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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내용이 아니고 시각에 따라 다른....같이 모임갖는 까페에서 올립니다.
한국교회의 리딩교회인 온누리교회에 대한 글입니다.
신동아 10월호에 기재되었던 온누리 교회에 대한 이야기
기독교인이 꾸준히 감소하고 반(反)기독교 분위기가 짙어지는 시대, 대형 보수 교회의 상당수가 세습 문제와 불투명한 재정 운용으로 구설에 오르거나 ‘세상법’의 심판을 받았다. 온누리교회는매년 두 자릿수 성장세를 기록하면서도 이러한 말썽에서 자유로웠고, 그 ‘젊음’과 ‘세련됨’으로 많은 기독교인에게 ‘꿈의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고조되는 비판에도 선교에 대한 근본주의적 견해는 흔들림이 없고, ‘중산층 이상의 커뮤니티 교회’라는 정체성에선 적잖은 부작용도 엿보이는데…. ‘Leading Church’를 통해 본 한국 기독교의 현실, 그 안과 밖.
일단 고백부터 하자. 크리스천이던 학창시절, 기자에게 서울 서빙고동의 온누리교회는 말 그대로 ‘꿈의 교회’였다. 1992년 겨울, 학력고사를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던 기차 안에선 워크맨으로 당시 온누리교회의 대표 브랜드였던 ‘경배와 찬양’ 실황 녹음 테이프를 들었다. 온누리교회 담임 하용조 목사가 운영하는 두란노서원은 그때 이미 ‘생명의삶’이나 ‘빛과소금’ 같은 크리스천 잡지를 통해 기독교계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창립된 지 불과 7년 남짓, 등록교인 5000명 안팎을 헤아리던 시점이었다.
15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고, 미처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사이 온누리교회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대형 교회’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던 교회는 2007년 1월 현재 등록교인 5만3000명을 넘어섰다. 일요일에만 일곱 번 예배가 열리는 서빙고동 본당뿐 아니라 서울 양재, 부천, 수원, 대전, 남양주, 평택, 인천에 지(支)교회를 두고 있고 18개에 달하는 해외 교회도 열었다.
교인 숫자로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같은 ‘초대형 교회’를 따라가기 어렵지만, 매년 30~50%에 육박하는 폭발적인 증가세만큼은 단연 독보적이다. 이 기간이 전체 기독교인 숫자가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한국 기독교 위기론’이 나온 시점이란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교인 숫자와 성장세만을 따지는 것은 교회를 평가하는 적절한 기준이 아닐 수 있다. 일부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 투명하지 못한 재정 문제, 신도들 간의 갈등과 법정싸움 등 안으로 곪아들어가는 치명적인 한계들이 한국 교회의 병폐로 비판받은 지 오래다. 그러나 온누리교회는 앞에서 열거한 문제점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취재를 위해 인터뷰한 대부분의 교계 관계자들이 ‘한국 보수교회의 대표주자’라는 평가에 긍정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반(反)기독교 정서’가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시점에 온누리교회를 들여다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상식과 법률의 관점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부 교회를 기준으로 한국 기독교를 말한다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한국 축구의 수준을 가늠하려면 조기축구 모임이 아니라 대표팀을 봐야 하는 법이다. 대표주자가 가진 비전과 가능성을 통해 한국 기독교의 비전과 가능성을 보고, 거꾸로 대표주자가 가진 고민과 한계를 통해 한국 기독교의 고민과 한계를 가늠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해서, 참으로 오랜만에 한 교회를 쉴 새 없이 드나들며 그 구석구석을 살피게 됐다. 교회란 본질적으로 이중적인 존재다. 지상을 딛고 서서 천상의 논리를 지향한다. 이 기사는, 어린 시절 천상의 관점에서 동경하던 교회를 나이가 들어 지상의 관점에서 다시 돌아본 기록이다.
