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에 취해 바라보는 꿈같은 하늘이
천국의 문이 되는 그 시간에
나는 하나님이 되고 싶은 것이다
<창작동기>
거리를 지나가다 누워있는 벌레를 보았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벌레였습니다. 한순간이지만 나는 그 벌레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픈 충동이 일었습니다. 만약 정말 잡아올린다면 벌레의 팔이 떨어져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아, 그래서 하나님도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시는구나. 연약한 인간의 팔로선 하나님이 이끄는 힘을 견디지 못할 테니까.
구두
정다은
한 뼘 겨우 넘을락 말락
봄이라고 코사지 단 그곳에
두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
콧날만큼 가파른 경사를
하나의 송곳으로 박아 올린
내 뿌리의 안식처
숨구멍 하나 없는 그곳에
이브의 이름을 새겨 놓는다
어머니의 어머니
나는 피고름이 가득한 뿌리를
아담의 등뼈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의 나무, 나의 어머니
나의 이브를 위하여
<창작동기>
어릴 때 어째서 그토록 빨강 구두가 신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하지만 그때는 나름대로 절실했습니다.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나서야 구두를 신을 기회가 생겼지만 발은 제 뜻대로 구두 안으로 들어가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발에 대해 보복한 시입니다, 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도 상당수 여성들을 이런 구두를 자진해서 신지요. 여성은 왜 발을 학대하는가, 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한 시입니다.
메리
정다은
유덕동 감나무 집 아래
메리가 묶여 있다 이웃집 시커먼
달구새끼의 숨통을 끊어
메리는 지금 목줄의 오명을 쓰고 있다
동생만큼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간
어미가 보면
참으로 서글픈 것이 犬생이건만
닭고기 처먹고 늘어진 메리의 배딱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처마 밑에 제비 날아와 새끼치면
어린 수캐들 찾아와 노닥거리건만
젖 먹여 키우던
제 어미를 기억이나 할는가
마을 밖으로 다리는 놓이는데
주인 잃은 처마 밑
감나무 베어지면
유덕동 메리의 목줄 벗어날는가
<창작동기>
5년 안에 저는 할머니 댁을 완전히 잃어버릴 것 같습니다. 재건축을 한다는 것입니다. 기와는 사라지고 그 대신 노란 물탱크가 들어서겠지요. 잃어버린 것 하나 하나를 한때는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마을 어귀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누렁이들, 그리고 거미, 파리, 지네 등등도 사라지겠지요. 언제부터였을까요. 메리가 묶이기 시작한 것이, 제비가 사라진 것이. 적어도 메리 만큼은 남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촌평 : 정다은의 시는 무엇보다 관념을 다룰 알아 좋군요. 관념을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 다름의 시선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시를 많이 써본, 읽어본 흔적도 느껴지는군요. 1학년의 시로서는 상당하군요. 거의 시의 경지에 올라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겠어요. 위와 같이 퇴고를 했으니 참고하여 좀더 좋은 시를 만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