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17일 부활낮미사 -일본사이트에서 인용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요한복음 20,3)
그리스도인으로서 마음을 가다듬는 긴 사순절과 성주간 후 50일간에 이르는 긴 부활절이 시작된다.그것은 부활한 예수와 함께하는 기간이다. 늘 그렇듯 교회는 우리를 위해 성경이 풍부한 곳을 골라 준비한다.그것으로 인해, 또 우리의 마음에 있음으로써 우리는 예수가 부활해 살아있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부활한 예수가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올해 부활절 첫째 주 복음서는 요한복음서 부분.요한은 부활이란 말을 잘 쓰지 않지만 부활한 예수에 대해 다른 복음서의 두 배쯤 쓴다.부활 이후 예수가 제자들 속에 살아 있음을 중심으로 한 다른 복음기자들과 달리 요한이 강하게 내놓는 것은 죽음을 이겨낸 그리스도,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리며 아버지 하느님의 진정한 아들로 하늘에 오르는 그리스도다.그것은 요한복음서 첫장부터 반복해서 나오는 주제이다.
오늘날의 대목을 포함한 20장에는 4개의 에피소드가 있다.베드로와 또 한 명의 제자, 막달라 마리아, 제자들, 그리고 마지막은 토마스.이 네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요한은 부활한 예수의 표시로 부활한 예수를 만나도록 우리를 인도하려 한다.십자가의 큰 고통, 그 좌절과 스캔들 뒤에 살아계신 예수를 발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이다.
오늘날 구약성서에 대한 여러 가지 시사점이 담겨 있는 신학적 이야기로 어렵지만 동시에 여러 가지 결론이 나오는 훌륭한 이야기이다.아침 일찍 -다른 복음서에서는 그렇다고만 하며 서방을 의미하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아직 어두울 때라고 하여 밤을 의미한다.밤사이에 찾아 헤매다니 아가의 신부를 떠올리게 한다.신랑을 잃고 절망해 신랑감을 찾는 신부(아가31-3). 아직 징표는 아무것도 없다.아직 신앙의 눈이 열리지 않았다.막달라 마리아는 돌이 치워지는 것을 보고 누군가 훔쳐갔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는 달려가라며 베드로와 예수가 사랑했던 또 다른 제자에게 알린다.성서학자들이 강조하는 성급 달리기는 초대교회 시절도, 그리고 오늘도 예수의 표시들을 찾고자 함을 일깨워 준다.예수를 추구하는 교회의 태도는 다양하다.마리아 같은 애정 어린 태도, 요한처럼 신비주의적 직관적인 태도, 베드로처럼 둔감하고 느리게 확인하는 태도. 다만 함께 달린다.오늘날 우리 모두는 예수를 깨달은 바를 교회 안에서 서로 나누고 소통하며 각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서로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예수님이 사랑하셨던 또 다른 제자. 그것은 요한이라고 100년 후의 교부들은 말했지만 정작 요한복음서에는 이름이 들어 있지 않다.예수가 사랑한 제자란 진정한 제자. 그래서 우리는 그럴 수도 있다고 성경학자들은 말한다.최후의 만찬 때 유다의 배신을 깨닫고 베드로가 부인해도 십자가 아래까지 예수 곁에 남아 어머니를 떠맡는다.오늘에서도 다음 21장 티베리아스 호수에서도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를 알아본다.예수를 만날 때 망설임 없이 따라가고 잠자는 것도 잊으며, 예수의 적도 알 만큼 예수를 사랑하고 필요할 때 목숨을 바친다.우리 자신도 그러라고 권하고 있다.
9절의 인상적인 말씀 성경말씀을 두 분이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예수가 어디로 갔는지와 교회가 망설일 때 중요한 것은 성경이다.요한복음서가 쓰인 시대는 예수의 산증인들의 시대가 끝난 뒤 예수를 직접 만난 사람이 없는 시대.우리 시대도 그렇다.하지만 성경은 예수를 알아보는 큰 힘이 된다.그래서 우리도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의 말씀을 묵상하거나 기도하는 길을 오늘의 복음서는 강하게 일깨워 준다.