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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산(사불산) 산행후기 2009. 12. 17 평소 정년을 몇 년 앞두고 은퇴 후의 생활근거지를 어디에 정했으면 좋을지를 일부러 물색하러가지는 않았지만 가끔 여행이나 나들이 할 때 낯선 곳의 모습에서 은퇴 후의 보금자리 관심을 두고 자연경관, 배후도시, 교통의 편리성, 고향과의 접근성, 친구들과의 교류의 편리성 등을 생각하며 찾아보고 마음을 정한 곳이 나에게는 문경이 라고 심증을 굳혔다. 은퇴를 몇 개월 앞두고 처와 현지답사며 문경지방의 친지들의 자문을 구하기도 했으나 결국 은퇴 후 정착지로 문경을 정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았었다. 그래서 이곳 문경은 나에게 애정이 항상 가는 곳임을 틀림없다. 문경하면 문경새재, 과거(科擧)옛길, 주흘산 행글라이더 활강장(滑降場), 문경황토온천, 조령산, 대야산, 운달산, 일 년에 산문을 4월 초파일에만 연다는 유명한 봉암사, 문경사과, 국군 체육부대 등 문경의 이미지가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가기로 한 대승사(大乘寺)와 대승사의 배산 (背山)인 공덕산(功德山 일명 四佛山)은 대구의 생활 권역(圈域)이지만 나에게는 처음으로 대하는 대상이다. 우리를 태운 관광버스는 동로로가는 지방도를 달리다가 산북면 전두리입구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파르고 좁은 산 비탈길을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달리는 버스는 해발 약 500m에 위치하고 있는 대승사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 따라 겨울의 진가를 보여 주는 첫추위가 나의 얼굴과 무릎에 매서운 한기를 불어 넣어 마음까지 얼어붙게 한다. 차에서 내려 대승사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하였다 한 바퀴 돌아보기 전에 먼저 이 사찰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면 대승사는 사불산(四佛山)에 위치하고 있고, 신라 진평왕 9년 사면석불상(四面石佛像) 아래 창건되었으며 망명비구(亡名比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이 절은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또 1956년에 실화로 명부전과 산신각을 제외한 모든 전각들이 전소된 것을 근년에 대부분 복구하여 현재는 참선도량으로 이름이 높다. 산에 암자로 윤필암(潤筆庵), 묘적암(妙寂庵), 보현암(普賢庵)이 있다. 문화재로는 대승사 목각탱부 관계문서(보물575호), 대승사 금동보살좌상(보물991호), 대승사 마애여래좌상(유형문화재 239호), 대승사 윤필암 목조아미타여래조사상 및 지감(유형문화재 제300호), 대승사 윤필암 후불탱화(문화재 자료 348호)가 있다. 차에서 내리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새로 지은 신축 전각의 모습이 나의 눈을 사로잡는다. 자연미를 그대로 살린 신축전각의 장대석기단의 아름다움과 단청을 입히지 않은 신축전각의 전라(全裸)의 목재의 모습이 청순한 느낌이 들게 한다. 당우 건물의 좌우 양쪽에 장독대에 셀 수 없을 정도로. 항아리가 산사의 풍광과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마치 장류를 재래식으로 만들어 파는 공장과 같은 느낌이 든다. 사찰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한다. 당우는 불전(佛殿 ),강당(講堂), 승당(僧堂) 주고(廚庫) 욕실, 동사(東司 측간-화장실) 등으로 일반 사찰과 대동소이 하다. 대승사에서 대웅전에 있는 “대승사 목각후불탱화(木刻後佛幀畵)를 보고 싶어서 염치불구하고 대웅전 서문 출입문을 기도하는 스님과 신자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가만히 문을 열고 목각후불탱화를 보았고 또 촬영도 했다. 미안하지만 일단 나의 호기심을 억제 할 수가 없었다. 대승사 목각탱은 상주남장사, 예천용문사 등 모두 전국에 7점이 있는데, 이중 대승사 목각탱이 가장 크고 화려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인접한 예천, 문경, 상주의 사찰에 목각탱이 몰려있다는 것에 대해서 왜 그런지 조사해 보아야 할 과제이다. 극락전, 산신각, 응진전 명부전을 돌아 대승선원(大乘禪院)에서 여러 글귀의 주련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주련(柱聯)을 소개해 본다 春水淨如僧眼碧(춘수정여승안벽) 봄 개울물 스님의 푸른 눈 같이 맑고 遠山濃似佛頭靑(원산농사불두청) 먼 산 경치는 부처님의 푸른 머리같이 짙구나
