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술수와 인재의 쟁탈
글 : 효설
2026년 10월 18일
오늘날의 테크놀로지 기업에서 인재는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인재를 붙잡고, 그들이 회사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성실하게 일하게 만들 것인가는 커다란 과제가 되었다.
모 회사는 창립 당시 매우 뛰어난 프로그래머가 한 명 있었다. 본래 그에게 지분 배당금 20%를 주기로 약속했으나, 나중에 말을 바꾸어 약간의 보너스와 높은 월급만 주겠다고 했다.
사장의 사고방식은 단순했다. 배당금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그 프로그래머가 돈을 충분히 벌면 스스로 회사를 차려 나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마땅히 받아야 할 이익을 얻지 못했다고 느껴 떠나버렸다. 기존 회사는 큰 타격을 입고 문을 닫을 뻔했다.
이후 그 프로그래머는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이 회사는 마땅히 주어야 할 지분을 약속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생활까지 세심하게 돌보아 주었다. 그의 개인적인 생활 속 크고 작은 일까지 거의 다 대신 처리해 준 것이다.
본래 타인과의 교류에 서툴고 오직 프로그래밍 연구에만 전념하고 싶어 했던 그 프로그래머는 매우 안심하고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 회사는 순식간에 이전 회사를 제치고 업계의 선두 주자로 올라섰다.
인재를 붙잡는 것은 과거 우(禹)임금이 치수(治水)를 한 것과 같다. 막아서 막는 것(堵)이 아니라 흘러가도록 이끄는 것(導)이다. 첫 번째 회사는 자금을 제한하여 프로그래머가 회사를 차릴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이탈을 막으려 했으나, 결국 역효과를 낳았다.
반면 다른 회사는 프로그래머가 하지 못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부분을 원융(圓融, 원만하게 보완)해 주었다. 일종의 상호보완이었던 셈이다. 이로 인해 프로그래머는 떠나지 않고 전념하여 일할 수 있었으며, 결국 모두가 원하는 바를 얻었다.
살아가면서 난관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남을 괴롭게 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항상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고려하며 남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야 한다.
고인들은 흔히 “남을 돕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겉보기에는 직원에게 도움을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돕는 일이며, 직원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일하고 가치를 창출하도록 만드는 길이다.
직장이라는 경쟁의 장에서 자원과 인재는 모두 매우 중요하다. 인재를 어떻게 쓰고 붙잡아 둘 수 있느냐는 참으로 하나의 깊은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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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일화는 재물에 대한 집착의 유무가 사업의 성패로 발전됨을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성경에는 재물에 대한 집착의 해로움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마태복음 19장의 기록을 보면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묻기 위해 예수를 찾아온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청년이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자, 예수는 먼저 계율(살생, 도둑질, 거짓말, 간음 금지 등)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청년이 자신은 그러한 계율들을 지켜 왔다고 하자,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태복음 19:21)
이 가르침은 자신의 소유를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고, 탐욕에서 벗어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하늘의 보화, 즉 공덕을 쌓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청년은 재물이 많았으므로 근심하며 그냥 돌아간다. 이에 예수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태복음 19:24)
이 말씀은 단순히 부자는 천국에 못 간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집착하여 나쁜 짓을 하거나, 재물에 집착하여 마음을 빼앗긴 자는 번뇌망상으로부터 해탈하여 천국으로 가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불교의 무집착과 보시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재물을 소유하더라도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덜어 주는 데 활용하면 천상의 복에 해당하는 덕을 쌓을 수 있다.
한편 가룟 유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재물에 대한 집착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을 알 수 있다.
요한복음 12장 6절에는 가룟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으면서 그 안에 든 돈을 훔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마태복음 26장 14~16절에는 유다가 은화 서른 닢을 받고 예수를 넘겨주기로 유태교 지도자들과 약속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27장에 따르면, 예수가 유죄 판결을 받고 넘겨진 뒤 유다는 자신이 무고한 예수를 팔아넘겼다며 후회하고 은화를 돌려주려 했다. 이후 그는 양심의 가책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양심과 재물 중에서 유다가 한 선택과 그 결과는 양심과 진리를 외면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선택이 결국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디모데전서에는 또 재물에 대한 집착을 경계하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온다.
“돈을 사랑함이 萬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디모데전서 6:10)
이 말씀은 돈을 지나치게 사랑하고 탐욕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여러 악행의 원인이 되어 도리어 자신을 망치게 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재물에 대한 욕심이 지나치면 진실을 외면하고, 양심을 저버리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기 쉽다. 반대로 재물을 삶의 수단으로 여기고 필요한 곳에 나누어 쓴다면, 재물은 다른 사람을 돕고 덕을 쌓고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재물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재물을 얻고 사용하느냐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