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를 꿈꾸며
김영애
건설 현장을 떠돌다 밧줄 타기 시작한 지 육칠 년
재작년에는 같이 일하던 동료가 죔줄이 풀리는 사고로
세상 떠난 이후로 이 씨는 악몽을 꾸곤 한다
밥줄이자 목숨줄인 줄 인생은 어젯밤 꿈에서 조차
어름사니였으니
강 참봉댁 환갑잔치에 불려 온 남사당패 어름사니인 그
제비처럼 공중을 돌아 줄을 밟을 때마다
줄이 출렁 구경꾼의 간이 철렁
양반 사는 곳은 첩이 많아 첩첩산중 얼쑤 장단에
일인 지하, 만인 지상 정승
나는 새도 떨어뜨렸다는 조부가 사화에 연루되어
집안은 풍비박산,
명은 천명이라 유모 덕분에 목숨은 구했으나
한 손에 부채 들고 허공에 빌붙어 사니
멸문가 양반 후손이면 무엇하리,
까딱 줄 밖으로 떨어지면 죽는 것을
얼쑤얼쑤 장단에 맞춰
앉았다가 섰다가 허공을 오르내리는데
한 줄기 바람에 실려 오는 모란꽃 향기에 취해 곤두박질
그의 비명에 놀란 아내가 깨운다
꿈자리가 뒤숭숭해 집에서 쉬려다
눈 오는 날 비 오는날 빼면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오늘도 줄에 몸을 싣는다
먹이를 찾다 빌딩 유리에 부딪혀 날개 꺾인 새
숨을 몰아 파닥이는 절망의 새
품에 안고 유리벽을 내려온다
허공을 가르고 빌딩 숲으로 치닫는 바람은 몹시도 사납다
-시 전문 『바람, 바다와 만날 때』(2023)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