.29 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