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대전성모병원 장례식장 경당
우리는 지금 조복휘 이냐시오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상 1945년생이신 형제님은 4남1녀 중 넷째로 이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가족들이 인천에 정착하였는데 그동안 다른 형제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지금은 홀로남아 계셨습니다. 대전교육청에서 근무를 하던 중인 1972년 한월섭 로사리아 자매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1남1녀, 곧 조현경 채사리아와 조철환 필립보를 낳으셨습니다. 형제님의 집안이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건, 1993년 도마동 성당에서 부인과 아들이 함께 세례성사를 받고부터입니다. 1998년에는 딸이, 그리고 2000년 10월 7일에는 형제님이 정림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2001년 3월 4일 같은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으셨습니다.
아마도 정년퇴임을 하고나서 세례를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형제님은 자기 삶의 중심에 하느님을 모셨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Pr.에서 15년 동안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하시면서 동시에 사회복지분과 위원으로 밑반찬 배달 봉사와 후원금 모금에도 적극 참여하셨습니다. 대형버스 면허증도 있으셔서 한번은 본당 성지순례 때 운전도 해주셨습니다. 2003년 패혈증으로 부인을 먼저 하느님 곁으로 떠나보내고 그동안 홀로 지내면서도 본당일이라면 언제나 솔선수범하셨습니다. 한편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신 뒤로 완치되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술은 못 드시지만 워낙 담배를 좋아하시고 흥이 많으셔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때면 분위기를 띄우셨습니다. 그리고 낚시도 즐기셨답니다.
항상 주일 교중 미사를 봉헌하셨는데 2월에도 미사 중 쓰러지셔서 많은 분들이 걱정하셨습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사가 중단되어 한동안 뵙지 못했는데 지난 2월 말 자녀들이 대전성모병원으로 모셨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3월 8일(수)에는 중환자실로 옮겼다고 합니다. 가족 면회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소식을 듣고 저는 본당신부의 자격으로 지난 3.19(목) 잠시 뵙고 기도를 해드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망설여졌습니다. 다행히도 따님과 연락이 닿았고 산내공원묘지에 모신 어머님을 납골당으로 이장한 날인 3.26(목) 오후 중환자실에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이때에도 함께한 자녀들이 작은 기적을 체험하며 성사의 은총을 느꼈습니다.
기계 호흡에 의지하며 연명하시던 형제님의 모습은 일주일전보다 부기가 많이 빠져있었고 호흡도 편안해보였습니다. 병자성사 중에 눈물이 흘러내렸고 자녀들은 아버지의 작은 움직임을 보았다고 합니다. 중환자실에 계신 아버지를 뵙지 못했던 자녀들에게 어쩌면 이 순간이 마지막 작별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던 수많은 감정들을 그 순간 서로 소통하며 나눌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하느님의 섭리라 생각합니다. 언제나 성실하시고 화를 잘 내지 않던 고인은 자녀들에게 늘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니 유가족의 입장에서 살아생전에 못해드린 효에 대한 죄송함이 남아있다면 고인의 바람처럼 이제 신앙의 힘에 의지하며 생활하시길 당부합니다.
주님! 조복휘 이냐시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이냐시오와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