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는 봄과 여름이 만나는 어디쯤에서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첫 번째 장미는 눈에 잘 띄지 않을 수도 있다.
두 번째 장미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볕이 뜨거워도 여름이라고 보기엔 열기가 부족한 어느날
느닷없이 장미로 가득 찬 학교의 담벼락이 보인다.
도시의 담과 울타리를 영토로 삼는 붉은 장미는 북반구의 온대 지역에
널리 펴져 서식한 야생 장미의 후손이다.
이들은 광활한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 씨앗을 많이 만들어야 했다.
그러려면 곤충의 도움이 필요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야생 장미는 강한 향으로 곤충을 불러 모았다.
장미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사람도 야생 장미의 향기에 끌렸다.
꽃도 작고 색도 다양하지 않지만 그 향기를 들이마시면 시름이
사라지고 생동감이 차올랐다.
장미는 이 향 덕분에 사랑, 용기, 도전등 온갖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상징이 되었다.
나아가 심신을 안정시키는 약효도 있었다.
아, 이렇게 훌륭한 향기를 지닌 꽃이 좀 더 크고 화려하면 얼마나 좋을까?
꽃잎이 크면 향도 많이 날 텐테,
인간은 교배를 통해 야생 장미를 더 크게 만들었다.
장미의 색에 관해서도 욕심이 많았다.
그들은 장미를 교잡해 흰색과 붉은색과 노란색 사이 어디쯤 놓일 것
같은 다양한 색을 탄생시켰다.
그 결과 지구상에는 1만 5천여종에 달하는 장미가 자태를 뽐낸다.
하지만 오랜 노력에도 사람이 만들지 못한 장미가 있다.
파란 장미다.
원예사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파란 장미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파란 장미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흰 장미의 줄기 끝을
파란 잉크에 담가 흰 꽃잎을 파란색으로 물들였다.
원래 흰색으로 태어난 장미는 사람의 욕망에 따라 잉크를 먹고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했다.
파란 장미에 대한 집착은 과학자들에게로 이어졌다.
과학자들은 장미의 세포를 갈아 각종 약품 처리를 한 뒤 그들의 유전자를 추출해
낱낱이 조사했다.
그러자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장미에게 파란색 색소 유전자가 없었다.
제비꽃과 팬지는 파란색 색소 델피니딘을 가지고 있다.
델피니딘은 플라보노이드3과 히드록시라아제5라는 효소를 합성해서 만드는데
장미의 유전자에는 이런 효소를 만들 명령어가 없는 것이다.
장미는 원래 파란색이 될 수 없다.
온 세상 장미를 솜씨 좋게 교배해도 절대 파란 장미를 얻을 수 없는 이유는 하나
장미의 사전에 파란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란 장미의 꽃말은 불가능! 하지만 과학자들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고
파란 꽃이 가진 파란색 유전자를 분리해 장미의 유전자에 끼워 넣었다.
사람들은 쨍한 파란색을 보려 델피니딘이 많이 생기도록 유전자를 설계했다.
결국 유전자 조작으로 장미에 파란색 색소가 생겼다.파란 장미도 태어났다.
하지만 이 장미는 쨍한 파란색 대신 라벤더꽃과 같은 보라색을 띤다.그러니 파란 장미는 여전히 불가능이다.사람들이 이렇게 달려오는 동안 잊은 것이 있다,아름다운 색 많은 꽃잎 큰 꽃송이를 얻은 장미들은 향기를 잃어간다.장미는 열매를 맺으려 잔한 향기로 곤충을 모은다.그 일을 인간이 해 주니 향기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그 탓에 교배를 통해 얻은 꽃은 화려한 외모에도 향이 약하거나 아예 나지 않는다.하나를 얻으려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내놓아야 하는 게임이라고나 할까먼 옛날 인간이 야생 장미에 관심을 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향기를 잃은 파란 장미는 장미다운 장미일까?먼 옛날 인간이 야생 장미에 관심을 둔 이유가 무엇인었는지 다시 생각해 본다.향기를 잃은 파란 장미는 장미다운 장미일까?장미의 계절출처 2021년 5월 좋은생각 이지유작가님의 과학의 눈
2023.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