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슷한 말을 한다.
“기록에는 신경 쓰지 않아. 단지 건강을 위해 달릴 뿐이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빈말이 되고 있음을 본인 스스로 깨닫게 된다. 초 단위로 기록을 꼼꼼히 체크하는가 하면, 평행선을 긋고 있는 기록을 보면서 속상해하기도 한다. 자기보다 좋은 기록을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라도 하는 날에는 괜히 주눅이 들어 고개가 숙여진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록이 답보 상태에 머무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어느 수준이 되면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해도 스피드가 향상되지 않는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방법들을 다 동원해 보지만 기록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이때는 본인의 훈련 방법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매일 똑같은 훈련으로는 기록을 단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서는 별도의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내리막을 달려라
마라톤에서는 일단 스피드의 개념을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 마라톤에서 스피드 최소 단위는 1km다. 100m나 200m를 얼마나 빨리 뛰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1km의 거리 동안 동일한 스피드가 지속돼야 의미가 있다. 즉 스피드를 향상시키기 위해 짧은 거리를 전력 질주하는 것은 잘못된 훈련법인 것이다. 1km 혹은 3∼5km 정도를 평상시보다 빠른 속도로 꾸준히 달려야 효과가 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탄력이 좋은 사람이 스피드 향상에 유리하다. 때문에 탄력을 키워 스피드를 향상시키는 별도의 훈련이 뒤따라야 한다.
최고의 훈련법은 ‘내리막 달리기’다. 내리막을 뛸 때는 지면 각도 때문에 저절로 보폭이 커지고 이에 대한 근육의 반응도 빨라진다. 자연스럽게 빠른 발동작을 익히면 탄력을 얻게 된다.
내리막을 잘 뛰는 선수를 보면 대개 무릎 위 대퇴부 근육이 발달돼 있다. 선천적으로 유연성이 좋아 내리막에 유독 강한 이봉주 선수의 다리가 대표적인 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의 최경열 마라톤 강화위원장도 현역 시절 내리막을 잘 뛴 것으로 유명하다.
1km 이상의 내리막 도로를 리듬감 있게, 또 골반과 허리를 앞으로 당겨 준다는 느낌으로 꾸준히 훈련하면 스피드 향상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대퇴부 근육이 좋아지는 것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 내리막 달리기는 부상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근력이 어느 정도 갖춰진 다음에 실시해야 한다.
매일 똑같은 코스를, 일정 시간 동안 달리더라도 변화를 줘 달리는 방법도 권하고 싶다.
아마추어 마라토너들을 만나 훈련 방법을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어떤 마스터스 마라톤 행사에 갔다가 한 아마추어 마라토너를 만났다. 30대 중반의 그는 아마추어로서는 놀라운 수준인 2시간29분대의 풀코스 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만나자마자 대뜸 “어떻게 훈련하면 기록을 더 단축할 수 있느냐?”고 물어왔다.
50대 후반이라고 밝힌 한 러너는 자신이 뛰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테이프를 들고 와 올바른 러닝 자세에 관해 물었다. “착지할 때 발의 내측부터 땅에 닿는데 이를 외측으로 바꾸면 기록 향상에 효과가 있지 않겠느냐?”는 구체적인 질문도 해왔다.
두 사람에게 현재 어떻게 훈련하는지부터 질문했다. 그들의 대답은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았다. 15∼20km의 일정한 거리(코스도 같다)를 매일 똑같은 방법으로 뛰면서 꼼꼼히 기록 체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데 어느 수준이 되니 더 이상 기록이 단축되지 않아 고민에 빠져 있다고 그들은 털어놓았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혼자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보자들을 포함, 대부분의 달림이들에게는 ‘변화 있는 달리기’가 필요하다. 숨이 벅찰 정도로 피치를 올렸다가 좀 늦춰 뛰기도 하고, 내리막을 내달리거나 오르막에서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등 코스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뛰는 게 바람직하다.
변화를 줘서 달려라
그리고 매일 똑같은 방식으로 훈련하기보다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35∼40km의 장거리를 뛰어주는 게 좋다. 중간에 휴식 없이 강도 높은 거리주를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에 1주일에 한두 번은 5km를 전력으로 달리는 스피드 훈련을 실시하면 전체적인 구색을 맞출 수 있다.
매일 기록을 체크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오히려 열흘에 한 번 정도 몸 상태를 최고조로 만들어 마치 ‘혼자만의 대회’를 치른다는 심정으로 기록 체크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 밖에 일정한 지점(또는 시간)을 정해 정해진 거리(또는 시간)를 왕복으로 달리면서 출발할 때보다 되돌아올 때 더 빠르게 달리는 훈련 방법도 좋다.
먼저 평탄한 코스를 선택한 후 반환점에서 시간을 체크해 돌아올 때 더 빨리 달린다. 왕복 거리는 자신의 체력에 따라 스스로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왕복 30분 정도의 거리를 달릴 경우, 돌아올 때는 갈 때보다 2∼3분 단축시킬 정도의 스피드를 내면 된다. 단, 총 훈련 시간이 1시간 미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기록 단축은 모든 달림이들의 꿈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적절한 훈련을 꾸준히 해줘야 속도가 향상되면서 자신이 원하는 기록을 보유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 가을,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하고자 하는 러너들에게는 위의 훈련 방법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