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제약협회가 의사들의 리베이트 수수 사실을 또 한번 폭로(?)한 지 제법 시간이 흘렀지만 여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곧바로 의사협회의 반발이 터져 나오며 파장이 증폭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협회나 제약협회나 더 이상의 파장 확산이 이로울게 없다고 느낀 탓인지 각자 숨을 고른 채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새롭게 눈길을 끈 한가지 사실은 의료계 리베이트를 ‘생계형’으로 보려는 일각의 인식이었다. 물론 의료계의 어느 누구도 감히 불법적인 리베이트를 내놓고 ‘생계형’이라 공언한 적은 없다. 하지만 리베이트 관행 근절의 전제 조건으로 일각에서 ‘적정수가 보장’이 제기되는 현실은 분명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그 격세지감은 의사들의 형편이 그토록 어려워졌나 하는 의문으로 요약된다. ‘적정수가 보장’ 주장은 듣기에 따라 적정수가 보장이 안되면 리베이트 관행은 근절되지 않으리라는 엄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수가가 조절되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리베이트를 받겠다”는 극단적 자기방어로 해석될 개연성도 있기 때문이다.
논란의 과정에서 드러난 바에 의하면 일부 의사들이 제약사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는 이미 촌지 수준을 넘어섰다.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리베이트의 용처가 병원 경영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리베이트의 형식은 최근 들어 ‘강연료’나 ‘자문료’를 넘어 ‘개원시 병원시설 지원’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한다. ‘생계형’ 논란이 나온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이번 사태가 의료계의 어려운 현실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계, 그 중에서도 특히 개원가의 어려움은 여러 통계수치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의사협회가 이번 리베이트 논란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공개한, 해묵은 자료들도 그같은 현실을 잘 일깨워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의사인력의 대폭적인 증가세다. 의사협회의 인식대로 현 상태를 ‘의료인력 공급과잉’으로 볼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대한민국 의사 수는 이미 10만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최신 자료인 2008년 말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 의사 수는 9만9065명(보건복지부 등록 기준)이다.
최근 의료 인력이 해마다 3000명 이상씩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현재의 의사 수는 10만 하고도 2천 수백명이 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새로 배출된 2010년 신규 전문의 숫자(3226명)도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개원가의 어려움을 가장 확실히 보여주는 자료는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다. 의사협회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의사 수는 1980년 54명이던 것이 2008년 204명으로 늘었다. 28년 동안 인구가 17.1% 증가하는 동안 의사 수는 무려 339%나 증가했다.
소득 증대 등으로 의료비 지출액 절대치가 늘어났음을 감안하더라도 분명 의료계의 현실이 무척 고단해졌음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이런 현실을 보면 중소병원 20%가 매년 문을 닫는다느니, 매년 2천개 이상의 크고 작은 병원이 폐업한다느니 하는 말들이 엄살만은 아닌 것 같다.
상황이 이 정도이다 보니 의료계 일각에서는 해외로 눈길을 돌리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미국 의사자격시험(USMLE)이나 일본 의사자격시험(JMLE)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어디 간들 의사들이 예전의 영화를 고스란히 누릴 수는 없는게 엄연한 현실이다. 미국 의사들이나 일본 의사들이나 글로벌화된 의료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거보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의사들을 서글프게 하는 사실은 현재의 고단해진 의료계 여건을 역성들어줄 세력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의료 서비스 소비자인 일반 국민들은 ‘의사 공급과잉’과 ‘의사들의 생존경쟁’을 즐기면 그만인 사람들이다. ‘공급과잉’이니 ‘생존경쟁’이니 하는 말부터가 그들에겐 의사들만의 용어로 인식될 뿐이다. 그들로서는 과당경쟁에 의한 진료비 저하가 반가울 뿐 서비스 질의 저하 따위는 당장 걱정할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의사들이 취해야 할 자세는?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는 일 외엔 뾰족한 수가 없다. 살아남으려면 의사이자 CEO가 돼야 하는 시절이 닥친 것이다. 다른 분야들이 일찌감치 그렇게 된 것처럼…
H파트너스
지난달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서명한 2009~2010년 예산안에 정부보조 의료보험 메디칼(Medi-Cal)에서 침 치료 혜택을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400억달러가 넘는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 부서에 걸쳐 총 150억달러에 이르는 긴축재정과 예산삭감 정책을 발표했고, 침 치료를 메디칼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침 치료의 메디칼 폐지는 오는 7월1일부터 실시되며 침 치료 외에도 카이로프랙틱 치료와 심리상담, 검안, 치과 치료 등도 메디칼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주한의사협회(회장 김갑봉)는 “침 치료는 지난 80년대부터 메디칼 대상으로 포함돼 저렴한 진료비와 우수한 치료효과로 환자와 보험사 모두에게 이득을 주었다”며 “어렵게 명맥을 유지해 오던 메디칼 침 치료 커버리지가 중단됨에 따라 한의사들은 물론 환자들도 피해를 입게 됐다”고 밝혔다.
메디칼은 침 치료를 선택 수혜사항으로 분류해 환자 1인당 최고 30달러까지 진료비 수가를 지급해 왔다. 가주한의사협회 남형각 사무국장은 “주정부가 메디칼 침 치료에 대해 지급하는 진료비가 1회에 5.75달러에 불과하다”며 “메디칼 침치료 폐지는 경제적인 문제보다는 정부 의료보험인 메디칼이 침 치료를 제외하면서 일반 의료보험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