30, 40대가 많은 교회
온누리교회가 자리잡은 용산구 서빙고동은 동부이촌동과 묶여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강변북로에 바로 잇닿아 있어 대중교통보다는 자가용으로 가는 게 훨씬 수월한, 강북에 있지만 오히려 강남에서 더욱 접근하기 쉬운 지리적 위치는 이 교회의 독특한 면모를 상징한다. 중산층 이상의 경제적•사회적 위치에 있는 젊은 교인이 많다는 사실이다. 특히 30, 40대가 60%를 넘는 교인 구성은 다른 대형 교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온누리교회 서빙고성전 일요일 예배 광경.
그 가장 큰 이유로 1985년 창립 이래 교회를 이끌고 있는 하용조(河用祚•61) 목사의 설교 스타일을 꼽는 데는 교회 안팎에 이견이 없다. 개인의 경험과 가부장적 권위를 바탕으로 말 그대로 ‘설교’를 하는 일부 대형 교회 목회자들과 달리, 하 목사의 설교는 모성애적 보살핌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젊은 교인들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을 자제하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이는 사회적 관점에서 온누리교회를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별성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래 대다수 대형 교회가 정부 비판 집회를 조직하고 참여했지만, 온누리교회는 이를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 밖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회 안에서는 ‘긍휼사역’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사회사업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7년간 40여만명의 노인에게 무료급식을 한 ‘예수향기회’는 온누리복지재단으로 이어졌고, 현재는 용산노인종합복지관과 치매노인을 위한 전문요양센터 등으로 연결됐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구조대원들을 위한 식사 제공, 탈북자와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쉼터 운영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같은 행보는 1970~80년대 격동의 시기에 목회를 시작한 하용조 목사의 경험과 관계가 깊다. 기독교계 전체가 반독재투쟁 등 사회참여를 두고 양분돼 있던 시기에 하 목사는 보수단체로 분류되는 한국대학생선교회(CCC) 간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참여’에 ‘가난한 이웃에 대한 봉사’와 ‘구원 받은 자의 모범’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실은 그의 메시지는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중산층 크리스천들에게 일종의 돌파구였다. 하 목사가 사랑의교회 옥한음 원로목사와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목사 등 보수교단의 개혁파에 속하는 지도자급 목회자들과 신학교 시절부터 뜻을 같이해온 ‘4인방’이라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살아 있는 예배’
9월9일 오전, 온누리교회 서빙고성전을 찾았다. 교인이 가장 많이 참석한다는 3부 예배는 11시30분부터 시작되지만, 11시10분이 넘어서자 2400석 규모의 본당에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본당에 앉지 못한 이들은 별관과 지하 등 다섯 개 홀에 나뉘어 스크린을 통해 예배에 참여한다. 같은 시간 3000석 규모의 양재 사랑성전 등에서도 3부 예배가 시작된다. 각 성전을 모두 합하면 일요일 하루에만 40건의 예배가 열린다. 어린이와 청소년 예배, 주중 예배와 외국어 예배는 별도다. 건물 규모만 놓고 보면 큰 편이 못되는 온누리교회에 수만명의 교인이 모일 수 있는 이유다.
11시15분, 전면에 자리잡은 반주팀이 연주를 시작한다. 단상의 한쪽에 서 있는 드럼 풀세트에서는 대중음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감미로운 리듬의 연주곡이 흘러나온다.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딕풍의 실내장식은 눈에 띄지 않는다. 연극무대에 가까울 정도로 별다른 꾸밈이 없는 단상에는 평범한 아크릴 설교대가 놓여 있을 뿐이다. 단상 뒤편에 선 찬양팀 역시 색깔을 맞춰 입기는 했어도 모두 평상복 차림이다. 찬송가 대신 복음성가로 시작된 준비 찬양은 별다른 멘트 없이 예배 시작으로 이어진다.
건강이 안 좋은 하용조 목사는 최근 수개월간 일본에서 요양 중이다. 이미 간암으로 수술을 여섯 번 받았고 현재는 신장이 안좋아 일주일에 세 차례 혈액투석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는 1985년 교회 창립 이후 건강 문제로 몇 차례의 안식년을 가졌다. 그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 서빙고성전의 일요일 오전 예배는 라준석 목사가, 양재성전 예배는 한홍 목사가 설교를 맡고 있다.