法雨慈雲沾如澤(법우자운첨여택) 부처 님의 한량없는 자비 연못의 물처럼 중생을 적셔주고 대승선원의 수련(柱聯) 속의 선시(禪詩 Buddhistic poetry)는 부처님의 자비를 매우 서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서정성(敍情性)과 선심(禪心)이 넘치는 시구는 화사한 봄날 문득 깨달음의 세계를에 도달한 수행승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다. 여기서 春水淨, 遠山濃, 萬壑松聲, 一廉月色, 松風水月 즉 맑은 개울물, 먼 산이 조금씩 조금씩 변하는 모습, 산골짜기의 솔바람 소리, 주렴에 어린 달, 솔바람과 물에 비친 달, 이 시구가 산사에 찾아든 계절 변화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고 너무나 낭만적이다. 젊은 스님이 계절의 변화와 자연의 변화에도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불심에 정진하는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내가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자연을 노래한 이 시구만 보아도 마음이 저절로 깨끗해지는 것 같다. 대승사를 탐방을 끝낼 무렵에 약속한 이진구, 천세창, 권성명 세친구가 도착했다. 얼마나 반가운지 나도 모르게 그 친구들과 포옹을 하며 인사를 했다. 서로 다른 곳에 생활하면서도 정해진 산행 스케줄에 맞춰 함께 산행을 한다는 자체가 넘치는 친구애(親舊愛)와 동기애(同期愛)를 맛보는 즐거움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다. 오늘 산행의 기점은 대승사(大乘寺)이다. 우리나라의 이름난 산에는 이름 난 절이 있게 마련인데 이 산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사불산(四佛山)과 대승사(大乘寺)만 관계만으로도 산과 절의 깊은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일행은 대승사 남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졸참나무 군락으로 이루어진 등산로에 두툼히 깔린 낙엽은 구름 위를 걷는 듯 푹신하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눈을 맑게 해 주며,차가워진 공기에 가슴 속까지 냉기가 전달되는 느낌이다. 오늘 따라 바람이 이렇게 심하고 매서운지 동장군을 마중하러 간 것 같다. 그러나 바람에 따라 나뒹구는 낙엽의 하모니는 겨울 산행의 오케스트라이다. 산행을 한지 40~50분 만에 공덕산 정상(912.9m)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동쪽에 보이는 삼각형 모양의 천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산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침 정상에서 수원서 온 산꾼을 만났다. 그들에게 물어보니 자기들이 천주산에서 온다고 한다. 여기서 보기에 꾀 멀어보이는 천주산인데 이 분들은 우리 보다 배트랑인 것 같다. 한 참을 기다려도 2진인 지한, 진상, 창영은 보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휴식을 하여 다행히 그들과 합류하였다. 모처럼 안동친구들과 정상 표지석에서 의미있는 기념촬영을 하여 흔적을 남기었다. 별로 힘들지는 않지만 낙엽 카페트의 산행길은 초심자에게 엉덩방아를 찧게한다. 그러나 낙엽에 파묻히는 낭만은 고스란히 마음속에 간직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한다. 이것이 낙엽 길 산행의 묘미가 아닌가? 사불암과 묘적암 가는 갈림길 능선에서 중식을 하고 사불암을 향하였다.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오니 기기묘묘한 암릉과 노송과 고사목이 산행의 운치를 더해 준다. 낙엽길을 한참 내려오니 사불암에 다다랐다. 사불바위에서 바라보는 시야에는 거칠 것이 없다. 좌우로 뻗어 내린 산줄기가 사불바위를 보호하려는 듯 등 뒤로 빙 둘러쳐져 있다. 오른쪽 아래로 윤필암과 묘적암 풍경이 그림같이 잡힌다. 사불바위는 아주 크다. 사방 1m 두께에 높이는 3.2m나 된다. 거대한 바위 위에 떡하니 서 있는 모습이 정말 하늘에서 뚝 떨어져 박힌 것처럼 보인다. 면별로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불바위의 네 면에는 좌상(坐像)과 입상(立像) 여래불(如來佛)이 새겨져 있다. 