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블로스의 배'
당시의 풍경을 《인류의 대항해》의 작가 브라이언 페이건은 다소의 상상력을 동원해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했다.
기원전 2600년 레바논, 비블로스. 향기로운 삼나무 목재가 작은 항구의 석재 부두위에 쌓여 있다. 나일 강에서 온 바닥이 평평한 화물선은 갑판이 부두의 석재가 산단과 거의 같은 높이에 위치한 채 부두와 나란히 떠 있다. 땀투성이 선원들과 목재 일꾼들은 부두 쪽으로 목재를 쉴 새 없이 굴린 다음, 지렛대로 조심스레 움직여 경사로를 따라 내려 보낸 후 섬유와 가죽으로 꼰 밧줄로 단단히 묶어 선창에 집어넣는다. 위쪽에서는 선장이 무게가 고르게 분산되도록 각각의 통나무를 조심스레 배치하면서 작업을 지시한다. 새하얀 짧은 치마를 입은 이집트 고위 관리가 멀찌감치 떨어져 선적작업을 주시하는 가운데 그 옆의 서기는 통나무의 길이를 하나하나 세심하게 기록 중이다. 선장이 큰 목소리로 외친다. 배에 짐이 다 실렸다. 선원들은 경사로를 해체해 배에 실은 다음 장대로 짐이 가득한 배를 항구에서 밀어낸다. 몇몇 노잡이 들이 최저 타효 속력이 날 만큼 노를 젓자 선장은 호송 선단의 다른 배들을 기다리기 위해 연안 가까이에 닻을 내린다. 그동안 또 다른 빈 배가 부두에 닿고 선적이 재개된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바다로 나가는 배는 무조건 ‘비블로스 배’라고 불렀다고 하니 당시 두 나라간의 교역이 얼마나 활발했는지 잘 알수 있다. 삼나무 대신 비블로스로 가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수출품은 파피루스였고, 비블루스란 이름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참고로 바이블 Bible의 어원도 뿌리가 같다. 또한 그들은 이집트의 소금호수에서 결정이 큰 소금을 가져다 물에 녹여 증발시켜 정제염을 만들었다. 지중해 연안은 절벽이 많아 생산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기에 소금이 귀했기에 좋은 상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삼나무나 소금 모두 장기간 변질되지 않아서 장거리 수송에 적합하다는 이점까지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번영하던 이 도시를 수호하던 바라트 신의 신전은 기원전 2200-2300년경에 일어난 모종의 ‘폭력적 사건’에 의해 심하게 파괴되었다. 파괴자들은 시나이 쪽에서 북진한 유목민이자 셈족 계열인 아모리 족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비블로스는 1천 년 후,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인들의 공격을 받은 예리코과 비슷한 운명에 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예리코는 비블로스와 나란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타이틀을 가진 곳이며 사해의 소금으로 도시를 일으켰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사건으로 비블로스의 원주민인 ‘게발인’은 사라지고 아모리 인들과의 융합으로 페니키아 인의 선조 격인 ‘가나안 Canaan 인’들이 탄생한다. 근댜 고고학자들은 페니키아 인들이 자신을 가나안 인이라는 뜻의 ‘켄나안니 Kena’ani’ 로 자칭했다고 보고 있다. 이미 배를 타는 데 익숙한 게발인과 유목민인 아모리 인들의 융합은 역사상 최초의 해양민족을 낳은 최고의 조건이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 ‘파괴적인 사건’으로 백향목이라고 불리우는 삼나무의 이집트 공급이 중단되었다. 이집트의 한 현인은 이렇게 한탄했다.
“아무도 북쪽의 비블로스로 배를 타고 가지 않는다. 우리의 사제들은 삼나무를 짠 관에 묻혔고 귀족들은 삼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으로 방부 처리되었는데 이제 우리의 미라에 쓸 그 나무들이 없으니 어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