설교자는 다르지만 대상이 되는 성경본문과 주제는 모든 성전이 동일하다. 온누리교회가 매주 성경 본문을 순서대로 따라가는 강해설교를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설교는 누가복음 23장 33~49절. 그런데 설교에 사용되는 성경 본문이 독특하다. 다른 교회에서 주로 사용되는 ‘개역성경’ 번역본 대신 2005년 두란노서원에서 펴낸 ‘우리말성경’ 번역본을 사용한다. 본당 안의 2400명 교인이, 성경이라면 으레 연상되는 의고체 대신 현대어를 한목소리로 낭독한다.
7월3일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일본 사이타마에서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고 있다.
설교가 끝나자 다시 인상적인 드럼과 베이스기타 사운드가 본당 안을 울린다. 현악 반주에 맞춘 트럼펫 연주가 고요히 메아리치자 단상과 좌석을 막론하고 적잖은 이가 눈을 감고 손을 들어 화답한다. 온누리교회 신도들이 자랑하는 이른바 ‘살아 있는 예배’다. 감성과 느낌에 방점을 둔 이 같은 예배 진행에는 흡음•반사장치가 반영된 내부설계와 콘서트홀이 부럽지 않은 음향설비, 프로페셔널을 능가하는 연주 수준이 큰 몫을 한다. 온누리교회에서 열리는 모든 예배는 담당PD가 사전에 큐시트를 제작해 기획회의를 통해 공유하는 등 공연에 가까운 사전준비가 이뤄진다.
흔히 ‘강대상’이라고 부르는 교회 단상에 드럼이나 전자기타 같은 대중음악용 악기가 올라오거나 일요일 예배 시간에 사용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온누리교회는 1980년대 후반 이들 악기를 가장 먼저 폭넓게 활용한 교회다. 예배시간에 찬송가가 아닌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피아노나 파이프오르간 같은 클래식 악기만을 사용해온 기독교계에 이는 상당한 충격을 던졌고, 그 적절성을 두고 목회자들 사이에 격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교회 안에서 울리는 드럼
한국 기독교 특유의 문화적 엄숙주의를 배격한 이 같은 시도는 온누리교회 성장요인의 하나로 꼽히는 문화적 포용성을 상징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음악 장르의 구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 카페와 서점, 꽃집을 만들어 ‘거룩한 공간’이라는 개념보다는 ‘생활공동체’의 의미에 방점을 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교회에 비해 젊은층 신도가 많고 대학청년부 활동이 왕성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적극적인 포용은 하용조 목사가 온누리교회 창립 이전에 6년간 담임했던 연예인교회 목회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연예계 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은 그는 연예인을 집회무대에 참석시켜 초심자들을 전도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온누리교회가 설립한 위성방송 CGNTV나 월간지 ‘빛과소금’에 다수의 크리스천 유명인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7월24일 일본 사이타마현에서 열린 문화선교행사 ‘러브소나타’에는 22명의 크리스천 연예인과 프로골퍼 최경주씨 등이 참석했다. 이 역시 ‘한류(韓流) 스타로 일본 선교의 문을 연다’는 콘셉트가 바탕에 깔린 것이었다. 휴가를 내 일본 현지 행사에 참석한 온누리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현직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 자리에는 1970년대 기독교계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전날 하용조 목사에게서 세례를 받고 참석해 ‘러브소나타’에 대한 언론의 관심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SWOT 분석, 광고기법, 마케팅 방법론
온누리교회 성장의 또 한 가지 비결로 거론되는 것은 경영기법의 성공적인 응용이다. 예를 들어 목회기획팀에서는 주기적으로 환경적 트렌드와 내부 역량의 조화를 꾀하기 위한 SWOT 분석을 실시한다. 강점(Strengths), 약점(Weaknesses), 기회(Opportunities), 위협(Threats)을 매트릭스 분석해 대응전략을 도출하는 기업경영 기법 가운데 하나다. 교통과 주차 혼잡으로 인근 주민의 불만이 많아지자 교회를 소그룹화하고 지역별 예배를 신설하는 식이다.