부조형식인데 오랜 세월의 탓으로 양각이지만 먼발치에서는 상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손으로 만져보니 감각으로 상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오랜 세월 비바람에 씻긴 탓인지 그 모습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사불암(四佛岩)의 거창한 전설에서 호기심이 많았는데, 현장 확인 후 실망을 안고, 비구니(比丘尼)의 수련도장인 윤필암(潤筆庵)으로 향했다. 사불바위의 기단을 이루는 커다란 바위 아래쪽에 오니, 기와 파편이 여기저기 보인다. 사불바위를 보호하던 전각이 있었다는 증거라고 한다. 조금 내려오니 산행객들이 바위 위에 쌓아놓은 소원탑의 앙증맞은 모습은 산행객들에게 즐거움을 더해준다. 윤필암(潤筆庵)에 들어서니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 잡은 전각들의 배치의 조화미가 잘 드러나고 있었다. 이 암자는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창건된 암자이며, 지금은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단정한 게 어디 하나 허점을 찾을 수 없다. 사찰 서쪽 언덕에 자리 잡은 사불전(四佛殿)은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게 특이하다. 불상을 모실 제단과 불상이 없다. 사불전(四佛殿)에서 사불암(四佛岩)을 향하여 커다란 통유리로 멀리 사불산(四佛山) 능선에 있는 사불암(四佛岩)을 산마루의 사불바위가 보이도록 했다. 사불바위가 곧 사불전의 불상과 마찬가지다. 마치 적멸보궁(寂滅寶宮)의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는 사리탑(舍利塔)이 불상의 역할을 하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오늘의 산행은 경관이 빼어난 윤필암(潤筆庵)에서 우리의 안동 친구 이진구, 천세창, 권성명 과 함께 뜻있는 하산 행사를 하였다. 대구 하나산악회를 위해 먼길 마다않고, 아니 추위를 무릅쓰고 찾아온 열정에 감복한다. 정성이 가득 담긴 새색시의 첫길 정성과 같은 안동의 명물인 <벙어리 찰떡>과 <안동식혜>로 하산 행사를 잔치 마당으로 만들었다., 넉넉하고 후한 안동 인심을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하산 행사가 되었다.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면서 안동친구들의 꾸밈없는 인정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공덕산 대승사 윤필암 영상보고 화면 가운데에 있는 D자 모양의 안에 삼각형을 클릭하면 동영상을 볼 수 있고 그리고 화면 하단 우측에서 첫번째 네모 단추를 클릭하면 큰 화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본래의 화면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컴퓨터 자판기의 좌측 끝단의 Esc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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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장이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명문 못지 않구려!!! 김기현 선생 존경합니다. 이런 친구들 덕분에 행사가 빛나고 뜻깊어지지요. 파노라마 영상 자료가 너무 빨리 돌아가 조용히 음미할 시간을 안 주는 게 흠일세!!! 안동 친구들(천사장도...)의 인심은 매번 많은 이들을 감동 시키고도 남는군!!! 너무나 고마와요.
보통 한파가 아닌 날씨에 열심히도 찍고 박고 촬영하고 눈여겨 본 탐방 관찰 이렇게 제공 해주어 돌아 와서 참 공부의 기회가 되니 더욱 감사, 수고 감사.
해박한 윤중의 한시해석도 후련하고, 동영상의 자막을 읽으며 사진 보면서 은은한 음악에 흠뻑 빠져보면 등산하던 그 시간 보다 더 즐겁기만 하답니다. 등산할 때는 맨 뒤쳐져서 따라가기에만 급급해서(내 몸의 쇠약?) 등산하는 시간이 오히려 괴로움으로 다가왔었는데 윤중 김기현의 등산후의 그 멋진 해설과 동영상에 매료되는 게 나 류진상은 등산하는 기쁨보다 더 만족스럽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윤중선생! 자네 정말 글솜씨가 보통이 넘네. 내가 제일 부러운것이 글잘쓰는 사람인데...자기의 감정을 글로 표현할수있는 능력! 야 정말 존경 스럽고 고맙네. 진달레 피는 봄이나 단풍드는 가을에 또 한번 가고싶은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