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기도, 김현승 시인의 훌륭한 시입니다.
독일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 Rainer Maria Rilke의 '가을날 Herbsttag'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있습니다.
이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는 여러 음악가들이 곡을 붙였습니다. 여기서는 안정준 님의 곡을 올립니다. 명시에 명곡,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 시, 안정준 가을의 기도는 여러 좋은 성악 버전들이 있습니다. 아래는 소프라노 김영미의 노래로 올립니다. 훌륭한 가창 감동의 가창입니다.
https://youtu.be/fCdh5O5K24E
* 참고로 제 대학 은사였던 고 심헌섭 선생님이 김현승 시인과 함께 숭실대 교수로 근무했었다고 합니다.. 심헌섭 선생님은 김현승 시인을 좋아하고 존경했습니다. 심헌섭 선생님의 유일한 법철학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법철학 I>(법문사, 1984) 첫 페이지에는 김현승 시인의 '플라타너스' 시구 일부가 적혀 있었습니다.
먼 길에 올 제, 홀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 참고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도 옮겨 봅니다.
김현승의 시가 만추의 서정을 시인의 초연하고 충만한 고독으로 연결시켰다면, 릴케는 가을의 성숙함 속 시인의 외로움을 절절하게 읊었다고 생각합니다...
Herbsttag(가을날)
Rainer Maria Rilke,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정태욱 번역
Herbsttag Rainer Maria Rilke
Herr: es ist Zeit. Der Sommer war sehr groß Leg deinen Schatten auf die Sonnenuhren, und auf den Fluren laß die Winde los. Befiehl den letzten Früchten voll zu sein; gieb ihnen noch zwei südlichere Tage, dränge sie zur Vollendung hin und jage die letzte Süße in den schweren Wein. Wer jetzt kein Haus hat, baut sich keines mehr. Wer jetzt allein ist, wird es lange bleiben, wird wachen, lesen, lange Briefe schreiben und wird in den Alleen hin und her unruhig wandern, wenn die Blätter treiben. | 가을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아두소서. 그리고 들판에는 바람을 풀어 놓으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충만케 명하소서; 그 열매들에 이틀만 더 남국의 날들을 베푸시어. 열매들이 무르익게 하시고 진한 포도주에 마지막 단맛이 들게 해 주소서,
지금 집이 없는 이는 더 이상 집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홀로 있는 이는 오랜 동안 홀로 지낼 것입니다. 깨어나, 읽고, 장문의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낙엽들이 휘날릴 때, 거리들을 이리저리 안식없이 헤매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