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약간의 자투리 시간이 있는 경우에
아내와 같이 바람 쐬러 다닐 곳들을 찾게 된다.
경복궁이나 종묘 같은 고궁이나 공원,
혹은 청계천도 좋고, 양재천이나 시민의 숲도 가고 싶고,
남산도 다녀 온지가 무척 오래전이다.
한강변은 아직 바람이 강해 선뜻 내키지 않는다.
요즘 다녀 온곳은 동대문 운동장 풍물시장이다.
원래 황학동 고물시장의 노점들을
청계천 공사하면서 집단으로 이주시킨 곳인데,
인파에 휩쓸리고 혼잡스러운 것을 인내할 수 있다면
머리 식히며 눈구경하기가 그만이다.
이곳의 상품은 실로 다양해서 처음오는 분은 넋을 잃을 정도이다.
(흥미가 있으면 추후 다시 한번 자세히 소개 하겠다. )
마누라만 안 보이면
성인 용품 가게 앞에서 서성거려도 쑥스럽지 않고,
한 개에 5천원하는 접는 돋보기 안경을 만원에 3개를 사기도 했다.
골동품틱한 물건에서 각종 액서사리나 성인 비디오,
명품 옷이나 등산 용품들도 지천인데,
단 신품은 값이 싼 대신 정품은 적고
차라리 난전에 펴 놓고 파는 고물중에 선별하는 것이 묘미도 있다.
재수가 좋으면
별로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호기심이나 향수에 젖어
싼맛에, 혹은 재미로 몇가지 물건을 고르기도 하지만
집으로 가져오면
그중 절반 이상은 집 한쪽 구석에서 구박을 받다가
(심한 경우 부부싸움 때마다 시빗거리 목록으로 추가 될수도 있음)
결국 다시 쓰레기로 버리기 십상이다.
한쪽으로 먹거리들이 늘어 서 있는데,
5일장의 야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대개가 값이 싼 듯이 착각하게 만들뿐,
실제로 재료나 위생, 그리고 맛 자체도 그 가격으로 맞춰져,
오히려 일반 식당보다 바가지 쓸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라며,
내 뱃속 또한 결코 반가와 하지 않았다.
그래도 왁자지껄,
재래 시장을 즐기는 사람은
주인들과 여유있게 흥정하는 맛도 즐거울 듯하다.
그날 건진 고물 호롱불 전구이다.
주인왈.....
수제품이고
안제리나 쥬리라는 배우의 입술이 연상되며
곡선미가 매우 섹시하고 육감적인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예술품이라는 넉살에 넘어가,
바닥에 자빠져 있는 것을 집어들고 살펴보니
밑의 스위치도 떨어져 있는 등
고장이 났으면 수리비가 더 들어 폐기해야 할,
아무리 생각해도 쓰레기로 나온 것중 줏어다 파는 듯한 심증이 많았으나,
아주 아주 오랫만에
부부사이에 의견이 순식간에 일치한 기념으로
10,000원 달라는 것을 8,000원으로 깍아 구입했다.
집에 가져와 몇가지 손을 본 후
점등을 하니 깜찍하게 불이 들어 온다.
원래 목적은
밤세도록 칠흙같은 거실에 등대와 같이 불을 밝혀
급히 화장실이 필요한 식구들에게 길을 안내할 용도였으나
그들의 강력한 반발에 도저히 실행하지 못하고
마음이 아프게도
난방도 안되는 차디찬 옥탑방 한 구석 고물 오디오 위에
무디(moody) 반딧불이라는 이름으로
임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럴 듯 하더니
가족들이 자꾸 내 모는 탓인지,
보면 볼수록 촌스러워 지는 것이
다시 풍물시장에 복귀해야 할 듯도 한데...
그래도 호롱불과 어울리니
골방이나마 온기를 느낄 것 같고
LP 레코드의 섹스폰 연주소리(Ace Cannon - Laura) 또한
더욱 맛깔스러운 듯도 싶다.......?
첫댓글 그거 내다 버릴 거면 저 주세요. 알라딘의 요술램프 같기도하고, 단순하면서 균형미가 있는 실루엣이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은데요. 동화속에 나오는 램프 같아 정겨워 보이네요. 역시 안목이 있으시군요.
황학동 벼룩시장에 나도 자주 갔었는데 동대문운동장으로는 3번인가 갔었다. 나는 세계의 벼룩시장을 다리운동삼아 많이 다녀보는데 횅재성으로 잘 산 것들도 많고 밀라노에서 가짜 김홍도그림을 사오기도 했다. 벼룩시장은 참 재미있다. 덕분에 앤틱카메라는 약 100개 모았다. 쓸데없이 사와 처박아 두지 않도록 자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