정교한 조직구성 체계도 마찬가지다. 모든 교인을 10명 내외의 소그룹인 ‘순’으로 세분해 이를 다락방, 공동체의 상급단계 조직으로 연결한다. 매주 600개에 달한다는 각종 모임과 행사에서 온누리교회는 평신도들을 프로그램의 주체로 내세우고 소그룹을 네트워크화해 운영체계의 골간으로 삼고 있다. 앞서 누가복음 23장에서 본 것처럼 예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을 가로막던 ‘휘장’이 찢어졌으므로,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목회자나 다름없는 신앙의 주체가 됐다는 개신교의 ‘만인제사장주의’가 그 근거다.
이러한 평신도 중심의 교회운영 방식은 미국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 윌로우크릭의 영향을 받은 바 크다. 온누리교회 프로그램 대부분이 평신도의 자원봉사를 바탕으로 진행된다거나,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정밀한 교육체계의 운용 역시 윌로우크릭의 프로그램을 차용한 것이다. 기존의 초등부•중고등부에 ‘꿈이자라는땅’과 ‘파워웨이브’라는 감각적인 명칭을 붙여 대폭 강화한 것이, 1996년 하용조 목사 등이 윌로우크릭을 방문한 이후의 일이었다.
경영적 기법이 교회 안에서 차용된 경우는 또 있다. 온누리교회의 ‘맞춤전도’는 마케팅 기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에 해당한다. 2001년 4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 ‘비상구’로 시작된 맞춤전도는, 대상에 상관없이 같은 전도 메시지를 전하던 이전의 집회와는 달리 특정 그룹을 선정해 그에 맞는 프로그램과 메시지, 출연자를 결정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3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챔피언’, 20~30대를 위한 ‘Just For U’ 등 주로 연령을 기준으로 마련됐던 맞춤전도 집회는 2004년부터 의사, 교사, IT전문인, 금융 종사자 등 직업군을 기준으로 하는 집회로 발전했다.
온누리교회 양재성전. 원래는 이형자씨가 이사장으로 있던 횃불선교센터 본부 건물이었다.
초기부터 교회 내의 광고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준비팀은, 대상자를 세밀하게 분석해 설득력을 높일 수 있는 브랜드와 캐릭터를 선택하는 등 마치 광고 제작과정처럼 진행했다. 광고 그래픽을 차용해 감각적인 비주얼이 담긴 홍보물을 제작했다. 직업군으로 나눈 최근의 맞춤전도 집회에는 해당 직업을 가진 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행사를 기획하고 이를 이후의 프로그램과 연계하기도 한다. 대상의 특성 분석, 알맞은 도구설정, 홍보기획에 이르기까지 기업 마케팅에 버금가는 노하우가 총동원되는 셈이다.
온누리교회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독창적인 예배구성, 교육체계, 조직관리, 전도기법 등은 1990년대 중반 이래 다른 교회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온누리교회도 매년 축제를 열어 다른 교회 교역자들을 초청함으로써 자신들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온누리교회는 스스로를 ‘배우고 가는 교회’로 규정한다. 교역자든 교인이든 온누리교회에 머물지 말고 다른 교회로 옮겨 ‘온누리 마인드’를 전파하라는 것이다. 창립 초기부터 하용조 목사가 강조해온 “7년 된 교인은 떠나라” “배웠으면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이를 상징한다.
첫댓글 방향은 하나인데 ... 큰교회도 있고 작은교회도 있고 서울에도 교회가 있고 베트남에도 교회가 있고 시골에도 교회가 있고!!!!
보이는 성전는 유형교회이고 우리 마음은 보이지 않는 성전 이지요.보이지 않는 성전을 어떻게 가꾸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보이는 성전에만 치중하고 보이지 않는 우리 마음의 성전은 가을날 갈대와 같이 앙상하고 메말라서 쓸쓸 한 모습이라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 까울까요?온누리교회예배 모습을 보면 정말 은혜가 넘치는 찬양을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우리 중창단보다 더 은혜넘치는 것 같아요.우리 모두 온누리교회 보다 더 은혜스럽게 찬양하는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